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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파는
작품등록일 :
2024.08.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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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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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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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파도

DUMMY

검고 긴 복도 끝에 피 냄새가 진동했다. 붉은빛이 눈을 괴롭히고 으르렁거리는 짐승 소리는 양옆에서 들려왔다. 적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모두 같은 사냥감을 쫓던 동족과 같은 존재였다.

보랏빛 피부에 생기 없는 잿빛 눈을 가진 그들이 4층 복도 탕비실 앞에 모여 자신들을 막고 있는 무언가를 부술 듯 머리를 박고 팔을 휘저었다.


“쿠오오오오!”


그러던 그때, 한 녀석이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피 냄새다. 달콤하며 신선한 피 냄새. 사방에서 맡아오던 피 냄새와 달리, 새롭게 코를 자극하는 신선한 피 냄새.


“끄어어억.”


냄새의 자극 받은 좀비들이 더욱 미쳐 날뛰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안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사냥감의 소리와 달콤하게 퍼지는 피 냄새. 말랐던 침이 흘러나오며, 당장이라도 그것을 취하고 목을 축이며 끝없이 몰려오는 배고픔을 살과 내장을 먹어 달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끄어어어억!!!”

“끄얽!! 끄얽!! 끄얽!! 끄얽!!”


한 녀석이 자신들의 힘으로 열 수 없는 자동문에 고개를 들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썩어가던 울대가 크게 울리고 소리는 넓게 퍼져 복도와 계단을 가로질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 다른 좀비들이 첫 좀비의 괴성에 화답하듯 짧고 강하게 울기 시작했다.


“저것들 갑자기 왜 저래.”


난생처음 듣는 소리에 탕비실 안쪽에 있던 이사원의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강대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여사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도 분명 이렇게 분쟁하며 싸우면 좀비들이 흥분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따랐던 사수의 죽음, 그리고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여사원을 가볍게 용서하고 품기에는 그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언제나 형처럼 혹은 아버지처럼 자신을 챙겨주던 강대리. 가족이라면 이런 것일까를 느끼게 해준 강대리가 저 정신병 걸린 X의 손에 죽었는데, 밖에서는 정신병 걸리게 만들 것 같은 괴물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크고 작은 실랑이에 반응하는 좀비들이 문을 부술 듯 소리치고 머리를 박아댔지만, 이사원에게는 그딴 것보다 여사원에 대한 분노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둘이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그때. 한 녀석이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며, 이사원의 분노를 멈추게 만들었다.

두 남녀는 방금까지 바쁘게 움직이던 입을 멈추고 자동문에 집중했다.


“무, 뭐야. 저 소리는.”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사원이었다. 자동문을 주시하던 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뭐, 뭐예요?”

“쉿.”


천장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안색이 변하던 그가 곧장 바닥에 귀를 갖다 대며 소리에 집중했다.


“뭐냐구요!”

“아 좀!”


조용히 바닥에 귀를 대고 집중하던 그가 사색이 된 표정 뒤로 걱정이 확신으로 변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기요. 갑자기 왜 그러냐고요. 아니, 진짜 감염된 거라니까요!”

“아가리 해. 지금 X된 거 같으니까.”

“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아가리? 하, 참. 아가리? 아가리??”

“아, X발. 좀 닥치라고!!”


그는 뒤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여사원을 내팽개치고 주변을 조급하게 살폈다.


“저기요. 이사원씨. 야! 지금 내 말 무시해? 갑자기 왜 꼴값을 떠는데.”

“아, 미친X아 닥치고, 주변을 보고 귀 좀 열어봐.”

“뭐?”


마음이 조급해진 그가 흥분하여 다시 소리쳤다.


“방금까지 문을 부술 듯 치던 새끼들이 지금 이렇게 소리 지르는 데도 문은 안치고 계속 저딴 식으로 우는 게 안 이상해?”

“끄얽! 끄얽! 끄얽! 끄얽!”

“뭐?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여사원이 여전히 울고 있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바라봤다.


“바닥에 귀 대고 들어봐, 건물이 흔들리고 있어. 지금 저 새끼들 가까이 있는 지네들 동료 부른 것 같다고.”

“네?!”

‘동료를 부른다고? 다른 좀비들?’


그녀는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그의 말에 얼굴을 구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색이 된 표정과 조급한 행동으로 탕비실을 계속 살피는 이사원의 모습에 그녀는 의심 가득한 표정과 함께 땅에 엎드려 바닥에 귀를 갖다 댔다.


“!”


미세한 진동과 소리가 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알 수 없는 무언가. 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그것은 크고 거대하게 느껴졌다.


-쾅!

-쾅!


그 순간 이사원이 탕비실에 비치된 의자 하나를 들어 창문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하여 던지는 의자에도 꿈쩍하지 않고 튕겨 나오는 의자를 보며 이사원은 이번에 던지지 않고 의자를 들어 유리를 향해 내려치기 시작했다.


“뭐 해! 너도 도와! 살고 싶으면 도우라고!”

“네?”

“들었을 거 아냐!”


-쾅!


“뭐, 뭘요.”


-쾅!


“땅에 진동 소리. 그게 저 새끼들이 좀비들 더 부른 거라니까!!!”

“그럼 이 소리가 정말?”


여사원은 엎드린 그 상태로 다시 귀를 탕비실 바닥에 갖다 댔다. 일전 들리던 거대한 소리가 점점 커지고 진동과 몇몇의 좀비들의 괴성이 함께 들리며 그것들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쾅!


“건물에 있던 좀비들이 모이는 소리라고? 흐읍!!”


충격을 받은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대충 알아차렸으면!! 얼른 붙어!!!”

“네, 네. 네.”


그녀는 벌벌 떨리는 몸을 일으켜 이사원과 같이 의자를 집어 들었지만, 두려운 마음에서 인지 손만 떨릴 뿐 힘이 나지 않았다.


“젠장!! 진짜.”


이미 도움받기는 글렀다고 판단한 이사원이 더욱 의자를 쥔 손에 힘을 더욱 주고 허리를 돌려가며 전보다 강하고 빠르게 유리를 내려찍기 시작했다.


-쾅! 쾅!


이제 땅에 귀를 대지 않아도 그들의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수많은 좀비 떼들. 이사원에게는 여유 따위 없었다.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고 이 망할 유리를 깨져야 그가 살 수 있었다.


-쾅!

-쾅! 쾅!


“좀!!! 깨지라고!!!”


-쾅!!!! 쩌저적.


“됐다!”

“끄어어어어억!!!”


그 순간 복도 끝에서 수많은 괴성이 들려오고, 탕비실의 내부가 떨리기 시작했다.


“X발!”

“어···어떡해···어떡해.”


여사원이 이사원과 자동문을 번갈아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몸만 떨고 있었다. 금간 유리를 보고 더욱 다급해진 이사원은 의자를 더욱 빠르게 휘둘렀다.


-퍽! 퍽!


금이 간 유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나며 그들에게 탈출로를 마련해 주었지만, 문제는 창틀에 박힌 유리 조각과 뒤에서 들리는 괴성들이었다. 휘두르던 의자를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서서 발로 깨던 이사원이 뒤에 들리는 괴성이 더 신경 쓰이는지 여사원을 불렀다.


“야, 멍하니 있지 말고, 저기 가서 대리님 가방 가져와.”


사색이 된 표정을 지으며 망연자실하던 여사원이 그의 말에 일어나 강대리에게 다가갔다.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강대리의 복부에서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수많은 좀비의 그림자. 그리고 문틀 채로 흔들거리는 자동문에 그녀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무서워, 무서워,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야! 얼른!”


그녀가 울며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강대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쾅! 쾅! 쾅!


“끄어어어어어!”


시끄럽게 오는 좀비와 삐걱거리는 자동문 옆에서 그녀는 서둘러 그의 복부에 박혀있는 식칼을 먼저 챙기고 뒤이어 그가 죽는 순간까지 손에 쥐고 있던 서류 가방을 집어 들었지만, 꼭 쥐고 죽었던 강대리의 아귀힘은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죽은 강대리에게서 가방을 뺏기 위해 그의 팔을 흔들고 칼로 손목과 손가락을 그으는 등 안감힘을 쓰고 있을 그때 이사원이 다시 소리쳤다.


“야! 멀었어? 서둘러!”


답답함에 이사원이 여사원에게 붙어 그의 힘으로 강대리의 아귀를 풀며 가방을 빼앗았다.


“너 먼저, 이걸로 유리 정리하고, 나가.”

“네?”

“꺼지라고!”

“쿠어어어!”

“꺼어어어어어어어.”

“키에에에.”

“X발.”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자동문에 이사원은 탕비실 탁자를 넘어뜨려 문 앞에 방어벽을 세우고 같은 시각 뒤에 있던 여사원은 강대리의 가방으로 창틀에 남은 유리 조각을 서둘러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니, 남은 유리 조각을 정리하는 시간보다 자동문을 깨고 좀비들이 처들어오는 시간이 더 빨라 보였다.


‘안돼!’


여사원은 자신이 들고 유리 조각을 정리하던 가방을 집어 던지고, 얼추 정리돼 작은 유리조각만 남은 창틀에 자신의 겉옷을 서둘러 얹어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됐다! 얼른 와요! 빨리.”


방어벽을 다 세운 이사원이 방향을 틀어 창틀로 달려갔다. 먼저 밖으로 나간 그녀는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른쪽으로 건너가고 있었고 서둘러 의자를 밟고 창틀에 손을 얹는 그 순간.


-와장창!


지금껏 그들을 지켜주던 자동문이 깨지며, 수많은 좀비 떼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선두에 있던 좀비 떼들은 이사원이 만든 탁자 방어벽에 몸이 막혔지만, 뒤이어 오던 좀비 떼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힘으로 자신의 동료들까지 밀며 그들을 막고 있던 탁자와 함께 파도처럼 탕비실 안을 휩쓸었다.

주체 못 하는 힘으로 밀고 들어온 그들 앞에는 고통도 규칙도 없었다. 뒤엉켜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무게에 살이 파이고 얼마 없는 그것들의 피가 모여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것들의 눈은 오로지 사냥감, 신선한 육체와 피를 가지고 있는 이사원만을 바라보며 괴성을 지르고 팔을 뻗었다.

그 모습에 이사원은 서둘러 그녀가 깔아 놓은 겉옷 위로 손을 얹고 서둘러 창문을 뛰어넘었다. 급한 마음에 담장의 담을 넘듯 창틀을 딛고 넘으며 건물 외벽 난간에 발을 올렸지만, 새벽부터 내리던 빗물이 그의 발을 미끄러트렸다.


“야! X새끼!”


4층 난간 위에서 빗물에 미끄러져 중심을 잃은 그의 모습을 보며, 여사원이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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