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마왕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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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고
작품등록일 :
2024.07.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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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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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생일 축하 합니다.

DUMMY

- 어린놈이 벌써 도둑질이냐?


- 너 딴데가서 그러면 맞아죽어.


- 할려면 여기서 해라. 감자정돈 내줄테니.


- 차라리 우리집에 올래? 일은 좀 고될거다.


“거짓..말···.”


쿠웅.


“거짓말이야.”


홉스가 쓰러졌다.

고깔모자를 쓴 채.

커다란 몸뚱이가 아무런 저항없이 쓰러진다.


현실감 없는 광경에 정신이 멍해졌다.

집안으로 들이닥치는 두 남자.

허리춤에서 칼을 뽑는다.


“어이, 꼬마들. 착하지? 니들도 애비 따라 가야지. 킥킥.”


“이리와. 니들 아빠 안보고 싶어?”


문이 열리자마자.

손쓸 새도 없었다.


푸슛!


배에 박힌 두개의 창.

솟구치는 피.


누가? 어째서? 왜? 무슨이유로?


사고회로가 정지해버렸다.


뚜벅. 뚜벅.

병사들이 다가와도 그저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야, 얘네들 완전 얼이 빠졌는데?”


“그냥 고통없이 보내.”


머리위로 칼이 치켜들려진다.


“너무 원망마라 애들아.”


***


푸슛!

눈앞에서 또 한명이 쓰러진다.


‘민간인이라고.’


광장에 수북히 쌓인 시체를 보며 루벤은 생각했다.


[감정을 도려내고, 명령에 따라라.]


그것이 군인의 숙명이라고 할지라도,


‘왜 즐거워보이는건데?’


역병을 막기 위해 마을을 봉쇄하는 것.

루벤도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를 위한 희생일지라도 유쾌할리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런 수준 조차도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


“전부 죽여라.”


광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이른새벽부터 시작된 학살.


“아이만이라도 살려주세요. 제발···.”


“에잇, 끈질긴 새끼. 끝까지 덤비네.”


“천벌이 두렵지 않은 겐가···. 제발 멈추게···.”


“이년은 그냥 죽이기 좀 아까운데? 킥킥”


전부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헥터의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악마에게 휘말린 민간인.


의문들이 끝없이 고개를 든다.


누가 악마지?

힘없이 죽어가는 이들?

아니면 아이들마저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우리들?


그러나 루벤은 의문들을 짓눌렀다.

일일이 답하다간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사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감정을 도려내고 명령에 따르는 것.

루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대장님, 전부 모았습니다.”


“슬슬 시간인가.”


뚜벅. 뚜벅.

헥터는 천천히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족처럼 움직이던 병사들도 더 분주해졌다.


“끄으으윽···.”


채 죽지 못한 인간들의 침음성위로,

마른 장작들이 쌓여갔다.

헥터의 시선은 장작더미에 고정되어있었다.


헥터는 건조하게 말했다.


“소각해라.”


어떠한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병사들은 광장을 빙 에워싼 채 불을 붙였다.


역겨운 시체타는 냄새와 아직 죽지 않은 이들의 끔찍한 비명, 몸에 불이 붙어 뛰쳐나오는 이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 속에서도 헥터는 담담했다.


광장을 에워싼 병사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이따금 불이 붙은 채 뛰쳐나오는 이들을 다시 불지옥 안으로 몰아넣었다. 흡사 지옥의 간수같았다.


이윽고 불길속에서 움직이는 이가 없게 되자, 헥터는 알수없는 주문같은 것을 외기 시작했다.


헥터가 종교를 가졌던가?

주문을 외는 헥터는 군인이 아니라 제사장처럼 보였다.

종교적인 느낌을 주었으나, 처음 듣는 언어로 되어있어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 주문이 지독하게 불길하고 부정한 것이란 것만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헥터를 따라 다른 이들도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루벤을 제외한 모두가 주위를 돌며 알수없는 주문을 외웠다. 주문도 괴기스럽게 느껴졌으나,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곳에서 주문을 모르는 사람은 루벤 뿐이라는 것이었다.


루벤도 눈치를 살피며 입을 뻐끔거렸다. 다행히 다른이들은 무아지경에 빠져 루벤을 신경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그렇게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시체타는 냄새와 끔찍한 비명소리 속에서 아득해지려 하는 정신을 붙잡았다.


분명 행복이나 건강을 비는 의식은 아니리라.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 주문에는 역겨움과 불길함이 끈적하게 녹아있었다.


의식을 계속할수록 병사들은 황홀경에 빠지는것 같았다. 그들은 불길이 점점 타오를수록 고양되어갔다.


불길이 높게 타오르고, 타오르는 시체들이 녹아 기괴한 형상을 이루었다.


그리고 돌연, 하늘이 어두워졌다.


“모두 하늘을 봐라.”


그 말과 함께 전원이 하늘을 봤다.

머리위로 있어야 할 태양에 달이 겹쳐지고 있었다.


태양을 잡아먹은 달.

이지러진 태양 주위로 하얀 빛이 장엄하게 빛났다.


“강림이다.”


“!!!”


번쩍- ,


검은 태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눈이 눈을 떴다.


‘저것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루벤은 두려움에 한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기운이 나는 듯 했다.

태양이 눈을 뜨자 주문은 더욱 격렬해졌다.


깨어난 눈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 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침내 그 눈은 서서히 시선을 돌렸다. 마치 이곳을 바라보려 고개를 돌리듯이.


그 시선이 닿는것은 무엇이나 그 아래 조아렸다.

네발 달린 것이나 두발 달린 것이나, 하늘을 나는 것이나 땅에 엎드린 것이나,

나무와 바위, 바람과 구름까지도 그 시선아래 고개를 숙였다.


“멈추지마라!”


헥터는 더 필사적으로 주문을 외웠다. 불가를 도는 의식도 점점 빨라졌다.

병사들은 거의 날듯이 뛰어 불가를 돌았다.


의식은 점점 광기의 의식으로 변해갔다.

병사들은 무아지경에 빠졌다.


“나를 묶어라! 어서!”


병사 하나가 뛰어가 헥터를 묶었다.

단단한 기둥에 태양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밧줄로 동여맸다.


“온다! 멈추지마라!”


헥터는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이 의식이 끝나면 저 불길하고 저주스러운 힘이 헥터에게 스며들것이란 생각에 욕지기가 났다.


“영혼이 부족하다!”


헥터의 그 말 한마디에 루벤을 제외한 모두는 불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제물이 되었다.

그들은 불속에 뛰어들면서도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태양 주위로 구름이 몰려들었다.

몰려든 구름은 그 존재를 숭배하듯 주위를 에워쌌다.


마침내, 그 눈이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고 말을 걸었다.


[미물아.]


루벤은 두려움에 등을 돌렸다.

눈이 완전히 마주쳤다면 움직일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 눈은 그저 눈일 뿐이었으나, 이세상 그 어떤 생물의 눈과도 닮지 않았다.


등을 돌리자 묶여있는 헥터의 얼굴이 보였다.

헥터는 눈을 부릅뜨고 광기서린 웃음을 만면에 띄우면서도 두려움에 경련하듯 떨고 있었다.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으힛, 으히히히힉히익!”


헥터는 겁에질린 채 기괴하게 웃으면서도 눈을 똑바로 올려다봤다.


[반드시 너를 찾아 갈테니.]


저릿. 저릿.


그 목소리는 귀를 통하지도 않고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등을 지고 있어도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헥터의 떨림이 최고조에 이른 뒤 이내 잦아들었다.

이윽고 땅에 빛이 비추고, 광장에 남은 것은 헥터와 루벤뿐이었다.


어떻게 풀었는지, 헥터는 두텁게 동여맨 밧줄을 홀로 풀어낸 뒤였다.


헥터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만한 영혼을 바쳐도 그저 한번 올려다보는 것이 전부인가.”


그의 얼굴엔 광기서린 희열이 떠올랐다.


***


눈을 뜨니 거대한 문 앞이었다.

거대한 눈은 자신을 천사라고 소개했다.


[두려워 말라.]


거대한 눈이 말을 걸었다.

눈 주위로는 거대한 톱니바퀴같은 것이 겹겹이 공전하듯 돌아가고 있고, 그 안에도 작은 눈이 가득 박혀 있었다.


그 눈은 두려웠으되, 동시에 따뜻했다.

마치 오래 전 잃어버린 동족을 만난 듯.


그 눈이 말을 걸었으되, 그것은 말이 아니었다.

그 눈은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내 머릿속에 직접 투영해 보여주었다.


[보여주마. 네가 찾는 것을.]


눈이 서서히 고개를 돌려 어떤 장소를 비췄다.

거기에는 한무리의 병사들이 있었다.

제를 지내는 병사들.

병사들은 곧이어 불속으로 뛰어들고, 그중 둘만이 남았다.


하나는 등을 돌리고 있었고, 하나는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고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방향을 보고있는지는 의미가 없었다. 천사의 눈에는 사각이 없었다.

나는 천사의 눈을 통해 그들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신비한 광경이었다.

그것이 따로따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중첩]으로 보였다. 겉과 속, 앞면과 뒷면, 내면의 역겹고 흉악한 본질까지.


한번의 시선으로 그 모든것이 파악되었다.


그자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으며, 인간의 형상을 보되 동시에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며 내가 쫓아야 할 적이라는 것을.


나는 그것을 보며 말했다.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반드시 너를 찾아 갈테니.]


***


다시 눈을 떴을때, 모든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정신을 잃은 사이 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흐릿했다.


두 병사가 침입해 칼을 번쩍 들었고, 이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는지, 왜 정신을 잃었는지, 머릿속이 안개처럼 뿌옇게 되었다. 꿈과 같은 비현실적인 장면들만 드문드문 떠오를 뿐.


다만 그 꿈속에서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는것이 몇가지 있었다.


거대한 눈앞에 선것, 그리고 아주 작은 눈을 보았던 것. 그 작은 눈을 찾아 죽여야 한다는 것도.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죽은 건가?’


두명의 남자가 선채로 돌처럼 굳어 있었다.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그자리에서 즉사한 듯 했다.


굳어버린 두 남자의 사체만이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타냐는 눈을 감고 있었다.

평온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에 들어있었다.


홉스는 바닥에 누워있었다.

안어울리는 고깔모자를 그대로 쓴 채.

차마 눈을 감지도 못했다.


얼굴을 쓸어내려 눈을 감겨주었다.

가여운 사람.


그의 영혼은 분명 구원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타냐의 영혼을 위해서도 맹세가 필요했다.


“원수는 꼭 갚아줄게.”


홉스의 시신을 수습하여 밭에 묻어주었다.

해골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땅을 팠다.

왠지 그렇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몸은 평생을 일궈온 땅에 잠들었다.

이렇게 드넓은 땅이 있다면 저승에서도 배곯을 일은 없으리라.


홉스의 신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을 것이기에,

어머니와도 같은 대지의 품에서 잠들기를.


그가 편히 눈감았길 바라며 성호를 그었다.


***


헛간에 돌아왔다.

텅빈 방 한가운데엔 잊고있던 물건이 보였다.


[축 생일]


삐뚤빼뚤하게 씌여진 글씨.

옆에는 덩그러니 숟가락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배가고픈건 아니었다.

그러나 한술, 두술.

커다란 케잌을 먹고 또 먹었다.


지독한 공허와 허전함.

가슴에 뚫린 구멍을 메우려는듯 케잌을 먹어치웠다.


그러나 케잌을 다 먹은 뒤에도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이런게 고독이라는 건가.’


잠든 타냐의 머리를 쓸어내리곤 나직하게 불렀다.


“나와.”


마법진을 그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해골이.


‘역시 되는구나.’


아까 깨어난 뒤부터 느끼고 있었다. 몸속에 느껴지는 흐름이 어딘가 달라져있었다.


“좀 도와줘.”


해골이는 터벅터벅 걸어가 타냐를 들어 어깨에 들쳐멨다.


“여길 떠날거야.”


해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오늘은 나의 10번째 생일.


헛간을 선 눈앞엔 너른 들판이 펼쳐져있었다.

가꾸는 이 없는 들판엔 황량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나는 그 들길을 가로질러 걷고 또 걸었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두눈에 담았다.


더이상 황금빛 들판은 없을 것이기에.

아무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걸으며,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황금빛 들판의 향기를

온몸을 흠뻑 적시도록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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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생일 축하 합니다. 24.08.03 5 0 12쪽
16 #15. 전이 24.08.02 6 0 12쪽
15 #14. 마녀재판 24.08.01 8 0 9쪽
14 #13. 경비대장 헥터 24.07.31 7 0 13쪽
13 #12. 맞고 벗을래? 그냥 벗을래? 24.07.30 7 0 13쪽
12 #1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4.07.29 6 0 14쪽
11 #10. 지하실의 악마 24.07.28 7 0 12쪽
10 #9. 탑에 갇힌 공주님 24.07.27 7 0 11쪽
9 #8. 화형식 24.07.26 5 0 12쪽
8 #7. 태양을 피하는 방법 24.07.25 11 0 13쪽
7 #6. 블리스우드 24.07.24 22 0 11쪽
6 #5. 안녕 마계. 24.07.23 26 0 13쪽
5 #4. 섭리의 눈. 24.07.22 25 0 12쪽
4 #3. 꿈에서 깨어. 24.07.21 29 0 11쪽
3 #2. 지금까지 제 소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7.20 25 0 13쪽
2 #1. 어버이 은혜 24.07.19 57 0 13쪽
1 프롤로그 - 성마대전 24.07.19 6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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