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습(2)
기름냄새가 난다.
대체 얼마나 흩뿌렸는지 사방에서 지독한 악취를 자랑했다.
화계(火計).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태워버릴 작정이다.
병력을 지휘하던 무관들도 지독한 악취를 맡았는지 아연실색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폈다. 새카만 기름으로 범벅이 된 가옥들의 모습을 확인하고선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공자를 모시게! 어서 탈출해야 되네!”
“예, 알겠습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자객들이 원하는 바였다.
병력의 호위를 섣불리 벗어난다면 마차를 향해 화살세례가 쏟아지겠지. 산짐승을 은밀하게 노리는 사냥꾼처럼 수많은 궁수들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었다.
“꼼짝도 하지 말고 있어. 고개도 되도록 내밀지 말고.”
“고, 공자님은요?!”
“이대로 뚫지 못하면 모두 타죽겠지. 최대한 빨리 뚫어야 돼.”
“위험해요! 장졸들에게 맡기는 편이···!”
한사코 만류하는 은리를 뒤로 하면서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마차 밖으로 나오자 기름냄새와 더불어 비릿한 피냄새가 몰아쳤다.
“화계가 시작되기 전에 현장을 벗어나야 하네. 자객들도 죽음이 두렵다면 화계가 시작되기 전에 도망치겠지. 그 틈을 노리도록 하세.”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예상이 어긋나고 말았다.
급습을 가한 자객들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퇴로는 애초부터 없었다.
저들의 목적은 화계가 시작될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발목을 붙잡는 것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정예병들의 반격에 무참히 진압되면서도 달아나지 않았다. 사나운 맹수처럼 끝까지 물어뜯으면서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젠장!”
화아악-.
불길이 뿜어졌다.
맹렬한 고열과 함께 시작된 불길은 이윽고 사방으로 확산되었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태워죽일 셈이다. 표적을 척살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목숨을 내던지는 자객들의 모습에서 광기를 목격했다.
“부소!”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자객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부소가 내지른 칼끝에 목이 꿰뚫리면서 피거품을 토해냄과 동시에 쓰러졌다.
“앞을 막았으니 당연히 배후도 막았겠지. 측면으로 빠져나가세.”
“불길이 너무 거셉니다! 놈들이 단단히 준비해둔 모양입니다!”
“흐음,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네. 어디 들어보겠나?”
“···예.”
생각할 틈은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너머에서 화살세례가 날아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화살이다.
수많은 불화살들이 날아들면서 불길의 화력을 키웠다.
화살세례에 놀란 병사들이 방패를 들어올리면서 방진을 형성했다. 그를 바라보던 부소는 명령을 기다리던 무관들에게 소리쳤다.
“시간이 없네. 어서 저쪽으로 불을 놓게.”
“예···?”
“불이 불을 만나면 방향을 잃고 꺼지지. 그 틈을 노려 빠져나가겠네.”
“무모합니다! 오히려 사태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천운이 도왔는지 다행히도 바람이 몰아치진 않았다. 바람이 몰아쳤다면 타개책을 마련해볼 기회도 없이 그대로 자객들과 함께 불바다에 삼켜졌겠지.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천운이 작용할지는 알 수 없었다.
화염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폐부를 뜨겁게 달구는 뜨거운 공기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 불을 놓아라! 이판사판이다···! 어서 불을 놓아라!!”
불길이 빠르게 확산되는 방향으로 화재를 일으켰다. 바싹 말라버린 풀밭에 횃불을 집어던지자 삽시간에 타오르면서 새로운 불길이 치솟았다.
양쪽 불길이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연소를 이어나가면서 서로를 끌어들이던 양쪽 불길이 부딪쳤다.
이미 새카맣게 타버린 땅에는 불이 붙을 수 없다. 가연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 마주오던 불길에 의해 가연물을 잃어버린 화염은 금세 사그라졌다. 그것을 포착한 부소가 모든 장졸들에게 탈출을 명령했다.
“큭!”
“화살이다! 계속 방패를 들어라!”
자객들을 모두 처리했다.
사방을 포위하던 불길까지 뚫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매복하고 있던 궁병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을음이 가득한 연기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럼에도 궁병들은 무차별적인 화살세례를 가하면서 집요한 공세를 이어나갔다.
“공자, 무사하십니까!”
눈 먼 화살들을 억지로 뚫어내면서 탈출했을 때,
말발굽소리와 함께 병력이 도착했다.
고을을 불태우는 지독한 연기와 불길을 목격하고서 가세한 것이리라. 늠름한 위용을 자랑하는 증원군을 목격하자 병장기를 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를 내리지 마라!”
칼끝을 늘어트린 부소가 소리쳤다.
그러자 잠시 긴장감이 풀렸던 병사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병장기를 들어올렸다.
“귀관의 직급과 이름을 말하라. 그리고 어디서 오는 부대인가?”
“소장은 주개 장군의 부장인 이숭이라 하옵니다!”
“궤변을 지껄이는군. 주개 장군의 부임지는 정림현이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정림현의 병력이 다른 부대들보다 도착했다? 당연히 말이 안 되지.”
“그, 그것이···!”
전혀 흔들림 없는 부소의 목소리에 기병대를 이끌던 장수가 침음을 삼켰다.
그러더니 기만술을 포기했는지 돌연 칼자루를 빼들었다.
서툰 연기 따위를 내려두겠다는 신호였다.
그를 보여주듯 말을 타고 있던 다른 병사들도 일제히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놈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다! 이 틈에 부소를 죽여라!”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거친 말발굽소리가 지면을 강타했다.
“공자를 시해하려는 역적들이다!”
“버텨라! 조금만 버티면 지원군이 온다!”
진나라의 갑옷을 입고 병장기와 군기를 치켜들고 있다.
상군과 북지군에서 복무하고 있는 장졸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간신과 내통하여 황제의 적장자를 시해하려는 대역무도한 역적들이다. 그에 부소를 호위하던 장졸들은 불리한 열세임을 알면서도 역적의 무리를 향해 응전했다.
“부소가 저기 있다!”
“당장 죽여라! 일확천금이 바로 눈앞이다!”
조고는 최대의 정적으로 등극할 부소를 척살하고자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었다. 황제의 적장자를 시해하는 반역이었기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역에 가담한 수많은 장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수급은 하나뿐이다.
그렇기에 서로 차지하려는 난잡한 경쟁마저 벌였다.
도망칠 줄도 모르는 심약한 백면서생의 수급을 베는 일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트는 것만큼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무작정 거리를 좁혔다.
“크흑···! 커헉!!”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달려들던 무관이 피를 뿜어냈다.
부소가 내던진 칼날에 가슴팍이 꿰뚫렸기 때문이다.
“내 목을 원하는 놈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 이럴 줄 알았으면 잘 가꿔두는 건데.”
주변을 호위하던 병사에게 건네받은 새로운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조고에게 가담한 역적들에게 응전했다.
“부, 부소!”
“겁먹지 마라! 한낱 샌님일 뿐이다!”
책상머리에 의지할 뿐인 샌님에 불과하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궁중에서 곱게 자란 공자님이 무예를 익혔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던 병사들은 부소가 내지른 칼끝에 핏물을 토해내면서 쓰러졌다. 빠르게 휘두른 참격에 대응할 수가 없었는지 그대로 고꾸라졌다.
“언제까지 내가 샌님일 줄 알았어?”
칼자루를 역수로 쥐었다.
그 뒤에 측면에서 달려들던 병사의 목을 힘껏 찔렀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지.”
촤아악-!
살덩이에 박힌 칼날을 거칠게 뽑아내자 피분수가 치솟았다.
피를 뒤집어쓴 부소와 대치하던 병사들은 두려움을 느꼈는지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어, 어떻게 검을···! 분명 백면서생에 지나지 않는 약골일 텐데!”
눈 깜짝할 사이에 대여섯 명의 병사들이 참살되었다.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한 장수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크흡!”
날카로운 화살이 바람을 꿰뚫으면서 날아들었다. 그렇게 날아든 화살은 부소의 모습을 노리던 우두머리의 관자놀이에 정확히 적중했다.
신궁에 가까운 실력이다.
바로 눈앞에서 광경을 보게 된 부소는 반사적으로 감탄을 내비쳤다.
“부소 공자께서 위험에 처하셨다!”
“공자의 행렬을 급습한 역적들이다! 모두 처단하라!!”
열병식에 참석했던 몽염의 장수들이 칠원현(漆垣縣)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목격하자마자 곧바로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달려왔다.
본군이 동원되었다면 승산은 없다.
완전히 포위되었음을 깨달은 역적들은 무기를 황급히 버리면서 투항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공자?”
“무사합니다.”
각궁을 거머쥔 몽연화가 말에서 내리면서 물었다.
그에 부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변을 듣자마자 달려왔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뻔 했군요.”
“놈들이 화공을 선택한 결정이 전화위복이 되었네요. 그 덕분에 눈에 띄지 않았습니까.”
맞불을 놓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뼛가루만 남았겠지.
간발의 차로 위기를 모면했다.
대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을 테니.
부소는 몽연화가 건넨 면포로 얼굴에 뒤집어쓴 핏물을 닦아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과격한 살생을 범했음에도 양손을 슥슥 닦아낼 뿐인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공자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잖아요!”
“악!”
“의원! 의원부터 불러요! 확실하게 진찰부터 받아야 돼요!”
“네가 내 엄마냐. 별 걱정을 다하네.”
은리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소리쳤다.
그러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부소의 얼굴을 빡빡 닦았다.
“역적들을 모두 압송해라!”
“온몸을 포박하고 재갈을 물려라!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아군으로 위장하여 접근했던 병력은 변경에서 수년 동안이나 복무했던 장졸들이었다. 분명 조고가 몽염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심어둔 끄나풀이겠지.
살인청부를 받은 반역자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중거부령(中車府令) 조고는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괴물이니.
몽연화가 열병식의 중지를 요청했지만 부소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반대했다. 두려움에 질려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조고가 원하는 바일 터였기 때문이다.
“공자님, 근데 어떻게 알아채셨어요? 적들의 거짓말을 당당히 받아쳤잖아요.”
“당연히 허장성세였지. 장수들의 이름과 관할지를 어떻게 다 외우겠어. 상장군 휘하의 장수들이 족히 수백 명은 넘을 텐데.”
“그냥··· 넘겨짚으셨다고요?”
“어.”
몽염은 열병식이 열리는 연무장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병력을 배치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칠원현에 배치된 병력이 보이지 않았다.
자객들에게 모두 살해당했든가.
아니면 반역자와 내통하여 현장에서 철수했든가.
전자와 후자, 모두 주변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경우였다.
그렇기에 불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너무도 시기적절한 순간에 등장한 지원군의 존재를 경계했다. 긴장감을 풀고 안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빈틈을 보이게 되니까.
“함양에 서한을 보내야겠어.”
“물론이죠! 당장 폐하에게 참상의 전말을 보고해서 조고를 요절내야죠!”
“아니, 과분할 정도로 큰 선물을 받았으니까 답장을 해줘야지.”
“폐하가 아니라···. 조고에게 서한을 보내겠다는 말씀인가요?”
단순히 안부를 묻는 서한을 보낼 리가 없었다.
또 무슨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시려고···.
묘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부소의 모습에 은리는 불안감이 역력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 작가의말
조고의 2배 이벤트. 경험치 빨아들이는 중.
ps. 문득 주말마다 경험치 이벤트를 하던 메이플이 생각났습니다.
Comment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