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습
부소가 검술에 소질이 있는 무골이라는 기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무골?
차라리 범골이라면 모를까.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대경실색하는 궁인들의 반응을 보건대 부소는 약골이 분명했다. 아무리 재능을 숨기고 있었어도 동궁(東宮)의 궁인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분명 사범으로 파견된 사내가 ‘접대’를 해준 것이다.
대대장이 공을 차면 장교와 부사관들이 알아서 비켜주는 처세술과 비슷하다. 부대에서 복무하던 시절에 처세술이 부족했던 나는 대대장이 찬 공을 엉덩이로 걷었다가 선임들에게 마구잡이로 갈굼을 당했지.
“······.”
그럼 그렇지.
시대를 막론하고 접대는 언제나 존재했다.
만약 훈련 도중에 조금이라도 부상을 입었다면 교관으로 파견된 사내는 몽염에게 초주검이 될 때까지 멍석말이를 당했으리라.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지.
무예를 조금도 모르는 백면서생이 노련한 교관을 이기다니.
“공자님! 대체 언제부터 실력을 숨기고 계셨어요?!”
“딱 보면 몰라? 일부러 봐준 거잖아.”
“제 눈에는 공자님이 엄청난 무예가처럼 보였는데요? 다른 궁인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게 바로 접대의 기본이지.”
접대의 기본 철칙.
절대 접대임을 들켜선 안 된다.
너무 노골적으로 접대임을 내비치면 오히려 ‘나를 조롱하나?’ 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관은 매우 훌륭했다.
검을 휘두른 나조차도 잠시 속았을 정도였으니까.
현대에 태어났다면 출셋길은 걱정 없었겠군. 이토록 접대를 감쪽같이 해낼 줄이야.
“에이! 저는 또 공자님이 은둔고수인 줄 알았는데.”
“은둔고수는 무슨···. 동궁에서 계속 살았구만.”
김이 팍 식었다.
본능적으로 요령을 터득해서 한 달 만에 기마술을 익혔던 것처럼 검술에도 소질이 있을 줄 알았는데.
무리한 망상임은 잘 안다.
말라깽이의 몸에서 괴력이 발산될 리가 없었으니까.
“몽염에게 새로운 검술사범을 보내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 다음에도 접대만 하고 가버리면 애꿎은 시간낭비잖아.”
“마땅한 적임자를 구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텐데요.”
접대 따위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외골수.
강직한 성격 때문에 혼기를 놓쳐버린 극단적인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
흐음.
그런 괴짜가 세상에 존재할까.
한낱 문외한에 불과한 주제에 검술사범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았군.
* * *
검술사범으로 발탁된 무관이 달려가 보고했다.
그러자 몽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소 공자가 검술에 소질이 있다고? 분명 자네가 잘못 본 것이겠지.”
이세황제의 재목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공자에게 벌써부터 아첨할 속셈이겠지, 그렇게 여긴 몽염은 보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다.
타고난 골격과 뼈를 깎는 노력.
무엇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결코 무예에서 빛을 발할 수 없다.
반면에 부소 공자는 어떤가?
지금까지 훈련은커녕 힘든 노동조차 해본 적이 없는 종이인형이다. 신하로서 불경스러운 평가임은 알고 있지만 전형적인 백면서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칼자루를 뽑아들다가 본인이 베이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졸지에 아첨꾼이 되어버린 무관을 내보낸 몽염은 새로운 무술사범을 구인하려 했다.
“아버님, 공자는 불과 한 달 만에 능숙하게 말을 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휘하의 무관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입니다.”
“검술은 오로지 노력을 요구하는 기예다. 요령이 중요한 기마술과는 다르지.”
가만히 경청하던 몽연화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몽염은 딸에게 난색을 드러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부소 공자에게 재능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기마술을 빠르게 익힌 것처럼 검술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흐음···.”
“아버님, 제가 한 번 방문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마. 네가 직접 확인해보거라.”
몽연화는 부친을 빼닮아 권력에 아부하는 아첨꾼들을 경멸하는 경건한 성품이다. 그를 알기에 몽염은 자신의 딸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한낱 아첨에 불과했는가.
아니면 정말 공자에게 소질이 있는 것인가.
중거부령(中車府令) 조고는 휘하의 독주대로 하여금 수많은 정적들을 제거해온 흉계의 괴물이다. 그렇기에 분명 자객들을 동원하여 최대의 정적으로 등극한 부소의 목숨을 노릴 터.
“사실을 최대한 숨기는 편이 좋습니다. 만약 공자가 검술에 소질이 있음이 세간에 밝혀진다면 더욱 악랄한 자객들이 투입될 테니까요.”
“무관을 다시 불러서 철저히 입막음을 시켜야겠다.”
검술에 소질이 있음이 분명하다면 그보다 더한 천운은 없으리라.
부소의 재능을 확신하는 몽연화의 모습에 몽염은 기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 * *
도복으로 갈아입은 몽연화는 곧바로 부소의 저택에 들어섰다.
그리고 사실여부를 확인하고자 대련을 요청했다.
마구잡이로 휘둘렀을 뿐인데.
아첨꾼의 접대 때문에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목검을 휘둘렀다가 백옥처럼 고운 얼굴에 상처라도 입힐까 두려웠다. 그런 속마음을 헤아렸는지 몽연화는 칼자루를 꾹 쥐자마자 거침없이 휘둘렀다.
“큭!”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둘렸다.
그에 본능적으로 목검을 들어올리면서 소리가 들린 쪽을 쳐냈다.
“······!”
초심자가 휘두른 둔해빠진 검이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몽연화는 침음을 삼키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검술 실력은 맹탕이다.
하지만 그를 메우고도 남을 직감과 본능을 자랑했다.
백병전에 참전하여 사선을 넘나들었던 경험 때문이다. 초심자들은 귓가에 소리만 들려도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기 마련이지만 부소는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선택을 했다.
“이제 내 차례로군.”
부소가 목검을 뻗었다.
그리고 몽염이 보낸 검술사범을 놀라게 만들었던 기예가 펼쳐졌다.
‘분명 처음 배우는 초심자는 맞아. 검술을 능숙하게 따라하고 있을 뿐이야.’
난잡하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마구잡이였다.
하지만 모든 공격들이 치명상을 유발할 급소를 노려왔다.
숙련도가 초심자에 불과했지만 공방이 이어질수록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칼자루를 거머쥔 양손을 빠르게 바꾸면서 공세를 변화하는 모습에 아찔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배우고 익히는 속도가 너무 빨라···!’
한 달 만에 군마를 능숙하게 몰았던 것은 단순한 요령이 아니다.
빠르다.
습득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보통 사람의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빠르다.
그때 기마술이 아니라 다른 기예를 가르쳤더라도 빠르게 습득했겠지. 수많은 노력가들을 한낱 범부로 만들어버리는 천재적인 재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우악!”
공세를 밀어붙였다.
아니,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몽연화가 목검을 내지르자 부소는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거머쥔 손아귀가 풀리고 말았는지 목검을 툭 떨어트리고 말았다.
“어, 엄청난 괴력···! 과연 몽씨 가문의 아가씨군요.”“크흠!”
삼대에 걸쳐 괴력난신(怪力亂神)들을 배출한 몽씨 가문이다. 무가의 외동딸임을 증명하듯 몽연화는 부친 몽염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용력을 자랑했다.
섬섬옥수처럼 가냘프고 고운 손아귀에서 어떻게 무지막지한 힘이···!
괴력이 담긴 일격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부소가 경탄을 토해냈다.
“공자께선 기예를 배우는 속도는 빠르십니다만 육체가 버티질 못합니다. 그렇기에 방금 전처럼 쉽게 빈틈을 허용당한 것이지요.”
“상대가 힘으로 누르면 밀릴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몸이 너무 허약하다.
이래선 빚 좋은 개살구 밖에 되지 않는다.
본인의 부족함을 깨달은 부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몽연화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몽씨 가문이 전심전력으로 공자를 보필할 테니까요. 앞으로도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툭.
자신의 각오를 전한 몽연화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풀어헤쳤다.
머리끈을 풀자 흑발이 흘러내렸다.
격한 움직임으로 머리끈이 풀어진 탓에 머리카락을 다시 질끈 묶었다.
“머리가 엄청 기시군요.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이제 익숙하니까요.”
제나라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을 순결과 신성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본래 제나라 출신이었던 몽씨 가문의 아가씨들은 모두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을 자랑했다.
남성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장에 출진할 때마다 투구를 눌러쓴 탓에 머리가 다 빠져서라고.
“자, 그럼 다시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예?”
“숨을 내쉴 힘조차 없을 때까지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르는 것이 진정한 훈련입니다.”
“실화냐.”
입으로는 투덜대면서도 몽연화의 지시에 따라 목검을 들어올렸다. 그런 부소의 모습에 몽연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훈련을 개시했다.
괴력이 실린 목검이 휘둘러졌다.
비록 황제의 적장자라고 하여 봐주지 않겠다는 진의가 담긴 공격이었다.
* * *
강족(羌族)이 4천 호, 저족(氐族)이 2천 호를 이끌고 이주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겨울은 추위와 굶주림을 피할 수 없을 터.
그동안 약탈에 번번이 실패했기에 식량이 턱없이 부족해진 형편이다. 겨울이 찾아오면 떼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동안 고수하던 자존심을 꺾고 중원에 투항하게 되었다.
“그대로 도망친 놈들도 많겠지. 저들에게 있어 중원은 상종해선 안 될 말종이잖아.”
“무려 수백 년을 싸워왔으니까요. 당연히 골이 깊을 수밖에 없죠.”
나라가 멸망했음에도 옛 육국의 백성들이 여전히 진나라를 원망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증오의 연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 수 있었다.
기름이 사방에 흩뿌려진 형국이다.
그 위에 작은 불씨라도 떨어진다면 거대한 불길이 되어 산천을 불태울 터.
자비로운 성군이 유화책을 펼치면서 옛 육국의 백성들을 다스렸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황제는 가혹한 법과 형벌을 강요할 뿐인 사나운 폭군이었다.
“공자!”
덜컹-!
세차게 내달리던 마차가 흔들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말을 재촉하던 마부로부터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인가?”
새로 편제된 강족과 저족 기병대의 열병식을 참관하고자 연무장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칠원현(漆垣縣)을 통과하던 수백 명의 병력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발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수레와 커다란 궤짝을 비롯한 물건들로 도로가 막혔다.
심상찮은 상황임을 인지한 무관들은 칼자루를 거머쥐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선발대가 먼저 지나갔을 텐데···! 어서 신호를 보내라!”
“예!”
기이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주변이 조용했다.
수백 호가 넘는 규모의 고을이 이토록 조용할 수 있는가?
몽염은 연무장으로 향하는 중요한 골목들마다 병력을 배치하여 경계를 강화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도로를 지키고 있어야 할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죽여라!”
“저기 부소가 있다!”
목적지를 향하던 행렬이 완전히 정지했을 때,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검을 뽑아들면서 난입했다.
1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다.
하지만 행렬을 호위하는 병력은 5백 명에 달했다.
황제의 적장자를 호위하기 위해 엄격하게 선발된 정예병들이다. 그런 정예병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달려드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제법 철저하게 준비한 것치고는 뭔가 어설픈데···. 대체 뭐지?’
바깥상황을 슬쩍 살피던 도중에 바람을 타고 매캐한 냄새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진한 기름냄새였다.
- 작가의말
암살 특)
인원들 다 죽이면 암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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