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마왕의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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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고
작품등록일 :
2024.07.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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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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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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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녕 마계.

DUMMY

“마왕님, 이거 추억 돋죠? 이거 마왕님이 알려주신 거잖아요.”


내가 가짜라면, 녀석은 이 곳으로 뛰쳐나갈 것 까지도 계산하고 함정을 파놓은 것이다.


시야에 겨우 들어오는 구석에 배치 한 것도, 다 의도된 덫이겠지.


‘생각보다 더 교활한 녀석이야.’


반쯤 미친 것 같은 성격도 방심을 유도하려는 속임수인 게 아닐까. 생각보다 더 철두철미한 구석이 있다.


겉보기와는 달리, 병적일 정도로 의심이 강하다.

속마음을 전혀 알 수 없는 건 덤이고.


녀석은 토끼한마리를 잡을때도 철두철미하게 방심을 유도하는 맹수였다.


만일 도망가겠다고 저기로 튀었다면 난,


‘해골병사 59호가 됐겠지.’


그런 감정은 드러내지 않은 채, 태연하게 말한다.


“네 녀석도 조금은 학습이란 걸 하는군.”


릴리트는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더니,

철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사냥감을 쫓기보단 굴을 파놓고 기다려라. 맞죠?”


철문 뒤 공간에 마력을 부여하는 릴리트.


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조금은 가르친 보람이 있군.”


“헤에, 제가 누군데요? 그럼 문 열겠습니다.”


흥분한 심장을 억누르며,

나는 마계의 보고에 입장했다.


처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았군.’


***


릴리트와 통로를 걷고 있다.

어둡고 긴 통로.

벽에는 온갖 생물의 뼈와 살점, 피가 난자하다.


“끄아아아악!”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비명소리.


“끼하하하학!”


그리고 조금의 텀을 두고 들려오는 웃음소리.


저기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내게 이런 풍경은 익숙한 것이어야 했으니.

이것마저도 녀석의 시험일지 모르는 일이다.


다행히 조금 더 걸어가니 입구가 나왔다.


“여기에요 마왕님.”


상당히 넓은 공간.

여기는 백화점으로 치면 VVIP 룸.


장비, 영약, 스킬북 등 온갖 진귀한 아이템들이 있는 곳.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전설급 무기도 잔뜩 진열 돼 있었다.


‘마계의 히든피스들이 거의 다 있네.’


상품들은 하나하나 전시대에 정성껏 진열되어있어, 매대가 아니라 전시회장같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이곳의 물건들은 전부 마계의 보물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매혹적인, 척봐도 값어치를 따지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게임하면서 한번쯤 모아봤던 히든피스들도 간간이 보였다. 수백번 플레이해야 한번이나 운좋게 얻을까말까한 것들이었다.


나는 깃털장식 같은 악세사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뭐지?”


“이 제품은 바람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디자인에 세련되면서도 대담한 컨셉으로 공기처럼 가볍게 제작됐죠. 공작의 깃털을 모티브로 대담하게 재해석한···.”


근데 릴리트 이년 영업직이었나?

물어보니 별 해괴한 수식어를 청산유수처럼 줄줄 왼다.

나는 손을 들어 놈의 입을 막았다.


“간단히.”


“깃털모양 머리핀이에요. 강력한 정신계 스킬이 부여돼있어 꿈에도 간섭할 수 있게 해준다는군요.”


나는 섭리의 눈으로 아이템 일람을 보고자 했으나,


[???의 머리핀]

능력 : ???

설명 : ???? (중략) 강력한 정신계 스킬이 부여돼있어 꿈에 간섭할 수 있게 해준다 ??? (후략)


역시나 언감생심.

아직 이 눈의 활용은 제한돼 있었다.

숙련도가 낮거나, 레벨차이가 너무 나서. 뭐 그런 종류인 듯 했다.


지금의 내 등급으로는 알고있는 정보 외에는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다 그런 뜻이겠지.


단념하고 섭리의 눈을 다른 모드로 스위칭 했다.


[초급 심미안이 활성화 됩니다.]


이건 대상의 잠재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능력.


구체적인 수치를 알 수 없는 대신, 뿜어져 나오는 오오라를 통해 대략적인 등급은 추측이 가능했다.


심미안을 켜자 눈이 부실만큼 빛나는 재화들. 보랏빛 오오라가 눈부셨다.

언뜻보면 검은색처럼 보일만큼 진한 보랏빛.


마계의 보물답게 어떤 재화든지 농밀한 마기가 찐득하게 묻어나왔다.


딱 하나만 빼고.


“이건 마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왜 여기 있는 거지?”


나는 영약코너에 있는 알약을 집어들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그냥 평범해보이는 알약이었다.


“크, 크흠. 그것은 저···. 알려고 하지 않으시는게···.”


“뭔데? 뭐길래 그래?”


릴리트가 안어울리게 갑자기 크게 당황한다.

진짜 대단한 비약이라도 되나?


“그, 그것은 그.. 가, 강력한! 정신계 스킬로 자, 자신감! 그렇죠 자신감을 일으켜 세우는···.”


뭘이렇게 횡설수설해?


“본론만!”


“그렇다면... 귀..귀좀....”


나는 릴리트에게 귀를 가져다 댔다.

릴리트는 뭔가를 굳게 다짐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내 귀에 입을 가져왔다.


“···커진답니다.”


“···?”


“크흠. 그게···. 크시면 알게 됩니다.”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버린 나는

더 이상의 질문을 포기했다.


내가 당황하며 시선을 피하자, 릴리트가 반짝, 눈을 빛냈다.


“마왕님? 이거 한알만 드셔볼래요?”


“크, 크흠···! 그만 가지?”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눈을 돌렸다.


“앙, 그러지 말고 한 입만!”


***


마계의 컬렉션.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질 보물들이었지만

나는 시시하다는 듯 가볍게 무시했다.

가장 빛나는 보물은 따로 있었기에.


다만, 저게 뭔진 내 20년 짬밥으로도 도무지 모르겠다.


전시장의 가장 높은 곳.

나도 심미안이 없었다면 그저 화려한 무대쯤으로 여겼을지 모를 공간이었다.


텅 비어있는 넓직한 공간에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한 제단이 있고, 그 위에는 검붉은 피와 처음보는 고대문자로 그려진 마법진이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땅에서 솟은 인간의 손뼈가 있었는데, 마치 소중한 것을 감싸듯 양손을 꽃처럼 펼치고 있었다.


그 안에선 블랙홀을 연상케하는 진한 마기가 일렁이고 있었는데, 그 위에 있는건...


‘도토리?’


꼭 도토리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이게 진짜 뭐지...?’


“호오? 역시 마왕님이셔. 벌써 마안을 그렇게까지···?”


나는 이쯤은 시시하다는 듯 질문을 가볍게 무시했다.


“···.”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모를 수가 없는 걸 묻는다는 듯한 태도.

당연히 아는 게 없었기에 말문이 막혔다.


“말했다시피, 나는 불완전한 상태다. 특히 저것과 관련해서는 지워진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군.”


“과연, 그렇군요.”


납득한건가?

의외로 순순히 납득하는 모습에

의아함 마저 들려던 찰나,


릴리트가 설명을 이어갔다.


“마계의 보물들은 단순한 치장품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곧 마계의 힘이자 무기.”


그 말대로 마계의 보물들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히든피스.


즉, 여기는 상점이기도 하지만 관점에 따라 무기고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곳은 마계 최강의 무기가 있던 곳입니다.”


뜸들이지 말고 본론만 말하라니까.


‘다시 본때를 보여줘야 하나?’


다시 마왕 3단 고음을 준비할까 고민하던 찰나, 릴리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봤다.


‘또 무슨 꿍꿍인데?’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진 말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당신의 뿔이지 않습니까.”


***


마왕의 뿔.

그것은 마계 최강의 무기이자 마계의 존재의의 그 자체이다.


나는 태연히 그 도토리를 바라봤다.

어딘가 처연한 눈빛을 연기하며.


“그랬군. 이 그리운 느낌은 그래서···.”


최대한 애절한 눈빛으로 해골이 손뼈를 쓸어내리자, 릴리트도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꿈틀.

순간 해골 손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씨! 깜짝이야.’


“나의 주인이시여. 마계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공손해진 릴리트.

아까의 장난스런 말투는 온데간데 없다.

다행히 고개를 숙이느라 보진 못한 듯 하다.


“하지만 뿔은 소실된 것 아닌가? 분명 성마대전때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익숙한 오프닝이 떠올랐다.

마왕의 뿔은 성마대전때 용사한테 잘려서 사라진 것 아니었나?


‘아니, 잠깐.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고만 했지 사라졌다고 하진 않았잖아?’


“나의 주인이시여, 그들의 거짓된 역사를 믿으십니까? 마계는 쇠했지만, 소멸되진 않았습니다. 뿔이 소멸되었다면 지금 이곳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확실히 그랬다.

마왕의 뿔은 마계 그 자체. 마왕의 뿔이 완전히 소멸되었다면 마계도 소멸됐어야 맞다.


“현 마왕 키루스는 뿔이 없는자. 뿔이 없는 자는 진정한 마왕이 아닙니다. 제가 루시퍼님의 재림을 돕겠습니다.”


릴리트가 극진하게 예를 갖추자, 나는 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짜 내가 꿀꺽해도 되나?’


마왕의 뿔을 먹튀하다니... 왠지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았다.


‘마왕의 저주? 그런 건 없겠지?’


내가 뿔을 향해 손을 뻗자, 마법진 한가운데서 해골 손이 스륵 하고 뻗어나왔다. 그 손은 꼭 제물이라도 바치듯, 그 도토리같은 뿔을 공손하게 내밀었다.


주인으로 인정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나는 그것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찌릿 - !]


‘이게 뭐지?’


꼭 정전기가 통한것처럼 찌릿! 하는 기분에 순간적으로 손을 뗐다.


왠지 뒤통수가 따가웠다.

뒤쪽을 슬쩍 보니 릴리트의 뾰족한 눈초리가 째릿! 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그 뿔을 손에 쥐었다.


- 죽일거야.... 죽일거야....

- 너무 억울해.... 억울해!

- 나혼자만 갈 순 없어.... 너도 같이가자....


뿔을 손에 집어들자, 귓가에서 무수히 많은 흐느낌과 원망섞인 절규가 들려왔다. 가까이서 들리는 듯한 소리도 있었고, 꼭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듯 멀리서 들어오는듯한 소리도 있었다.


곡소리는 점점 커지며 눈앞에 헛것까지 보이는 듯하다가, 어느새 점점 잦아들었다.


[마왕의 뿔조각을 획득했습니다!]


[캐릭터의 정신력이 낮은 경우 HP가 빠르게 줄어듭니다.]


‘끄아아악!’


꼭 자식을 잃은 부모 수천명이 동시에 오열하는 듯한 그런 소리였다. 멘탈이 약했다면 그 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미쳐버렸을 그런.


[HP : 7/30]


HP게이지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다시 조금씩 회복되었다. 정신력이 낮았다면 미치거나 그대로 즉사했을지도.


‘마왕녀석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거지?’


“인간의 몸으로 그 무게를 견뎌내시다니...”


지켜보던 릴리트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릴리트...

다 네덕분이야...


릴리트가 품에서 낡은 책하나를 꺼냈다.


“이것을 가져가시지요.”


낡은 가죽으로 덮였지만 한 눈에도 귀하게 간직한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일이 틀어지기 전에 당신이 직접 맡기신 물건입니다.”


나는 책을 펼쳐보았다.

책에는 처음 본 형태의 문자들이 가득해,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왕의 서라 하시더군요.”


“마왕의 서?”


“저도 그 이상은 모릅니다. 혹시 일기장인가 해서 읽어보려 시도는 해봤습니다만···.”


저, 저 음습한 악취미만은 진심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당장 내게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다.


“이것을 내주어도 되겠는가? 나는 값을 치르지 못할 것인데.”


릴리트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의 몇몇 물건들은 마음대로 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냥 내드렸다간 당신이 쫓기는 몸이 되겠지요.”


마계의 보고에는 특수한 술법이 걸려있어 값을 치르지 않고는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본디 저의 물건. 마음대로 가져가셔도 됩니다.”


마왕의 뿔은 어나더레벨이라 술법 자체가 불가한 거라고.


‘쩝, 이것들을 놓고 가야 하다니.’


속이 쓰렸지만, 뿔조각을 능가할 가치를 가진 것은 없다. 흘러나오는 마기의 농도 자체가 다른것들과는 비교가 불가했다.


“그리고 단, 한가지. 명심하실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그 눈은 인간에게는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명심하도록 하지.”


그 대화를 끝으로 릴리트는 나를 출구로 데려갔다.


***


“릴리트. 오늘의 일은 무겁게 여기마.”


릴리트의 손가락이 내 입을 막았다.


“그걸 꼭 말해야 아나요?”


릴리트는 한쪽눈을 찡긋 하더니, 돌아서서 나직이 중얼댔다.


“···이제 또 이별이네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

다시 돌아섰을 때, 릴리트의 눈가는 조금 젖어 있었다.


진심과 걱정, 그리고 슬픔이 담긴 눈빛.


어째선지 그립고,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눈빛이다.


“부디 몸조심 하세요. 나의 사랑, 나의 마왕님.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릴리트는 내 어깨를 감싸안더니,

열려진 차원 틈으로 날 밀어 넣었다.

그녀가 나를 감싸안을 때, 희미한 라벤더 향이 났다.


닫혀가는 차원틈 사이로 나는 그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봤다.


‘고마워 릴리트···. 근데 다시 만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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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전이 24.08.02 6 0 12쪽
15 #14. 마녀재판 24.08.01 8 0 9쪽
14 #13. 경비대장 헥터 24.07.31 7 0 13쪽
13 #12. 맞고 벗을래? 그냥 벗을래? 24.07.30 7 0 13쪽
12 #1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4.07.29 6 0 14쪽
11 #10. 지하실의 악마 24.07.28 7 0 12쪽
10 #9. 탑에 갇힌 공주님 24.07.27 7 0 11쪽
9 #8. 화형식 24.07.26 5 0 12쪽
8 #7. 태양을 피하는 방법 24.07.25 11 0 13쪽
7 #6. 블리스우드 24.07.24 22 0 11쪽
» #5. 안녕 마계. 24.07.23 27 0 13쪽
5 #4. 섭리의 눈. 24.07.22 25 0 12쪽
4 #3. 꿈에서 깨어. 24.07.21 29 0 11쪽
3 #2. 지금까지 제 소설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7.20 25 0 13쪽
2 #1. 어버이 은혜 24.07.19 57 0 13쪽
1 프롤로그 - 성마대전 24.07.19 6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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