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던가. 죽이든가(2)
암살기도의 악의를 피하고자 함양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머지않아 부소가 궁인들과 함께 떠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몽염과 측근들만 알고 있는 정보였다.
하지만 쥐새끼처럼 독무대의 세작들은 어렵지 않게 첩보를 얻어냈다.
환관의 하수인들을 적발하기 위한 솎아내기를 엄중하게 펼쳤음에도 실패했다. 몽씨 가문과 몽염의 휘하에 숨은 내통자들은 기밀을 빼내면서 부소를 시해할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다.
“함양으로 돌아가신다니···! 그건 황명을 위반하는 것일세! 아무리 폐하의 적장자라고 해도 대역죄인의 낙인을 피할 순 없을 것이네!”
“설마 폐하께서 암살위협을 수차례 겪은 적장자를 내치기야 하겠습니까?”
암살시도가 계속 되풀이된다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함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빈번하게 암살기도를 겪었다. 지금까지 암살기도의 배후조차 파악하지 못한 장수들에게 실망하여 함양으로 돌아가려는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공자, 다시 한 번 재고해주십시오! 함양으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상경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상장군의 속내가 오히려 의심스럽소. 상장군의 부하들이 암살기도에 매번 연루되지 않았나.”
부소와 몽염이 서로 갈라섰다.
함양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두고 반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유지되던 신뢰가 깨진 것이다.
몽염의 부하들이 암살기도에 연루된 것은 사실이었기에 불신하는 것은 당연했다.
격앙된 고함소리가 이어지던 살벌한 상황을 목격한 세작들은 곧바로 위철에게 알렸다. 함양에서 당도한 조고의 심복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날아들었다며 암습을 준비하도록 명령했다.
“비밀리에 부소가 궁인들과 함께 함양으로 돌아간다지? 결국 놈도 버티지 못한 것이네.”
“자정이 되자마자 군문을 빠져나갈 계획이라고 하옵니다.”
몽염을 위시한 소수의 심복들만이 사실을 알고 있다.
부소가 함양으로 돌아가던 와중에 시해당한다면 당연히 몽염이 가장 큰 의심을 받게 될 터.
골칫거리들을 한꺼번에 치울 기회였다.
게다가 부소는 신속함과 은밀함을 기하고자 소수의 호위대를 대동할 예정이었기에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부소와 몽염을 모두 처리하면 중거부령 어르신께서 기뻐하시겠지.
위철은 클클 웃으면서 독무대의 자객들을 소집했다.
“엄윤 어르신, 놈들의 간계일지도 모릅니다. 신중하게 접근하셔야 합니다.”
“간계라고 해도 상관없네. 설령 많은 피해를 입더라도 부소만 죽이면 돼.”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손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세작과 자객들은 소모품에 불과하지 않은가.
육국을 멸망시킨 진나라의 통일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넘쳐났다. 독무대는 그런 고아들을 납치하여 세작과 자객으로 육성했기에 공급이 사실상 무제한인 셈이었다.
부소만 죽이면 된다.
위철의 단언에 독무대의 자객들은 무덤덤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대로 차출된 병력에 몽염의 무관으로 위장한 세작들이 있습니다.”
“급습이 시작되면 기회를 노려 부소를 죽이면 되겠군! 상대는 약해빠진 백면서생이네! 가까이 접근하기만 하면 암살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지!”
드디어 꽉 막힌 것들이 순리대로 풀리는 기분이다.
매번 천운을 발휘하면서 암살을 회피했던 부소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던가.
머지않았다.
사흘 안에 부소를 죽일 수 있다.
자신이 현장을 지휘하자마자 부소의 암살에 성공한다면 자비로운 중거부령 어르신께선 활약을 참작하여 일등공신에 임명해주겠지. 부소를 척살하고 호해를 이세황제로 옹립함으로서 환관들의 천하가 도래할 테니까.
“더 이상 천운이 부소를 돕지 않을 것이옵니다. 아니, 설령 천운이 돕더라도 날카로운 비수를 피할 순 없겠지요.”
“심복들과 함께 현장 주변에서 결과를 기다리겠네!”
천재일우의 기회가 날아들면서 한껏 기고만장해진 탓일까.
환열감에 차오른 환관이 섣부른 결정을 내렸다.
* * *
짙은 어둠이 내리깔린 자정이 되자마자 소규모 행렬이 군문을 빠져나갔다.
수레바퀴가 크게 울렸다.
마차에 탑승한 사람은 부소와 은리였다.
부시현(膚施縣)을 벗어나 백토현(白土縣)으로 향했다. 창문을 열어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던 부소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칼자루를 거머쥐었다.
“오지 말라니까.”
“그, 그럴 순 없어요···!”
다람쥐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은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대대적인 암습이 예정된 유인이었기에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거예요!”
부소와 무슨 각별한 사이였기에 필생즉사(必生則死)마저 각오하는 걸까. 황후 미씨가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했지만 부소와의 정확한 사연을 알진 못했다.
소꿉친구?
아니면 같은 유모를 둔 젖먹이형제?
궁중의 어린 공자들이 환관과 죽마고우처럼 지내는 경우가 있었기에 그럴 법도 했다.
새하얗게 질린 갸름한 얼굴을 마주하자 머쓱함이 밀려들었다. 은리의 모습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여주인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젠장.
어째서 환관 주제에 절세미녀에 버금가는 미색을 자랑하는 건지.
곧이어 시작될 자객들의 암습보다도 눈앞의 아름다운 환관에게 더욱 큰 위기감을 느꼈다.
“마차에 숨어있어. 내 곁을 되도록 벗어나지 말고.”
“네···!”
느껴진다.
수많은 기척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조용히 갈무리된 살의가 지척에서 흘러넘쳤다.
행렬에 숨어든 자객들은 총 다섯 명.
급습이 시작되자마자 놈들을 베어버리고 응전할 생각이다.
노련한 암살자들에게 목숨이 노려지면서 직감과 본능이 점점 예민해졌다. 기척을 빠르게 감지할 뿐만 아니라 살수들의 악의마저 간파할 정도가 되었다.
“관문을 열어라! 어서 관문을 열어라!!”
백토현을 무사히 통과했을 때,
북지군(北地郡)과 맞닿은 경계에 위치한 관문에서 잠시 멈췄다.
몽염에게 받은 통행패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문을 호위하는 병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소! 바로 여기가 네놈의 무덤이다!”
어두컴컴하던 관문이 삽시간에 밝아졌다.
횃불이 일렁거렸다.
그와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궁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 궁병이다! 방패를 들어라!”
“역도들의 매복이다!”
성벽 너머에서 장대비처럼 거센 화살세례가 날아들었다. 방패를 치켜든 호위병들이 마차를 빈틈없이 호위하면서 공세를 막아냈다.
관문이 봉쇄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면을 두른 자객들이 들이닥쳤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후퇴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말에서 내린 무관들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전열을 지휘하던 부소에게 향했다. 그리고 칼자루를 천천히 거머쥐면서 부소의 급소를 찌르려 했다.
“커흑!”
“크아악···!”
설마 호위대 병력에 암살자들이 숨어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르겠지.
두 눈을 번뜩이면서 살의를 내비쳤다.
하지만 무거운 환열과 비장함으로 역력하던 얼굴이 단숨에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부소가 검을 빼들면서 호위대로 위장한 암살자들의 목을 베었기 때문이다.
“당황하지 마라. 놈들은 환관의 하수인일 뿐이다.”
날카로운 칼끝을 타고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암살자들을 단숨에 참살해버린 부소의 모습에 장졸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늙은 환관에게 빌붙어 황실과 조정을 능멸해온 간적들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한낱 백면서생에 불과한 약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속았다.
놈은 백면서생도, 약골도 아니다.
배후에서 숨통을 끊으려 했던 암살자들이 단칼에 죽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 자객들은 검을 치켜든 채로 발걸음을 멈췄다.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것이다.
“크윽, 커억···!”
촤악-!
칼끝이 목덜미를 크게 베었다.
그와 동시에 자객은 핏물을 울컥울컥 토해내면서 고꾸라졌다.
“설마 황제의 적장자를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성벽 위를 백주대낮처럼 환하게 밝히던 횃불들이 크게 일렁거렸다. 북지군에 주둔하던 진나라 병력이 급습하여 늙은 환관과 내통한 장졸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방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함정이다.
황제의 적장자를 미끼로 내세운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부소, 네 이놈!!”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분명 모든 퇴로를 막았을 터.
이렇게 된 이상 동귀어진을 결행할 뿐이다.
칼자루를 거머쥔 자객들은 결사의 심정으로 부소에게 달려들었다.
“잠자코 옆에 붙어있어.”
“우아앗!”
부소가 팔을 뻗으면서 은리의 늘씬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면서 다수의 자객들을 상대로 비등한 싸움을 벌였다.
“부소! 백면서생을 연기하면서 우리들을 능멸하다니···!”
“속인 건 아니지. 한 달에 걸쳐 배웠을 뿐인데.”
“닥쳐라! 우리들을 끝까지 우롱하는 건가!”
“······.”
독무대의 자객들은 반평생 기예를 갈고닦은 암살의 정예였다.
그에 반해 부소는 검술을 배운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불신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낱 애송이에 불과했던 샌님이 피칠갑을 한 채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공자! 무사하십니까!”
흰 갈기의 백마가 울음소리를 토해내면서 현장을 질주했다.
날카로운 창끝이 번뜩임과 동시에 부소를 위협하던 자객들을 일거에 베어넘겼다.
“가장 중요한 일은 어찌되었소?”
“공자께서 분부하신 대로 암습을 획책했던 수괴들을 붙잡았습니다!”
몸통과 꼬리는 끊임없이 재생될 뿐이다.
종지부를 찍기 위해선 머리를 잡아야 했다.
부소는 자신을 미끼로 내세우면서 몽염과 왕리에게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무리들을 모두 색출하도록 했다. 과연 예상대로 암습을 획책하면서 움직이던 독무대의 수괴들이 경계망에 걸려들게 되었다.
엄윤(閹尹) 위철과 부하들을 생포했다.
왕리의 대답에 부소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을 미끼로 내세우다니···! 이런 미친놈이!”
“그 덕분에 네놈들을 낚을 수 있었지.”
부소가 대답하면서 왕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왕리는 창을 휘두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은 자객의 턱뼈를 부러트렸다.
* * *
몽염이 병력을 움직였다는 보고는 들은 적이 없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독무대의 정보력을 속였단 말인가.
독무대의 세작과 내통자들을 부대를 지휘하는 대장이나 부장으로 심어두었다. 만약 몽염이 병력을 움직였다면 그들로부터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커, 커헉···!”
심복들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힌 위철은 산짐승처럼 올가미에 붙잡히는 치욕을 당했다.
억센 밧줄이 숨통을 옥죄었다.
거기에 더해 입에 재갈까지 채워지기까지 했다.
생포에 동원된 병력은 놀랍게도 강족과 저족으로 구성된 기병대였다. 흉악한 용모의 야만인들이 둘러싸자 위철은 비명을 토해내면서 온몸을 비틀었다.
“으, 으읍!!”
진나라에 투항한 야만인들로 구성된 외인부대.
독무대가 심어둔 세작들이 없는 유일한 병력이다.
변방을 침입하여 중원 백성들을 자주 납치했던 야만인들이다. 그렇기에 강족과 저족은 올가미를 이용하여 능숙하게 인간사냥에 성공했다.
‘빌어먹을! 설마 투항한 오랑캐들을 동원하다니···!’
세작들의 정보력을 너무 과신했다.
과신은 곧 오만이 되어 독무대의 목을 움켜쥐었다.
“드디어 함양에 있는 머리를 잡을 수 있겠군.”
몸통과 꼬리를 이용하여 머리를 붙잡는다.
중거부령 조고.
궁중의 늙은 환관을 실각시킬 발판이 마련되었다.
현장에서 붙잡힌 위철과 심복들은 그대로 부소에게 압송되었다. 지금쯤 자객들에게 불귀의 객이 되었으리라 예상했던 부소가 멀쩡하게 걸어오자 위철은 통곡하듯 거세게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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