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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파는
작품등록일 :
2024.08.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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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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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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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보급

DUMMY

좀비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여사원의 신음이 사라지고 감시대 내부 계단에 고요가 찾아 왔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계단과 벽에 기대앉은 이사원. 그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겨 있던 여사원이 말을 건넸다.


“저기···.”

“응?”

“혹시 이름 말해 줄 수 있어요?”

“···이름?”


검은 회사의 전 직원은 방침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성을 제외하고 이름을 버려야 했다. 그들의 과거를 캐묻지 않고 잡혀 살지 않으며 회사의 직원으로서 새롭게 인생을 살라는 윗단의 방침이었다.


‘이름, 이름이라. 이름으로 불린 게 언제였더라···.’


자신의 품에 안긴 여사원을 바라보며 이사원은 과거를 회상했다. 그의 기억 속에 과거는 암울했던 날들의 연속.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누구도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았기에, ‘누구’의 자식··· 그것이 이사원의 이름이었다. 온갖 손가락질과 회피, 무시, 욕을 뱉는 사람··· 그들이 부르는 이름의 원천인 부모마저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입술에 정을 붙이지 않았다.


‘아, 아니다. 있었네···.’


과거 회상에 이사원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뭐야, 왜 웃어요?”

“? 아냐,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뭐야··· 그래서 이, 이름이 뭔데요···.”


그녀는 홍조가 띤 한껏 부끄러운 얼굴을 참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름이 왜 궁금한데?”

“뭐, 뭐. 그거야. 계속, 저기요, 야. 이렇게 부를 수는 없으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그녀의 귀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사원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큭, 그럼 넌 이름이 뭔데?”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요!”

“먼저 말해주면, 나도 말해줄게.”

“뭐야. 진짜.”

“원래 자신의 이름부터 밝히고 물어보는 게 예의라고 했어.”

“갑자기 무슨 예의···.”

“말 안 하면 나도 안 해.”

“여, 여수현! 이제 됐죠? 이제 이름 말해줘요.”

“여수현이구나··· 그래, 내 이름은.”


투닥거리던 그가 계단 위에서 비추는 잿빛 천장을 바라보며 괜한 분위기를 잡았다. 분위기에 비친 그의 표정은 그리움이 잔뜩 담겨 있었다.


“‘이결’, 이결이야.”

.

.

.

4786을 향해 그녀가 품속에 가지고 있던 에너지바 하나를 건넸다.


“먹어.”

“응?”


살아생전 자신을 가장 먼저 챙겨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골드의 영향으로 한나는 임무에 나갈 때 에너지바를 여러 개 챙기는 버릇이 있었다.

어떤 임무를 나가던 비상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잔소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잔소리했던 골드. 특히 은, 엄폐와 식량 대비를 강조했던 골드. 입안에서 녹아가는 에너지바를 씹으며 그녀는 이제 듣지 못할 그 잔소리가 그립게 느껴졌다.

괜히 흐를 것 같은 눈물에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는 그녀였지만, 4786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오직 건네받은 에너지바만 쳐다보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꼬박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나무 위로 좀비와 곰을 피해 있던 4786. 그에게 에너지바는 호랑이를 피해 내려온 동아줄 같이 반가웠다.

당장 뜯어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싶었지만, 괜히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자 앞에서 식탐을 보일 수 없었다. 그는 흥분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에너지바 포장을 벗겨 한입 베어 물었다.


‘미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에너지바다.’


침과 섞여 입안에 들어온 평범한 에너지바 하나가 이렇게 맛있고 달게 느껴질 수 없었다. 절대 평범하지 않은 에너지바가 확실했다.


‘고작 에너지바 하나가 이렇게 달게 느껴지다니···.’


환경 탓일까?


4786은 주변을 둘러봤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해 나무 위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둘의 모습.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 섬에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답도 없는 상황 속에서 가만히 앉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4786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는 조용히 나뭇잎이 막아주는 잔 비를 맞으며, 숙인 고개 안으로 에너지바를 먹고 있는 한나를 바라봤다.


‘한나의 말에 따르면 좀비는 타워에서 시작했지? 그럼 그 주변만 가까이 가지 않으면 좀비는 가능한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다음. 그다음은 어떡하지?’


그는 한입 베어 문 에너지바를 쳐다봤다.


‘비 때문에 체온과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 에너지바가 얼마나 버티게 해줄까··· 여기서 탈출은 할 수 있을까? 탈출? 지금 내가 살고 싶어 하는 걸까?’


부정적이고 복잡한 생각이 그의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해?”


생각해서 준 에너지바를 다 먹지도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뇌하는 4786을 본 한나가 말했다.


“응? 아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난···.”


‘그러게 난 뭘 하고 싶어서 여기에 들어왔지? 복수 아니었나? 그럼 지금은? 잘 모르겠다.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난 살 거야. 여기서 살아서 나가고 싶어.”


아무 말 못 하는 4786을 보며 한나가 뜻을 먼저 밝혔다. 그녀는 눈에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비가 오는 구름 속에 숨은 별과 같이 빛나는 눈이었다.


“넌? 너도 나가고 싶은 거 아냐?”


그녀의 질문에 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금 들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나도 날 잘 모르겠어. 사실 여기 들어온 것도 부와 명예. 뭐 그런 거창한 걸 원해서 들어 온 게 아냐. 그냥··· 여기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

“만나고 싶은 사람? 여기서? 누군데? 어떤 사람인데?”

“···죽이고 싶은 사람.”


그는 먼 숲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한나는 속으로 놀랐지만, 겉으로는 이를 숨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갔던 대화와 그의 인품으로 느꼈을 때. 그의 입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거지? 잠깐의 시간으로 그를 내 멋대로 판단하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녀가 바라본 그의 대답과 웃음 뒤에는 씁쓸함이 보였다.


짧은 만남 속에 느낀 그의 이미지는 사형수보다 흔한 청년. 어떻게 사형수가 됐는지 의문도 드는 남자.

사실 그녀는 4786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한 치사였다. 자신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와는 다른 신분. 경계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그녀는 그의 속내를 알기 위해 적당히 만만하고 허술한 사람인 척 잠을 청하는 모습도 보여주며 그를 시험했지만, 4786은 그녀의 생각과 반대로 경계만 할 뿐. 같잖은 기 싸움이나,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만 움직였던 그가 생존 뒤에 누군가에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충격이었다.


“왜 그래?”

“아냐. 그냥 너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할 줄은 몰랐어.”

“하하. 이렇게 보여도 나 사형수로 여기 참가했어.”

“아, 그래···.”“···.”


그가 자신을 깎으며 씁쓸한 미소로 웃어넘겼다. 말하기 싫다는 그의 뜻을 이해한 그녀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 그래도 상황이 이러니까. 나도 그냥 한 번 살아보려고.”

“응, 그래···.”

“···.”


어색한 공기가 그를 잡아먹을 듯 달려왔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이번에는 4786이 먼저 입을 열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아, 아. 그래 한나는 용병이잖아. 이 섬에는 어떻게 들어왔어?”

“나?”

“응.”

“배 타고.”

“응?”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른다. 눈을 떠보니 요트 위였고 사람들과 함께 노를 저으며 미다스로 들어왔다. 하지만 앞에 있는 한나는 참가자가 아닌 용병. 깨어있는 정신으로 스스로 미다스에 발을 넣으며 자신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었다.


“타워 뒤에 선착장이 있어. 거기로 가면 이 섬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몰라.”

.

.

.

빗줄기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숲속에 어느덧 백색소음처럼 빗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착장? 왜 그런 얘기를 지금 하는 거야?”

“왜 놀라? 넌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거라며.”

“아, 아니 그건··· 상황이 이러니까 접었지. 나 정말 살려고 한다니까?”

“흐음.”

“왜, 왜?”


뭔가 토라진 것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에 4786은 당황했다.


‘역시 일부러 대화를 피하는 것을 눈치챘나?’


한나, 역시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몰랐다. 지금껏 열심히 살려고 함께 달린 남자가 사실 다른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면, 남자에 대해 다 파악했다고 믿었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실망? 알 수 없는 감정으로 4786을 노려보던 그녀가 다시 표정을 풀었다.


“아냐, 나도 확신이 없었어. 그래서 선착장 말은 안 하고 다른 방법을 먼저 생각했던 거야.”

“확신?”

“배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아끼려는 눈치를 보였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타워를 지나쳐 가는 길밖에 모르거든.”


‘아, 좀비.’


그의 생각에 답하듯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타워를 지나쳐 간다는 건 굉장히 위험해. 우리가 탈출하면서 타워 정문과 외벽 정문을 닫았지만, 혹시라도 문이 열렸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다음 그녀의 말이 예상됐다. 왜 그녀가 선착장을 존재를 숨겼는지 조금 이해한 4786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일반적인 세상과 다르다. 영화에서만 보던 좀비가 공존하는 세상. 4786은 또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자신을 반성하고, 생각을 넓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럼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음··· 선착장 위치는 여기서 반대. 타워 뒤편에 있는 바다 동굴에 있어.”

“바다 동굴?”

“응, 바다랑 이어진 커다란 동굴. 그 안에 길이 뚫려 있는데 그게 타워 뒤쪽 커다란 동굴과 연결돼 있어. 최대한 섬을 돌아서 타워를 피해 갈 수 있겠지만. 가는 길도 확실하지 않고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식량과 체력이 부족해서 거기까지 못 가.”

그녀는 다 먹은 에너지바 비닐을 보여주고, 나무 아래에 던졌다. 그는 아직 다 먹지 못한 에너지바를 서둘러 입안에 욱여넣었다.


“구럼 아예 봥봅이 업다눈 거좌나.”

“일단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


“크흠,”


‘어떻게 해야 할까? 탈출하기 위해서는 선착장이 꼭 필요한데, 좀비가 우글거리는 그 타워로 간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배를 만들어야 하나. 만들 체력은 되나?’


걱정이 앞선 그때 하늘에서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뭐지?”


-두두두두두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한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오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며 커다란 바람과 함께 그들의 귀를 때리며 등장했다.


“헬기!”

“뭐?”

“헬기라고!”


‘헬기?’


그 굉음의 정체는 낮은 하늘을 선회하는 보급 헬기였다.

곧 그들이 있는 곳과 멀지 않는 곳에 두 번째 보급이 떨어지고 헬기는 점차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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