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 찍는 프로게이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스포츠

휴재장인
그림/삽화
휴재장인
작품등록일 :
2024.08.01 11:31
최근연재일 :
2024.09.02 20:4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1,225
추천수 :
21
글자수 :
83,879

작성
24.08.31 23:55
조회
46
추천
0
글자
13쪽

트라이아웃(2)

DUMMY

피닉스 2군 감독인 박만호.


원래라면 스프링 시즌이 끝나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그에게는 트라이아웃에 가서 유망주를 선별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2군 감독인 그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현재 소속팀, 그러니까 피닉스 1군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만호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라도 한 대 피고 싶은 심정이었다.


‘휴··· 팀 잘못 만난 내가 문제지.’


LCK에서, 구단별로 빈부격차가 극심해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에이펙스나 갤럭시 같은 초일류 팀들은, 몇십억이 넘는 연봉을 선수 개인에게 안겨주며 모든 로스터를 S급 선수들로 가득 채우는 게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반대로 피닉스 같은 생존형 팀들은 그러기에는 자본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일류 선수들이 받는 연봉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팀 전체를 꾸려야만 한다.


그렇기에 피닉스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육성이었다.


비싸고 유명한 선수를 돈으로 사 오는 대신, 유스 때부터 차근차근 선수들을 육성시킨다.


잘만 된다면 값싼 가격에 좋은 선수들을 부릴 수 있다. 혹여나 잘 키운 선수가 팔려나가거나 이적한다고 해도, 우수한 유스 풀로 인해 언제든 그 자리를 메꿀 수 있다. 선수들의 충성심은 덤이고.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청사진에 불과하다. 애초에 육성 방향으로 노선을 튼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지금으로써는 1군이고 2군이고 모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어린 새싹에 불과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2군 성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어차피 2군 경기를 제대로 보는 사람들도 별로 없을 뿐더러, 2군은 성적보다는 육성에 초점을 두고 운영하는 팀이니까.


문제는 1군 성적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선수들을 억지로 기용한 결과는 처참했다. 탱킹에 가까운 성적, 형편없는 경기력··· 그런 것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시즌 내내 지속되자 시청자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팀을 해체시켜라, 이럴 거면 승강전을 부활시켜라··· 등등 온갖 욕이 쏟아져 나왔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구단주는 급하게 1군의 성적을 끌어올려 줄 베테랑 선수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피닉스의 새로운 탑 라이너로 들어오게 된 것이 바로 ‘헌터’ 김광민이었다. S급이라기에는 한끗 떨어지는, A급 정도라 할 수 있는 선수였지만, 오랜 경험으로 인한 연륜으로 신예 선수들을 잘 이끌어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문제는 선수 본인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었다. 김광민은 자신은 아직 우승권에 도전할 만한 저력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고, 피닉스 같은 팀에서 뛰는 건 자신의 커리어를 낭비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마음이 딴 곳으로 가 있는데 경기력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구단에서는 연봉을 올려주겠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만들어주겠다 등등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보려 했지만 결국 김광민은 이적을 선택했다.


그러자 그야말로 피닉스는 비상이 되었다. 당장 1군에서 뛸 탑 라이너도 없는데다가, 김광민을 영입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아치운 유스들, 그리고 베테랑의 영입으로 승격 기회가 없다고 판단해 다른 팀으로 이적한 유스들 때문에 팀의 유스 풀마저 쑥대밭이 되었다.


속은 몹시 쓰라렸지만 결국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수소문을 하든 발로 뛰어다니든 어떻게든 쓸만한 유스들을 다시 끌어모아 유망주 풀을 복구시켜야 했다.


‘그 새끼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든다고··· 됐다. 이미 끝난 일이지.’


레전드 파크에 도착한 박만호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가 피닉스 3군 감독인 장성우부터 찾았다.


“어, 형님 오셨어요?”


“그래. 어때? 쓸만한 애들 좀 있냐?”


박만호의 물음에 장성우는 대답 없이 고갯짓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에이펙스와 갤럭시 스카우터들이 유망주들을 붙잡고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면접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 항상 저놈들이 문제지.”


수없이 많은 우승을 해왔고, 지금도 화려한 선수진을 갖추고 있는 남부럽지 않은 구단들이다. 그쯤 되면 만족할 만도 한데, 어찌 그리 욕심이 많은지 유망주마저 갈퀴째로 쓸어 담으려 했다.


피닉스 같은 팀에서 접촉을 하면 무덤덤하던 선수들도, 갤럭시나 에이펙스에서 연락을 주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일단 명문 팀에 입단하기만 하면, 만약 주전이 되지 못하더라도 입단 그 자체가 선수의 커리어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들 같은 팀에서 선수들에게 줄 수 있는 이점이라고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주전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 이외에는 없다. 솔직히 말해 피닉스 순번까지 온 선수들은 어딘가 하나씩 하자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일단 저기서 데려갈 애들은 빼고, 남은 애들은 없어?”


장성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있긴 한데, 아마 별로 마음에 들어하진 않으실걸요.”


“그거야 당연하겠지. 일단 말이라도 해 봐.”


“이 친구입니다.”


장성우는 선수의 프로필이 정리된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김유성? 이 친구가 그때 4강에서...”


“네, 맞습니다. 손목을 다쳐서 기권패했었죠.”


박만호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종이를 내려놓았다.


“안돼. 난 무조건 반대야.”


“어째섭니까? 여기 있는 놈들 중 제일 잘하는 놈인데.”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쟤 나이를 생각해. 21살이니까 잘하는 게 당연한 거지. 반대로 생각해 봐. 이미 21살인데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우리는 당장 실력이 아니라 잠재성을 보고 뽑는 거야.”


“실력이 늘 수도 있죠.”


장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박만호가 내려놓았던 종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것 좀 보세요. 이게 2년 동안 김유성이 썬더스톰 루키즈에 있었던 당시의 지표입니다. 어떠세요?”


“CS 지표, 골드 지표, 데미지 지표··· 모두 최하위권이야. 희한하군. 이렇게까지 안 좋은 선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 다음은 이걸 보세요. 이번 대회에서의 지표입니다.”


경기별로 기복은 좀 있는 편이지만, 평균적으로 썬더스톰에 있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모습이었다. 특히 탱커 캐릭터를 골랐을 때와 달리, 칼챔을 골랐을 때의 지표는 프로를 포함해 대회 최상위권이라 봐도 무방했다.


“좋아. 대회 때 좋은 모습을 보여 줬다는 건 인정해. 그런데 병살만 치던 타자가 가끔 만루 홈런 치지 말라는 법 있어? 3년 동안 죽 쑤다가 대회 한 달 동안 잘했다··· 그런 걸 보통 플루크라고 하지 않나?”


“플루크가 아니라 한 단계 스텝 업을 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스텝 업이라··· 그런 건 허상이야. 재능 있는 선수들이 충분히 경험치를 쌓고 나면 자연스레 잘해지는 거라고. 이 친구 솔랭 기록을 봐. 데뷔한 후부터 매년 수천 판이 넘게 솔랭을 했는데도, 아무 변화도 없었잖아. 재능 없다는 거지.”


“그럼 대기만성이라고 해 두죠.”


반박하려면 끝도 없이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박만호는 이 주제는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어차피 이런 것들은 전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김유성의 손목 부상이었다.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 다 좋아. 그런데 손목 문제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야. 이거 평생 간다.”


꽤 오랫동안 많은 선수를 봐온 박만호였지만, 손목 부상을 달고 사는 선수 중 잘 된 선수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은퇴하거나, 겨우 살아남더라도 부상 전과 같은 모습은 기대할 수 없었다.


조금 비싼 값을 주더라도, 건강한 선수를 사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싸다는 게 박만호의 지론이었다.


“메이커도 손목 부상을 달고도 잘만 활동하잖아요?”


“그건 메이커니까 가능한 거지. 심지어 그 메이커도 손목 때문에 경기력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아.”


아무리 꾸준히 치료를 받고 관리를 열심히 한다 해도, 일단 한 번 문제가 생긴 손목은 또다시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았다.


“김유성 정도면 손목에 시한폭탄을 달고 게임을 하는 셈이야. 우리 팀 사정 알잖아.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할 여유는 없어.”


이 정도면 충분히 설득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장성우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죠. 그러니까 김유성을 영입해야죠.”


“뭐?”


“팀 상황이 이렇게까지 좋지 않은데, 오히려 도박이라도 해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다른 팀들처럼 검증받은 훌륭한 선수들만 쓸 수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저희는 사정이 다릅니다.”


“···.”


“어차피 여기 오는 선수들은 전부 어딘가 하나씩 하자가 있는 선수들 뿐입니다. 따지고 보면 다 도박이죠. 그리고 저는 김유성 정도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성우의 얼굴을 본 박만호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어차피 3군 선수를 뽑는 일은 원래 3군 감독인 장성우의 권한이고, 자신은 도와주러 온 것에 불과했다. 장성우가 자신의 허락을 맡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 좋아. 그놈 얼굴 한번 보자.”


도대체 어떤 모습을 보여줬길래 장성우를 이렇게까지 매료시켰는지, 자신의 눈으로 한 번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현재.


‘흠··· 잘 모르겠는데.’


박만호는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던 김유성의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전날 스크림 때는 단 1경기라고 해도 나름 임팩트 있던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은데.


오늘 솔랭을 돌리는 걸 보니 그냥 평범한 마스터 유저에 불과해 보였다.


‘뭐, 상관없긴 하지.’


솔로 랭크에서의 티어가 꼭 대회에서의 실력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랜드 마스터 정도만 유지하면서도 렐드컵을 우승하는 경우도 있고, 챌린저 상위권을 달성하고도 1군 주전조차 달성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으니까.


생각을 가다듬은 박만호는 김유성에게 다가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것들에 불과했지만,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함이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편안해지자 박만호는 잠시 따로 대화를 나눌 것을 제안했다.


“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잠시 괜찮을까?”


.

.

.


면접은 주로 장성우가 묻고, 김유성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박만호는 옆으로 빠져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탱커 캐릭터를 기용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것 같은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팀의 조합을 맞춰주기 위해 그런 것도 있었고, 저 자신이 선호하는 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보셨듯 다른 캐릭터들의 숙련도 역시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음··· 좀 실례되는 말일 수 있는데. 네가 다른 선수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지?”


“예.”


“그럼 그걸 극복할 만한 다른 장점이 있을까?”


“팀게임 경험이 많은 만큼 운영이나 오더에서 확실히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외적으로도 멘탈이 성숙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을 잘 케어해줄 수 있구요.”


‘음.’


다른 건 몰라도 똑 부러진 점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많다고 주눅 들어 보이지도 않고.


박만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가장 궁금했던 점 하나를 물어봤다.


“대회에서 손목을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지?”


“수술 후 회복 단계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완치는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저번 대회처럼 쓰러질 일은 없겠지만, 경기력에 지장이 생길 확률이 없진 않습니다.”


김유성의 대답에 박만호는 꽤나 놀랐다. 일반적인 선수였다면 부상을 축소하는 게 일반적일 텐데, 오히려 김유성은 가감 없이 자신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정직하게 말해 줘서 고맙긴 한데, 네 상황이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어. 손해를 감수하고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말해주는 이유가 뭐야?”


김유성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저번 대회에서··· 저는 제 손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회에 참가했고, 저를 믿고 받아준 감독님과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쳤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가 소속한 팀에 거짓말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득 팀을 버리고 떠나간 김광민의 모습과 대비되었다. 물론 김광민의 선택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눈앞의 선수처럼 팀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무엇보다, 손목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 더 잘해질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 저를 뽑으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자신이라...”


보통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선수는 찾기 힘들긴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좋았다.


“좋아요. 갑시다.”


“예?”


“계약서 쓰러 가자고요.”


그렇게 2021년 하반기, 피닉스 루키즈의 새로운 탑 라이너가 정해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스탯 찍는 프로게이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피닉스 루키즈 +2 24.09.02 37 0 12쪽
» 트라이아웃(2) 24.08.31 47 0 13쪽
14 트라이아웃 24.08.30 48 0 11쪽
13 추락 24.08.29 52 0 12쪽
12 4강(3) 24.08.27 60 2 15쪽
11 4강(2) 24.08.26 65 1 12쪽
10 4강(1) 24.08.25 64 1 12쪽
9 8강(2) +1 24.08.24 69 1 11쪽
8 8강(1) 24.08.23 72 1 11쪽
7 16강 +2 24.08.22 90 2 12쪽
6 훈련 24.08.21 86 2 10쪽
5 새로운 팀 +1 24.08.20 102 2 11쪽
4 기회 24.08.18 98 2 11쪽
3 마지막 경기(2) 24.08.17 97 2 13쪽
2 마지막 경기 24.08.16 104 2 11쪽
1 실패한 프로게이머 24.08.15 135 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