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마왕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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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고
작품등록일 :
2024.07.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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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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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형식

DUMMY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섬찟한 눈초리들은 거짓말처럼 흩어지고 없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연설은 계속 이어졌다.


“신을 등진 더러운 마족의 피가 바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이제 천국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죄를 씻어내십시오. 정화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의 문은 닫혀버릴 것입니다.”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은 감명받은 얼굴로 일어나 박수를 쳐댔다.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나직하게 ‘루멘... 루멘...’ 하며 기도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그보다 눈에 띄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꾹눌러 참았다.


마침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미사가 끝나고, 나는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줄이 왜 이렇게 안빠져?’


밖으로 향하는 길은 널찍한 통로였는데, 이상하리만치 줄이 천천히 이동했다. 저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나는 타냐의 손을 꽉 붙잡았다.


줄은 천천히 움직였지만,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나를 쳐다보는 기이한 시선도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내 예배당을 나왔을 때 나랑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무척 곤란한 표정으로 어쩔줄 몰라하는 광경이 보였을 뿐이었다.


‘휴... 저거였나.’


예배당 밖에서는 또다시 헌금을 걷고 있었다.


‘거놈 돈에 환장한 놈이니까 가져가라.’


홉스의 말이 떠올라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홉스가 준 동전이 아직 남아있었다.


아까의 기이한 시선 때문에, 차라리 이쪽이 마음이 놓였다.


“대니. 어서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죠?”


수녀는 눈은 웃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굳어있었다. 바깥에선 한명씩 예배당 밖으로 나와 헌금을 넣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대니란 아이가 우물쭈물하자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다들 바쁜데, 설마 신의 은총을 받으러 오면서 빈손으로 온거야?”


“아주 상습범이구만? 축복은 받고 싶고, 돈은 내기 싫고. 이거 순 도둑놈 심보 아니야?”


“돈이 없으면 오질 말아야지 원,”


소란이 일어나자, 아이는 더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고작 내 또래 아이였는데, 점점 침울한 표정을 짓더니 눈에는 점점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히려 했다.


나는 주머니의 동전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이제 남은 동전은 딱 2개. 저 안타까운 아이를 도와주고 나면 나도 입장이 곤란했지만,


“뭘 잘했다고 울어? 내 참. 쯧쯧.”


“내 참. 저 애 부모는 뭐하는 사람인지?”


점점 도넘는 비난이 이어지고 또 무엇보다 나도 여기서 일초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기에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대니! 여깄었구나 한참 찾았어.”


아이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너 누구야? 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너희 엄마가 나한테 이거 주셨었거든. 니가 깜빡 두고 나갔다면서. 자, 이제 얼른 감사인사 올려.”


대니는 뭐가뭔지 모르겠단 표정이었지만 얼른 기도를 올리곤 쪼르륵 바깥으로 나갔다.


“자, 그럼 어린 신사분도.”


“어... 저... 그게.”


이 방법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럴땐 이게 국룰아닌가.


“어린 동생것까지 챙겨야 하는 줄 몰랐거든요. 얘가 아직 어려서. 타냐 올해 몇 살이지?”


나는 손가락 5개를 펴며 눈을 찡긋 했다.


“일곱살!”


“아니, 아니, 타냐 올해 다섯 살이잖아. 얘가 이래요. 제 나이도 잘 모른다니까요. 하하핫.”


잔뜩 너스레를 떨어봤지만, 수녀의 눈빛은 싸늘했다. 수녀가 뭔가 입을 떼려고 하는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 프리츠군? 여기서 또 보는군요.”


또 어느새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신부가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리사. 아직 어린 아이지 않습니까. 신께서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시지만 어린아이에게 만큼은 가끔 약해지시니까요.”


신부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찡긋 하더니, 타냐를 덥석 안아들었다.


“아이구, 어린 숙녀분. 길을 잃지 말고 앞으로도 신과 함께 하도록 해요? 알았죠?”


“앙!”


***


‘휴... 진짜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신부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나쁜사람은 아닌걸까? 머리가 복잡했다.


한숨을 내쉬며 성당을 나서자, 아까의 아이가 쪼르르 뛰어나왔다.


“야! 너 아까 걔지?”


“어? 응? 아, 응.”


나는 조금 머쓱해져서 얼버무렸다.


“고마워. 그래도 왜 거짓말까지 해서 날 도운거야?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어..? 아냐. 너는 나를 몰라도 진짜 너희 어머니가 나한테 부탁하셨다니까?”


순간 울먹이던 얼굴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이봐. 또 거짓말이잖아.”


“진짜래도?”


“저승에 계신 부모님이 어떻게 돈을 주는데?”


“!?”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귀가 뻘겋게 달아올라 뜨거워졌다.


“어.. 그러냐···.”


“됐어. 사소한건 신경쓰지마. 아무튼 고마워.”


“....”


그뒤로 둘다 머쓱해져서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대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애는 네 동생이야?”


“아니, 나랑 얘도 같은 처지야.”


“어... 그러냐....”


이번엔 대니가 머쓱해했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걷다가 다시 눈을 마주치곤 하하하 웃어버렸다.


어차피 이런세상이었다. 전쟁이든 뭐든 고아라는게 그렇게 특별날 것도 없는 세상.


같은 처지인 것을 알자, 대니도 퍽 마음이 편해진 듯 했다.


“근데 너 꽤 독실한가보다. 그렇게 곤란한데도 성당엔 꼬박꼬박 가는거야?”


“아... 그거?”


대니는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더니 내쪽으로 퉁겼다.


“어?! 돈 없는 거 아니었어?”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대니를 바라봤다.


“없었지. 아까 넣는척 하면서 도로 슬쩍 한거야. 내가 이런 쪽엔 좀 텄거든.”


동전을 회수한 건 좋았지만 머리가 더더욱 복잡해졌다. 그럼 얜 대체 거길 왜 간거지?


“너랑 타냐랑 비슷한거야. 나도 누나가 있었거든.”


“누나?”


“피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뭐 거의 가, 가족이나 다름없는거야.”


가족이란 얘기를 할 때 대니는 왠지 쑥쓰러워하는 게 보였다.


“그 누나를 좋아했구나?”


“아니, 왜 얘기가 그렇게 돼?”


눈에 띄게 당황하는 대니를 보며, 나는 쿡쿡 웃었다.


“암튼, 그 누나가 저기 성당 수녀원에 들어갔거든. 근데 성당에도 안보이고 아무데도 없어. 만나게 해달라고도 해봤지만 안된다는 말만 하고. 그래서 간거야.”


“편지라든가 그런것도 없어?”


“···없어. 그런게 있었으면 안갔지. 저기 좀 이상하지 않아?”


확실히 어딘가 미심쩍은 데가 있는 이야기였다. 외부와 접촉을 차단하는 수도원이 있기야 하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가 애타게 찾는 것까지 그냥 둘 리 없는데.


불길한 가능성들이 몇가지 스쳐갔지만 그런 얘기를 입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에이, 그래도 잘 있겠지! 수녀원인데 뭔 일 있겠어?”


“그렇겠지?”


***


어느덧 성당에서 꽤 오래 걸어나오니 마을 중심에 있는 광장이 보였다.


광장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높이 솟은 십자가 아래로 볏짚 같은걸 쌓고 있었다.


‘뭘 하는걸까?’


내가 발걸음을 멈추고 광장쪽을 쳐다보자, 대니가 입을 열었다.


“이따가 여기서 그거 한대.”


“그거? 뭐?”


대니가 날 보더니 눈빛을 번뜩였다. 분위기를 잡으면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화.형.식.”


속은 삼십대 아재인 나한텐 무섭기보단 되려 귀여워보일 법한 모습이었지만, 왠지 그 울림이 불길하게 느껴져 웃어 넘길 수가 없었다.


“그.. 화형이면 마녀사냥같은 걸 말하는건가?”


“그치 그치.”


대니는 내가 불안해하는 기색을 느꼈는지, 은근 재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나이대 소년들이란 이런것에 우쭐하기 마련이니까.


“그럼 저기서 그... 사람을 산채로 태워서 죽이고 뭐 그런거야?”


“그치 그치. 막 꼬챙이로 찌르기도 하고. 뜨겁게 달군걸로 지지기도 하고.”


“그럼 뭐, 그 마족이 잡혀오거나 그런건가?”


“그치 그치. 막 괴물도 잡아와서 불태우고 그렇지.”


“야. 너 지금 나 놀리지.”


내가 째려보자 대니가 쿡쿡 웃었다.


“푸하하. 너 진짜 바보야?”


“왜 웃는데? 그럼 저런걸 왜 쌓고 있어?”


“너 진짜 촌놈이구나? 이런 시골마을에 마녀니 마족이니 하는게 있을 리가 없잖아? 다 가짜지.”


“....”


“그냥 마을 축제야. 곧 시작하니까 보고 가자.”


***


화형대가 준비되자, 장정들이 마녀모자를 씌운 짚으로 된 허수아비를 들고왔다. 높이 솟은 십자가에 허수아비를 걸어두는 것으로 축제 준비가 끝났다.


나는 그 인형을 올려다봤다.

볏짚으로 만들었다기엔 디테일이 꽤 살아있는 인형이었다. 곧 불태워질 운명이 즐겁기라도 한 듯 입가엔 사악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이런게 왜 재밌나 싶었지만, 광장에 모인 사람들 표정엔 생기가 돌았다. 낙이라곤 없이 종일 고된 노동만 하는게 당연한 사람들에겐 이런 축제도 흥겨운 법인가 보다.


“프리츠, 너 그거 알아?”


“뭐?”


“마녀들은 자식을 어떻게 낳는지.”


“음..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대니도 마찬가지였다. 잔뜩 들떠선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조잘조잘 해댔다.


“마녀들은 젊고 예쁜 여자를 질투하거든. 젊고 예쁜 여자가 훤칠한 남자랑 결혼을 하면 표적이 되는거지.”


“그럴 듯 하네.”


“마녀가 키우는 독두꺼비가 있잖아. 결혼한지 얼마 안된 부부가 동침하고 뻗어 있으면 침대에 몰래 그놈을 풀어 놓는거지.”


“그래서?”


황당하긴 했지만 상상력이 풍부하다 싶어서 계속 들었다. 대니는 신나서 떠들었다.


“그럼 그게 침대에 쑥! 숨어 들어가서 뱃속에 알을 까는거야. 그리고 산달이 차면 마녀는 산파인척 하고 아이를 받으러 가는거지.”


“···.”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면 응애! 응애! 하고 우는게 아니라 꾸엑! 꾸엑! 하고 울거든.”


“윽...”


“그러면 산파가 아가를 보여주면서 짠! 떡두꺼비같은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깔깔깔! 하면 산모는 그대로 까무러치는거지.”


“그럼 아빠는?”


“별수 없잖아. 그런 아이가 태어난 걸 비밀로 해주는 대신 아이를 데려가 주겠다고 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알겠다고 하는 거지. 작은 동네에선 소문이 금방 도니까.”


“···.”


“화목했던 부부의 얼굴엔 그늘이 지고 마녀는 그 뒤로도 빗자루를 타고와서 집 주변을 킬킬대며 빙그르르 돈대.”


“...넌 대체 이런 얘길 어디서 들은 거야?”


실로 황당한 상상력이었기에 나는 기가 차서 물었다.


“조오~기 오잖아.”


대니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익숙한 웃는 얼굴이 보였다. 화형제를 주관하러 온건 성당의 신부였다.


신부가 웃으며 양팔을 들어올리자, 동네사람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애들한테 이런걸 가르친다고?’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신부를 쳐다봤다.

신부는 이쪽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방을 차례로 돌면서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점점 커졌다.


곧 장정 한 명이 횃불을 들고 오자 신부는 그것을 받아들더니 인형 아래 불을 붙였다. 불이 볏짚더미로 옮겨붙던 순간 신부가 이쪽을 언뜻 쳐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길은 점점 하늘 높이 타올랐다. 그 「신성한 불꽃」이 타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춤추고 킬킬대며 그 불 주위를 빙그르르 돌았다.


나는 그 속에서 홀로 활활 타오르는 화형대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불꽃은 더 크게 타올랐다.


마침내 불꽃이 인형에 옮겨붙었을 때, 그것은 크게 타올랐다 사그라들며 사악하게 웃는 마녀의 입매를 기이하게 우그러뜨렸다.


그때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사이로 희미한 흐느낌이 들리는 듯 했다.


불꽃이 사그라들고, 그 얼굴이 재가 되어 부스러질 때, 나는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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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전이 24.08.02 7 0 12쪽
15 #14. 마녀재판 24.08.01 9 0 9쪽
14 #13. 경비대장 헥터 24.07.31 7 0 13쪽
13 #12. 맞고 벗을래? 그냥 벗을래? 24.07.30 8 0 13쪽
12 #1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4.07.29 7 0 14쪽
11 #10. 지하실의 악마 24.07.28 7 0 12쪽
10 #9. 탑에 갇힌 공주님 24.07.27 8 0 11쪽
» #8. 화형식 24.07.26 6 0 12쪽
8 #7. 태양을 피하는 방법 24.07.25 12 0 13쪽
7 #6. 블리스우드 24.07.24 22 0 11쪽
6 #5. 안녕 마계. 24.07.23 27 0 13쪽
5 #4. 섭리의 눈. 24.07.22 25 0 12쪽
4 #3. 꿈에서 깨어. 24.07.21 30 0 11쪽
3 #2. 지금까지 제 소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7.20 25 0 13쪽
2 #1. 어버이 은혜 24.07.19 58 0 13쪽
1 프롤로그 - 성마대전 24.07.19 6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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