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 찍는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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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재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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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재장인
작품등록일 :
2024.08.0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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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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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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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아웃

DUMMY

꽤 오랜 시간 고민을 해봤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문득,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거의 3주 넘게 방치되느라 쌓여있던 먼지를 닦아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한 판 해볼까.’


레전드 리그에 접속한 후, 간만에 랭크 게임을 한 판 돌렸다.


“윽.”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손목이 아파 왔다. 통증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나는 그래도 꾹 참고 플레이를 계속했다.


- 아군이 당했습니다.

- 적을 처치했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죽고 죽이기를 반복했다. 안 그래도 다친 상태인데다 워낙 오랜만에 게임을 하는 터라 플레이는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나는 게임에 푹 빠져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역시 재밌다.’


그 고생을 겪고 난 후에도, 역시나 렐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보다 더 재밌는 직업은 없을 것 같았다.


결심을 굳힌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래. 네가 연락할 줄 알았어. 이제 결심한 거야?”


“네. 그런데 코치님··· 제가 트라이아웃에서 뽑히는 게 가능할까요?”


내가 코치에게 가장 묻고 싶은 게 이 점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제대로 연습한 기간은 이 주도 되지 않는다. 다시 연습을 하려 해도 트라이아웃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무슨 말이야?”


“지금 제 실력이 너무 떨어져서...”


“아니, 어차피 관계자들이 보고 싶은 건 네 실력이 아니야. 그건 지난 대회 4강에서 충분히 보여줬어.”


“그럼요?”


“그 사람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건 네 손목이 건강하냐지.”


“아...”


코치의 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었다. 특성 덕분이긴 했지만 나름 유망주였던 이지성을 잡아내는 모습도 보여줬으니까.


오히려 지금 관계자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내가 손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모습일 것이다. 과연 그 부상에서 회복했을 것인지가 그들의 관심사겠지.


“하지만 실제로 저는 아직 손목이 다 낫지 않았잖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명심해. 어차피 거기 나온 애들도 다 똑같은 아마추어야. 완벽한 아마추어 선수란 건 없어. 다들 크든 작든 단점이 있다고.”


아마추어라. 생각해 보니 지금 나 역시 아마추어 신분인 건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건 단점을 가릴 만큼 큰 장점이 있느냐야. 3부 리그 선수들을 뽑을 때, 당장의 성적을 보고 뽑는 게 아니야. 1부 리그로 올라갈 만한 잠재성이 있는지를 보는 거지.”


단점을 가릴 만한 장점이라···


과연 나한테 그만한 장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았다.



***


- 2021 LCK 루키즈 리그 상반기 트라이아웃 모집 명단..

- ‘김유성’님은 모집 명단에 있습니다.


“나이스!”


지원서를 보낸 지 일주일 만에,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명단이 공개되었다.


다행히 내 경우는 합격. 사실 토너먼트에서의 성적을 1순위로 두고 선별하기 때문에, 트라이아웃에 뽑힌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이제 트라이아웃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였다.


‘대략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코치에게 전해 듣긴 했는데...’


트라이아웃은 총 이틀 동안 진행된다. 여러 가지 과정이 있긴 하지만, 불필요한 내용을 빼고 합격에 관련된 항목만 보자면 솔로 랭크/스크림/면접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 세 개를 모두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트라이아웃까지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조언을 구할 감독도, 스파링을 해줄 팀원도 옆에 없다. 오로지 혼자서 연습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야지.’


일주일 동안 오전에는 솔로 랭크를 돌리며 폼을 끌어올리고, 오후에는 손목을 생각해서 게임 대신 렐 관련 영상이나 대회 때 리플레이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트라이아웃 당일이 되었다.




‘와, 건물 좋다.’


트라이아웃 장소인 레전드 파크, 속칭 렐파크에 도착한 나는 탄성을 질렀다. 확실히 1부 리그 팀이 쓰는 경기장이다 보니 뭐가 달라도 달랐다.


“트라이아웃 참가자 분들,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에게 이름표를 받고 렐파크 내부로 들어가자, 나와 똑같이 이름표를 한 참가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8강이나 16강에서 봤던 얼굴도 있었다.


‘과연 이 중에서 몇 명이나 뽑힐까.’


트라이아웃의 참가자 수는 라인별로 10명씩, 총 50명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 많은 인원이 모두 뽑힐 리는 없다. 아마 기껏해야 5명도 넘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트라이아웃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가 경쟁 관계이긴 했지만 의외로 행사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오전에는 본격적인 스크림 대신 렐파크 투어나 소양 교육, 선배 프로게이머들의 강연 등 가벼운 일정만 진행했다.


하지만 오후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자, 김유성 선수는 E조입니다.”


참가자는 라인별로 10명이 있으니, 총 10개의 팀을 만들 수 있었다. 주최 측은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섞어 가며 계속해서 스크림을 진행했다.


“바텀 텔, 텔 봐주세요!”


“이거 내셔 치지 말고 싸움 봤어야 할 거 같은데...”


“아··· 그냥 용부터 챙기면 안 될까요?”


고작 4게임밖에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힘든 게 아니라 심적으로 지쳤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원래 모르는 사람과 렐을 같이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티어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할지도 모른다.


제각각 플레이 스타일이 있고, 게임을 굴리는 방식이 다르다. 게임을 이길 때야 분위기가 좋아 티가 나지 않지만, 반대로 조금만 게임이 이상해져도 싸움이 나기 십상이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입을 다물고 탑에서 묵묵히 버티는 것 말고는 없었다.


‘잠깐만, 설마 이런 것도 평가하나?’


뒤에서 조용히 뭔가를 적어대고 있는 관계자들을 보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 리그 프로게이머 정도 되면 매년 팀을 바꾸는 경우도 많이 나오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팀원과 합을 맞춰야 하니까.


지금이라도 팀원들과 사이좋게 말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나 싶었지만, 이내 그만뒀다. 어차피 그런 건 내 전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스크림을 계속한 지 4시간째, 드디어 내가 활약할 기회가 찾아왔다.



김민규(19세, 탑)


라인전 : 24

한타 : 23

운영 : 26

집중력 : 19



마침 딱 적당한 스탯을 가진 상대를 만났다. 너무 못하는 건 아니면서도, 내가 활약을 펼칠 만한 상대.


나는 2달 만에 특성 ‘위험한 계약’ 을 발동시켰다.


[ 라인전 : 37(-10) -> 37 ]


그 고생을 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특성을 사용한다 싶겠지만, 이건 계획된 일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코치가 했던 말에 대해 계속 고민해왔다. ‘단점을 가릴 만한 장점.’ 즉, 손목 문제를 덮을 만큼 매력적인 장점이 나에게 있느냐.


그리고 바로 이게 내 대답이었다. 지금 내게 있어서 그만한 장점이라고는 라인전 능력, 정확히 말하면 특성을 사용했을 때의 라인전 능력밖에 없었다.


물론 페널티는 감수해야겠지만··· 그동안 경험을 토대로 고려했을 때, 한 번 정도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한 번의 경기에서, 최대한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스크림 내내 일부러 말바이트 같은 픽만 고르며 손목을 아껴왔다. 그리고 바로 지금, 거의 마지막 경기가 되어서야 특성을 발동시킨 것이다.


‘어떤 캐릭터가 좋을까...’


조금 고민하긴 했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때까지 내가 골랐던 캐릭터 중 가장 큰 활약을 펼쳤던 검투사를 골랐다.


- 겨뤄 볼 만한 상대··· 어디 없나?


검투사를 하기에 엄청나게 좋은 조합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4강에서 이보다 훨씬 스탯이 높았던 이지성도 뚫어냈었다. 


이지성보다도 스탯이 낮은 상대의 경우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아군 정글을 활용하며, 아예 상대 탑을 묵사발로 만들었다.


- 아군이 학살 중입니다!

- 아군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 전설의 출현!


덕분에 상대는 게임이 끝났을 때를 기점으로 8데스를 기록했다. 아마 이 경기로 인해 상대 선수는 뽑힐 확률이 거의 없어졌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졌지만, 경쟁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마지막 스크림을 끝냈다. 




다음 날은 스크림 대신 솔로 랭크 게임이 진행되었다.


스크림 때와는 다르게 개인별로 진행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코치나 감독들과의 소통이 자주 이루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여기선 왜 이런 플레이를 했느냐, 이 아이템을 올린 이유가 무엇이냐, 지금 이 상황에 무슨 선택을 해야 하느냐··· 등등 질문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티어가 어떻게 되느냐, 롤모델인 선수가 있느냐, 마음에 두고 있는 팀이 있느냐 등등 게임 외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아예 따로 데려가서 1대 1로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른 말로 하면 면담을 진행하는 선수에게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말이었다. 


‘젠장, 나는 왜 아무도 안 부르지?’


반대로 나한테는 간단한 질문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면담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 면담이 없다는 건 뽑아갈 생각도 없다는 뜻이기에 점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제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시간을 되돌려, 약 1시간 전.


김유성의 생각과는 달리, 김유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팀 자체는 많았다.


“쟤가 그때 걔인가?”


“손목은 다 나았는지 모르겠네.”


대회 4강에서의 활약. 그리고 충격적인 탈락. 기억에 남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고점이 높은 선수인 것은 맞으나, 워낙 심각해 보이는 부상이었기에 그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회에 한정하지 않고, 선수 생활 전체를 놓고 보면 더욱 의문이 들었다.


3년 동안 3부 리그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하위권을 맴돌았던 선수.


하지만 대회에 참가한 후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캐릭터에 따라 기복이 상당하다는 특징도 있었다.


선수들의 일정한 경기력을 기대하는 스카우터들 입장에서, 불안정성의 총집합 그 자체인 김유성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데려가자니 죽 쑬 것 같고, 다른 팀에서 데려가면 로또를 터트릴 것 같은 계륵 같은 선수.


그렇기에 대부분의 팀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사태를 관망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때, 김유성에게 먼저 접근한 팀이 있었다.


바로 3부 리그 7위에 위치하고 있는 피닉스 루키즈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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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피닉스 루키즈 +2 24.09.02 37 0 12쪽
15 트라이아웃(2) 24.08.31 47 0 13쪽
» 트라이아웃 24.08.30 49 0 11쪽
13 추락 24.08.29 53 0 12쪽
12 4강(3) 24.08.27 61 2 15쪽
11 4강(2) 24.08.26 65 1 12쪽
10 4강(1) 24.08.25 65 1 12쪽
9 8강(2) +1 24.08.24 70 1 11쪽
8 8강(1) 24.08.23 73 1 11쪽
7 16강 +2 24.08.22 90 2 12쪽
6 훈련 24.08.21 87 2 10쪽
5 새로운 팀 +1 24.08.20 102 2 11쪽
4 기회 24.08.18 99 2 11쪽
3 마지막 경기(2) 24.08.17 97 2 13쪽
2 마지막 경기 24.08.16 104 2 11쪽
1 실패한 프로게이머 24.08.15 135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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