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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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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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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부엉이[3]

DUMMY

저 멀리 부엉이 하나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는 모습이 보인다. 소리 없는 날갯짓으로 빠르게 사냥감에 다가가 잡고 취하며 먹는 녀석의 모습.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밤. 사냥에 성공한 밤새가 울어댔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다시 천막 안이었고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신을 앗아간 영감의 목소리. 모두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영감을 숨기고 4786의 이름을 부를 때. 그가 먼저 영감을 찾았다. 이대로는 숨어 지내기 싫은 그의 고집이었다.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갑갑하고 몸이 떨려왔지만 이겨내려 의식하고 또 의식하니, 기절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얼굴을 못 드는 그의 불안한 모습을 보며 한나는 애꿎은 손톱만 깨물었다.

하루가 어떻게 시작하고 끝나는 것인지 모르게, 어느새 밤이 찾아오고 눈치를 살피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을 청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을 밤새우며 4786을 간호한 한나도 지쳐 잠들고, 어린 민준이와 신 자매 그리고 털보, 영감도 깊은 밤 사이좋게 모닥불 앞에 모여 잠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홀로 깨어 있는 4786이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거리며, 동굴 끝으로 다가갔다.

갑갑한 마음에 환기를 시키기 위해 동굴 입구로 자리 잡은 그가 밤하늘이 내려앉은 숲을 바라봤다.


“···.”


역시 보인다. 지금껏 모든 것이 번져 보이던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뭘까?’


어느 정도 자신의 눈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 안 보이는 것이 맞을까?


한나의 손길을 따라 호수로 가던 그 길. 일렁이던 횃불이 사라지는 어둠 속에서 그는 갑자기 자신의 움직이는 발과 발밑에 있는 동굴 바닥 면이 보였다. 설마 하던 그의 확신 없던 생각이 선명하게 보이는 미다스 숲을 내려다보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시세포가 망가진 것일까? 아니면 진화한 것일까? 하늘에 작은 빛 밑에 가라앉은 어둠이 이전 낮 생활보다 선명하게 보이는 눈. 저 멀리 보이는 사냥에 성공한 밤새와 몇몇 어슬렁거리는 좀비들.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기 시작한 눈의 변화에 그는 다시 뒤를 돌아 자고 있는 일행들을 바라봤다.

꺼져가는 모닥불 사이에 모여 곤히 잠을 청하는 그들의 모습에 속에서 그는 시야가 하얗게 번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빛의 영향인가?’


다시 절벽을 바라보고 숲을 바라봤다. 어슬렁거리는 좀비들···.


‘저것들도 어둠 속에서는 보이는 것일까? 나는 지금 무엇일까? 인간? 아니면 좀비? 그도 아니면 진짜 괴물이 된 것일까?’


4786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치고 내려다봤다.


‘털보 형님이 설명한 내 모습. 지금 내 피부색은 정말 무엇일까?’


선명하지만 색이 없는 시야 속에서 그는 침묵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자고 있는 한나 일행을 바라봤다.


‘나는 저들과 다른 것일까?’


그는 다시 숲을 바라봤다. 두 존재의 사이에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그의 뒤로 인기척 하나가 다가왔다.


“무슨 생각 중인가?”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


“?”

낯선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려 그 존재를 확인했다. 구부정한 허리에 뒷짐을 지고 다가오는 사람의 형태. 영감이 확실했다.

치매 걸린 영감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이상한 추임새와 춤을 버리고 멀쩡하게 4786이 앉아 있는 동굴 입구로 걸어왔다.


“이름이 47이라고 했나? 특이한 이름이구먼. 그래··· 눈이 멀었다는데.”

“?”


떨릴 줄 알았던 몸이 멀쩡하다. 손을 올려 확인해도, 작은 떨림도 없고 영감을 보면 미치게 뛰던 심장도 멀쩡하게 제 일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한 것일까? 자신의 상태에 4786은 의문을 가지며 자신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는 영감을 바라봤다.

그의 시야에서 하얗게 보이는 영감의 머리. 간신히 남아 휘날리던 그의 옆머리와 뒷머리 안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표정이 하얀 여우를 연상하게 했다. 음흉한 미소와 함께 다가온 영감이 미다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왜, 갑자기 보이던 것이 안 보이니까 생각이 많아졌나? 아니면 두려워서 뛰어내리려고?”

“···.”


4786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내가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이곳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지 벌써 2번하고 다시 겨울을 기다리고 있지.”


어색한 분위기 속. 혼자 있고 싶은데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것을 생각한 4786이 그를 노려보며 눈치를 줬지만, 영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전히 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말을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겨울이 오면 이 동굴은 정말 얼음과 같아서 살기 싫어지는데, 또 버티고 버티다 보면 봄이 온단 말이지. 그래. 봄은 오더라고. 자네는 지금 겨울인가?”

“···.”

“껄껄걸. 과묵한 친구구만. 사실 나도 아직 겨울이라네. 봄을 기다리고 있지.”

“아직 시기상 가을입니다. 영감님.”

“껄껄껄. 그걸 누가 모르나, 마음 말일세 마음.”

“마음?”

“그래, 봄은 그냥 늙은이가 너무 추한 모습만 보여줘서 멋져 보이려고 한 것이지. 목적을 말하는 것이라네.”


‘목적···.’


“그래. 목적이네. 자네는 목적이 없나? 지금 자세 표정을 보면 모든 것을 잃고 허무해진 표정이야.”

“저는 제 표정을 모릅니다.”


그가 다시 영감의 얼굴을 쳐다보며 차갑게 대꾸하자, 여우는 사라지고 은은하고 인자하게 웃고 있는 평범한 어르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도 내 표정을 모른다네. 뭔 당연한 말을 하고 있나.”

“···.”


정상으로 돌아온 게 맞을까? 4786의 표정이 구겨졌다.


“눈이 보이든 안 보이든 원래 본인의 표정은 못 보는 거야. 그래도 상대방은 보이지 않나. 자네가 지금 슬퍼하는지 기뻐하는지. 저 한나라는 아이. 지금 눈이 퉁퉁 부어있다네. 누구 때문에 얼마나 울었으면··· 잉··· 쯧쯧.”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4786이 다시 강하게 그를 노려봤지만, 그는 다시 겨울이 오고 있는 미다스를 바라보며, 읊조리기 시작했다.


“목적이 뭔가. 자네가 이곳에 들어온 목적 말일세. 사람들은 이곳에 현혹돼 들어온 것이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들어왔다는 사람도 그 ‘살기 위해’가 그 사람의 목적이야. 목적은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살기 위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

“···.”


영감의 한껏 진지한 울림이 그의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직 영감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4786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 목적은 복수라네. 복수를 생각하며 여기서 추운 겨울을 버텼지.”


‘복수.’


“참 의미 없는 목적이지만, 난 아직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네. 그게 내가 사는 목적이야. 오늘을 버티는 힘이고.”


복수라는 말에 그에게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진지해진 표정 속에서 자신의 과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사형수로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죽고 싶어도 죽이고 싶은 상대로 인해 버티고 버티며 살던 자신의 모습.

4786은 그의 고백을 통해 살기 위해 뛰기만 하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말했다.


“···무슨 복수입니까.”


고개를 돌려 그의 표정을 본 영감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관심이 가는 표정이구먼.”

“저도 복수를 꿈꾸고 여기에 들어왔습니다.”

“동류였구먼. 껄껄껄.”

“하지만, 저는 포기했습니다. 대상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거든요.”

“복수는 왜 하기로 했나?”

“그건···.”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는 4786이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어서 영감에게 말했다.


“제가 사랑하는 자를 제 손에서 뺏어갔습니다.”

“··· 흠. 표정이 살아났구먼, 많이 사랑하는 자였나 보네.”

“네.”


차갑게 얼어있던 그의 표정 속, 여전히 회색빛이 도는 그의 눈빛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영감은 그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한번 웃고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복수를 도울 방법은 없지만, 복수를 끝낼 방법은 알고 있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그의 말에 4786은 솔직한 대답으로 영감과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내 복수를 도와주면 되네.”

“?”


갑자기 크게 핸들을 꺾는 듯한 어이없는 말에 4786의 살아나던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이어 말했다.


“사실, 나는 여기 검은 회사의 부장이었다네.”

“!”

“놀래는 것 보니까. 검은 회사가 뭔지 아는 것 같구먼.”


솔직히 놀라지 않았다면 그게 거짓말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검은 회사의 직원. 그것도 부장이라면 고위직. 그런 자가 치매 걸린 상태로 자신의 앞에 있다.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따지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는 최대한 억누르며 다음에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 회사. 아니 이곳 미다스에는 비밀이 있네.”


그는 다시 미다스를 응시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참가자들, 그래. 자네와 저기 털보놈과 같은 놈들이 이곳에 들어올 때 소원을 들어준다며 자네들을 꼬드겼을 거야. 몇몇은 현실적인 소원, 돈과 권력, 그리고 죄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원하고 말하겠지만 사실 이들이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은 더 커.”

“그게 무슨 말이죠?”

“죽은 자의 소생.”

“!”


그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이 4786에게는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죽은 자의 소생. 말 그대로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낸다는 소원. 현실과는 거리가 먼, 말도 안 되는 소원이었다.


“···너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4786이 영감의 말을 못 믿으며 그의 말을 부정하자, 영감의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자네 상황은 현실적인가? 자네 지금 모습을 털보 놈이 설명해서 알겠지?”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해도 자신의 모습부터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머리에 잿빛 피부. 거기에 낮 눈 잃은 장님이 밤눈은 잘 보인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네뿐 아니라 사형수를 모아두고 살인 게임을 벌이는 이 장소는 현실적인가? 저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괴물들은 어떠한가?”

“···.”


좀비··· 이미 죽은 자가 되살아 난 것같이 걷고 뛰며 피를 갈구한다. 그 하나의 존재가 영감의 말에 신뢰성을 가져왔다.


“사실 이곳은 테스트 지역이라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저런 괴물은 없었는데, 올해부터 생긴 것 보니까. 테스트가 성공한 것 같네.”

“테스트라 하면···.”

“죽은 자의 소생 아니, 어쩌면 더 크고 위험한 것이라네.”

“···.”


4786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다른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죽은 자를 소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의 반응을 본 영감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자네는 저 죽어있는지 살아있는지 모를 괴물들이 어디서 처음 시작됐었는지 아나?”


‘타워···.’


4786이 자고 있는 한나를 바라보고 그녀가 자신에게 해줬던 좀비의 첫 발생지에 대해 기억했다.


“알고 있나 보구먼. 그래 타워네. 그 타워 지하에 비밀이 숨겨져 있네, 거기로 가면 자네의 복수를 없앨 방법과 내 복수를 성공할 방법이 있지.”

“···.”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생각과 고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이 앉아 있는 바닥만 바라봤다.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고심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사실 자네. 지금 보이지 않나.”

“?!”

“틀리거든. 자네가 빛을 볼 때와 어둠을 볼 때. 내가 말하지 않았나. 상대는 자신의 표정을 본다고.”“···.”


딱히 숨기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숨기게 된 그가 솔직한 심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네 사실 보입니다. 정확히는 빛이 강하면 안 보이고, 어둠에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껄껄껄. 그래. 그럼 된 거야.”


다시 여우가 나타났다.


“자네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둠에 강하다는 것만 해도 충분하네. 지금 타워는 아마 짙은 어둠만 가득할 것 같거든. 그리고···.”


영감은 천막을 한 번 보고, 4786의 손을 한 번 바라봤다.


“자네가 단지 외형만 변한 게 아니라···.”

“?”

“몸이 쇠처럼 단단하게 변한 것 같아.”


4786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가 내려친 바닥이 부서진 것을 영감은 기억하고 있었다.

치매 증상이 오며 다른 사람처럼 변해도, 흐릿한 기억에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영감이었다.


“어떤가? 난 자네라면 충분히 내 복수와 자네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네.”


‘죽은 자를··· 살린다.’


“자, 어떤가. 자네의 생각 말이네. 목적이 다시 생기나? 마음이 다시 움직이나?”

“저는···.”


4786은 아무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허함이 가득했던 마음속에서 이미 죽은 ‘그녀’를 되살리고 있었다. 그리운 그녀.


‘어머니···.’


한참 그의 고민을 기다리던 영감. 그리고 생각을 굳힌 4786이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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