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모범상가
그림/삽화
모범상가
작품등록일 :
2024.08.21 19:35
최근연재일 :
2024.09.14 21:34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019
추천수 :
39
글자수 :
154,043

작성
24.09.14 21:34
조회
16
추천
0
글자
13쪽

26화.

DUMMY

26화. 마법의 시대



시간은 미하엘이 쓰러지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 아이가 기눙가프에 온 지도 어언 1년이 되어가기 며칠 전으로.


“그 피가 이어진 것인가? 내 조카에게도.”


어둑한 집무실에 앉아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인간 남자.

그는 밀랍으로만 봉해졌을 뿐 인장이 찍히지 않은 겉면을 보며 어릴 적을 회상했다.



“200여 년 전, 여신의 사자를 만난 것은 계시였다. 내 가문의 숙원을 이루라는······.”



가주인 제 아버지가 들려준 옛이야기, 구전으로만 계승되는 그 이야기가 점점 실감 났다.

특별한 핏줄이라 제 조카의 성취가 남달랐다.

그 때문에 미약한 흥분이 일었다.

제 가문이 달의 여신에 축복을 입었음이 다시금 증빙됐다.

환희에 매몰된 남자는 방이 어둑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달빛을 빨아들여도 미약할 뿐이었다.

당장 책상 위마저 희미했지만, 그는 열감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구도 오르지 못한 대마법사가 된다면.”


명분은 충분해진다.

제 가문이, 그가 오랜 세월 품었던 갈망이 이루어질 것이다.


“······대체할 수 있겠지.”


유일한 방해물은 진즉 스틱스를 건넜다.

솔레, 그러니까 여신이 낳은 자손인 태양은 제 조카뿐이다.

남자는 입꼬리를 말며 책상 옆의 벽난로로 가 서신을 던져넣었다.

길리의 성취, 핏줄, 여신의 사자 등의 단어가 타들어 가다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내세울 만한 것이 생겼으니 그간 묵혀뒀던 계획을 실행할 차례였다.

이를 위해 남자는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조심스레 났다. 남자가 들어오라 허락하자, 웬 그림자 같은 것이 서재 안으로 이동했다.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 섰으니 그렇게 보일 밖에.


“주군.”


흑의인은 예부터 올리고 후드에 달린 모자와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허리춤의 사슬에 끼워 고정했다.

그러는 동안 드러난 얼굴은 꽤 준수한 수준이었다. 얼굴을 가리는 것은 그저 암약하기 편해서였다.

서른 중반, 제국에서 가장 흔한 갈색 머리칼과 눈동자.

가면을 벗은 것만으로도 이처럼 많은 정보가 드러났다.


“······.”


남자는 주군의 속내를 가늠하려 벽난로의 재를 곁눈질했다.

온전한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으나, 아마 주군의 누이동생이 보내온 서신이리라.

내용은 솔레라 불리는 그분의 성취에 관한 것일 테고······.

제가 먼저 입에 담을 만한 것이 못 됐다.


“주군, 방이 어둡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빛없이 무언가를 읽는 습관은 좋지 않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틈만 나면 잔소리.”

“습관을 고치셨다면 들을 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 깐깐하니 아직 혼자지.”


남자의 잔소리에 주군이라 불린 자가 불을 켜라 명했다.

그 즉시 남자는 고풍스러운 지팡이의 머리 부분이 위를 향하게 했다.

지팡이는 특별한 인간이라는 표식이다.

신의 능력을 얻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뜻이라 제 목숨보다 귀히 여긴다. 하여 마법사들은 지팡이를 떼어놓지 않는다.

잠을 잘 때도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조차도.

지독한 수준이라, 밤일할 적에도 마법사와 지팡이를 모두 상대해야 한다는 질 낮은 농담이 떠돈다.


“리히트 엑디플로노.”


지팡이 끝에 마법진이 맺히자마자였다.

샹들리에의 형태를 한 마법등이 백색으로 깜빡거리다 집무실 전체를 비췄다.

할 일을 마친 남자는 지팡이의 머리 부분을 아래로 내렸다. 자신보다 윗사람과 있을 때, 혹은 공격 의사가 없다는 뜻을 드러내고 싶을 때 이렇게 한다.

방이 환해지며 주군이라는 자의 인상착의가 드러났다.

칠흑 같은 밤을 닮은 흑발과 한겨울 바다를 연상시키는 벽안. 시선을 잡아끄는 동공처럼 마흔 초반의 외양이 수려해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빛이라······.”

“······.”

“솔레는 나기 전부터 정해진다고 하나······ 그놈은 아니지. 주제에 맞지 않게 먼저 자리를 차지했던 비천한 그놈은.”


주군이라는 남자는 크라바트를 매만지며 잠시간 재를 응시했다.

그러다 밀랍에 봉인 마법까지 걸린 서신 몇 장을 심복에게 건넸다.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시기라 적아를 잘 분별해야만 했다.


“일단 제라도르 백작가의······.”


서신의 밀랍에 찍힌 가문의 문장이 불빛에 번득였다.

까마귀가 웬 꽃씨를 물고 있는. 평범한 꽃씨가 아니라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



“흠.”


미하엘은 쪼그려 있는 아이의 등을 가만히 살폈다.

잔뜩 굽고 휘었던 등은 반듯하게 펴진 지 오래였다. 곧은 등뼈에 마력이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를 목적으로 제작한 십자 목걸이는 현재에 이르러 가운데의 루비만 남았다.

이는 아이가 숲의 마력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증거였다.


‘상당히 크겠어.’


처음 예상한 것보다 더.

아마 아이를 버린 자들과 맞닥트려도 몰라볼 것이다.


‘10년 세월까지 더해지면.’


인간을 기준으로 하면 꽤나 긴 시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게다가 성인도 아닌 유년기는 새싹과 유사하다는 것도. 어떤 나무가 될지 결정되는 시기이니 잘 길러내야 한다.

본래는 마력만 키워주고 방생할 참이었는데······.

미하엘이 생각에 잠긴 사이, 니콜라이는 빈 땅에서 눈을 돌렸다.

오렌지 나무 씨앗은 여태 소식이 없었다.

상심한 채로 활력 넘치는 코발트 로즈 군락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의 부러움을 눈치챘는지 대지 정령들이 콧대를 세웠다.

잘난 체에 응수하지 못하고 콧김만 뿜고 있던 그때, 웬일로 미하엘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니콜라이.”


천지가 개벽하나 싶은 드문 일이었다.


“예······? 예.”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예 처음이라 니콜라이는 당황했다.

상대가 어떤 감정이든 미하엘은 개의치 않았다. 무엇이든 시기를 정하는 것은 저였고, 당장은 대화를 할 참이다.

제 그늘에 아이를 둘 기간이 10년으로 늘어서다.

즉, 책임져야 하는 기간도 늘었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진정 마법사가 되고 싶으냐?”

“······.”


제 질문에 아이는 즉답하지 않았다.

단순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아이의 영특함 대로 미하엘의 속뜻은 ‘복수’에 관한 거였다.


“너를 이곳에 버린 정체불명의 인간들, 그리고 그것들과 연관된 슈마이켈 변경백.”

“······역시. 다 알고 계셨네요.”

“너 역시 그러하지.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진즉 알아채지 않았누.”


미하엘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의 내력이 궁금하지 않다.

까놓고 말해 요만큼의 관심도 없다. 더군다나 과거라는 것은 이미 지나버린 때. 그것을 얼마만큼 등에 질지 선택하는 것은 아이였다.

제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오직 현재, 아이의 현재뿐이다.


“패를 까발렸으니. 일단 개성 없이 새까만 도적 차림의 그것들 말이다.”

“······.”

“죄 마법사였다.”


중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이것이었다.


“작금의 인간계에서 마법사는 귀족들만이 될 수 있지. 몇몇 평민과.”

“전부터 느낀 건데, 미하엘 님은 인간 세상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아요.”

“빙클러 상회의 회주 자리를 도박으로 따진 않아 그런다.”


미하엘은 주제와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우두머리인 남자, 그것의 마력은 상위 수준이었다.”

“그것까지······ 아, 통찰안.”


제법 놀랐던 니콜라이가 저 스스로 풀이하고 이해했다.

아이는 물론 미하엘도 복수의 대상이 마법사에다 귀족임을 인지한 상태였다. 결단코 쉽지 않다.

바위를 부수진 못해도 더럽힐 순 있다지만 달걀은 깨진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물으마. 마법사가 되고 싶으냐?”

“예.”


니콜라이는 시퍼런 한을 떨구며 즉답했다.

마냥 입을 다물어선 안 되는 순간임을 직감해서였다. 스틱스를 오가는 사공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미하엘에게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뭔가를 물었을 때 어물쩍 넘어가 버리면 기회가 사라져버린다.

정확히 어떤 기회인지는 미하엘 그만 알지만.


“제 내력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 악귀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어미를 죽음으로 몰았고, 아비를 죽였으며 저마저 죽이려 했다.

목숨값을 받아낼 것이다.

니콜라이가 심중에 풀어 고이 기르고 있는 독이었다.


“혹, 베풀어주신 은혜와 뜻이 다르다면,”

“이곳을 나가기라도 하려고?”

“······.”

“아니면 콱 죽어버리겠다며, 픽 꺾일 그 목에 칼이라도 들이댈 참이든?”


미하엘은 평소처럼 신랄했다.

사계절을 같이 보낸 아이라 할지라도 할 말을 참지 않았다. 정 없는 그의 모습에 니콜라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쥔 패가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다.


“이번 참에 확실히 하마. 난 너의 과거에 관심이 없다.”

“······.”

“너의 과거로 말미암아 기워나갈 미래 역시도.”


누차 말했듯, 그리고 냉정히 말해 아이의 현재에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줍기 전까지는 말이다.


“난 너의 현재만 책임질 것이다.”

“······.”

“네가 내 그늘에 있는, 이 숲을 떠나기 전까지의 현재만.”

“왜······ 생판 남인 저를 책임지려 하세요?”

“일족의 율법이 그런다. 어머니 나무가 정한 일족의 율법이.”


약한 자를 긍휼히 여겨라.

강자로서 자비를 베풀어라.


“어쩌누? 나를 빚어낸 어머니의 뜻이 그러한 것을. 하니 말을 잘 들어야지.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

“······.”


미하엘의 어조는 허무가 짙게 배어있었다.

오늘까지 니콜라이는 제 스승의 책임감이 신념인 줄 알았다. 강자가 지닌 관용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것.

하지만 절대 아니었다.

스승에게 책임이라는 것은 족쇄였다. 마리오네트를 제작한 인형사가 웃는 모습만을 저장해서 웃는 것밖에 못 하는 것처럼.


“음. 마법사가 되겠다고 하니 이것저것 가르쳐주마.”

“예?”


대화의 흐름이 하나인 듯 약간씩 튀었다.

종잡지 못하는 니콜라이와 달리 미하엘은 생각 정리를 진즉 끝낸 후였다. 발트메어가 끝나고 노른의 결정을 들었을 때부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꽤 많은 살생을 해야 할 터.”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많은 피를 묻히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고할 자의 피도.”

“······.”

“살인마라 지탄받겠지. 이왕 칼춤 추는 살인마가 될 거라면 차라리 네가 역사가 되어라.”

“역사?”

“그리고 시대가 되어라. 그리하면 세상이 널 살인자가 아니라 영웅, 혹은 혁명가로 기억할 터.”


성공하면 혁명가, 실패하면 반역자에 미치광이 살인마가 된다.

선택지가 두 개라면 전자가 낫지 않겠는가.


“헬리오스 제국을 세운 황제가 그러하지 않든.”


가난한 영지의 남작.

거기에 더해 마법사라 초대 황제는 이단이라며 손가락질받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그러했다.

신의 뜻을 품은 기사들이 존경받는 ‘철의 시대’였다.

오직 검만이 정의이며 옳음이라, 단련한 기사의 육체를 손상할 수 있는 마력과 마법사는 핍박받았다.

억압과 멸시를 견디지 못한 초대 황제는 마법사들을 규합해 전쟁을 일으켰다.

피와 시체로 바벨탑을 쌓았다.

그 결과 황제는 ‘마법의 시대’를 열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움켜쥐었다.


“아랫도리 함부로 놀리며 그저 여자라면, 제 수하나 마구간지기의 아내, 하다못해 막 혼인을 치른 열 다섯짜리한테도 껄떡거렸지.”

“······.”

“한데도 그것은 사후, 신격화되었다.”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해 발생한 누군가의 피눈물은 모두 지워졌다.

보통 4~600년이면 왕조가 오래갔다고들 하는데, 제국은 배의 배를 더하고도 지속 중이다. 여전히 노르드 대륙의 패자로 군림하며 말이다.

이로 인해 초대 황제는 영원불멸할 제국을 세운 태양신의 대리자가 되었다.

날조와 선동.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그를 위해 흩뿌려진 보통의 목숨줄들은 기록되지 않는다. 쉬이 잊힌다.

그들의 희생을 망각하며 시대는 바뀌어왔다.

강철의 시대에서 마법의 시대로, 또 언젠가는 다른 시대가 열리겠지.

인간계는 천변만화하는데 그저 고여있기만 하는 엘브로아 일족은······.


“그것도 해낸 것을 너라고 못할까. 하물며 나의 비호를 받는 인간인 것을.”


미하엘은 하고자 하는 말을 끝마친 말미에 시선을 틀었다.

고요한 숲의 중앙을 향한 때에 니콜라이의 내면에도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역사······. 시대······.”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폐허가 된 내면에서 어떤 것이 싹을 틔웠다. 아직은 금방 시들어버릴 만큼 가냘팠다.

막연한 복수심이 다른 무엇으로 변질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 어려 신념이니 그런 것들은 되진 못하였다. 형체는 불분명했지만 분명코 니콜라이의 인식은 달라졌다.


“이왕 피를 묻힐 것이라면.”


니콜라이는 말랑말랑하기만 한 제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팡이도 농기구도 들지 않아 굳은살이 없었다. 마냥 곱게 자란 대귀족가의 도련님 같다.

이 손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주기를 저녁 9시 10분쯤으로 고정합니다. 24.09.02 13 0 -
» 26화. 24.09.14 17 0 13쪽
26 25화. 24.09.13 17 1 13쪽
25 24화. 24.09.12 25 0 12쪽
24 23화. 24.09.11 30 1 13쪽
23 22화. 24.09.10 33 1 12쪽
22 21화. 24.09.09 33 1 13쪽
21 20화. 24.09.08 42 1 13쪽
20 19화. 24.09.07 42 1 11쪽
19 18화. 24.09.06 47 1 13쪽
18 17화. 24.09.05 51 1 13쪽
17 16화. 24.09.04 50 1 13쪽
16 15화. 24.09.03 53 1 13쪽
15 14화. 24.09.02 49 1 13쪽
14 13화. 24.09.01 57 2 14쪽
13 12화. 24.08.31 56 1 13쪽
12 11화. 24.08.30 57 2 12쪽
11 10화. 24.08.29 65 1 13쪽
10 9화. 24.08.28 67 1 13쪽
9 8화. 24.08.27 71 1 14쪽
8 7화. 24.08.26 86 2 13쪽
7 6화. 24.08.25 92 3 13쪽
6 5화. 24.08.24 108 1 13쪽
5 4화. 24.08.23 116 2 13쪽
4 3화. 24.08.22 142 1 12쪽
3 2화. 24.08.21 151 3 12쪽
2 1화. 24.08.21 198 3 13쪽
1 프롤로그 24.08.21 264 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