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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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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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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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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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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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19화. 니콜라이의 오렌지 나무(2)



“······.”


미하엘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서두를 던지고선 아이의 분석을 차분히 기다렸다. 맥락을 어느 정도 파악하는지 본 연후 그만큼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해와 수용이 병행되지 않은 주입은 쓸모없는 지식에 불과하기에.

그를 아는 니콜라이가 골몰했다. 한참을 그러다 도로 오렌지 나무 씨앗이 된 것을 빤히 보았다.


“통찰이라는 건······ 일종의 정보 수집인 거지요?”


아이가 제출한 답은 완벽했다.

영특한 데다 맥락을 잘 파악한다는 것을 다시금 입증한 셈이다. 니콜라이가 ‘그래서 슐라 님이······.’라고 웅얼대는 것만 보아도 알만했다.

슐라가 아이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마력을 읽고 그를 바탕으로 추론한 거였다.


“핵심을 잘 짚었다.”

“히히.”


아이의 웃음은 가벼웠으나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묵직했다.

정보라는 것이 무엇이던가.

누군가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나 지식이다. 이러한 정보의 총량이 늘어날수록 휘두를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


“미하엘 님 덕분에 알게 됐어요. 오렌지 나무 씨앗이 씨앗이었을 때랑 컸을 때랑 마력이 달랐거든요.”

“흠. 혈통이 빼어난 탓이겠지.”

“예?”

“혼잣말이다. 보는 눈이 남달라서.”

“제가요?”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누?”

“없긴······하지요.”

“하는 짓은 영락없이 맹꽁이인데.”


미하엘은 ‘그렇지 않다.’라고 항변하는 니콜라이를 직시했다.

찰나의 찰나였고, 오렌지 나무 씨앗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이의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것은 거짓부렁이 아니다.

아무리 제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얼마큼을 엿볼 수 있냐는 별개였다.

심안의 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을 줄은.


‘이 아이는.’


숲지기로 치환하면 저 같은 대드루이드나 수장이 될 자질을 지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이에게 있어 기눙가프는 최상의 환경이다.

적절히 활용하면 가능성뿐인 자질을 만개할 수 있을 터.

유추하고 분석한 것을 잘 갈무리한 후였다. 미하엘은 다음을 이어 나갔다.


“정리해 봐. 오렌지 나무에서 어떤 정보를 알아냈는지.”

“음······. 활력 넘치는 씨앗이구나, 튼튼하고 병해가 없는 건강한 묘목이구나, 나뭇가지가 고르고 휘어짐이 없어 태양을 골고루 잘 받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번 역시 정답이었다.

오렌지 나무 씨앗을 확장해보자면 이렇다. 어떤 것이 지닌 마력은 얼만지, 마력의 성질이 무엇인지,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모조리 파악할 수 있다.

이점이 그저 마력의 흔적을 추적할 뿐인 마력 탐지와의 확연한 차이점이다.

질적으로 다른, 생사를 가르는 차이점.


“이처럼 정보가 많아지면 무엇으로든 활용할 수 있다.”

“······.”

“무엇으로든. 상황을 제 입맛에 맞게.”


통찰안을 깨닫게 되면 아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저의 수준보다 상위의 적을 맞닥트리더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니, 당분간은 통찰안을 깨닫는 것에만 주력해라.”

“예.”


니콜라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마냥 생기 넘치는 아이를 다시금 스친 미하엘의 시선이 장미꽃밭에 머물렀다.


‘1년 안에 통찰안이 트인다면.’


제가 말한 대로 아이는 가장 강한 무기를 쥐게 된다.

이것이, 제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이었다.

어차피 숲의 마력에 아이를 조율해야 하는 시기라 마법은 배울 수 없다. 자칫하다간 균형이 깨져 아이가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허용된 한도 내에서 효율을 짜내어야 할 터.


“너 하기 나름이다.”

“열심히 할 거예요! 포기하지도 않을 거고!”


의욕이 충만하다 못해 하늘에 궁둥이를 찔러댔다.

미하엘은 입술을 앙다무는 아이를 두고 걸음을 옮겼다. 주워온 것에 대한 책임은 다하고 있다. 나머지는 꼬질한 하룻강아지의 몫.


“······.”


멀어지는 미하엘의 뒷모습을 니콜라이는 시선으로만 뒤따랐다.

끈덕지기 짝이 없었다.


‘······스승님.’


심장이 뜨끈해지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입안이 간질거렸다.

연신 우물거렸지만 끝내 끄집어내지 못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제게는 자격이 없었다.

통찰안을 익혀 나의 스승님이 되어달라 하자.

절로 웃음이 나오는 목표가 생기자 니콜라이의 눈빛이 열망을 품었다. 전에는 그냥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면 현재는 스승님 같은 대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너무나도 높은 이상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 제자가 되고 싶어요.’


물론 미하엘의 성격상 못나든 잘나든 신경 쓰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책임과 의무니까.

어슴푸레 짐작하게 된 니콜라이는 도리어 의지를 불태웠다.



***



“우음. 싹을 틔우면 한 걸음 떼는 거라 하셨는데······.”


니콜라이는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찔렀다.

이 밑에 오렌지 나무 씨앗이 묻혀 있다. 아주 특별한 씨앗이.

스승, 그러니까 미하엘 님이 ‘네 깨달음 여하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씨앗으로 남을지, 어엿한 나무가 될지.’라고 하셨다.

요약하자면 스승이 준 건 깨달음을 먹고 자라는 나무였다.


그것은‘어떤 꽃씨’를 접붙인 새로운 종이었다.

입 아픈 설명이지만 생전 처음 보는 씨앗이다. 개량한 오렌지 나무 씨앗도 접붙인 꽃씨도.

특히 꽃씨는 그 자체로 특별해서 꽃이든 나무든 가리지 않는단다. 꿈망울초라고 악몽을 먹고 자라는 꽃씨를 개량한 것이라서.

꿈 대신 성취, 열망, 깨달음, 마력 등을 먹고 자랄 수 있게 했단다.

이는 어느 숲지기가 성취가 늘 때마다 기뻐하는 제자를 위해 연구한 거랬다.

제자의 생글생글한 표정을 자주 보고 싶어서라나.


······부럽다.

오직 제자를 위해 기나긴 세월 연구에 매달려 품종을 개량해 낸 애정과 그 애정을 받았을 제자가 말이다.


“······.”


니콜라이는 쪼그린 그대로 상체만 틀었다.

제 뒤편의 넝쿨 의자에 웅크려 있는 덩어리. 젖은 빨랫감처럼 보이는 그것은 미하엘이었다. 시선을 받자 스승이 말문을 여셨다.


“그것도 못 하면 때려치워라. 가망이 없는 것이니.”

“하아아.”


어느 스승과 너무도 달랐다.

애정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제가 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다. 그렇지만 조금쯤 살가워질 수는······.

아니다.

암만 상상을 해보려고 해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 애초 불가능했다. 가능했다면 제가 아니라······.


“한숨으로 씨앗을 자라게 하려는 거야?”


슈메테르링이 쪼그린 채 허벅지로 팔꿈치를 받쳐 턱을 괴었다.

장난기와 웃음기가 잔뜩 묻은 어투로 보아 또 놀림거리를 찾나 보다. 제법 면역이 생긴 니콜라이는 질문을 삼켜버렸다.


“혹시 누나는 본 적 있어요?”

“무얼?”

“스······, 미하엘 님이 웃으시는 거요.”

“아니. 단 한 번도.”


슈메테르링의 즉답에 니콜라이는 콧잔등을 실룩거렸다.


“한 번도요? 그래도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쯤은······.”

“보긴 봤어. 한쪽 입가를 요렇게 올리는 건 몇 번쯤.”


슈메테르링이 흉내를 낸다고 왼쪽 입매를 손가락으로 끌어올렸다.

미소 쪼가리라고 하기에는 비소 같기도 하고 그냥 근육이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애매했다.

이런 뚝뚝한 사람에게 뭘 바랄까.

니콜라이는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살가운 구석은 없어도 배려는 넘쳤다. 스승이 내준 과제는 어려웠지만,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깨달음을 얻기에 기눙가프만한 곳은 없어서였다.

왜냐면······.


“웃진 않으셔도 나쁜 분은 아니잖아요.”

“니콜라이 너도 알게 됐구나. 요 기특한 것!”


슈메테르링이 격하게 머리카락을 헤집자 니콜라이의 몸뚱이도 같이 흔들렸다. 이제야 잘 먹으며 성장하는 중이라 버티는 힘이 부족했다.


“학습하기 좋은 환경에 맞는 과제를 내주신 거, 저는 알아요.”


기눙가프에는 다양한 마물이 살고 있다. 인간 세상에 있는 마물의 종류는 이곳의 100분의 1밖에 안 된다. 상위종은 평생 볼 일이 거의 없고.


‘운이 나쁘면서도 좋은 거라던데.’


상위종을 만나면 십중팔구 죽지만 살아남으면 부와 권력을 얻게 된다.

마법사들의 수장직은 따놓은 셈.

그 탓에 마법사들은 일생에 거쳐 상위종을 찾아 헤맨다. 마법사를 싸잡아 미친놈이라고 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염원일 마물들이 이곳에선 지천으로 깔렸다. 심지어 인간 세상에 비하면 마력의 양도 100분의 1 차이가 난다.

풀어 말해 인간 세상의 상위종이 이곳에선 기껏해야 중위종 밖에 안 된다.

그만큼 관찰은 쉬우며 각각이 지닌 고유의 마력은 더 짙고 다양하다. 학문을 갈고닦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아마 제 아이를 아카데미에 보내려는 귀부인들이 알았다면, 라이문트 금화를 싸 들고 왔을 거다. 장담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곳이 니콜라이의 놀이터였다.


“미하엘 님.”

“······.”


웅크린 뭉치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이 없다.


“저 진짜,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

“누가 구박하든?”


댕댕한 의욕에 엉뚱한 회신이 날아들었다.

니콜라이의 눈꺼풀이 끔벅거리는 동안 미하엘이 외투를 어깨 아래로 내렸다. 기다린 양 광원이 그의 얼굴을 탐미하듯 쪼았다.


“기도문 그만 외도 된다. 실패해도 그러려니 할 터이니.”


미하엘이 햇빛에 더 창백해진 손을 까닥였다.

길쭉한 손끝이 향한 방향, 거기에는 대지 정령 세레스들이 모여있었다. 오늘도 코발트 로즈를 가꾸고 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부지런하다.

니콜라이가 푸른 장미의 물결을 멍하니 보는 사이, 참된 일꾼인 두더지들이 무어라 회의했다.

저들끼리 몇 마디를 나누다가 농기구를 끌며 니콜라이에게 다가왔다.


톳톳. 도톳.

왈패처럼 에워싼 채 종알거리는데 니콜라이는 알아먹지 못했다.

방목형인 미하엘은 물론 그저 흐뭇해하는 슈메테르링도 통역해 주려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인간이라 서럽다, 정말.


“······날 도와주려고?”


두더지들이 괭이로 땅을 파는 몸짓을 해서 간신히 해석해냈다.

이들이 나선 것은 스승님 때문이었다. 아까의 손짓이 ‘저것 좀 도와 봐.’라는 뜻이었겠지.

저의 과다한 의욕이 귀찮으신 모양이다. 전담자까지 붙여준 것을 보면 말이다.


니콜라이의 짐작이 이번만은 틀렸다.

미하엘은 우려했다. 실패가 좌절로 이어져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경우를 말이다.

아이의 성정상 그럴 리 없지만, 누구도 모른다.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이나 ‘그럴 것 같은’은 따로 나뉘지 않는다. 누구나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


“꼭 해낼 거예요. 오렌지가 열리면 미하엘 님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니콜라이는 꺾이지 않는 열의를 드러냈다.

영원히 타오를 청염과도 같아서 미하엘의 눈가가 좁혀졌다.


“매사 엉뚱한 것의 부탁이,”


미하엘은 말을 하다 말고 고즈넉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를 따라 다들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직은 미하엘만 감지한 남쪽의 경계선에서 어떤 기운이 너울거렸다. 따스한 태양의 냄새가 났다.

제 영역에 머무는 것들과는 정반대의 성질을 지녔다.

한랭한 남쪽의 것들은 대체로 기운 역시 차다.

그렇기에 이 맥은······.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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