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정예군단
시황제는 수많은 측실들 중에서도 부인(夫人) 호씨를 가장 총애했다.
연나라의 자객인 형가에게 암습을 당했던 시황제를 결정적으로 도운 인물이 바로 궁중의 시녀였던 호씨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측실로 간택된 부인 호씨는 시황제의 열여덟 번째 아들인 호해를 낳으면서 본격적으로 권력을 향한 야심을 드러냈다.
궁중의 권력은 황제와 측근들로부터 나온다.
부인 호씨는 시황제에게 부탁하여 중거부령(中車府令) 조고를 호해의 스승으로 삼으면서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만들었다. 조고는 환관들의 우두머리이자 법률과 계산에 능한 인물이기에 아군으로 포섭하고자 함이었다.
“너를 변방으로 끌어들이려 했다고? 부소, 이놈! 감히 물귀신처럼 내 아들을 꼬드기다니! 더러운 초나라 핏줄 주제에!”
“······.”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은 아름다운 여인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격노를 내질렀다.
그에 호해는 자신에게 벼락이 떨어질까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아무튼 눈엣가시를 드디어 치워버려서 속이 시원하구나! 평생 모래바람이나 맞으면서 썩어가는 꼴을 못 봐서 아쉽지만 말이다!”
“예, 예···.”
“너는 절대로 부황을 거역해선 안 된다, 알겠느냐? 부황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절대 옆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부황의 총애를 받는 것만이 이세황제가 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며, 명심··· 하, 하겠습니다.”
황후 미씨의 소생인 적장자(嫡長子)가 변방으로 좌천되었으니 당연히 서자(庶子)들에게 계승권이 주어질 것이었다.
법가를 부정하고 황제를 비난했다.
목숨이 열 개여도 부족한 대죄를 지었기에 평생 함양으로 돌아오지 못할 터.
지금쯤이면 다른 측실들도 자신의 아들을 이세황제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겠지. 부소의 좌천으로 황실의 후계구도가 뒤집히면서 생긴 결과였다.
‘어떠냐, 초나라 년아? 네년의 아들은 이제 끝났다! 척박한 변방을 계속 떠돌다가 네년처럼 일찍 요절해버리겠지!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마! 내 아들이 이세황제만 된다면···!’
시황제의 정실인 황후 미씨는 초나라 출신인 창평군(昌平君) 미계의 딸이었다.
창평군 미계는 진나라의 문무백관을 이끄는 승상이었지만 초나라의 명장인 항연에게 설득되어 진나라를 배신한 역적이다. 그로 인해 황후 미씨는 신하들에 의해 폐위될 위기에 처했지만 시황제의 비호로 지위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황후 미씨는 시름시름 앓다가 요절하고 말았다.
진나라를 배신한 역적의 딸이 되었다는 죄책감에 마음의 병을 얻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초나라 년.
시황제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황후 미씨였기에 열등감에서 비롯된 질투를 보냈다.
‘초나라 년이 유독 총애하던 어린 계집아이가 있었지. 황후가 죽으면서 궁궐에서 나간 초나라의 궁녀들은 모두 없애버렸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어린 계집만 사라져버렸단 말이야.’
툭툭.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폐부에서 들끓는 불쾌감을 표현했다.
초나라 년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지워버릴 작정이다.
변방으로 쫓겨난 부소를 없애버린 다음에 다시 어린 계집의 행방을 찾기로 했다.
“호부인, 부르셨사옵니까.”
“어서 오세요, 중거부령.”
노년의 환관이 호해가 기거하는 궁궐을 방문했다.
중거부령 조고였다.
총애하던 장남을 매몰차게 변방으로 보내버린 시황제의 의중을 알아내고자 기별을 보냈다. 자신을 부른 이유를 직감한 조고는 호씨와 호해에게 예를 취하면서 입을 열었다.
“폐하께옵선 부소 공자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옵니다.”
“날개를 달아주다뇨? 돌과 모래들만 가득한 변방으로 보내버렸는데···. 그게 무슨 말이죠?”
토목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이나 감독하는 잡일을 맡기지 않았는가.
적장자의 몰락에 비웃음을 날리던 호씨는 놀란 기색을 내비치면서 조고를 바라보았다.
“상장군 몽염과 30만의 정예군단이 있지 않사옵니까? 중원을 통일한 진나라의 강병들이 모두 부소를 지지하게 된다면 일이 복잡해질 겁니다.”
“몽염···! 그렇군요, 상장군 몽염이 있었죠.”
아름다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손톱을 꾹 깨물었다.
몽염.
북방의 숙적이었던 흉노족을 대파한 진나라의 명장을 어찌 모르겠는가.
척박한 변방으로 보내면서도 몽염에게 부소의 보필을 명령한 이유가 과연 의심스럽다. 조고의 말에 호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위기감을 드러냈다.
“중거부령, 변방으로 좌천된 부소를 없애버릴 방법이 없을까요? 후환을 한꺼번에 없애기 위해서라도 몽염과 몽의까지 치워버리면 좋을 텐데요.”
“흐음···. 한 번 방안을 마련해보겠습니다.”
“폐하께서도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느덧 춘추가 지천명에 가까워지셨는데 아직도 후계자 선정을 미루시다니요.”
불과 열세 살의 어른 나이에 진나라의 사직을 짊어졌던 위대한 전쟁군주는 지천명을 바라보는 황혼에 접어들었다.
슬하의 자식들만 해도 스물여덟 명이었으며, 그 중 열여덟 명의 아들이다.
대체 어째서 황제는 쉰 살을 바라볼 때까지 후계자를 선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수많은 대신들이 태자 책봉을 건의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시황제는 본인은 여전히 정정하다며 대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불로초를 결국 구하지 못했음에도 마치 불로초를 먹은 것처럼 행동하는 황제의 모습에 신하들은 우려를 내비쳤다. 지천명에 접어든 황제가 갑작스럽게 붕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하나로 집중된 모든 권력이 그대로 소멸될 터였기 때문이다.
“호부인, 호해 공자를 단번에 이세황제의 재목으로 추대할 방법이 있사옵니다.”
“정말인가요?! 어서 말씀해보세요!”
이복형제들을 모두 몰아내고 막내아들인 호해를 태자로 책봉시킬 묘안이 있다.
조고의 제안에 호씨는 반색하면서 물었다.
“폐하께선 천하를 둘러보시면서 통일제국의 위엄을 떨치고자 하시옵니다. 호해 공자께선 반드시 폐하의 행렬에 동행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험준한 강행군이 될 텐데···. 건장한 장사들조차 쓰러질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공자들은 전국순행에 결코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오로지 호해 공자께서만 폐하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될 겁니다. 부소와 몽씨 형제는 그때 제거해도 늦지 않습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순행 도중에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황제의 무한한 총애를 등에 업게 되리라.
호씨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아들 호해를 바라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 * *
오르도스 고원은 예로부터 진나라와 북방의 유목민족들이 오랫동안 대립해온 북방의 요충지였다.
하북(河北)을 도모하기 위한 필수적인 지역이다.
그렇기에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오르도스 고원을 경유지로 삼아 중원을 침략했다.
여섯 국가들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한 시황제는 상장군(上將軍) 몽염을 파견하여 흉노족과 견융을 대파하고 오르도스 고원에 성과 요새들을 쌓았다. 그로 인해 하북을 침략할 방법이 없어진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어떻게든 오르도스 고원을 탈환하려 했다.
두두두두두두두!!
드넓게 펼쳐진 사막을 내달리는 수천 기의 기병대.
검게 칠해진 진(秦)나라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정복자로서의 위압감을 과시했다.
“흉노 놈들을 모두 소탕하라!”
“장성 바깥으로 꺼져라, 오랑캐 놈들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을 검게 물들인 진나라의 기병들은 공포의 대상과도 같았다. 오르도스 고원으로 내려온 흉노족 전사들은 흙먼지를 나부끼면서 달려드는 칠흑의 군세를 목격하자마자 비명을 내질렀다.
촤악-!
날카로운 월도(月刀)를 휘두르자 뜨거운 핏물이 솟구쳤다.
진나라의 기병대가 급습하자 흉노족의 예봉은 단숨에 꺾이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진나라의 군세들이 합류하면서 흉노족의 퇴로를 끊어버렸다.
“퇴각하라!”“더러운 중원 놈들···! 이 초원은 우리 선조들의 땅이란 말이다!”
견고한 갑옷이 화살들을 튕겨냈다.
그리고 날카로운 병기가 흉노족 전사들을 가차없이 베어냈다.
백전(百戰)을 통해 연마된 전투경험.
엄중한 군율에서 비롯된 기민한 지휘와 기동력.
오르도스 고원을 누비는 진나라의 기병들은 중원 출신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사막의 싸움법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진나라의 병력과 조우하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포로 따위는 없다.
단 한 명도 초원으로 보내지 않겠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 흉노족 전사들까지 모두 목을 베었다.
실로 잔혹한 명령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망설이지 않았다. 오르도스 고원을 침탈했던 오랑캐들은 목 없는 귀신이 되어 뜨거운 모래벌판에 내던져졌다.
“부소 공자께서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들었네. 황제 폐하의 노여움을 받고 좌천되셨다지.”
“무거운 법과 세금을 줄이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중단할 것을 부탁하셨다고 하던데.”
토목공사를 감독하는 한미한 직책으로 좌천되었다.
아니,
사실상 유배에 가까웠다.
낮이 되면 살인적인 열기가 쏟아지고 밤이 되면 극악한 추위가 몰아친다. 특히 오르도스 고원은 북방에 위치한 지역이기 때문에 밤낮의 기후가 더욱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을 제외하면 비도 내리지 않는다.
심지어 지하수의 대부분이 소금물이기에 식수조차 제대로 구하기 어려웠다.
과연 궁중에서 곱게 자란 공자께서 버틸 수 있을까?
온화한 성품의 공자이기에 더욱 버티기 어렵겠지. 수많은 인부들이 살인적인 노역으로 갈려나가는 토목공사 현장의 감독을 맡게 되었기에 더더욱 그럴 터였다.
전투를 끝내고 거점으로 복귀하던 진나라 장졸들은 벌써부터 우려를 보냈다.
“흐으, 오늘도 푹푹 찌는구먼.”
“매번 국경을 침탈하는 오랑캐 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근래에 들어 유목민족들의 침입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가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겪는 유목민족들은 어떻게든 오르고스 고원을 돌파하여 식량자원이 풍부한 하북을 약탈해야 했다. 게다가 올해는 추위가 더욱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에 강족과 흉노족을 비롯한 수많은 유목민족들은 더욱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승이다!”
“오랑캐 놈들을 모두 물리쳤다!!”
흉노족의 침공을 물리친 장수들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개선했다. 그러자 둔영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병장기를 높게 치켜들면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승전이다.
이번에도 승전을 거뒀다.
진나라의 군세들은 연이은 승전으로 사기가 크게 고무된 상태였다.
가족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 머나먼 오르도스 고원으로 오게 되었음에도 일당백의 용맹은 여전히 건재했다. 맹수처럼 사납고 충성스러운 장졸들은 탐욕스러운 오랑캐들에 맞서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부소 공자를 호송하는 행렬이 북지군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그럼 머지않았구려. 공자를 환대할 준비를 어서 서둘러야겠소.”
북지군(北地郡)을 통과했다면 열흘 안으로 도착할 터였다.
그에 상군의 부장들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상장군 몽염의 처소로 향했다.
“마침 둔영을 돌아보고 온 참이었는데 잘 되었군.”
“하마터면 늦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아버님.”
대완마를 몰고 드넓은 벌판을 내달리면서 폭주를 즐기다가 돌아온 몽염이 휘하의 부장들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함께 돌아온 묘령의 여인이 고삐를 건네받으면서 날카로운 눈초리로 아버지를 타박했다. 그러자 몽염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허허, 우리 고지식한 딸아이를 누가 데려갈지 난감하군. 올해로 벌써 스물다섯인데 말이네.”
“아버님! 어째서 갑자기 혼례 이야기가 나오는지요! 소녀에게 어울리는 사내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옵니다만!”
“고귀한 혈통과 신분, 수려한 용모와 걸출한 능력을 겸비한··· 거기에 자신보다 연하인 사내를 신랑하고 맞이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꿈 말이냐. 이제 그만 단념할 때도 됐을 텐데.”
“마음에 드는 사내를 신랑으로 맞이하라고 먼저 말씀하신 쪽은 아버님이십니다!”
올해 스물다섯을 맞이한 노처녀에게 ‘혼례’만큼 예민한 단어도 없겠지.
이미 적령기를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히 혼기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흑단처럼 고운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미녀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언제나 냉철하고 고아한 면모를 자랑하는 명문가의 아가씨였지만 노처녀와 연관된 대화가 오고 갈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과연 누가 우리 노처녀 딸내미를 데려갈꼬.
몽염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토로하자 부장들은 허허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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