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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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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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갈량 - 6

DUMMY

광해가 군기시에서 이장손을 찾자, 잠시 후 그는 세자 앞에 바싹 엎드리며 말했다.


“저하, 소관을 벌주시옵소서! 아직도 대완구를 다 만들지 못했나이다!”


대완구란 비격진천뢰를 발사할 수 있는 화포다. 그게 없으면, 상주에서처럼 투석기가 쓰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투석기는 공성 무기. 그런데 조선이란 나라는 기본적으로 영토를 넓힐 마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상주에 그게 세 개나 있었다는 게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쩝······.’


광해는 아쉬운 마음에 속으로 입맛을 다셨지만, 내색하지 않고 이장손을 보았다.


“이 화포장은 일어나라. 괜찮다.”


왜란이 발발한 지, 이제 열흘이 되었다. 이장손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안에는 무리였다.

오히려 이장손의 눈그늘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완구를 개발하랴, 비격진천뢰를 만들랴. 누가 뭐래도, 이장손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


“서둘러서 허술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것 다 알고 있느니라. 대신, 비격진천뢰가 서른 발이나 되지 않느냐? 그거라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저하······.”

“내, 이 화포장이 얼마나 애를 쓰는지 잘 안다. 해서, 약조하마. 전란이 끝난 후, 이 화포장은 관직과 봉록을 받게 될 것이다.”

“······!”


이장손은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장인에게 벼슬과 녹봉이라니.


“저, 저하······.”

“단, 방금 들은 말은 이 화포장과 나의 비밀이다. 알겠느냐?”


조선은 엄격한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가 있는 사회다. 그래서 상인보다 공장(工匠), 공장보다 농부가, 마지막으로 농부 위에 선비가 위치했다.

물론 조선은 천인이 아닌 한, 누구나 벼슬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공장(工匠)은 꿈도 꿀 수 없는 일. 그나마 세종 대왕 시절, 장영실이 종3품 대호군(大護軍)까지 오른 게 가장 높은 벼슬이었다.

한데, 세자가 관직과 녹을 주겠단다. 감격했지만, 누가 들을까 저어되어 이장손은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화, 황공하옵니다.”


동시에 다짐했다. 세자가 바라는 대완구를 최대한 빨리 만들겠다고. 그래서 반드시 이 전란에서 승리하도록 도움이 되겠다고.

이런 이장손의 마음은 모른 채, 광해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00 : 14 : 36 : 28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하루도 남지 않았다.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데······.’


* * *


광해가 아무 성과도 없다고 속으로 탄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저 아래에서 왜군이 북진하는 동안, 한양에서는 전시 조정을 나누는 분조 작업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사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 누가 세자를 따라나서며 최전선에서 저 야만스러운 왜적과 싸우려 하겠는가. 당연히 신료들은 한양에 남길 바랐고, 극소수만 마지못해 나서는 상황.

그러다 보니, 시간이 또 흘러갔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올라오는 소식.


“경상 감사 김수의 장계요!”

“대구가 함락되었습니다!”

“창원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원군이 필요하다고 장계가 들어왔습니다!”


한양은 이제 막 첫 교전 승리의 달콤함을 맛본 상주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마치 이대로라면, 한양에 내일이라도 왜적이 들이닥칠 것 같은 공포가 드리워졌달까?

그래서인지, 임금은 아예 대놓고 파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신료들도 갈렸다. 주저하던 이들이 임금에게 실망한 나머지, 세자에게 붙은 것이다.


- 한양을 떠난다는 뜻은 모든 걸 잃는다는 의미네.

- 그렇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겠나?

-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차라리 당당하기나 하세.


특히, 류성룡의 합류가 결정적이었다. 신료들을 설득하는 게 지쳤던지, 자기가 세자를 따라나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권율이 붙었고, 이덕형도 함께했다.

그리하여 광해의 귀에 분조가 다 꾸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이장손을 만난 후에 다시 입궐하자마자.

그것도 류성룡의 입에서 직접 들었다.


“저하, 내일 바로 출정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나이다.”

“좌상이 고생 많으셨소.”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광해는 좀 전에 본 이장손의 눈그늘을 류성룡의 얼굴에서도 볼 수 있었다.


‘무거운 짐을 자처한 사람.’


임진왜란을 예방하지 못한 것, 조정의 누구에게나 책임이 있었다. 하나, 전란 후에 류성룡처럼 밤낮으로 애를 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안타까운 건, 적의 북진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으며, 막아내는 곳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않았어도, 출정할 때 저하의 안위를 좀 덜 걱정하게 될 텐데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상주에서 꼭 막아낼 거요.”


류성룡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세자의 희망에 반응할 수 없었다.


‘너무 준비가 안 됐어.’


최근에 받은 장계일수록, 적의 군세가 자세히 적혀있었다.

세자의 말대로 적은 대략 15만을 훌쩍 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각 성에서, 불과 몇백, 많아야 천 넘는 관군으로 어찌 그들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하여, 상주 또한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시간만 좀 벌어줬으면······.’


광해와 류성룡의 바람을 하늘이 들었을까?

다음 날 출정할 때, 드디어 첫 번째 승전보 하나가 전해졌다. 단, 상주가 아니라 그 아래에서였다.


“저하, 수군이 큰일을 해냈습니다! 아군의 함대가 송미포에서 적의 함선 스물여덟 척을 격침했다고 합니다!”


초반에 이순신에게 출정하라고 보낸 보람이 있는 걸까? 거제도 남부, 송미포에서 충무공은 대승을 이끌었다.

역시, 그는 전쟁의 신이었다.

출정하기 전에 류성룡의 들뜬 목소리로 첫 승전보를 들은 광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물론 이순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난 역사에서도 그는 단 한 번의 패배가 없던 장수였기 때문이다.


“저하, 이 좌수사가 장계를 정말 자세히도 적었습니다. 해서, 내용이 길 거 같은데, 계속 아뢸까요?”


류성룡이 이렇게 묻는 이유는 출정 준비가 다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은 적의 북진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해서, 출정을 더 늦출 수는 없었다.

광해는 그 뜻을 헤아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출발하시죠.”


그러면서 타이머에 눈길을 돌렸다.


00 : 06 : 17 : 27


다시 현실의 이혼으로 돌아가기까지 대략 6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 이야기는 가는 길에 들읍시다.”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하하하.”


모처럼 터트린 류성룡의 웃음에 광해도 속으로 웃었다.

한편으로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인 난중일기를 적은 사람이 장계 또한 대충 적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충무공의 기록 습관은 나도 배워야 하겠어.’


광해는 생각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 역시 출발하기 전에 그야말로 빠르고 간단하게 일기를 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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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4월 24일. 전란 11일. 날씨 맑음.


오늘 소 조정(朝廷)의 신료들과 삼도 순변사로 임명된 신립과 함께 기마로만 이루어진 장졸 삼백을 이끌고 충청으로 내려간다.

그 전에, 패전만 거듭하던 아군이 첫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흥분했다.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거제도 남쪽 송미포에서 적선 스물여덟 척을 격침하며, 나를 기껍게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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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적고 싶었지만, 밖에서 준비가 다 된 기척이 들려왔다. 어쩔 수 없이, 광해는 기록한 종이를 품속에 넣고 길을 나섰다.


‘그래, 어차피 더 자세히 듣고 나서 적어야 했어.’


아침 일찍 일기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최소한 이순신이 어떻게 적과 싸웠는지를 자세히 적고 싶었던 광해였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았다. 출발과 동시에 신립이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하, 송구하오나, 만약 왜적이 상주까지 함락했다면, 그다음은 충청도이옵니다. 더는 늦춰서는 안 되니, 속도를 높이겠나이다.”


이번 후속 부대의 1차 목적지는 충주였다. 그다음 상황을 봐서, 결정하기로 했다.

문경을 막든지, 상주의 견훤산성이나 보은의 삼년산성으로 지원을 가든지,

단, 충주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대략 한나절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강행군한다면 말이다.

이에 광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달려서 신립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이랴!”


문제는 류성룡 등 문신들이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말타기나 활쏘기 등을 익힌 광해와는 달랐다. 글만 읽던 사람들이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어이쿠. 이게, 왜······?”

“어허, 오랜만에 고삐를 잡았더니, 마음대로 안 되는구려.”


이처럼 허둥대는 신료들. 이 때문에 광해는 이순신이 적은 장계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거, 여유가 없겠는걸.’


아무리 서둘러 간다고는 하지만, 가는 동안 역참에 들려서 말도 바꾸고 요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 생각으로 광해는 마음이 조급해졌으나, 언젠가는 쉬겠거니 여기며 묵묵히 신립의 뒤를 따랐다.

아쉽게도, 신립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듯 보였다. 연이어 모든 역참을 지나쳤던 것.


‘이런.’


신립은 한양에서 수원에 이를 때까지, 거의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가끔 말에게 잠시 물을 먹이기 위해, 냇가에 머무를 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류성룡 이하 신료들이 기진맥진해서 입을 열지도 못했다.


“저하, 예상보다 더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여기서 신립이 아뢴 말에 광해는 뭐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서툰 신료들을 달고 가는 상황이다. 아무리 말에 박차를 가해도 이동하는 시간이 빠를 수가 없었다.


‘음······.’


속으로 침음성을 삼킨 광해, 눈앞에 보이는 시간을 확인했다.


00 : 00 : 48 : 69


어쩌면 현실로 돌아갈 때까지, 이순신의 장계 내용을 듣지 못하겠거니 생각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때, 거의 탈진하다시피 한 사람 하나가 앞을 향해 외쳤다.


“조금만······, 좀만 쉬어갑시다······.”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서둘러 가서 왜적을 맞이할 대비를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간절한 목소리를 냈으니.

재밌는 건, 그가 광해를 팔았다는 점이다.


“저, 저하도 쉬셔야 하지 않겠소이까?”


어쩔 수 없다는 듯, 신립이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휴······,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는 그렇고, 다음 역참에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일행은 수원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역참에 들를 수 있었다.


‘이제, 20분도 안 남았구나.’


말과 행동이 느리기로 유명한 조선의 사대부다. 과연 그 안에 이순신의 장계를 다 설명할까 모르겠다.

그래도 다 듣고 가야겠다 싶어, 광해가 말에서 내리자마자 류성룡에게 물었으니.


“좌상, 이 좌수사 장계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주시오.”

“아, 그럴까요?”


그러자 신립과 다른 신료들도 류성룡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 수군의 지휘관은 이순신과 원균 등 일곱이었으며, 판옥선 스물여덟 척을 포함해서 총 아흔다섯 척으로 적선 쉰여섯 척을 상대했단다.

광해는 계속 이어지는 내용을 듣고 싶었지만, 누군가는 또 궁금한가 보다.


“그래도 바다에서는 우리가 수적으로 우세하구려.”

“아닙니다. 판옥선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협선과 포작선이었습니다. 그건 싸우기 위한 배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협선은 판옥선에 딸린 작은 배. 포작선은 고래잡이배였다. 이에 신립이 나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이상하군요. 원래 있던 경상도의 배까지 합친다면, 판옥선이 훨씬 더 많아야 하거늘······.”

“휴, 경상 좌우 수사가 함선들을 자침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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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물속에서, 바다에서 - 2 +2 24.08.15 1,594 48 12쪽
42 물속에서, 바다에서 - 1 +1 24.08.14 1,652 52 13쪽
41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8 +1 24.08.13 1,656 50 12쪽
40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7 +3 24.08.12 1,608 49 11쪽
39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6 +4 24.08.11 1,608 48 11쪽
38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5 +3 24.08.10 1,637 49 11쪽
37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4 +3 24.08.09 1,627 47 11쪽
36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3 +3 24.08.08 1,644 4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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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미리 보는 화력 조선 - 1 +3 24.08.06 1,746 46 11쪽
33 전세 역전의 조짐 - 8 +4 24.08.05 1,731 46 12쪽
32 전세 역전의 조짐 - 7 +2 24.08.04 1,680 48 12쪽
31 전세 역전의 조짐 - 6 +2 24.08.03 1,662 48 11쪽
30 전세 역전의 조짐 - 5 +2 24.08.02 1,723 46 11쪽
29 전세 역전의 조짐 - 4 +3 24.08.01 1,691 48 11쪽
28 전세 역전의 조짐 - 3 +2 24.07.31 1,710 51 12쪽
27 전세 역전의 조짐 – 2 +4 24.07.30 1,759 50 12쪽
26 전세 역전의 조짐 – 1 +3 24.07.29 1,779 50 11쪽
25 세자는 전쟁 영웅 – 8 +2 24.07.28 1,795 46 12쪽
24 세자는 전쟁 영웅 - 7 +2 24.07.27 1,731 49 11쪽
23 세자는 전쟁 영웅 - 6 +3 24.07.26 1,733 4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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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자는 전쟁 영웅 - 4 +3 24.07.24 1,760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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