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마왕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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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고
작품등록일 :
2024.07.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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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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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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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섭리의 눈.

DUMMY

‘끄아악! 이게 무슨 미친!’


한쪽 눈알이 파인 고통에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다. 체감상 목이 잘리는 고통보다도 더했으니까.


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와는 달리, 릴리트는 태연했다.


“헙! 마왕님? 제가 방금 눈깔이라 했어요? 헉! 마왕님께 이게 무슨 말버릇이람? 눈알인데 눈알.”


이 미친년!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마왕님 마왕님 하다가 갑자기 눈깔을 파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악다구니를 내지르려 했으나, 릴리트의 이어진 다음 행동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콰직 - !


“끼야악!”


“미, 미, 미친년!”


젠장할, 이번엔 육성으로 튀어나와버렸다.

릴리트는 자신의 이마에 박힌 눈알을 뽑아내고 있었으니까.


“이게 무슨, 어···?!”


릴리트가 한번 더 손길을 뻗치더니, 내 입안으로 뭔가 미끈한 것이 꿀렁 넘어갔다. 이내 가려졌던 시야가 돌아오며 고통이 멎었다.


“마왕님 너무해요. 미친년이 뭐에요, 미친년이!”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지?

어? 저건 또 뭐야?


그때 릴리트의 이마에서 피가 멎더니, 새로운 눈알 하나가 꿈틀대며 솟아 나왔다.

새로 튀어나온 눈알은 주변을 360도 살피더니, 내쪽을 빤히 쳐다봤다.


마치,


‘응? 내가 왜 저기 있지?’


라고 하는 듯이.

고통은 멎었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때 상태창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츠 폰 바젤]


▶ 종족 : 인간

▶ 나이 : 12살

▶ 레벨 : 1

▶ 전용스킬 : 섭리의 눈, 성대모사


···섭리의 눈?


이게 왜 여기에 있지?


“마왕님.”


나는 반쯤 얼빠진 얼굴로 릴리트를 바라봤다.

릴리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녀는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다시는 죽지 마세요.”


***


“마왕님, 잘 보이세요? 저는 이거 눈이 달라서 영 적응이 안 되네요.”


릴리트는 새로운 눈에 적응한다며 이마에 있는 (구) 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


릴리트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나는 왠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악마에게 있어서 제3의 눈은 생명이자 악마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


얘는 지금 그걸 나한테 준 것이다.


“마왕님이 가시고 저 많이 생각했어요. 모든걸 다 바쳤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걸 안드렸을까.”


진짜 루시퍼가 죽고나서, 릴리트가 제일 후회됐던 게 이것이었다고 한다. 루시퍼에게 자신의 눈을 바치지 않은 것.


릴리트의 눈을 바쳤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거라나?


반쯤 정신나간 녀석이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릴리트,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제 나는 힘도,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마왕님.”


갑자기 단호한 태도로 말하는 릴리트.

오락가락하던 그녀의 눈빛이 짙은 붉은색으로 물든다.


“저는 마왕님한테 몰빵 했어요.”


몰빵···?

몰빵이란 단어를 발음하는 릴리트의 목소리에 광기가 서린다.


“저는 1000년동안 꽃다운 세월 즐기지도 못했고요, 제 전재산, 제 인생 전부, 그리고 이제 제 눈깔까지 몰빵했다구요.”


“···.”


“그러니까 이제 약한소리 하지 말아요. 마왕님은 제 전부. 제 생명, 제 모든 것 그 이상이니까.”


***


촤라락 - ,


릴리트가 가져온 카탈로그를 넘겨보고 있다.


‘전부 그 이상···.’


릴리트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단순히 그냥 미친년이라 생각했는데, 자기 눈알을 파서 줄만큼 소중하게 여긴다니,


‘이게 마계식 순애인가?’


진짜 미친년이다.


하지만,


‘내가 이걸 가져도 되는 건가?’


그렇게 소중한 걸 내가 가져도 되는 건가.

난 진짜 루시퍼도 아닌데.


일말의 가책이 밀려온다.


‘씨발, 살려면 어쩔수 없잖아.’


이런 세상에 떨어졌어도, 살아 남아야 한다.

고작해야 게임 속 NPC 아닌가.

그렇게 합리화 하기로 했다.


촤라락 - ,


다리를 꼰채.

최대한 무게를 잡고 페이지를 넘긴다.


[레어등급 마도서]

▶ 설명 : 레어등급 아이템 및 스킬북

▶ 능력 : 레어등급 아이템 및 스킬 중 하나를 습득할 수 있다.


“예, 루시퍼님. 여기는 마계의 보고. 취급하는 건 이런 것들이에요.”


잔뜩 공손해진 릴리트가 이곳의 정체를 안내한다.


여기는 마계의 보물이 있는 곳.

릴리트는 그 보고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중이라 했다.


내가 놀란 건 두 가지다.


첫째는 마계의 보고.

게임속 설정으로만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있는 거였어? 이거 찾아보겠다고 별 헛짓 다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둘째는 바로 이 스킬북.


글씨는 한글을 쓰네···?


“왜요 마왕님? 뭐가 이상해요? 이상해요?”


“제발 들러붙지좀 마라.”


“흐에엥 마왕님 쯔메따이 (차가워).”


나는 릴리트의 머리채를 잡고 떼어냈다.

아까부터 조금의 틈만 생기면 들러붙으려고 한다.


나는 마도서를 보다 릴리트를 흘깃 봤다.

인간형일때의 릴리트은,

인정하긴 싫지만 매력적이었다.


은은한 연보랏빛이 도는 머리칼, 보라색 동공. 마족 여성은 인간들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더니.

실제로 보니 그 말이 정말이었다.


하지만 난 998번 목이 잘린 뒤라 그런지 조금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릴리트. 이걸 한번 읽어봐라.”


나는 한글로 [주인님] 이라고 적었다.


“고슈진 사마 - ”


“이것도.”


이번엔 한글로 [그만해] 라고 적었다.


“야메떼? 뭐야 – 마왕님 헨타이(변태)!”


크흠.

아는 일본어가 이거 밖에 없는데 어떡해?

릴리트가 두 뺨을 감싸 쥐며 발그레 하고 있었다.


저걸 콱!


무튼 덕분에 이곳의 언어체계를 알았다.

이곳은 일본어로 말하고 한글로 글을 쓰는 세계. 일본어 더빙에 한글패치를 해놓은 게임에 빙의했더니 이런 짬뽕 언어체계가 탄생한 것이다.


근데 얜 일본어 쓰는 세계관에서 어떻게 한본어를 쓰는 거지?


알수록 미스테리한 캐릭터였다.


“왜요? 마왕님? 뭐가 이상해요?”


“아니다.”


릴리트가 더 까불기 전에 황급히 단답으로 대답했다.


나는 계속해서 마도서를 읽었다.


[마력 8/40]


조금씩 차오르고 있긴 하지만, 마력통이 워낙 작다. 일상대화는 마력이 거의 들지 않지만, 볼륨 MAX모드는 10의 마력을 소모한다.


나는 마력이 차오르길 기다리고 있다.


촤라락 - ,


무게를 잡느라 말없이 페이지만 넘긴다.


[마력 9/40]


페이지를 넘기다 눈에 들어오는 스킬.


▶ 염동력

▶ 등급 : 레어

▶ 능력 : 중력을 거슬러 물건을 이동시킬 수 있다.


‘호오,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이네.’


▶ 매혹

▶ 등급 : 레어

▶ 능력 : 특정인의 정신에 간섭해 호감도를 끌어올린다.


꽤 쓸모있어 보이는 스킬도 보였다.


나는 마도서를 덮었다.

릴리트가 눈을 빛내며 말을 건넨다.

그 눈에 이채가 돌았다.


“마왕님, 마음에 들어요? 염동력과 매혹은 가성비 좋죠. 숙련될수록 활용도도 높아지구요.”


빡!


나는 릴리트의 면상에 있는 힘껏 마도서를 던져버렸다.


“쓰레기다.”


무게를 잡으며 한 걸음.

잔뜩 내리깐 목소리로 뇌까린다.


“이딴 폐기물 같은 것을.”


떨고 있는 녀석을 내리깔아보며 또 한 걸음.


시선은 무심한 전방,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시간을 잰다.


3, 2, 1.


정확히 계산된 타이밍.


[마력 10/40]


눈을 치켜뜨고 나지막히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나를 능멸하는 게냐?”


[ 전용스킬 – 성대모사를 사용합니다. ]


[ 흉내 낼 대상 : 마왕 루시퍼. ]


[ 출력 : 볼륨 MAX 모드 ]


“옛 주인에 대한 대접이 고작 이 정도인가아악!?”


스킬명 : 마왕 3단 고음.


참고로 내가 방금 지었다.


“···.”


그런데 기겁할 줄 알았던 릴리트는 말이 없었다.

마왕이라도 이건 선넘었나?

루시퍼가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닌 걸까?


그런데 악마년이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고개를 숙인 어깨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떨림은 점점 격해지더니,


“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핫!”


손으로 얼굴을 덮고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 제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씨발, 1절만 할걸.’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본능적으로 살아남을 구멍을 탐색한다.

섭리의 눈으로 찾는다면 어쩌면.


‘씨벌, 근데 방금 마력 다 썼잖아.’


그래도 내게는 아직 멀쩡한 두 눈이 있지 않은가.

눈알 돌아가는 걸 최대한 자제하며 출구를 찾는다.

당황을 숨기고, 언제라도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어디냐, 어디냐!

시야 구석에서 철문 하나를 발견한다.


‘저기가 출구인가?’


발끝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듯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저기까지 닿을 수 있나?’


하지만 생각한다.

도망가봤자 어차피 잡히지 않을까?

아니면 저곳에 더 가까이 가도록 유도할까?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해.’


나는 아직 이곳을 다 파악하지 못했다.

이대로 도망간다면, 이곳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


만약 게임을 클리어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비밀이 이곳에 숨겨져 있다면?


문지기란 존재는 자신의 공간 안에서는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비밀스러운 공간 특성상 문지기의 도움 없이는 탐색할 수 없는 지역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곳을 떠난다면, 다시 이곳에 왔을 때 이곳에서 필요한 것을 얻어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이게 도박이라면, 지금이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아닌가.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뭘 쳐웃고 있나, 릴리트. 여기는 마계의 보고가 아니라 폐기물 처리장인가?”


짝!


갑자기 손뼉이 마주치는 소리가 난다.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 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려왔다.


짝!짝!짝!


짝!짝!짝!짝!짝!


난데없이 들려오는 박수 소리.


“푸흡! 루시퍼님. 이제 허접 되셔서 이런 거라도 넙죽 받으실 줄 알았는데요. 푸하하하!”


“···이 년이!”


내가 노려보자 릴리트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장난이에요 장난. 루시퍼님이 이딴 쓰레기를 배우실 리 없잖아요? 근데 루시퍼님. 안본사이에 더 귀여워지셨네요?”


그럼 그렇지.

농담처럼 때우고 있지만, 녀석의 말과 행동. 전부 계산돼 있다.


날 올려다보며 비릿하게 웃는 릴리트.


악마란 놈들은 의심이 많다.

아무리 옛 주인이고 마왕이고 간에, 시험도 해보지 않고 믿을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염동과 매혹.

상당히 유용한 스킬인 것은 맞다.

전투에 유용한 염동과,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매혹.


일반 캐릭터가 쓴다면 상당히 유용한 스킬이다.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어디까지나 ‘일반인’ 수준일때는.


아무리 기억을 잃었어도,

마왕이 강림한 화신체가 이딴 레어급 스킬에 눈이 돌아가는 게 말이 되나?


마왕이라면 그딴 건 배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숨쉬듯이 자연스러운 스킬이다.


아니, 스킬축에도 못들어간다.


“너는 날 못 믿는군.”


처음부터 이 악마년은 날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던 거다.


눈알을 뽑아서 준 것도, 모든걸 다 빼줄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언제든 날 제압하고 도로 빼앗을 자신이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란 것이다.


그래서 딱 알맞은 음식을 가져와 덫 위에 얹어 둔거고. 그걸 먹었다면 아마도.


스슥, 스스슥.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보니, 사방에서 일어난 해골병사들에게 어느새 포위된 상태였다.


“문지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니, 부디 노여워 마시옵소서. 마왕님.”


릴리트는 극진한 예를 갖추며 인사를 하고는,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손끝에선 예리한 파동이 퍼져나가며 투두둑.


수십의 해골병사의 목이 한순간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내린다.


아까 그 스킬북을 덥석 물었다면


‘지금 떨어지는 것은 내 목이었겠지.’


등골이 싸늘해진다.


“장난은 여기까지. 선을 지켜라. 릴리트.”


도박을 하기로 했다면 끝까지 속여야 하는법. 나도 정신 바짝차리고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럼요, 그럼요 마왕님. 주인님을 뵙습니다.”


다시 한번 극진한 예를 갖추면서도,

아까보다 뻔뻔하고 여유로운 녀석.

이쪽이 원래 녀석의 성격인 듯 싶었다.


릴리트는 예의 철문 앞으로 날 안내했다.


쿠구구궁.


철문 안에 있는 건 텅빈 벽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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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전이 24.08.02 7 0 12쪽
15 #14. 마녀재판 24.08.01 9 0 9쪽
14 #13. 경비대장 헥터 24.07.31 7 0 13쪽
13 #12. 맞고 벗을래? 그냥 벗을래? 24.07.30 8 0 13쪽
12 #1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4.07.29 7 0 14쪽
11 #10. 지하실의 악마 24.07.28 8 0 12쪽
10 #9. 탑에 갇힌 공주님 24.07.27 8 0 11쪽
9 #8. 화형식 24.07.26 6 0 12쪽
8 #7. 태양을 피하는 방법 24.07.25 12 0 13쪽
7 #6. 블리스우드 24.07.24 23 0 11쪽
6 #5. 안녕 마계. 24.07.23 27 0 13쪽
» #4. 섭리의 눈. 24.07.22 26 0 12쪽
4 #3. 꿈에서 깨어. 24.07.21 30 0 11쪽
3 #2. 지금까지 제 소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7.20 26 0 13쪽
2 #1. 어버이 은혜 24.07.19 58 0 13쪽
1 프롤로그 - 성마대전 24.07.19 63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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