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도심, 연목구어(道心, 緣木求魚)를 파쇄하다
이 하계에선 화신 이상으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한데 오기조원(五氣朝元)이라니?
정민은 그들이 자기 제자 김수지를 노렸을 때부터 추론했던 가능성, 그 마지막 퍼즐을 꿰맞췄다.
“화신기와 오기조원 역시 원영과 화신처럼 그 단계가 자연스럽게 연결 되어 있는데, 하계에서는 천도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든 거였어.”
“···또 은하군의 다른 수사들은 모르겠지만, 놈들 다섯은 더 이상 개별 인격체가 아니라 사념의 부속품일 뿐이고.”
“전부 다 그저 개별 영근처럼 취급 받고··· 아니, 스스로를 그렇게 취급 하고 있는 거야···.”
그들 모두의 자아를 하나의 사념, ‘나’에게 의탁하고 인지해서 참오를 할 필요를 없앨 뿐 아니라,
마침내 수사의 개별 육체마저 그저 ‘영근’ 그 자체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사념, 놈이 비승을 하지 않는 이유도 간단하네.”
이제 생각에 막힐 것 없어진 정민은 그 다섯이 화신 후기인데도 비승하지 않고,
이 우주의 한계까지 천도의 눈을 가리며 우회해서 상위 경지로 돌파하려는 이유까지 단박에 추론해냈다.
“비승하려면 사념에게 자아를 의탁한 모두가 한 번에 비승해야 하는 거야.”
수십만, 수백만 이상의 수사 모두가 ‘사념, 나’로서 전부 한 번에 상계로 비승해야 한다.
절대로 실현 불가능하고 말이 되질 않았다.
“한 번 천도의 눈을 가리기로 한 이상, 이후에는 더 빗나가기 쉬웠겠지. 그래서 찾은 게 완전한 우회로.”
“태양정수와 태음정화, 일월(日月)을 찾아 다녔던 이유는, 그것들을 영근으로 삼기 위해서였는데.”
“이미 단일 인격체가 된 사념이 오기조원을 달성할 수 있는 완벽한 육체, 김수지를 찾았으니···.”
“비승에 적합한 경지로 만든 뒤, 나머지 수백만, 수천만 수사의 자아를 통제한 상태로 사념의 크기를 유지한 뒤, 인격을 그 육체에 이식, 나머지를 모두 죽여 버리고 혼자 비승하는 거지.”
적에 대한 모든 걸 알았으니 대응법 역시 찾을 수 있었다.
토화신의 말대로 놈은 하나로서는 오기조원이었으나, 다섯 ‘영근’은 어디까지나 화신 후기였다.
“인격의 핵심인 그 다섯 중 한 명이라도 죽이면 놈, ‘사념’은 오기조원이 아니게 되는 거야.”
목표에 대한 포부 이상의 어떤 집요한 집착.
비록 정민의 그것과 달리 왜곡 되었을 지라도, 사념 역시 어떤 곧은 마음가짐이 있었다.
“···또, 내가 조금 전 생각한 걸 너희들도 느꼈겠지만, 놈들은 우리처럼 도심(道心)이 있다.”
그가 가진 도심은 아마도···.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려 함. 불가능한 일을 목적과 수단이 바르지 않은 왜곡된 방법으로 실현하려 함.)”
정위전해와 연목구어.
둘다 불가능한 일을 어떻게든 실현하려는 마음가짐이 포부에서 멈추지 않고 도심이 된 것이지만, 목적에 접근하는 방법이 전혀 달랐다.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도심을 가지고 있는 둘이니 만큼, 먼저 꺾이거나 크게 얕보이는 순간 지게 된다.
‘오히려 내가 놈과 미리 안 만나서 다행이야. 쪽도 못 쓰고 바로 패배할 뻔 했어.’
“하지만 그런 게 언제까지 통할 리가? 놈의 도심을 없애 버려야겠어.”
청년은 도심을 가진 수사로서 그것이 단순히 수사의 행동을 한 방향으로 제약하게 만드는 족쇄가 아니라,
굳건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그것을 실제로 실현함에 따라 도행을 한없이 높이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즉, 놈의 도심을 없애 버리는 것만으로도 반쯤 죽인 것과 다름 없게 된다는 것.”
“어쨌든 내가 이겨.”
휙
정민은 토화신과 금화신, 둘에게 각각 검푸른 단약을 던졌다.
“4품 현원단(玄元丹). 수위의 흐트러짐을 안정화 해줄 테니, 화신인 너희들의 몸을 낫게 해주겠지.”
취기단과 현기단이 법력을 회복 시켜주는 단약이라면, 현원단은 현기단보다 상급의 단약이면서도 수위의 안정화까지 도와주는 화신기 수사 정도나 부작용 없이 복용할 수 있는 단약이었다.
“준비도 안하고 바로 가게?”
‘목소리는 괜찮지만, 떨고 있구나. 내 도심마저 영향이 갈 뻔 했어.’
‘어쨌든 도심 연목구어를 사라지게, 아니, 다시는 가지지 못 하도록 아예 부숴 버리는 게 첫 작업. 그러려면···.’
토화신의 본 모습, ‘도심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스스로 만든 약점 기온 큰북.
상대 도행을 낮추는 수단이 둘이나 있으니 아무리 한 명이라도 죽이면 정민의 우세가 된다지만,
그 전까지 ‘우회로’를 찾아낸 ‘사념’은 분명 오기조원 수사일 터였다.
사람 얼굴 용이 근본인 토화신마저 다시 마주치길 꺼려하는 게 느껴지니, 두 대경지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왔다.
“전력은 커녕 힘의 일 할도 드러내지 않았겠지?”
“맞아. 놈이 전력을 다 했으면 솔직히 바로 죽었어.”
“본신과 맞붙은 게 아니라서, 내가 정말 ‘현성선인’일 아주 조금의 가능성을 아직 완전히 놓진 못하고 있는 거야. 내가 미끼가 될게.”
셋이자 하나, 세 이정민은 그렇게 자기 자신과 마음속과 입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사념의 도심을 사라지게 하고 그를 완전한 화신기 수사로 만들 작전을 계획 했다.
우주 어느 곳.
천지영기가 넘실거리는 이곳은 자연과 사람이 있는 행성 뿐만 아니라 우주 공간에서조차 그 유동(流動)이 조금씩 느껴질 정도였다.
한 행성 근처 우주공간 어느 건물에는 실험관처럼 보이기도, 침대처럼 보이기도 한 유리관 안에 한 여성이 잠들어 있었는데···.
홱ㅡ
픽 픽 픽
그 안에 있던 똑같이 생긴 세 남자 중 한 남자의 손이 뻗어나가, 무영탄회지를 이용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그녀를 죽이려 했다.
쾅
하지만 무영탄회지(無靈彈回指)의 무영탄환들은 유리관이 아니라 다른 근원으로부터 생겨난, 어떤 보호막에 의해 순식간에 막혀 무력화 되었다.
“···어떻게 찾아낸 거지?”
“이 현성선인께서 못 하는 게 있다 생각하는 것 아니겠지? ‘하계 수사’가 뭐하는지 아는 것 쯤이야.”
‘화신들의 무위가 ‘선인’으로서의 그것보다 예상 아래여서 하계에 강림한 신선은 아니라 생각 했는데··· 이건 또 도대체?!‘
수천만 광년 떨어진 다른 은하군에서 건너와 현성동천(玄成洞天)을 만든 현성선인.
그가 화신기에 든 것은 그 두 원영들이 그새 화신이 되었으니 알고 있었지만,
화신 후광을 가졌다는 이유로 얼굴을 인식할 수 없다고?
“표정은 없지만, 감출 수 없는 당황함. 느껴지네.”
아무도 볼 수 없는 입꼬리를 끌어 올린 청년은 상대의 다섯 ‘영근’의 얼굴이 아주 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죄다 똑같은 감정을 투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은 내 제자야. 내가 수선지로에 들게 했고, 그 본원영근도 나와 관련 되어있고.”
“그러니···. ‘내가 그러하듯’ 너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 아까워하진 않을 거다.”
날 죽이기 위해···, ‘내가 그러하듯?’ 그러면 선인은 아니란 건가?
모든 미세 입자와 더러운 것들은 이 현성선인의 본신을 피해가거나 닿자마자 사라지고 있고,
광명에 비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 이적(異跡,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일, 신적인 불가사의한 일)의 존재의 말에 사념은 갈피를 못잡고 사념으로서 본디 가지지 않은 머리속마저 혼탁해지고 있었다.
“머리 굴리는 게 보이지만, 길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이 남자와 몇 번 마주친 이래 매번 보여준 이해할 수 없는 성장 속도와 새로운 수단, 행보 때문에 그가 신선일 가능성을 떠올리게 해 사념의 마음속에 맴돌았다.
‘하계 수사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저항해봤자 선인이 가지고 노는 것이라면 모든 게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기온 큰북, 왜 그걸 이 ‘개체’가 이 은하군으로 넘어오자마자 발견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 남자는 이렇게 짧은 시간 내로 화신에 들었을까?”
스윽
사념의 머릿속 몇 년간 계속해서 맴돌았던 의문을 대신 말해주며, 사념과 연결된 수사들의 자아 통제권을 본래 몸으로 돌려보내 도행을 낮추는 북 모양 법보, 기온 큰북을 꺼낸 청년은···.
화르르륵
“···!!!!!”
그걸 삼매진화로 재조차도 남기지 않고 불태워 없애 버렸다.
“다 타버려 사라진 이 북처럼 너도 그 잡생각을 날려 버려라.”
진정한 조원(朝元)으로 향하는 길이 코 앞이고, ‘비승’은 따놓은 당상이었는데···.
이걸 이렇게 막아선다고?!
‘사념’은 자기가 개별 인격체로서 기능한 이후 처음으로 황망함을 느끼며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은하군 전역에 있는 그의 통제를 받는 수사들 역시 태엽이 다 돌아간 목각인형처럼 멈춰섰다.
“단순히 수사들의 자아를 모아 사념이 된 것으로는 참오 병목을 무시할 수 없었겠지?”
다섯 ‘영근’ 눈 앞에 있는 한 남자는 조금 전부터 계속 그러했듯 혼잣말을 이어 나갔다.
“태극 음 안에 양이 있고, 양 안에 음이 있어야 하듯, 진정으로 홀로 완벽한 것은 없기에···.”
“또 천도의 눈을 완전히 가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통제한 자아의 일부를 넣어둘’, 또 너의 편법으로 쌓아올린 도행이 이렇게 낮아질 수 있다는 걸 하늘에게 보여줄 수단을 만든 거야.”
하늘에 복수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도심을 가진 두 사람은 한 명은 완벽한 이치를 손에 넣기 위해 타협하지 않은 반면,
연목구어(緣木求魚)를 가진 자는 ‘불가능을 실현하려는’ 그 도심에 걸맞지 않게 하늘에 무릎을 꿇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천도와 맞서려 했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런 수단 없이 해낼 방법을 찾아냈어야지.”
“······.”
사념의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았던, 아니, 그러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도심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는 처음부터 금이 가 있던 도심이었다.
“어, 어차피 완벽한 영근이 있다! 이제 자아가 많고 적고는 상관 없어, 나는 비승할 수 있단 말이다!!”
자기를 죽인 동해 바다에 복수하기 위해 서산에서 동해로 영원히 나뭇가지와 돌을 물어다 놓는···.
‘정위’하고 우는 새, 정위가 어느 나무 위에 걸린 물고기를 낚아챘다.
비승을 향한 모든 대계와 자기 도심이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것을 사념이 차마 참지 못하고,
쿠르르릉··· 쾅!
다섯 ‘영근’ 중 뇌영근은 여덟 개가 한 벌인 금색 거대 금강저(金剛杵) 모양 법보에서 푸른색 번개 줄기 수천 개를 쏘아냈다.
쿠구구구궁···
토영근은 주변에 있던 행성들을 통째로 끌어내 움직이는 법술을 써서 ‘현성선인’에게 충돌 시키려 하고,
금영근은 토영근이 움직이는 그 행성들을 상대가 결코 부술 수 없도록 ‘단단함’을 더하고, 또 철갑 갑옷을 두른 기령 법상을 꺼내며,
콰아아아
수영근은 수행 공격 법술 영폭술(靈爆術)과 증폭 법술 수력(水力)을 합친 수력영폭술을 시전하며,
음영근은 금영근과 수영근의 법술을 보조하면서 음행 방어 진법을 깔았다.
‘이미 도행이 낮아지기 시작했구나.’
본래라면 대적 불가능 했을, 조원(朝元) 중기 수사 사념 ‘한 명’의 공격은 청년이 가지고 있던 방어 법보가 모두 터지고 오제우의(五帝羽衣)의 목행 보호막까지 깨지는 것으로 대부분 막아졌다.
‘오래 쓸 수 있다고 생각 했는데, 벌써 기력의 반이나 쇠했어.’
“어, 어째서?!”
설령 상대가 정말로 선인이더라도 ‘화신기 수사’의 힘으로 제약 되게 만드는 하계의 법칙이 있는 이상 상대의 ‘하계 몸’을 없앨 수 있다 생각 했는데···.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잘못된 방법으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낚으려 했던 도심, 연목구어는 그렇게 완전히 파쇄 되었다.
이제 양측 사이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이 끝날 무렵, 다섯 영근의 표정은 당황함이 사라지고 결연함이 깃들더니···.
그들 금영근과 토영근 위에 각각 두 눈의 거대 허상이 생겨나고 그 눈을 뜨자, 그들에게 안광이 생겨났다.
- 작가의말
내일부터 긴 연휴가 시작 됩니다.
모두 오늘 하루 연휴를 앞두고 기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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