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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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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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작품등록일 :
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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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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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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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DUMMY

20화. 발트메어(1)



삐잇-

맑은 우짖음과 함께 무언가가 창공을 선회했다.

착륙 허가가 나길 기다리는 거였다. 이에 미하엘이 짧게 휘파람을 불자, 화려한 깃털을 펄럭인 새가 내려앉았다.

숲지기들의 전서구인 공작발톱 유리독조였다.


“······슐라 님이 보내셨네요.”


슈메테르링이 유리독조의 목에 묶인 스카프를 정리했다.

삼색의 양털로 짠 화사한 스카프는 주인의 취향이 잘 드러났다. 유달리 꾸미기를 좋아하는 슐라의 취향이.


삐이잇-

유리독조는 제 다리에서 서신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무 탁자를 몇 번 콕콕 쪼며 신기해했다. 원래는 없던 것이 생겨서 그랬다. 유리독조의 호기심을 풀자면 탁자는 오직 니콜라이의 식사를 위해 가공되었다.

땅바닥에 앉아 팔을 뻗어도 불편하지 않을 높이.

구색을 제대로 갖춘 탁자에 유리독조가 온 관심을 쏟을 때였다.


“흠. 작금 보내올 소식이라면.”


미하엘은 돌돌 말린 서신에 손을 가져다 댔다. 본디 다른 이의 전서구가 방문해도 다리를 건들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이다. 다리에 넣어둔 것을 꺼내기 전까진.

양피지를 펴자 치수를 재는 줄자가 그의 손바닥으로 툭 굴러떨어졌다.

슈메테르링은 물론 니콜라이도 궁금해했지만, 미하엘은 서신부터 읽어 내려갔다. 길고 길어 대충 속독했다.


벌써 그립다는 안부와 더불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 가버린 뒤로 연락이 없어 서운하다, 또 언제 방문해 주실 거냐, 혹 놀러 가도 되냐, 언제든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씨앗을 개량해서라도 가져갈 테니 말해달라는 등 별 시답잖은 내용뿐이었다.

발트메어를 고대한다는 말도 여러 차례 언급됐다.

장장 4쪽에 걸쳐 질척이다 말미에 이르러 줄자의 궁금증이 풀렸다.



...아이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겠지요? 라이가 클 때마다 줄자로 치수를 재서 보내주세요. 그러면 이 슐라가 언제든 새 옷을 지어 보낼게요.



슐라도 잘 알고 있는 거다.

미하엘이 다시 제 영역을 방문하는 일은 개미가 코끼리를 낳는 것만큼 희박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니콜라이를 핑계 삼아 서신이나마 계속 주고받으려는 속셈이 잔뜩이었다.


“슐라 님이 온정을 베푸시니 라이의 거지꼴은 면하겠네요.”

“거지꼴은······.”


슈메테르링의 신랄함에 니콜라이가 소심한 항변을 했다.

아무리 빨아 입어도 늘어나는 얼룩과 헤져 구멍까지 생긴 옷을 두둔할 수는 없었다. 누가 봐도 영락없이 거지꼴이었으니까 말이다.


“거지꼴을 면한들. 꼬질이가 어디 갈까.”


미하엘이 2차로 신랄함을 갈겼다.

그놈의 꼬질이.


“깔끔해지면 제가 미하엘 님보다 더 잘날 거예요!”

“퍽이나.”


미하엘이 코웃음을 치자 니콜라이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 서얼마 외모에 막 자신 있고 거들먹대고 그러시는 거예요?”

“자신은.”

“······.”

“본디 잘나서 그런 거 없어도 된다.”

“그, 이걸······.”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니콜라이가 어버버 거리는 사이, 대지 정령들이 바구니를 들고 미하엘에게 다가갔다. 뭐 하려고 그러나 했더니 코발트 로즈를 흩뿌려댔다.

푸른 꽃잎들이 별빛처럼 샤랄라 나렸다.

장미와 미남. 환장의 조합에 니콜라이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


객관적으로 아이의 외모 또한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영양소가 흡입되며 윤기가 생긴 금발과 그와 비슷한 색의 곧은 눈썹,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적안, 쭉 뻗은 콧대, 그리고 발간 입술.

잘 생긴데다 젖살이 오른 통통한 볼로 귀여움까지 챙겼다.

인기 많을 상인데······ 하필 비교 대상이 옆에 있는 미하엘이었다. 숲지기 가운데 외모로도 월등한 그.


“라이. 넌 꼬질이어도 주인님의 꼬질이라 괜찮아.”

“누나아.”


위로라고 나온 아무말 잔치에 니콜라이의 눈꼬리가 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슈메테르링의 속셈은 ‘얼른 달래서 옷 입혀보자.’라 저 혼자 분주했다. 니콜라이의 등을 성의 없이 두드리며 유리독조에게 옷을 내놓으라 보챘다.


삐잇-

엉망진창인 개판에 유리독조가 한숨처럼 우짖었다.

연거푸 그러다가 투명한 다리에서 곱게 포장된 꾸러미를 끄집어냈다. 크기는 물론 부피도 제법 도톰했다.


“······저게 어떻게 저 얇은 다리에 다 들어가요?”

“자알?”

“······.”

“당연히 마법적 처리를 했지. 나중에 주인님께 알려달라 청해봐.”

“귀찮다고 거부하실 것 같아요.”

“자알 질척이면 돼. 그럼 불가능도 가능해져.”


슈메테르링은 저만의 비법을 전수하며 동공을 번득거렸다.

맑은 안광에서 흘러나오는 광기에 니콜라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라고 하면 모가지를 꺾어버릴 것 같았다.


“당장 중요한 건 라이, 네 옷이야. 하나하나 입어 보자.”

“이걸 다요?”


꾸러미를 풀어보니 무려 10벌이나 들어있었다. 몇 벌 안 보냈다고 하더니 순 엄살에 불과했다.

전부 입어 보면 진이 빠질 것 같아 니콜라이는 슬쩍 미하엘에게 눈길을 보냈다.

살려달라는 구조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그가 움직거렸다.

역시.

간혹 밉살스러워도 자비심만큼은 세계 제일이다.


“······!!”


라고 믿었는데······.

미하엘이 외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장미 꽃잎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졌다. 제법 쌓인 꽃잎을 깔개 삼아 아예 등까지 돌려버렸다.

와,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

허탈한 니콜라이의 턱이 빠지든 말든 슈메테르링이 옷 한 벌을 집어 들었다. 요란하지 않고 무난한 회색의 셔츠와 바지.

다행이다 안도한 그 순간 미하엘이 일어섰다. 한번 눕거나 잠들면 좀체 움직이는 법이 없어 모두의 이목을 또다시 끌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 분이 지나고 전서구 한 마리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 얹어진, 나무줄기와 이파리로 얽은 유백색의 화관. 우두머리를 상징하듯 수장인 노른의 것이었다.



***



미하엘은 졸린 정신에도 콧노래 부르는 누군가를 외면했다.

저기에 휘말리면 고달파질 것이 자명해서다.

대체로 무던한 그를 질리게 한 누군가.


“아유, 예쁘다.”


슈메테르링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니콜라이의 옷을 정리했다.

슐라가 보내준 옷들은 재질, 디자인, 활동성까지 모두 나무랄 데 없었다. 한 가지만 빼고.


“요 리본이 제일 맘에 든다. 라이 너도 그렇지?”

“······누나 맘에 들면 됐어요.”


하루 새 해탈한 니콜라이는 흐름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대도 아직까진 목에 감긴 파란색 왕 리본이 부담스러웠다.

완벽한 색깔 배합은 물론 가운데 박힌 다이아몬드마저 고급스러웠지만 지나치게 컸다. 오죽하면 입가를 가린 모양새가 뭘 훔치기 전의 도적 같을까.


“요즘 어린 인간들은 다 이렇게 입는대.”

“슐라 님은 인간 세상을 잘 아시는 것 같아요.”

“그 이유가 궁금해?”

“궁금해요.”

“후후. 비밀이야. 나중에 알려줄게.”


슈메테르링이 짓궂게 오른쪽 눈을 찡긋거렸다.

만족도가 높아서 기분 역시 지나치게 높았다. 인형 놀이할 대상이 생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라이.”

“예?”

“성역에 잘 다녀와.”

“제가 가도······ 괜찮을까요?”

“그러엄. 수장님께서 널 데려오라 명하셨잖아. 의식에 초대받은 인간은 네가 유일해.”

“그건 그거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니콜라이의 수심이 쌓이자 슈메테르링이 다시금 리본을 정리해주었다.


“아무도 널 싫어하지 않을 거야. 배척하지도 않을 거고.”

“······.”

“왜인 줄 알아? 네가 주인님의 것이니까. 대드루이드가 거둔 것에 손댈 머저리는 없어. 감히?”


슈메테르링의 음색은 서늘하면서도 자부심이 그득했다.


“자살 희망자라면 모르지만······ 숲지기에게 있어 자살은······.”


복잡한 표정은 금세 미소 뒤로 꼬리를 감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잘 다녀오라며 등을 떠미는 통에 니콜라이는 길을 나섰다. 곁에는 당연하게도 미하엘이 있었다.

나른한 얼굴.

밖이 싫은 집돌이는 잠을 방해받은 것 말곤 별다른 근심이 없었다.

정말 속 편하다.



***



‘모든 것이 들떴어.’


미하엘은 겨우살이나무가 우거진 숲을 거닐었다.

바람결에 숲지기들이 재잘대는 선율과 흥겨운 발놀림이 리듬을 타고 메아리쳤다. 그들의 환희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감정이 극도로 격해진 연유야,


‘발트메어인가.’


중차대한 의식을 치르기 때문이다.

유백색 숲의 바다를 지난 미하엘은 성역의 초입에 다다랐다. 어머니 나무가 뿌리 내린 곳. 수장만이 거할 수 있는 곳.


“미하엘!”


마중 나온 노른이 아주 잠깐 미하엘은 끌어안았다.

반가움을 격하게 표시한 후 ‘어찌 이리 늦게 왔냐며’ 한 소리 했다. 수장이 마중이나 배웅을 하는 건 미하엘뿐이라서 이목을 제대로 끌었다.

미리 와있던 일족의 눈길이 쏠렸지만 언제나 그렇듯 미하엘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저 편한 자리를 찾고 있을 때 소맷자락이 당겨왔다.


꼴깍.

긴장감에 침만 삼키던 아이가 몸을 바투 붙여왔다.

의지처로 머리통을 박는 꼴에도 미하엘은 다독거리지 않았다. 누군가 적대하든 어쩌든 아이를 해치지 못한다.

명명백백한 진실만을 셈하고선 노른에게 부탁했다.


“아이의 걸음이 어디든 닿도록, 자유를 허해주시길 청합니다.”


성역은 최후의 보루라 인간을 허하지 않는다.

숲지기들이 사멸하고 이내 어머니 나무마저 사멸할 어느 날까지 지켜질 일족의 율법이다. 그것이 깨진 현재, 아이는 한계를 뒤흔들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경이에 경이.

성역에 녹은 마력은 통찰안이 트이지 않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깨달음의 마지막 벽에 이르렀을 때 결정적 한 수가 될 터였다. 오늘의 경험이 말이다.


“넌 너무 물러. 거둔 것들에 한해선 언제나.”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구긴 노른이었지만 청은 받아들였다. 그가 권속을 손짓으로 부르자 열 살짜리 서넛이 쪼르르 달려와선 일렬로 섰다.


“데려가서 이것저것 먹이고 잘 가르치거라.”

“예.”

“나를 대하듯 성심을 다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지엄 한 명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순종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니콜라이를 연신 흘끔거렸다. 비슷한 나이에, 대드루이드가 거둔 아이라 호감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가자.”


아이들은 얼른 같이 놀고 싶어 니콜라이를 잡아끌었다.

천진한 권속들과 수장의 비호 아래 성역 곳곳을 제약 없이 구경하는 게 가능했다. 신전 느낌이 물씬 풍겼다. 경건함이 배인 곳들을 다닐수록 저릿함이 심해졌다.


‘아프다기보단.’


태양? 달? 빗소리? 낙엽?

항거할 수 없는 뭔가가 얇디얇은 이불이 되어 쌓이는 것 같았다.


“······멍하게 서서 뭐 해?”

“으, 응?”


가만히 서서 곱씹는 니콜라이를 아이들이 재차 잡아끌었다. 그들로선 성역을 자랑하고 싶었고 수장의 명을 완벽히 이행하고도 싶었다.

다만······.


“이리 와 봐. 마지막으로 보여줄 게 있어.”

“뭔데?”

“그게······ 어머니 나무의 아홉 뿌리.”

“아홉 뿌리?”


하얀 나무의 윤곽조차 흐릿해진 성역의 북쪽 끝.

아홉 방향에 걸친 하얀 뿌리가 흡사 무덤처럼 불거져 있었다. 시각, 청각, 후각 뭐가 됐든 휘발되어버려 왈칵 두려움이 치솟았다.

감각이 상실된 적막을 견뎌내기 위해 니콜라이는 입술을 사리물었다.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바들바들 떨었다.


“어머니 나무의······ 분노라 그래.”

“분노?”

“잘못을 저지른 일족은 이곳에 갇혀 천형을 풀어야 해. 12시 방향의 첫 번째 뿌리를 시작으로,”

“절대, 아홉 번째 뿌리는 입도 벙긋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그만해!”


아이들이 귀를 막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잘 가르치라고 해서 이곳까지 온 터라 돌아가고 싶은 티가 역력했다. 저 또한 비슷한 심정이라 니콜라이는 그만 가자고 소리쳤다.

유령의 집을 탈출하는 것처럼 뿌리가 없는 곳까지 내달렸다.


“후우, 후우.”


합창하듯 모두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러고야 진정되는지 아이들 가운데 대장인 녀석이 니콜라이에게 소곤거렸다.


“네가 꼭 알아야 할 게 있어서.”

“?”

“며칠 전에, 첫 번째 뿌리의 천형을 끝낸 자가 있어.”

“······.”

“그게, 대드루이드 님도 얽힌 사건이었는데······. 나중에 누군지 알려줄 테니까 말도 섞지 마. 무조건 피해. 알았지?”

“응.”


아이들은 마냥 친절했다.

무한한 호의를 대가 없이 받다 보니 정작 니콜라이의 말수가 적어졌다. 궁금한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스승님이 얽힌 사건이라는 게 대체 뭐지?

누군가가 벌을 받아야 할 정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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