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 찍는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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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재장인
그림/삽화
휴재장인
작품등록일 :
2024.08.01 11:31
최근연재일 :
2024.09.02 20:4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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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3,879

작성
24.08.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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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강(1)

DUMMY

- 적에게 처치당했습니다.


- 적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또다시 쓰러지는 내 캐릭터를 보며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3번째 데스였다. 


“괜찮아, 천천히 하자.”


“바텀 이기고 있으니까 조금만 사려봐요.”


“어, 미안하다.”


다들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악어왕은 후반으로 갈수록 쓸모가 없어지는 캐릭터. 초중반에 최대한 이득을 봐야 하는데 이미 3데스를 한 상태라 이제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졌다.


‘어디부터 꼬였지?’


악어왕을 고른 것이 잘못되었나? 아니다. 선픽을 하려면 악어왕이 가장 적절한 픽이었다. 


그걸 보고 상대 선수가 나름 악어왕의 카운터인 나루를 골랐지만, 어느 정도는 라인전을 질 것을 각오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 플레이였다.


‘조금 더 사렸어야 했다.’


나루가 악어왕의 카운터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근접 공격 캐릭터인 악어왕과 달리 나루는 원거리에서 견제를 날리는데, 3대를 맞으면 최대 체력에 비례해 마법 데미지가 들어와 상당히 아프다.


그렇다고 맞기 전에 먼저 때리기에는 나루의 기동성이 워낙 좋다. 즉 악어왕이 나루를 상대할 때는 최대한 덜 맞으면서 CS를 챙긴다는 생각으로 플레이를 해야 한다.


물론 나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단지 상대가 너무 대놓고 견제만 하기에, 한 번 딜교환을 걸어 응징할 요량이었다.


‘윽!’


하지만 그때 손목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돌진기를 써 버리고 말았다. 상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고, 이미 이동기가 빠져 버린 나는 허무하게 솔킬을 당했다.


‘젠장.’


아까 전 특성을 사용한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이미 벌어진 일이다.


한 번 킬을 내고 나자 상대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한 번의 실수로 내가 위축되었음을 간파했는지 보다 끈질기게 견제를 해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CS 차이는 30개, 40개로 늘어났다.


보다 못한 아군 정글러가 몇 번 도와주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루는 갱 냄새라도 맡았는지 귀신같이 뒤로 빠져나갔다. 그 덕에 견제가 줄어들어 편해지긴 했지만, 결국 나루를 잡지 못하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캐릭터 상성 상 시간이 지날수록 나루가 유리해진다. 그런데 이미 킬을 먹고 시작했으니, 아무리 정글이 도와준다 해도 나는 평생 나루를 이길 수가 없었다.


마침내 악어왕의 힘이 완전히 빠지게 되자 상대는 집요하게 사이드 플레이를 진행했다. 굳이 잘 큰 우리 팀 바텀 상대로 한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나루와 코어 템이 하나가 차이 나는데, 상대 정글러까지 가세해 협공하자 나는 계속해서 데스를 기록했다.


- 아군이 당했습니다.


- 아군이 당했습니다.


이제는 나루와 맞라인을 서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 되었고, 나루를 막기 위해서는 아군 1명이 추가로 파견되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상대는 반대편에서 야금야금 이득을 보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휘둘릴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 팀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안 되겠어요. 그냥 내셔 치죠.”


예로부터 사이드 플레이를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셔를 치는 것이었다. 내셔를 먹었을 때 벌어들일 수 있는 이득은 거의 몇천 골드에 달한다. 이걸 내주기 싫다면 상대도 사이드를 접고 한타에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 


“6000··· 5000···”


“이거 끝까지 치면 안 돼요. 싸움으로 전환할 준비해요.”


내셔를 먹으면 좋겠지만, 일차적인 목표는 나루가 사이드를 더 이상 밀지 못하게 여기로 불러내는 것이었다. 역시나 우리가 내셔를 치는 게 들키자마자 나루는 텔레포트를 타기 시작했다. 그것도 굉장히 건방진 위치에.


“나루, 나루 텔!”


“바로 나루 점사해!”


우리는 내셔를 공격하던 걸 멈추고 곧바로 나루를 점사했다. 나루의 기본 형태는 원거리 견제에 특화된 대신 그리 몸이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루의 HP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사이드에서 워낙 잘 성장한 탓에 아이템도 좋았고 레벨도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 캐릭터들도 전장에 가세하며 포커싱이 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빠르게 나루를 녹이지 못하자, 이제는 역으로 상대의 공격 차례가 되었다. 


- 나~루~!


나루는 기본적으로 원거리 형태지만, 전투를 통해 분노를 쌓으면 몸집이 거대해지며 근거리 형태로 변한다. 이 상태의 나루는 전체적인 능력치가 매우 올라가고, 광역 스킬이 많아 한타에서 엄청난 활약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나루를 점사하느라 모두 나루의 주변에 모여 있었다. 아주 약간의 체력을 남기고 변신에 성공한 나루는 곧바로 궁극기를 사용해 아군 전원을 벽에 처박아 버렸다.


거의 2초 동안 스턴에 걸린 아군은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당연히 한타는 대패했고,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열심히 치던 내셔까지 상대에게 넘어갔다. 결국 상대는 내셔 버프를 받은 미니언과 함께 진격해 그대로 게임을 끝내버렸다.


***


1세트 패배 후 주어진 약간의 회의 시간. 살짝 장난기가 있던 평소와는 다르게 분위가 상당히 침울해졌다.


설마 8강에서 발목을 잡히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2세트마저 패배하면 이번 대회는 이걸로 끝난다. 


사실 다른 팀원들 잘못은 없었다. 게임이 이렇게 망가진 건 순전히 내 책임이었다. 


“유성아. 서두르지 말고 조금만 천천히 게임 해봐. 바텀 3코어 타이밍까지만 기다리면 충분히 이길 만해.”


“네. 알겠어요.”


코치의 피드백에 순순히 대답하긴 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만약 전판과 같은 구도라면 주도권은 상대방에게 있다. 그대로 다음 세트를 진행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게 분명했다.


차라리 밴픽을 아예 바꾸든가, 아니면...


‘특성을 한 번 더 써?’


몇 시간 전만 해도 이제는 특성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상황이 급박해지니 이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상대와 스탯 차이를 고려했을 때, 특성을 사용하면 1세트 정도는 이길 수 있다.


하지만 8강은 3판 2선승제이기 때문에 이번 세트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세트가 남아있다. 설사 어찌저찌 오늘 경기를 무사히 넘긴다 해도 내일 또다시 4강 경기를 치러야 한다.


지금도 손목 상태가 좋지 않은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특성을 썼다가는 손목이 남아나지 않을 게 뻔했다.


말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때, 갑자기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만, 이 방법은 어때요?”




이어진 2세트 밴픽에서, 놀랍게도 로켓츠 루키즈는 기존의 밴픽을 그대로 고수했다. 보통 1번 패배를 겪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전략을 바꾸기 마련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건 뭔가 노림수가 있다는 게 분명했다.


‘뭐, 상관없지.’


1세트에서 나루를 플레이했던 이주완은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전 판을 통해 이미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파악했다. 이번 세트도 마찬가지로 라인전부터 이득을 거둬나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로켓츠 루키즈라는 대어를 잡을 생각에 설레던 이주완은, 탑 라인에 도착하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뭐, 뭐야?”


탑 라인에 모습을 드러낸 건 악어왕이 아니었다. 상대 바텀 듀오인 보안관과 타천사였다. 


‘라인 스왑이라고?’


나루가 원거리 캐릭터이긴 하지만, 보안관의 공격 사거리는 650으로 레전드 리그의 캐릭터 중 1위다. 게다가 서포터인 타천사의 속박에 맞으면 2~3초 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나루는 결국 CS에 손도 대지 못하고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CS를 하나도 먹지 못했으니 당연히 나루는 1렙인 상황. 반대로 로켓츠의 바텀 듀오는 모두 2레벨을 찍었다.


‘그래도 괜찮다.’


적이 라인을 밀고 있었기에 먼저 2레벨을 찍은 것뿐, 지금 들어오는 CS 웨이브를 먹으면 자신도 레벨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로켓츠의 전략은 당연히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글링을 통해 3레벨을 찍은 세계수가 뒤로 돌아와 다이브를 진행했다.


초반 포탑의 데미지가 워낙 강력하긴 해도, 고작 1레벨인 상태로 3명의 공격을 버텨내는 무리였다. 스킬도 하나밖에 없었기에 나루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거기다가 당황한 이주완은 더욱 심각한 실책을 저질렀다. 이제는 적의 공세가 끝났다고 판단하고, 남은 CS라도 먹기 위해 타워에 텔레포트를 탄 것이다. 운영 수치가 조금만 높았더라도 하지 않았을 판단이었다. 


당연히 그 꼴을 보고만 있을 리 없던 상대는 다시 한번 다이브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서폿이 처형당하긴 했지만 다이브는 성공했고, 나루는 1레벨부터 죽-텔-죽을 당하며 완전히 멸망했다.




바텀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가만히 실소를 지었다.


‘당황스럽겠지.’


솔로 랭크만 하는 아마추어 입장에서, 이런 탑-바텀 라인 스왑 전략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서로 소통이 부족한 솔로 랭크에서는 제대로 구사하기 힘든 전략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경험한 적이 별로 없으니 대처법도 잘 모르는 게 당연했다.


반면 오랫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해온 나한테는 나름 익숙한 전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다.


‘CS는 포기한다.’


어차피 바텀으로 가봤자 상대 나루처럼 3대 1로 다이브를 당할 뿐이다. 나는 그 대신 우리 팀 미드나 바텀 듀오에게 기생하며 안전하게 경험치를 빼먹었다.


결과적으로 양 팀의 탑 모두 극단적으로 CS를 먹지 못한 기이한 풍경이 벌어졌다. 5분이 지나서야 겨우 정상적으로 CS를 먹기 시작했고, 10분이 되어서도 30~40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양 팀 탑은 이 게임에서 없는 존재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바텀의 힘싸움이 중요해지는데, 이건 애초에 우리 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어쭈?’


상대 나루는 이 불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다시 나와 맞라인을 서려고 했지만, 그걸 호락호락하게 허락해줄 내가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반 템포 빠르게 라인을 바꿔가며 상대에게 라인 손해를 강요했다.


[ 뛰어난 운영 실력! ]

[ 운영 : 30 -> 31 ]


'오, 개이득.'


그리고 상대가 그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포탑 골드를 챙겨 먹고 과성장한 우리 바텀이 용 한타에서 적을 쓸어 담았다.


- 트리플 킬!


안 그래도 잘 큰 원딜이 킬까지 먹고 나자, 이제는 한타에서 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균형이 무너졌다. 결국 2세트는 우리가 가져오며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제 누가 4강에 가게 될지는 마지막 세트에서 정해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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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훈련 24.08.21 87 2 10쪽
5 새로운 팀 +1 24.08.20 102 2 11쪽
4 기회 24.08.18 99 2 11쪽
3 마지막 경기(2) 24.08.17 97 2 13쪽
2 마지막 경기 24.08.16 10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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