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마왕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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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고
작품등록일 :
2024.07.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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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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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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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블리스우드

DUMMY

“프리츠! 프리츠 이놈 어디갔어? 감자 캐놓으란 건 다 캤냐?”


“아... 홉스, 지금 일요일 아침인거 알아?”


“뭐? 농사에 주말이 어딨어! 맞고싶냐?”


“악! 아동학대범이다!”


농장주 홉스는 아침부터 콧김을 뿜어대며 프리츠를 들볶았다.


“감자 다 캤어요 캤어! 왜 헛간은 보지도 않고 빗자루부터 들어?”


“프리츠. 농땡이 나빠. 헤헤”


“뭐? 쪼끄만게 너도 맞고 싶냐?”


“아니? 아픈건 시러 헤헤”


포탈을 타고 여기에 떨어진지 어언 1년.

나는 농노의 삶을 살고있다.

떨어진 곳이 왜 하필 농장이란 말인가.


“농땡이 피웠으면 이실직고해! 헛간 가보고 왔는데 안돼있으면 두배로 맞을 줄 알아!”


“악! 제발 빗자루 들기 전에 검사부터 하라니까?”


“몰라! 너는 괜히 하는 짓이 얄미워!”


홉스는 씩씩거리면서 헛간으로 갔다.


“진짜 저 미친 영감. 내가 나중에 꼭 지옥 보낸다.”


“지옥! 지옥!”


“야! 넌 아무말이나 따라하지좀 마!”


“따라하지마! 헤헤”


얘는 우리농장 농노2. 이름은 타냐.

나랑 마찬가지로 고아다.

처음엔 쫄병왔다고 좋아했는데, 애가 약간 얼빵한건지 별로 도움이 안된다.


그때 헛간에 갔던 홉스가 돌아오더니 만면에 탐욕스런 미소를 가득 띄웠다.


“하하하! 프리츠! 이리와라! 나는 너를 믿었다. 하하하!”


“그니까 아까부터 다 해놨다고 했잖아!”


“사내놈이 사소한건 따지고 들지 마라! 이리와라 이쁜것! 뽀뽀해주마!”


“으악! 술냄새! 제발 좀 떨어져요!”


진짜 저 술고래.

아침부터 왜 지랄인가 했더니 또 아침부터 잔뜩 퍼마신 모양이다.

홀아비라 술을 달고 사는지, 항상 코가 뻘겋다. 지금도 호리병에 담은 술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꺼 - 억! 프리츠! 이제 쉴만큼 쉬었잖아! 오후 작업 하러 가야지!”


“악! 나 죽어도 못해! 이 아동 착취범!”


나는 잽싸게 홉스의 가랑이사이로 미끄러져나와 현관문으로 튀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또 살인적인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으니.


멀어지는 내 뒤통수에 대고 홉스가 고함을 쳤다.


“프리츠! 오후엔 옥수수 전부 따놔라! 앙?! 쳐맞고 싶지 않으면!”


“패죽여도 안해!!!”


무식한 중세놈들.

이것이 이곳에서 나의 일상이다.

현대인의 관점으론 아동착취지만....

놀랍게도 이정도면 처우가 좋은 편이라 한다.


농노가 학교를 가길 해 배우기를 해?

농노는 그냥 평생 농사만 짓는거다.

학교를 갈 필요가 없으니 어릴때부터 농사를 짓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밥줘, 재워줘, 일감도 줘.

자기정도면 완전 천사라나?

물론 홉스의 말이라 신뢰는 안간다.


‘헉, 헉’


어른 키보다 높이 솟은 옥수수밭으로 도망친 후에야 나는 헐떡이며 숨을 골랐다.


‘후.... 그래도 하긴 해야겠지?’


그래도 이 헬세계에서 배라도 곯지 않는건 홉스덕이긴 했다. 부려먹으려고라곤 해도, 굶어 뒤질뻔한 나를 거둬준건 사실이었다.


어린애가 쫓겨나면 뭘하겠는가?

내가 아는 지식은 10살 이후의 세상. 그전까진 그냥 어린애들이 얼어죽고 굶어죽는 게 일상인 세상이었다. 밥이라도 굶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지.


‘사주경계. 확실하고.’


일단 옥수수밭으로 도망친 나는 주위를 살폈다.


맴~ 맴~ 맴 맴 매앰~~


애타게 짝을 찾는 매미소리만 들려오는걸 확인한 뒤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바닥에 익숙한 동그라미를 그렸다.


“해골 소환”


마법진 주위로 검은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더니, 가운데서 희끗한 뼈들이 솟아나와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스켈레톤이었다.


“해골아 오늘은 옥수수 좀 따줘. 할 수 있지?”


“...?”


고개를 갸우뚱 하는 해골이.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달란 뜻이다.


“해골아, 여기 이게 옥수수고 이렇게.”


콱!


옥수수칼을 쥐고 힘껏 내리치자 옥수수가 퍼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해골아, 딴건 여기다 담아. 주위에 사람이 오면 얼른 소환해제. 알지?”


해골이는 고개를 두 번 끄덕하더니, 그런건 당연하다는 듯 뼈장검을 쥔 손으로 따봉!을 했다.


콱! 콱!


알아서 옥수수를 따는 해골이.

홉스한테 끌려가면 꼼짝없지만, 안볼때는 이렇게 슬기로운 농장생활이 가능하다.


‘진짜 믿음직하단 말이야.’


해골이가 옥수수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졌다. 해골이는 벌써 한포대를 다 채우고 자루를 묶는 중이었다.


“해골아 쉬엄쉬엄해. 응? 사람이 좀 쉬어갈때도 있고 그래야 하는거랬어. 응? 넌 사람이 아니라서 안쉬어도 된다고? 기특하기도 해라 하하핫!”


해골이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나는 뒤통수에 양팔을 받친 채 평화롭게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다.


‘크.... 이게 힐링이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옥수수 ASMR을 듣고 있으니 살짝 졸음이 몰려왔다.


‘아 살짝 노곤하네....’


***


콱!콱!


‘언제 잠이 든거지?’


흐리멍텅한 의식이 깨어나며 해골이의 옥수수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콱!콱!


아직 하늘엔 해가 쨍 하니 떠있는 상황.

그런데 순간 뭔가 섬찟한 기분이 들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시골 여름이라면 당연히 들려와야할 매미소리, 짹짹이는 소리, 풀벌레소리 등등.

그런것들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뒤통수에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누구야!”


오싹한 기분이 들어 뒤를 홱! 돌아봤지만


“.......”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불길한 정적만이 맴돌뿐.


콱!콱!


옥수수따기에 과몰입한 해골이의 칼질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스스슥!


그때, 뒤쪽 옥수수밭이 흔들리며 살금살금 풀숲을 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오싹해져서 후다닥 해골이한테 뛰어갔다.


‘소환해제! 소환해제!’


나는 일단 해골이부터 소환해제시키고는 허겁지겁 옥수수자루로 뼈들을 덮었다.


스스슥!

또 다시 나는 인기척.

가까웠다.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 풀숲을 확! 열어제꼈다.


“.......”


‘기분탓인가?’


“와악!!!”


“허읍!”


옥수수밭 뒤쪽에서 수풀 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타냐가 양팔을 번쩍 들고 나타났다.


“왁! 프리츠 쫄았다! 헤헤헷”


“야! 진짜 두들겨 맞고 싶냐? 여긴 왜왔어? 앙?!”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쏘아봐도 타냐는 그저 헤실헤실 웃을 뿐이었다.


“프리츠 손님왔어. 밥 먹어 - !”


아 진짜 이 꼬맹이는 한번씩 사람 놀래킬때가 있다니까? 근데,


“손님??”


홉스의 농장은 깡촌이나 다름없는 블리스우드 중에서도 더욱 외진곳. 손님이 오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별일이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곤, 타냐와 함께 옥수수밭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


“허허허. 여기 농장에 있는 아이들인가요?”


농장을 찾아온 건 사람 좋아보이는 할아버지? 아저씨?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남자였다.


반쯤 희끗하게 샌 머리, 안경, 그리고 반달처럼 웃는 눈은 지적이고 인자한 할아버지같은 인상을 줬다.


사제복을 입고있는걸로 봐서 교단쪽에서 온 사람 같긴 한데.


“꺼억! 신부님이 여긴 왜 왔수? 여긴 헌금할 사람도 없수다?”


아직도 술이 덜깬듯한 홉스.

문을 박차고 들어오자마자

대놓고 무식한 막말을 쏟아냈다.


“라프타니아 땅에 그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겠습니까? 작은 곳이나 큰 곳이나 그분은 똑같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작은 동네도 헌금을 걷....”


“홉스!”


저, 저 무식한놈.

홉스의 무례한 태도에도 신부는 인자한 표정을 유지한 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은 교단의 힘이 강한 세상.

신부를 저렇게 함부로 대했다간 골치아픈 일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신부님, 여긴 무슨 일이세요? 이런 누추한 곳까지.”


내가 부드럽게 다시 묻자, 신부가 인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라프타니아의 구석까지 그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제 사명이니까요. 그리고....”


“그리고요?”


신부의 표정이 처음으로 엄숙한 표정으로 싹 바뀌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일정도로. 표정이 너무나 한순간에 바뀌어서 조금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농장 주위에 마가 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군요.”


“예에? 여기 그런게 있을리가.... 여긴 마귀가 탐낼만한 것도 없는걸요? 하하.... 하하....”


그런 소리 처음듣는다는 듯,

태연한척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마가 꼈다고?

머릿속엔 곧바로 해골이가 먼저 떠올랐다.


설마 누가 본건가?

옥수수밭에서 느껴지던 기묘한 시선이 떠올라 등줄기에 차가운 땀줄기가 흘러내렸다.


“성수팔러 왔구만!”


“홉스!”


순간 신부의 얼굴이 화악! 일그러지는 듯 했으나,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신부는 전처럼 평온하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 계신분들이 아무일 아니라고 하시니 그런 것이겠지요. 그렇게 알고,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하하 신부님 무례를 범했네요. 홉스가 한말은 담아두지 마세요. 머리에 술밖에 없는 홀애비라서.”


“허허허. 기특한 소년이군요. 이리오시죠. 빛이 그대를 인도할지니....”


신부는 잠시 눈을 감고 내게 기도를 해주더니, 이윽고 뚜벅뚜벅 문쪽으로 나갔다.


다행히 불쾌해하는 기색은 없었기에 잘 넘어간 듯 했다.


신부가 문을 열고 나가자, 문밖에서 기다리던 수녀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나를 보고 말없이 생긋 웃음 지었다.


‘와... 진짜 예쁘네.’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신부님과 수녀님을 배웅했다.


‘교회라는 거 의외로 나쁘지 않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타냐가 쫄래쫄래 뛰어와 신부님과 뭔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얘기를 저렇게 재밌게 할까?’


타냐는 눈을 빛내며 한참을 이야기를 듣더니,

꺄르르 웃으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어휴 그래도 저럴 때 보면 애는 애야.’


가끔 얄밉긴 해도 고작해야 7살 여자아이.

미운짓을 해도 악의없이 하는 말이기에, 저렇게 천진한 모습을 보면 미워할 수가 없게 된다.


나는 방긋 웃으며 타냐에게 양팔을 뻗었다.


“타냐! 신부님이랑 무슨 얘기했어?”


“프리츠! 프리츠! 나 성당에 갈래!”


“응? 갑자기? 왜?”


타냐가 그 특유의 동그란 눈동자를 반짝 빛낸다.


“성당에 가지 않으면 부정한 암컷으로 타락하고 말아!”


“!!!”


순간,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너.. 너, 그런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


“꺄르륵 그건 비밀! 헤헤헤헤헤!”


타냐는 쪼르륵 내 품을 빠져나가더니,

천진하게 꺄르륵 웃으며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현관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시내쪽으로 쭉 뻗은 길을 얼빠진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느새 뉘엿뉘엿 지는 시뻘건 석양아래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지평선 가까이 보일락말락 할만치 멀어진 채, 길다랗게 늘어진 그림자를 드리운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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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국경지대 24.08.04 2 0 12쪽
18 #17. 말하는 해골 24.08.04 3 0 11쪽
17 #16. 생일 축하 합니다. 24.08.03 5 0 12쪽
16 #15. 전이 24.08.02 7 0 12쪽
15 #14. 마녀재판 24.08.01 9 0 9쪽
14 #13. 경비대장 헥터 24.07.31 7 0 13쪽
13 #12. 맞고 벗을래? 그냥 벗을래? 24.07.30 8 0 13쪽
12 #1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4.07.29 7 0 14쪽
11 #10. 지하실의 악마 24.07.28 8 0 12쪽
10 #9. 탑에 갇힌 공주님 24.07.27 8 0 11쪽
9 #8. 화형식 24.07.26 6 0 12쪽
8 #7. 태양을 피하는 방법 24.07.25 12 0 13쪽
» #6. 블리스우드 24.07.24 23 0 11쪽
6 #5. 안녕 마계. 24.07.23 27 0 13쪽
5 #4. 섭리의 눈. 24.07.22 25 0 12쪽
4 #3. 꿈에서 깨어. 24.07.21 30 0 11쪽
3 #2. 지금까지 제 소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7.20 26 0 13쪽
2 #1. 어버이 은혜 24.07.19 58 0 13쪽
1 프롤로그 - 성마대전 24.07.19 6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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