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마왕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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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고
작품등록일 :
2024.07.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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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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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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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탑에 갇힌 공주님

DUMMY

“프리츠, 일어나봐라.”


“왜... 아직 닭들 울기도 전인데···.”


“얼른 이리 와봐!”


아직 새벽 어스름도 가시지 않은 시각.

홉스가 깨우는 소리를 듣고 억지로 일어났다.


“...어제 타냐한테 무슨 일 있었냐?”


“으..으으...”


타냐의 방에 가보니, 타냐가 괴로운 듯 시름시름 앓고있었다.


“어···. 아무일도 없었는데?”


그렇게 말하고 보니,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타냐가 유독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안되겠다. 내가 업을테니 따라와라.”


***


쾅쾅쾅!


“...저 홉스, 아직 꼭두새벽이야.”


쾅쾅쾅!


“거 누구쇼?”


끼익 – 하고 문이 열리더니, 머리에 까치집을 올린 의사가 졸린 눈을 부비며 나왔다.


“의원 양반, 얘좀 한번 봐주쇼.”


“그... 아니다. 에휴... 일단 들어와 보슈”


의원은 뭔가 할말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환자가 어린아이인걸 보더니 체념한 듯 했다.


“애가 몇 살이유?”


“올해로 7살이외다.”


“일단 이리로 뉘여보슈”


병실은 단촐한 침상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약간 나긴 했지만 시골의원치곤 깨끗한 편이었다.


홉스는 타냐를 침상에 눕혔다.


“콜록! 콜록!”


그때 타냐가 기침을 하더니 속에 있는걸 전부 게워냈다. 의사는 익숙하게 양동이같은걸 가져와서 받아내곤 진찰을 시작했다.


“식은땀은 줄줄 흘리는데, 열도 없고, 가래도 없고. 오히려 몸은 좀 차네. 흠....”


의사는 이리저리 진단을 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소.”


“애가 이렇게 낑낑대고 정신을 못 차리는데 아픈데가 없다니?”


“홉스, 좀 진정하고 일단 들어봐.”


“···.”


타냐를 한참 더 진찰하던 의원은 한참 고민하더니 입을 뗐다. 이런말을 해도 되나 싶은 표정이었다.


“...짚이는 데가 있긴 한데, 이게 의사로서 해도 될말인지.”


“선생님, 괜찮으니 일단 말씀해보시죠.”


“...예전에 꼭 한번 이거랑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본 적이 있소. 그때는 젊은 여자 였는데.”


의원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신병이라고 하외다. 그때는 뭐 그런건 미신이라 치부하여 귀담아듣진 않았소만.... 뭐 그때 생각이 나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오.”


홉스는 그 얘길 듣더니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나버렸다.


“가자.”


“응?”


“시간낭비했다. 가자!”


“...뭐 살펴가슈.”


***


홉스는 타냐를 안고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면서도 농장에 도착할 때까지 어제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타냐 이마에 물수건 좀 놔줘라.”


“열이 안 나는데 물수건을 왜 놓는데?”


그렇게 말해도 홉스는 무뚝뚝하게 쌀을 퍼다 죽만 쑤고 있었다.


“홉스, 쌀알이 다 씹히잖아. 이리줘봐.”


나도 요리는 잘 몰랐지만, 홉스는 쌀알이 풀어지지도 않은걸 죽이라고 쒀서 담으려 했다.


내가 죽을 다시 솥에 붓고 젓고 있으니, 홉스는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짜 왜 저러지....’


***


밭에 나가보니 홉스는 말없이 감자만 캐고 있었다.


왠지 말걸기 어려운 분위기라, 나도 옆에서 한참을 감자만 캤다.


“홉스.”


“....”


“홉스!”


“말시키지 마라.”


“예전에 성당에 다녔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홉스가 나를 노려봤기에 나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한참을 지나서야 다시 운을 뗐다.


“어제 친구를 사귀었거든. 누나가 거기 수녀원에 들어갔다는데 아는 게 있나 해서.”


홉스랑 관련있는 건 물어 볼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나는 대니 얘기부터 꺼냈다.


그리고 홉스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걔도 고아냐?”


“어? 맞긴한데... 어떻게 알았어?”


내가 긍정하자 홉스는 흠칫 놀라는 듯 했다. 하지만 고개를 홱 돌려버려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가정교육 똑바로 받은 애가 너랑 친구겠냐?”


“홉스, 누워서 침뱉기란 말 들어봤어?”


“...쿨럭. 시끄러! 감자나 캐라.”


그 뒤로 더 얘길 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낸 건 없었다.


***


“...뭔가 알고는 있는 것 같은데. 말을 안 해 주더라고.”


대니를 만나러 마을외곽에 나왔다.

대니는 내 말을 듣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어두워진 표정을 보니 괜한 말을 했나 싶기도 했지만 성당에 뭔가가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찝찝한 건 홉스의 반응이었다.


홉스는 감정을 숨기는 데 영 서투른 사람이다. 감자가 알이 아주 굵어요 따위를 말할때도 콧잔등을 긁적대는 사람이니까.


“나도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봤거든.”


대니가 말했다.


“밤중에라도 몰래 만나보려고 성당에 가봤는데, 거기 좀 이상한 게 있었어.”


“이상한거?”


“내가 알아낸 건 수녀원은 아마도 그 성당 지하에 있는 것 같단거야.”


“수녀원이 성당 지하에?”


중세의 수도원이나 수녀원은 고행을 위해 속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하에 수도원이 있으면 안된단 법은 없지만 일반적이진 않았다.


“그보다 이상한 건,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는 새벽에도 지키고있는 사람이 있어.”


“확실히... 이상하네. 그냥 문단속만 잘 하면 될텐데 어째서 불침번을 서는거지?”


“그렇지? 나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뭐 더 알아낸 건 없어?”


“없어. 내가 알아낸 건 거기까지야. 경비가 너무 삼엄해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어.”


수녀원 지하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신부를 둘러싼 기이한 사건들, 성당에서 본 새카만 벌레. 나는 그것들을 떠올렸다.


뭔가 불길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면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었다.


“대니, 우리가 직접 구하러 가자.”


“우.. 우리가?!”


“그래! 너랑 내가 누나를 구하는거야. 너 그 누나 좋아하잖아.”


“아, 아니야! 누, 누가 좋아한다고!”


대니는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얼굴이 홍당무였다.


“나 혼자는 못가. 나는 그 누나 얼굴을 모르니까.”


“근데, 프리츠. 아까 말했잖아. 거긴 어른들이 지키고 있다고. 쥐새끼 하나 숨어들 틈도 없다니까?”


“그거라면 걱정마 내가 길을 알고 있으니까.”


“니가?! 너도 몰래 성당에 가본거야?”


나는 대니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잠깐 눈 감아봐 대니.”


대니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나는 살금살금 대니의 뒤쪽으로 돌아가 대니의 어깨를 짚었다.


[전용특성 : 성대모사를 사용합니다.]


“허허허. 대니군? 여기서 뭘 꾸미고 있는거죠?”


“으악!”


대니는 발작하며 괴성을 지르더니, 나를 뒤돌아 보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대니군? 헌금은 가져왔나요? 신께선 헌금을 좋아하신답니다?”


“우왓! 진짜 소름! 대체 어떻게 한거야?”


“내가 흉내를 좀 잘내거든. 어때? 할거야 말거야?”


대니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게. 부탁해! 프리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좋아, 대니. 탑에 갇힌 공주님을 구하러 가보자고!”


***


그날부터 나는 매일 대니와 작전회의를 했다.


“...프리츠 멀었어? 너무 힘들다고.”


“대니. 그렇게 허약해서는 누나를 구할 수 없다니까?”


“그치만... 너무 무겁다고 너.”


“어어어!!”


쿠당탕.


순간 눈앞이 기우뚱 하며 흙먼지가 일었다.

목마를 타고 떨어져서 그런지 부드러운 흙바닥인데도 충격이 상당했다.


“...끄으, 이건 역시 안되나.”


목소리는 어떻게 할 수 있었지만, 체구는 숨길 수 없었다.


“프리츠. 이건 무리라고 했잖아. 이번엔 니가 목마를 태워봐.”


“그건 안된다니까? 꼬추에서 목소리가 나오면 퍽이나 들여보내주겠다.”


“....”


대니의 표정이 또 어두워졌다.


‘후... 뭔가 방법이 없나?’


“흡.. 흡..”


“야, 너 울어?”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너가 그러니까 진짜 눈물날 것 같잖아. 흐앙”


이윽고 어깨가 파르르 떨리더니 대니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다.


“일어나, 대니. 울지말고. 내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나는 대니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대니의 손바닥엔 모래알이 박혀 까슬까슬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대니의 무릎에도 까진 상처가 잔뜩 있어 만신창이였다.


동갑이라고 해도, 대니는 잘 먹지도 못해서인지 나보다 체구도 더 작았다.

목마를 태우고 최소 30분은 넘게 버티고 걸어다녀야 하는데, 연습한다고 해서 단시간에 그만큼 강해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골치가 아파 이마를 짚으니 머리가 뜨끈뜨끈했다.


“흡.. 흡..”


대니는 양팔로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다가, 갑자기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다.


“대니, 일어나봐.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으, 으응?”


“두 가지만 약속해 줄 수 있어? 그럼 내가 누나를 구해줄게.”


***


크르아앙 – 쿠과아앙!


‘홉스. 미안해. 나중에 꼭 갚을게.’


늦은 밤 집에 돌아가보니, 홉스 타냐 침대 밑 바닥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타냐를 간호하다 잠든 모양이었다.


코를 어찌나 고는지, 꼭 탱크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얘는 어떻게 이런데도 잘자네.’


홉스의 극진한 간호 때문인지, 요즘 타냐는 괴로워하는 일 없이 새근새근 잠만 잤다.


이런저런 루트로 알아보니, 다행히 신병이란 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고 한다.


나는 홉스의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몰래 꺼내서 다시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내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이걸로 준비는 거의 다 되었다.


***


“프리츠, 꼭 이렇게까지 해야해?”


“큭큭, 꽤 그럴 듯 하네. 야! 가만있어보라니깐?”


하얗게 분칠을 해놓으니, 대니는 제법 여자같은 태가 났다. 대니는 아직 2차성징이 오지 않은데다 잘 못먹어서 그런지 몸매가 호리호리했다.


대니랑 같이 만든 검정색 수녀복을 입혀놓으니 영락없는 수녀였다.


“대니, 이참에 너도 수도원에 들어가는게 어때?”


“미쳤어? 시끄러. 근데 진짜 안 알려줄거야?”


“그래. 꼭 기억해. 첫째, 이동할 때 무조건 내 앞이나 옆에서 이동할 것. 둘째, 무슨 소리가 나도 뒤돌아 보지 말 것. 이 두가지를 안 지키면 작전은 무조건 실패야. 아, 그리고 세 번째도 있어.”


“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보지 말 것. 알겠지? 지금부터 시작이다?”


***


“프리츠... 거기 있지?”


“응. 있다니까? 이제 그만 좀 물어봐.”


“프리츠, 근데 왜 오늘이야?”


“달이 안뜨니까.”


우리는 달이 뜨지 않는 밤의 숲을 걸었다.


나무 아래 드리운 어둠은 별빛조차 집어삼켜버렸다.


풀벌레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깊은 밤이었다. 우리도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스산한 숲 아래를 걸었다. 축축한 흙냄새를 맡으며 숲을 지나자, 어렴풋이 블리스우드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웅장하게 솟은 성당을 올려다봤다. 고딕양식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서있고, 짙게 그늘진 시계탑엔 칠흑같은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자, 대니. 이제 들어간다.”


끼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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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생일 축하 합니다. 24.08.03 5 0 12쪽
16 #15. 전이 24.08.02 6 0 12쪽
15 #14. 마녀재판 24.08.01 9 0 9쪽
14 #13. 경비대장 헥터 24.07.31 7 0 13쪽
13 #12. 맞고 벗을래? 그냥 벗을래? 24.07.30 7 0 13쪽
12 #1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4.07.29 6 0 14쪽
11 #10. 지하실의 악마 24.07.28 7 0 12쪽
» #9. 탑에 갇힌 공주님 24.07.27 8 0 11쪽
9 #8. 화형식 24.07.26 5 0 12쪽
8 #7. 태양을 피하는 방법 24.07.25 11 0 13쪽
7 #6. 블리스우드 24.07.24 22 0 11쪽
6 #5. 안녕 마계. 24.07.23 27 0 13쪽
5 #4. 섭리의 눈. 24.07.22 25 0 12쪽
4 #3. 꿈에서 깨어. 24.07.21 29 0 11쪽
3 #2. 지금까지 제 소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7.20 25 0 13쪽
2 #1. 어버이 은혜 24.07.19 57 0 13쪽
1 프롤로그 - 성마대전 24.07.19 6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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