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탯 찍는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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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재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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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재장인
작품등록일 :
2024.08.0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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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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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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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강(2)

DUMMY

2세트가 끝난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악마사냥꾼?‘


예상 외의 픽에 호되게 당하고 말았다.


물론 악마사냥꾼이라는 픽이 만능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한순간에 팀에서 가장 쓸모없는 캐릭터가 될 정도로 리스키한 캐릭터이다.


하지만 그 위험도를 대폭 낮춰주는 게 바로 높은 라인전 스탯으로 인한 뛰어난 컨트롤이었다.


안 그래도 스탯 차이가 나는데, 저 ‘강약약강’ 특성 때문에 더욱 차이가 벌어진다. 


총 13이라는 스탯 차이에 라인전 상성마저 좋지 않으니 버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지금 특성을 사용할까 싶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게 하면 1세트 정도는 넘길 수 있겠지만, 아직 이기기 위해서는 2세트가 필요했다. 


5판 3선제이니 상황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나는 일단 다음 세트를 지켜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악마사냥꾼 밴할까?”


“어, 밴하자.”


전 판의 충격적인 결과를 재현하지 않기 위해, 우리 팀은 위협적인 탑 캐릭터들을 가능한 대로 금지시켰다.


하지만 밴 카드는 무한정한 게 아니다. 1팀에 주어지는 밴 카드는 딱 5장. 그 5장을 모두 탑에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OP라고 불리는 사기 카드들을 밴하는 데에도 사용해야 했다.


즉 아무리 밴을 한다고 해도 상대가 원하는 캐릭터를 모두 막을 순 없었다.


“카밀라! 카밀라가 나왔어요!”


상대가 고른 캐릭터는 바로 카밀라. 


레전드 리그에서 손꼽힐 정도로 우월한 기동성, 성장했을 때의 엄청난 데미지로 인해 출시했을 때 MDC라는 오명을 들었을 정도로 좋은 캐릭터였다.


물론 라인전 자체가 강력한 건 아니었지만, 상대는 정정당당한 1대 1 싸움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아, 썬더스톰, 또 탑으로 갑니다.”


“잔인합니다. 정말 잔인할 정도로 집요하네요!”


상대 정글은 처음부터 다른 곳은 갈 생각이 없었다는 듯 탑에 살다시피 했고, 심지어 상대 미드마저 자주 로밍을 올 수 있는 카드맨을 고른 후 끝없이 궁극기로 로밍을 왔다.


아마 전 판으로 인해 승리 플랜에 확신을 얻은 모양이었다. 어중간하게 여기저기 투자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에이스인 탑에게 몰빵을 하는 게 승산이 높다고.


그리고 그 계산은 정확했다. 가만히 둬도 라인전을 졌을 마당에, 3명이서 끊임없이 괴롭히니 끝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 아군이 사망했습니다.

- 아군이 사망했습니다.

- 아군이...


한 번 죽을 때마다 성장 차이는 더욱 벌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의 빈도는 더욱 잦아졌다.


내가 못 큰 거야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는 상대 탑이 너무나 잘 컸다는 것이다. 20분에 거의 3코어에 육박하는 아이템을 띄웠으니.


물론 탑에 투자를 한 만큼 바텀은 방치되어서 쫄딱 망하긴 했지만, 카밀라는 자신을 키운 게 실수가 아니었다는 듯 바텀에 내려가 종횡무진 활약했다.


- 어딜 가시나?


잘 큰 3코어 카밀라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했다. 카밀라의 궁극기를 맞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벗어나지 못한다. 옴짝달짝 못하고 갇혀있는 아군 캐릭터에게 카밀라가 다리를 들어올리자 마치 종잇장마냥 찢어져 버렸다. 


“엘리트 선수! 바텀에서 더블 킬!”


“이게 팀적인 운영이죠. 미드랑 정글이 탑을 키워 주고! 다시 탑이 그동안 고통받은 바텀을 도와 주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탑 슈퍼 캐리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 카밀라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세트 스코어 2대 1. 


멤버가 조금씩 바뀌었다고 하지만, 리그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던 썬더스톰과의 경기였다.


당연히 3대 0으로 이길 거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1대 2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유지민은 이 상황이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어.’


다른 멤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의외로 유지민은 김유성이 못한다고 해서 별로 원망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동안 같이 훈련을 하며 실력을 얼추 알고 있으니,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 탑에게 밀리는 것도 어느 정도 상정한 바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상대 팀의 실력이었다. 탑 라이너의 라인전 실력도 뛰어났지만, 그걸 뒷받침해주는 정글과 미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상대 바텀 역시 폭탄마 같은 캐릭터로 라인 클리어만 하며 최대한 반반 파밍을 유도했다. 물론 바텀에서 이득을 아예 보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탑에서 굴러가는 스노우볼의 속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듯 능숙한 탑 캐리 전략이었다. 꼴찌 팀이라고 방심했던 게 뼈아픈 실책이었다. 


물론 이 경기를 진다고 해서 딱히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변수가 많은 토너먼트보다는, 5월에 열리는 리그와 플레이오프 성적이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유지민의 자존심이 고작 이런 팀한테 지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뛰어난 재능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한 유지민에게는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유지민은 왼쪽 끝에서 코치와 밴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유성을 쳐다보았다. 


김유성은 뭔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지 머리를 감싸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김유성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발언이 나왔다. 


“검투사 주세요.”


유지민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제정신이에요?”


화가 나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유지민은 순전히 진심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검투사라고? 


캐릭터가 쓰레기여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다. 스플릿에 특화된 장점이 있는 캐릭터이고, 그 덕분에 1부 리그에서도 종종 나오긴 한다. 


문제는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한타 능력이 쓰레기이기 때문에 라인전과 사이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만약 라인전에서 패배한다거나, 사이드를 돌다 본대의 움직임을 놓쳐 잘리거나 한다면 캐릭터의 주가는 곤두박질친다. 피지컬과 운영 능력을 모두 요구하는 것이 바로 검투사라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동안 김유성은 자신은 피지컬이 부족하다며, 스크림이든 대회든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경기에서 탱커를 기용했다.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을 막아선 건 감독이었다.


“그럼 해, 검투사.”


“감독님?”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잖아. 본인도 나름 생각이 있으니까 말한 거겠지. 안 그래?”


“...네. 감사합니다.”


감독이 김유성의 선택을 지지해준 이유는 간단했다. 방금 말한 대로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노력해온 것에 대한 신뢰이기도 했다.


만약 결과가 좋으면 잘 된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마지막 프로 경기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끝내주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결정에 유지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감독이 동의했는데 자신이 뭐라 하겠는가.


‘대체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상대 선수와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될 대로 되라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답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4세트의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줄 거라는 것밖에 없었다.



한편, 검투사 픽에 흥분한 건 해설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썬더스톰 쪽은 3픽으로 칼날무희를 뽑았습니다. 아마 탑 칼날무희인 것 같죠?”


“네. 요즘 그렇게 많이 나오는 픽은 아닙니다만··· 아마 강력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시작부터 찢어놓겠다! 그리고 저번 세트처럼 사이드에서 이득을 보겠다! 뭐 이런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로켓츠는 반대로 무슨 픽을 고를지··· 어? 검투사를 뽑았습니다?!”


이번 시리즈 뿐만 아니라 그 전 경기, 아예 대회 기간 내내 탱커만 기용했던 김유성이다. 


당연히 보는 사람들이나 해설자나 이 선수는 탱커밖에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번 세트 역시 마찬가지로 최대한 칼날무희 상대로 라인전을 버티는 픽을 고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나온 건 같은 전사 계열의 캐릭터인 검투사였다. 


“열 받았다는 거죠? 칼 대 칼로 한 번 붙어보자 이겁니다!”


“그렇죠. 메테오 선수도 맞는 모습만 보여주기는 싫거든요? 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따라와!”


칼날무희, 검투사, 카밀라, 야수오, 리번··· 이런 캐릭터들을 소위 ‘칼챔’이라고 부른다. 


칼을 쓰는 캐릭터라 그렇게 부르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캐릭터들의 특징은 잘 성장했을 때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못 컸을 때는 미니언만도 못한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칼챔 대 칼챔의 매치업이 벌어지면, 적당히란 결과는 없다. 한 번 우열 관계가 잡히고 나면, 게임이 끝날 때까지 패자는 숨도 쉬지 못한다. 


칼챔이란 별명에 걸맞게, 한쪽은 다른 캐릭터들을 썰고 다니고, 한쪽은 부러져 땅에 처박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런 칼 대 칼 매치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탱커 캐릭터들이 나올 때보다 훨씬 화려하고 재밌으니까.


“모든 밴픽이 끝났습니다. 그럼 4세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레전드 리그는 5대 5 싸움이긴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두의 시선이 탑으로 향했다.


과연 누가 이 싸움에서 이기게 될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칼챔 숙련도가 떨어질 것 같다는 이유로 김유성의 패배를 예상했지만, 의외로 초반에는 김유성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칼날무희와 검투사의 상성 관계는 꽤나 복잡하다. 1레벨 때는 검투사가 확실히 다소 유리해지지만, 2레벨부터는 파일럿의 실력에 따라 다르다. 검투사에게도 마냥 편한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건 2레벨을 찍었을 때의 얘기다. 김유성은 자신이 유리한 구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상대 미니언 뒤로 이동해 칼날무희를 막아섰다. 


자신이 CS를 먹지 못하더라도, 상대는 아예 경험치조차 먹지 못하게 할 생각인 것이다. 라인의 길이가 긴 탑 라인이기에 가능한 디나이였다.


“아, 메테오 선수 정말 잔인합니다. 경험치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어요!”


“이러면 지속적으로 레벨 차이가 날 수밖에 없거든요...”


칼날무희는 어떻게든 2레벨을 찍기 위해 몸을 앞으로 들이대 봤지만, 검투사는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과격하게 응징했다. 


결국 칼날무희는 원했던 CS는 별로 먹지도 못하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러다 큰일난다.’


아직 2레벨도 찍지 못했는데 체력은 절반 넘게 빠져 있었다. 다이브라도 들어왔다간 그대로 끝장이었다.


결국 썬더스톰의 탑 라이너, 이지성은 눈물을 머금고 귀환한 후 텔레포트를 사용해 탑에 복귀했다. 아깝긴 해도 원래 이러라고 만든 스펠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체력을 모두 채워 돌아왔다 해도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칼날무희는 여전히 1레벨이었으니. 


검투사는 막타만 조금씩 치면서 거대한 웨이브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칼날무희가 입는 CS 손실도 상당했다. 검투사는 이미 3레벨이었기에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저 웨이브만 다 먹고 나면, 지금의 위기는 일단 넘길 수 있었다. 그 후 정글을 불러 검투사를 한 번만 따고 나면 얼추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 팀의 정글러, 뒤이어 미드 라이너까지 탑에 모습을 드러나자 그 생각도 멈추고 말았다.


‘이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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