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 찍는 프로게이머

8강(2)

“나루는 밴 하자. 구도가 너무 불편해.”

“상대도 대장장이 밴 하는데?”

3세트 밴픽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는 상대가 라인전이 강한 캐릭터를 하지 못하게 모조리 밴을 했고, 반대로 상대는 내가 탱커 캐릭터를 하지 못하게 죄다 밴을 하고 있었다.

‘이럼 곤란한데.’

라인전이 약하다 보니, 지난 몇 년 간 거의 항상 팀에서 탱커 캐릭터를 맡아왔다. 예외가 있다면 선픽용으로 쓸만한 악어왕 정도? 아마 상대도 그 점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를 챘기에 이렇게 밴을 하는 게 분명했다.

다행히 우리가 레드 진영이었기에, 상대 캐릭터가 모두 나온 것을 보고 후픽을 고를 수 있었다.

“상대 칼날무희인데? 어때?”

“이러면 그냥 말바이트 고를게.”

칼날무희는 근접 AD 캐릭터로, 라인전이 매우 강력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말바이트는 엄청나게 높은 방어력, 그리고 상대의 공격 속도를 낮추는 스킬 때문에 어지간한 AD 캐릭터들은 모두 카운터칠 수 있다. 

- 게임 시작하겠습니다. 

상대는 어지간히 라인 스왑 전략이 골치가 아팠는지, 아예 탑으로 몰려와 깊숙한 곳에 와드까지 박았다. 혹시나 우리가 스왑을 하게 되면 미리 알기 위함인 것 같았다.

'어차피 스왑할 생각도 없었어.’

사실 아이언 사에서 저격 패치를 한 이후로, 라인 스왑은 그다지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전 판에 이 전략이 효과적으로 먹힌 이유는 상대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이렇게 미리 대처하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번 판은 내가 라인전 상성이 좋았기 때문에 굳이 라인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탑으로 올라온 캐릭터를 보고 나자 아차 싶었다.

‘메두사라고?’

분명 상대 미드에 서 있어야 할 캐릭터가 탑에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상대가 왜 굳이 탑까지 와서 와드를 박았는지 알 수 있었다. 라인 스왑을 방어하려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라인 스왑을 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뭐야, 칼날무희 미드 왔는데요?”

“우리도 바꿔야 하나? 어쩌죠?”

“아냐, 이미 늦었어.”

지금 와서 라인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 유일한 방법은 일단은 이대로 라인전을 하다 탑과 미드가 타이밍을 맞춰 귀환 후 다시 라인을 바꾸는 것이다. 

물론 상대가 그 타이밍을 쉽게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도 따라서 라인을 바꿀 가능성 역시 고려해야 한다.

‘제대로 당했다.’

이미 우리가 한 번 썼던 전략, 상대라고 쓰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는 걸 망각했다. 아마 내가 말바이트를 고르는 걸 보고는, 칼날무희 대신 원래 미드로 갈 예정이었던 메두사를 탑으로 돌리기로 한 것 같았다.

말바이트는 AD 캐릭터에게는 매우 강하지만, 그 대가로 대부분의 AP 캐릭터에게는 취약하다. AP 지속 딜러인 메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발, 뭔 딜이...’

잠깐의 딜교환만으로도 피가 쑥쑥 빠진다. 메두사는 마나만 허락하면 스킬을 무한대로 난사할 수 있었기에, 스킬을 다 맞췄을 때의 DPS는 레전드 리그 캐릭터 중 손에 꼽을 정도다. 

체력이 빠진 걸 확인하자 상대는 기세등등하여 더욱 압박을 해왔다. 뒤로 물러나게 해서 CS도 먹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이대로 밀려나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지만, 라인 주도권은 잃는다. 한 번 잃어버린 주도권은 어지간해서는 되찾기 쉽지 않다.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머리를 굴려봐도 전 판 같은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정공법밖에 없었다.

나는 한 차례 숨을 고르며 다른 라인의 상황을 살펴봤다. 미드는 적당히 반반을 가고 있었고, 바텀은 늘 그랬듯이 큰 격차를 벌리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탑에서 지더라도 다른 라인이 캐리해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확률 싸움이다. 당장 1세트도 탑 말고 다른 라인은 모두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지고 말았다. 

이번 세트에서 지면 그걸로 끝이다. 어쩌면 지금 경기가 올해, 아니 내 인생 마지막 프로 경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확률에 맡길 수는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특성을 사용했다. 

[ 라인전 : 35(-7) -> 35(+3) ]

특성을 사용하자마자 통증이 더욱 심해졌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메두사는 첫 스킬을 맞추지 못하면 후속 스킬들의 데미지가 반토막이 난다. 그런데 내가 계속해서 스킬을 요리조리 피해대니 내 체력보다 메두사의 마나가 더 빨리 닳기 시작했다.

반면 말바이트의 스킬은 데미지는 약하더라도, 확정적으로 적에게 적중하는 타게팅 스킬이다. 계속해서 메두사의 스킬을 피하며 꾸준히 Q를 던져주자 메두사의 체력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서로 체력이 반 정도 남았을 때쯤, 동시에 6레벨을 달성하며 궁극기를 배웠다. 말바이트의 궁극기는 돌진해서 광역 에어본을 넣는 스킬. 반면 메두사는 그 이름에 걸맞게 자신을 바라본 적을 모두 기절시키는 스킬이었다.

둘 다 강력한 궁극기인만큼, 체력 상황을 봤을 때 한 번에 승부가 날 확률이 높았다. 서로 눈치만 보던 상황에서 먼저 칼을 빼든 건 상대방이었다. 

- 끼야약!

메두사는 먼저 늪(W)을 깔아 도망치지 못하게 한 다음, 계속해서 스킬을 난사했다. 늪의 지속시간이 끝날 때쯤 내가 돌아보려 했을 때, 궁극기를 써 나를 기절시키려 했다.

하지만 메두사의 궁극기 타이밍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회피했고, 아껴뒀던 궁극기를 활용해 메두사를 공중에 띄웠다. 이후는 스킬과 평타로 마무리.

- 퍼스트 블러드!

한 번 솔킬을 낸 이후로는 순탄했다. 라인전에서 거둔 이득을 바탕으로 AP 아이템을 사며 극딜 말바이트 트리를 탔고, 덕분에 궁극기의 데미지는 점점 강력해졌다. 

충분히 성장을 마친 나는 아예 메두사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궁극기를 냅다 들이박았다. 괴랄한 데미지 앞에 상대가 할 수 있는 건 솔킬을 당하거나 귀환을 누르는 것뿐이었다.

보다 못한 칼날무희가 다시 탑으로 올라왔지만 이미 상황을 되돌리기엔 무리였다. 원래도 역상성인데다 그것도 킬을 먹은 말바이트 상대로 칼날무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후 급격히 성장한 말바이트가 한타에서 궁극기를 박을 때마다 상대 딜러들은 빈사 상태가 되어 전투에서 이탈하거나 사망했다.

화룡점정으로 상대의 탱 서폿이었던 지옥 간수마저 원콤이 나는 걸 보고 나자 상대방은 미련 없이 서렌을 눌렀다.

[ 경기(2세트)에서 승리했습니다. ]

[ 2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 경기(3세)에서 승리했습니다. ]

[ 2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 잔여 포인트 : 300 -> 4300 ]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나는 방으로 돌아와 상태창을 점검했다. 

[ 포인트 : 4300 -> 700 ]

[ 라인전 : 35(-8) -> 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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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성(21세)

소속 팀 : 로켓츠 루키즈(임시)

라인전 : 36(-8) / 100

한타 : 18(-8) / 100 

운영 : 31 / 100

집중력 : 24(-3) / 100 

잔여 포인트 :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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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태 이상 : 손목 부상. 라인전과 한타 수치가 8 감소합니다. 집중력이 3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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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1경기 사이에 페널티가 또 증가했다. 심지어 ‘손목 부상’이라는 글자가 붉은색으로 바뀐 걸 봐서 상태가 더 심각해진 듯했다.

사실 상태창을 보지 않더라도 이미 손목에 큰일이 생겼다는 건 체감할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지금도 손이 저려왔으니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손목의 상태가 심각해졌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특성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페널티 수치가 8에 달하는 지금으로서는 특성 없이는 제대로 경기를 치를 수가 없다.

때문에 적어도 이번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계속 특성을 사용해야 했다. 말 그대로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는 꼴이다.

‘조금만 버티자.’

이번 대회만 끝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있다. 휴식을 취하면 어느 정도는 괜찮아지겠지.

그때 누군가 방문으로 들어왔다. 유지민이었다.

“형, 감독님이 피자 사 왔어요. 나와서 먹어요.”

“어, 그래.”

무심코 의자의 팔걸이를 붙잡고 일어서려던 나는 순간 아픔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 손목 상태가 어떤지 간과하고 있었다.

“으...”

“뭐야? 왜 그래요?”

변명을 하려 했지만 이미 유지민은 눈치를 챘는지 다가와서 내 손목을 붙잡고 가볍게 신경을 눌렀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통증 때문에 일그러진 표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몇 년 됐지.”

특성을 사용하면서 더 심해진 건 맞지만, 증상 자체는 오래되었다. 손목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낫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수적이었지만, 당장 잘릴지도 모르는 내 처지에 휴식은 어불성설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동안 계속해서 손목을 혹사시켰다. 

결국 그게 쌓이고 쌓여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휴식 따위로는 낫지 않는다. 사실상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유지민의 생각은 달랐다. 프로게이머치고 손목, 허리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상태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지금 김유성이 가야 하는 곳은 경기장이 아니라 병원이었다. 

“···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감독님한테 말해서 기권하자고 할게요.”

“뭐?”

“어차피 이 상태로는 게임 못 해요. 한다고 해도 질 게 뻔하고.”

“진통제 먹으면 돼. 상관없어.”

유지민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형, 제가 의사는 아닌데요. 여기서 더 나빠지면 이제는 못 되돌려요. 선수 생활 그만하고 싶어요?”

“어차피 내일 지면 선수 생활 끝이야.”

“···.”

그게 내가 손목을 걸고 도박을 한 이유였다. 어차피 선수로 지낼 게 아니면 손목 상태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물론 페널티가 이렇게 커질 줄 알았으면 생각이 다시 해봤겠지만...

내 상황을 이해했는지 유지민은 입을 다물었다. 어찌 보면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휴··· 알았어요. 대신 내일 경기하다 상태 안 좋아지면 제가 먼저 기권할 거예요.”

 “그래, 고맙다.”

유지민은 다시 돌아갔다. 아마 눈치로 봐서는 당장 감독님한테 말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후...”

내일은 4강, 모레는 결승전. 딱 이틀만 더 버티면 된다. 나는 불안감을 떨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언(至言)]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