무영근자 수선지로(無靈根者 修仙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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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키
작품등록일 :
2023.08.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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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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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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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신무월(神無月)

DUMMY

 우주 어딘가.


 ‘설마··· 상반된 두 기운을 여럿 가지고 있던 이유, 그가 있던 은하에 완벽한 영근을 가진 개체가 있던 이유가 상계 선인이라서?!’


 사념(思念)이 현성선인, 수선대능(玄成仙人, 修仙大能)이 진정으로 상계에서 강림한 선인인지를 다각도에서 검토하고 있었다.


 ‘그 개체가 상계 선인이고 나를 벌하길 원한다면, 어째서 바로 나에게 오지 않았지?’


 ‘선인의 의중을 누가 아는가?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수단을 발휘하는 것을 보지 않았나?! 어쩌면 상대의 ‘실력’에 맞춰 그때그때 적당한 정도로만 꺼내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숨겨놓은 마물(魔物)을 이곳으로 넘어오자마자 찾아냈다. 그리고 만물의 본질을 꿰뚫는 신통(神通)도 가지고 있지···.’


 아무리 사념이 개벽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이 우주에서 도달 가능한 최고 경지를 넘어 ‘그 이상’이더라도, 


 그 남자가 정말로 선인이라면 거인 손바닥 위의 애벌레로서 그곳을 구르면서 천지를 다 가진 양 굴던 것과 다름없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정말 ‘나’에게 천벌을 내리기 위한 설계이자 유희였단 말인가···?!’


 이것이 사념이 내린 결론이었다.


 상대가 상계에서 강림한 선인일 가능성이 생겨버린 이상 ‘사념’의 운신폭은 매우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꼴에 내 눈치를 보네? 알아서 풀어주고.’


 대머리 화신 중기 수사가 태행산맥에 깔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성동천’이 된 은하 내 모든 고계 수사들이 자아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아무리 상대가 하늘이라도 한 번 고개를 숙이면 영원히 절하게 되는 거야. 그런 것도 모르다니, 편법으로 경지를 올린 놈 답네.’


 수선대능 이정민은 이제 은하 중심에 적당한 거처를 만들고 ‘하계 수사’들이 알아서 모셔 만든 옥좌(玉座)에서,


 금룡(金龍)이 조각된 팔걸이에 턱을 괴며 사념의 멍청한 결정을 두고 조소하고 있었다.


 ‘천맹의 의장국 주재자가 머나먼 우주 어딘가 은하 하나를 동천(洞天)으로 두고 있으니···.’


 현성선인 이정민이 사념을 비웃는 순간에도, 그 생각의 다른 면은 ‘대국’의 첫 수를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끊임 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대국 상대는 탁양금오(濁陽金烏)의 불을 얻으려 했을 때 자기를 방해한 마존(魔尊)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쨌든 화신기, 그리고 그 너머가 되어야 바둑판에 돌을 둘 수 있다는 것.’


 원영 후기에 든 그로서는 이제 남을 아는 경지인 화신기가 코 앞이다.


 그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결단(結丹)하고, 토원영과 금원영을 응결할 때 각각 원영 천겁과 화신 천겁을 맞았으니, 하늘이 고작 화신 천겁으로 본인이 화신을 가지게 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천겁의 규모도 단순히 한 항성계 범위로 끝나지 않을지도···.’


 옛날 지구에서 처음으로 결단, 원영 응결을 한 수사들조차 일반적인 동급 천겁보다 수 배는 거센 천벌을 받았었다.


 ‘은하수(銀河水) 첫 화신기 수사는 아예 천겁으로 항성계가 증발했다는 전설이 있지···. 그렇다면 나는?’


 천겁 구름이 수십 광년(光年) 단위로까지 발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리 청년이라도 머리가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건 화신기에 겨우 걸친 수준의 기혈과 지금 가진 법보로는 그걸 막기엔 택도 없다는 것.’


 ‘그리고 사념이 꼬리를 말았으니, 동천의 확장은 천맹 수사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비경이나 돌아다녀야겠다.’


 어차피 아무리 그에게 상대의 도행을 낮추는 수단이 있더라도 화신 후기 이상일 것으로 짐작되는 사념과 바로 맞선다면 패배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정민은 그렇게 주저 없이 옥좌에서 일어나 금붕(金鵬)을 타고 비경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긴 기간 동안 각종 비경에서 황투구삼(黃頭盔蔘), 팔지인면과(八指人面果) 등 영험한 약재나 령과(靈果) 등을 찾아낸 청년은 어떤 약재들은 가지고 있는 약방을 익히는 데 쓰고,


 어떤 것들은 훗날 약초밭 일월에서 키울 생각을 하며 여덟 번째 비경을 찾으러 발길을 옮겼다.


 ‘귀기(鬼氣)와 사기(邪氣)가 넘실대는구나.’


 여덟 번째 비경은 그가 여지껏 찾아다닌 그 어떤 곳과도 다른 풍경이 펼쳐졌는데, 귀신들이 마치 제 몸을 다시 얻은 듯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니며, 이들을 잡으러 돌아다니는 도깨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도깨비라고 머리에 뿔이 있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저 거인처럼 키가 크고 넙대대한 것뿐이라, 키가 큰 사람이라고 보면 그런대로 납득할 만한 모습이긴 했다.


 ‘죽은 자들의 땅인가 보구나. 다들 경지가 높진 않아서 감히 나에게 접근하는 놈들은 없는데, 내가 이방인인 건 둔갑술로도 숨길 수가 없네.’


 죽은 자와 산 자의 구별되는 특징이 있기에 생기를 가진 정민으로서는 그의 두드러진 존재감을 이 세계에선 어떻게 해도 지울 수 없었다.


 청년은 이곳이 망자의 땅이니 흙이 질척이면서 썩은 내가 나고, 하늘도 어두울 것 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디를 가던 대기에 운무가 끼고 귀기와 사기가 넘쳐나는 것을 빼면 그 정경 자체는 일반적인 곳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비경에 온 건 처음이니까 아예 다른 종류의 천재지보나 약재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샅샅이 뒤져 봐야겠어.’


 사기와 상극인 신조를 꺼내며 타고 다니는 것은 필요 이상의 주의를 끌 수 있기에 끝없이 광활한 대지를 누비며 걷던 중, 정민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건축물을 발견했다.


 ‘솔직히 폐가에 가깝긴 한데 방치된 지 오래 지난 것 같진 않다.’


 문 구석에 거미줄이 껴있는 걸 무시하고 들어가자, 평범한 생활 도구나 가구들만 조금 있었다.


 “도깨비에게 쫓겨 다니는 귀신들이 집에서 살 것 같진 않고···.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건가?”


 수 년만에 마음속 혼잣말이 아니라 입으로 말한 청년은 이런 망자의 땅에도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것에 의아해하며 다시 발길을 옮겼다.


 이후에도 드문드문 방치된 폐가들이 이따금 보였지만 인적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흥ㅡ!!


 ‘호랑이?’


 ‘원영 후기라서 위협도 되지 않는다. 애초에 같은 원영 후기인 날 신경쓰는 것 같진 않지만,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수위를 낮추고 한 번 가봐야겠어.’


 울려 퍼지는 호랑이 울음소리에 청년이 영식으로 살펴보니 꼬리 세 개를 가진 백호였다.


 정민이 산해계에서 처음으로 싸웠던 백호 요수, 육오와 달리 사람 얼굴은 아니라 평범한 호랑이의 그것을 하고 있어 꼬리가 세 개인 것을 빼면 누구도 특이점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꺄아아아악


 ‘저런 식으로 창귀(倀鬼)를 모으는구나.’


 산해계 육오가 몸속에 창귀를 가지고 있었듯, 이 백호도 그러했는데 떄마침 운이 나쁜 여자 귀신이 호랑이의 먹이감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경지가 결단 중기인, 귀도(鬼道)를 제법 깨우친 귀신은 그렇게 백호의 한끼 식사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수위를 아주 조금 늘려줬다.


 ‘귀신을 잡아먹고 수위를 높이며 다시 그 귀신을 부린다. 이걸 단순히 사특한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


 이 백호는 귀신을 잡아먹는 것에만 관심 있는지 수위를 원영 초기 수준까지 낮춘 청년이 대놓고 코 앞까지 접근해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성깔이 나쁘지 않다고 보여지자 청년도 그에 맞춰 넌지시 말을 걸었다.


 “나는 우연히 이곳으로 굴러들어 온 산 사람인데, 네가 사람 말을 알아듣나 한 번 보겠다. 그 귀신은 뭔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너의 양식이 된 것이더냐?”


 ‘어차피 내가 산 사람인 건 생기 때문에 못 감춰.’


 “망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귀신은 그냥 우리 백호에게 먹히고, 도깨비들에게 맞고 다니는 존재들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정민이 별 이상한 질문을 다 한다는 듯 바로 즉답한 백호는 곧 흰색 장포를 입은 서생 같은 모습으로 몸이 바뀌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형(化形)을 할 줄 아는구나? 성격도 나쁘진 않은 것 같으니 정보나 좀 알아내야겠다.’


 백호가 화형을 한 시점에서 만약의 사태를 위해 두 사람간 아주 조금 남아있던 적개심은 물에 씻기듯 사라져, 이제 분위기는 서생 친구가 대화하는 것처럼 되었다.


 “그게 이곳의 법칙이라면 산 자로서 어쩔 수 없지. 혹시 천재지보나 귀중한 약초 같은 것이 난 지역을 알고 있나? 사례를 해줄 수도 있다.”


 “천재지보나 영초 같은 게 이 근방에 있었으면 이 호선생(虎先生)이 먼저 차지했겠지. 내가 아는 한에는 없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원영 후기 백호가 귀중한 약초 같은 게 없다고 확언할 정도면 정말로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도 난 이곳이 처음이라 다른 사람에게 정보도 얻고 길 안내를 받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 황투구삼을 주겠네. 한동안 같이 다니는 게 어떤지?”


 금이 간 비취색 목걸이에서 황색 투구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산삼, 황투구삼을 꺼낸 그는 안내를 제외하면 아무 대가 없이 주는 것이라 말하며 호선생에게 그것을 건넸다.


 “··· 처음 보는 약초지만 확실히 이곳에는 절대 날 수 없는 영초로구나. 뭐, 산 사람을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고 대가도 받았으니 어울려 주지.”


 “잘 생각했네. 혹시나 말인데 이 땅에도 사람이 있나? 가끔씩 폐가들이 있던데.”


 “사람은 있지만 모두 망자들인···.”


 ‘귀신과 일반 망자가 엄연히 구별되는 개념이었구나.’


 이후 정민과 호선생은 한참이나 한 방향으로 걸어가며 이곳과 산 사람의 땅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류했고, 정민은 생소했던 귀도(鬼道)에 대한 견식을 넓힐 수 있었다.


 그때, 정민의 영식 감지 범위 끄트머리에서 적어도 수만 명의 인영들과 그들이 지은 것으로 생각되는 성(城)이 하나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과 성이 느껴지는데?”


 “···!? 대체 어떻게 여기서 그걸 알 수 있단 것이냐?!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이지. 생긴 건 산자의 땅에서 있는 것과 별다를 바 없을 텐데?”


 호선생은 자기보다 수 배는 넓을 것으로 생각되는 청년의 영식 감지 범위에 감정도 숨기지 못하고 경악했지만,


 산자와 망자의 땅에서 자란 자의 차이일 수 있다 생각한 건지 그의 질문에 답을 해줬다.


 “나는 저곳에 가볼 생각인데, 호선생 너는?”


 “이 호선생은 귀신만 잡아먹기 때문에 저들이 내가 호랑이인 걸 알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가끔 그곳에 들리기도···.”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성에 당도할 수 있었다. 


 ‘망자의 땅이라고 마냥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냥 일반 사람들 사는 곳과 똑같구나.’


 “성 밖에서 딴 반들반들한 과일 입니다!!”


 “···점을 봐 드리고 있습니다! 작명도 해드립니다!”


 ‘먹는 건 그렇다 쳐도 죽은 사람이 이름을 바꾸거나 점을 볼 필요가 있나?’


 중심가에 수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좌판을 깔거나 매대를 내놔 호객을 하고 있었고, 대개는 일용품이나 특별할 것 없는 물건들뿐이었다.


 그리고 소수지만 수사들도 있었다.


 ‘귀신이 아닌 망자들도 수행할 수 있나 보네. 결단기 수사도 딱 한 명이지만 있고. 별다른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돌아다녀도 되겠어.’


 “···엮은 짚신입니다! 한 켤레에···.” 


 결단기 수사는 이 성의 주인일 테지만, 원영 후기인 정민과 호선생이 작정하고 수위를 숨겼으니 이상을 눈치챌 리가 없었다.


 청년의 생기를 알아채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기껏해야 사고로 오게 된 범인으로 생각하겠지.’


 “이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성 같은 게 여기밖에 없나?”


 “그렇진 않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정민의 물음에 답한 호선생은 다른 성이나 거주지가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암시했다.


 그때,


 휘이이잉ㅡ


 ‘결단 후기?’


 갑자기 귀기(鬼氣)가 깃든 차가운 바람이 성 안에 몰아치자 사람들의 표정이 창백해지더니, 급히 짐을 싸 다들 실내로 들어갔다.


 길거리에서 물건을 고르며 막 값을 치르던 일부 행인들은 대경실색하며 아예 물건 챙기는 것도 잊어버리고 도망가기도 했다.


 “올해는 웬일로 생기가 느껴져서 일찍 와봤더니 정말로 산 자가 있구나! 이게 웬 떡이냐!!”


 결단 후기의 귀신은 정민이 그동안 봐왔던 귀신들과 달리 경지 덕분에 그 형체를 제대로 갖추고 있었는데, 그래봤자 회색 장삼을 입은 반투명한, 입이 크게 찢어진 여인일 뿐이었다.


 생기를 언급하는 거 봐서 산 자인 청년의 활발한 기운을 느끼고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무슨 사고인지 모르겠지만, 오자마자 이 귀왕(鬼王)을 마주쳐서 그만 몸이 굳었나 보구나! 그럼 잘 먹겠습···!!”


 꺄아아아악


 자칭 ‘귀왕’은 정민을 그저 사고로 이 땅에 굴러들어 온 범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으니 그건 그렇다 쳐도, 옆에 있는 서생마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그녀 귀생(鬼生)의 제일 큰 실수였다.


 호선생 입 안에서 ‘신입’이 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창귀들은 막내가 생겨 기쁜 마음을 소름 돋는 웃음기를 머금어 표현했고,


 그녀는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의 규칙에 뼈저리게 익숙해질 터였다.


 “호선생, ‘귀왕’께서 제 할 일 하게 놔둬 보지. 제대로 된 귀신을 코앞에서 본 게 처음이라 연구해 보고 싶었는데.” 


 “흠흠! 결단 후기 정도면 수위가 제법 늘어서···. 나중에 사례는 하겠네. 그나저나 성주(城主)가 오는군.”


 “호 선배님! 성에 방문하신 줄 미리 알아채지 못한 점, 이 후배가 심심한 사과 말씀 올리겠습니다!”


 성주라는 결단기 수사는 결단 초기로, 이미 호선생을 향해 반쯤 굽힌 허리하며 싹싹하게 굴고 있는 자세를 보니 애초에 결단 후기인 귀신과 붙을 마음이 없는 나약한 사람 같았다.


 ‘하긴, 그러니까 ‘귀왕’께서 올해는이라고 말했겠구나. 귀신이 적어도 매년 왔다는 거겠지.’


 “호선생, 성주와도 아는 사이인가?”


 “내가 귀신을 먹어 수위를 올리다 보니까 가끔 보는 사이지. 십수 년에 한 번?”


 비록 생기를 가지고 있다지만 가만히 있던 삿갓 쓴 청년이 ‘호 선배님’께 반말을 하자 성주는 크게 놀란 표정을 얼굴에서 지울 수가 없었는데,


 호선생이 그런 ‘무례’에 개의치 않고 답하는 것을 보고 그는 이제야 자기가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 여, 옆에 계신 선배님께도 큰 사죄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후배가 원래 이렇게 눈치가 없고 무례한 놈이 아닌데···.”


 성주가 거의 절을 하려는 듯이 몸을 굽히기 시작할 때, 호선생은 거기에 더 거들었다.


 “성주, 사실 일개 호랑이인 이 호선생보다 이분을 훨씬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처음 마주쳤을 땐 수위 때문에 원영 초기 수사라 생각했는데, 영식 범위도 그렇고 아무리 낮게 봐도 반보 화신 선배님이시다.”


 “···선배님께서 원영기 수사 대접을 받길 원하시는 것 같길래, 일부러 이 호 후배가 선배님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뿐이지.”


 이제 호랑이 서생의 이어진 말에 성주의 얼굴색은 귀신보다 파래졌고, 대경실색한 표정은 곧 큰절을 하며 고개숙인 자세에 의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참이나 계속된 사죄에 청년은 무례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 이후로도 시간이 꽤 지나서야 성주는 바닥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후배의 말은 요수, 도깨비, 귀신 모두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인데 망자들은 그들에게 휩쓸리는 존재라는 것이로구나.”


 수만 명이라고 해도 그곳을 통제하는 어엿한 성주가 결단 초기 수사이니 걸핏하면 축기, 결단기 이상 귀신이 지나다니는 이곳에서는 일반 망자들은 바람 앞 촛불 같은 삶을 연명하는 것이었다.


 “그러하옵니다! 특히 올해는 아직 신무월(神無月)이 되기 전인데도 귀신들이 극성을 부리니···.”


 “신무월?”


 호선생보다 더 선배인 대선배님의 되물음에, 성주는 ‘생소한 개념’인 신무월은 음력 10월을 달리 부르는 말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국은 아니고 다른 나라 문화인 것 같네. 어쩌면 이곳 고유문화일지도.’


 “한데 신이 없는 달과 귀신이 극성을 부리는 것이 무슨 상관이지? 귀신이 없으면(神無) 오히려 귀신이 종적을 감춰야 하는 것 아닌가?”


 “신무월은··· 신이 있는 달입니다.”


 신이 없는 달이 신이 있는 달이라니, 이 아리송한 개념에 의해 생각이 더더욱 미궁으로 빠지자 일단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이 선배가 도행이 남들보다 높아서 도와줄 수도 있네만, 귀신을 다 없애 주지는 못해도 수장쯤은 잡아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 근방 귀신들의 대장 같은 게 있나?”


 귀신의 대장을 잡겠다는 삿갓 쓴 청년의 말에 성주뿐 아니라 ‘정민의 경지를 어느 정도 짐작한’ 호선생마저도 흠칫 놀란 기색이었다.


 “서··· 선배님의 헤아릴 수 없이 높고 깊은 도행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오나··· 그, 귀도제군(鬼道帝君)은 화신기 대수사이옵니다···.”


 ‘귀도의 제군? 아무리 화신기여도 그렇지 스스로 칭하는 호칭이 너무 과분하네.’


 성주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귀도제군’이 아무리 호선생으로부터 선배 소리 듣는 정민이라도 두 수는 접어야 할 상대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딱 알맞은 놈이로군. 귀도제군을 잡고 오겠네. 근거지가 어디인지나 알려주게나.”


 ‘그 정도 귀신을 잡으면 뭐라도 얻는 게 있겠지. 이런 비경에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어!’


 화신기 대수사를 무슨 동네 마실나가듯 잡고 오겠다는 정민의 선언에 성주와 호랑이 서생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 자빠진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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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02. 수신(水神) 사한(司寒) 현명(玄冥)에 맞서다 (1) 23.10.02 194 5 14쪽
102 101. 사람의 얼굴을 하고 용 두 마리를 밟는 새 (2) 23.10.01 211 6 14쪽
101 100. 사람의 얼굴을 하고 용 두 마리를 밟는 새 (1) 23.10.01 245 7 13쪽
100 99. 상고(上古) 약원(藥園) (2), 을목지기(乙木之氣) 23.09.30 236 5 15쪽
99 98. 상고(上古) 약원(藥園) (1) 23.09.30 232 6 13쪽
98 97. 성계(聖界) 23.09.29 212 6 12쪽
97 96. 신비조직 성림(聖林) 23.09.29 222 7 14쪽
96 95. 여름 모양 목걸이, 천지일월(天地日月) 23.09.28 234 6 13쪽
95 94. 우주제일(宇主第一)수사의 붓질 23.09.28 242 6 13쪽
94 93. 법칙(法則) - 영역(靈域), 창생청제청체(昌生靑帝淸體) 23.09.27 251 8 13쪽
93 92. 도심, 연목구어(道心, 緣木求魚)를 파쇄하다 23.09.27 256 5 12쪽
92 91. 칠칠치 못하구나 23.09.26 252 7 14쪽
91 90. 천도(天道)는 정해졌고 합도(合道)는 무망(无望)하다. 23.09.25 280 10 16쪽
90 89. 하은의 기연과 비밀 +1 23.09.24 303 9 15쪽
89 88. 연꽃 (4),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 23.09.24 298 10 14쪽
88 87. 연꽃 (3), 동방청목 (東方靑木) 23.09.23 282 11 16쪽
87 86. 연꽃 (2), 두 눈의 이상한 힘 23.09.22 296 10 13쪽
86 85. 연꽃 (1) 23.09.21 307 9 15쪽
85 84. 내가 없는 사이에 감히, 영수(靈獸) 혼(䮝) 23.09.21 272 8 12쪽
84 83. 신재월(神在月)에 내리는 봄비 23.09.21 245 8 24쪽
83 82. 유명반도(幽冥半島), 귀도제군(鬼道帝君) 23.09.20 279 9 13쪽
» 81. 신무월(神無月) 23.09.20 292 10 18쪽
81 80. 은하조차도 내겐 동천(洞天), 태행산맥(泰行山脈) 23.09.19 317 8 12쪽
80 79. 감히 수선대능(修仙大能)의 명을 (2) 23.09.18 298 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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