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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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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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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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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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DUMMY

22화. 발트메어(3)



미하엘의 존재가······.

이러한 진실이 불편하고 또 불안한 적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거짓된 위안을 위태로이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러했다. 노른 자신은 수장이 되고, 미하엘은 오롯하게 홀로 선 대드루이드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유일무이한 명제였다.

열매로 맺혔을 때부터 지닌 자기 확신이다. 또한, 어머니 나무의 확고한 의지이기도 했다.

하니 미하엘은 어느 때나, 바르숨에 드는 순간까지 제게 충의를 바칠 것이다.

다만······.


‘녀석의 존재 자체가 두려움이 될 줄은.’


노른조차도 예상치 못했다.

그 결과 미하엘이 이른 독립을 하게 된 것 역시. 그가 아쉬운 것은 녀석을 제 곁에서 이르게 떠나보내야 했다는 거였다.

단지 그뿐, 미하엘에게 일족과 잘 지내보라 강요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미하엘이 오죽 뛰어나야지.”


노른은 편파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미하엘에게 의미가 되는 것은 오직 저뿐이면 된다. 저 또한 그러하니까.


“하여 리노에, 그대뿐만 아니라 일족 대개가 녀석의 제자가 되길 갈구했었지.”


노른은 납작 엎드려 있는 일족들을 온화하게 훑었다.

수장다운 눈빛이었지만 애정을 일절 담고 있지 않았다. 이 간극으로 말미암아 일족들은 어느 때나 깨닫고 만다. 수장에게 있어 자신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하나, 스승과 제자의 연은 어머니 나무께서 인연의 실을 얽어주는 것.”

“······.”

“애초에 리노에 그대의 것이 아니었다.”


노른의 평이한 투에 덧대, 흙바닥에 코를 박고 있던 일족들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녀와 리노에의 천형은 인과였다.

리노에는 같은 날에 태어난 이가 미하엘의 제자인 것에 앙심을 품었다. 염원하던 자리를 얻지 못하자 일을 저질렀더랬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질시를 받게 된 숲지기.

······테레제.

말간 미소가 아름다워 일족의 어여쁨을 받았던 그녀.



“리노에, 멋대로 숲을 나가지 마. 일족의 율법을 어겨선 안 돼.”



“······.”


리노에도 어느 날의 테레제를 떠올리며 이를 까드득 갈았다.

그 아이는 모든 것이 쉬웠다.

일족의 사랑을 받는 것도, 대드루이드의 관심 한 자락 얻어내는 것도.


“······수장님의 결정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런 참담한 불경을 감히 제가 저지를 리 있겠습니까. 다만······.”

“다만?”


노른의 눈초리가 점점 삐딱해지자 일족들은 리노에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그들이 보기에 그녀는 ‘돌연변이’였다. 감정이 마치 플로가의 씨앗처럼 폭발해대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천형을 풀던 때가 평화로웠는데······.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리노에는 당당하게 입을 놀렸다.


“제가 200년 전 받은 벌이 합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

“예. 오늘과 같은 일을 겪고 보니 말입니다.”

“흐음.”


노른의 모가지마저 삐뚜름하게 꺾였다.

개소리를 더 들어줄 인내심이 남아있질 않았다. 악취가 풍기는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노른은 ‘차라리 그때 죽여버렸어야 하는 것을.’이라며 후회를 잘근 짓씹었다.

쓸모없는 것들이 말리지만 않았다면!

죽은 생선 같던 노른의 안광에 빛이 깃들자, 일족들의 몸뚱이가 펄쩍 튀어 올랐다. 이때가 위험하다는 것을 체득한 지 오래다.


“노른.”


저와 관련되었음에도 여태 잠자코 있던 미하엘이 끼어들었다.

균열이 일어서는 안된다. 기눙가프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숲지기들의 수는 적었다. 강하다 한들 분열이 일면 어찌 될지 모른다.

일족에게 애틋하지는 않으나, 그들과 저의 존재의의는 명확했다.

하니 살아있는 한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균열이 될 수 있는 의혹을 털어내기 위해 미하엘은 말문을 열었다.


“저는 더 듣고 싶습니다.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뻔하지 않겠나.”

“밋밋하던 연회가 참말 재밌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뭐 미하엘 네가 원한다면 그리하게.”

“제 억지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하엘은 고개를 얕게 숙였다.

수장에게 예를 다하되 대드루이드로서의 격을 챙겼다. 이런 겉치레가 귀찮아서 연회든 뭐든 참석하고 싶지 않다.

집에 가서 잠이나 처자고 싶지만 마무리해야 할 것이 있었다.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내 잊고 살았던,

결말이 나버린 200년 전의 사건이 수면으로 툭, 하고 떠올랐으니 말이다.



***



애써 자리를 마련했건만.


‘저러다 눈알이 와르르 쏟아질라.’


리노에가 말없이 독이 오른 표정으로 노려만 보았다. 미하엘로선 그녀의 원망과 증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성가셨다.

날벌레가 거치적거려 몹시 귀찮았다.


“판이 깔렸는데도 어이하여 입을 열지 않을꼬.”

“······.”

“항변하지 않겠다면,”

“무엇이 그리 당당하십니까? 아아, 대드루이드이시라 그렇겠지요.”

“물고 늘어질 게 그것뿐인가?”

“그것뿐? 제 잘못이 아닌데도 저는 벌을 받았습니다!”


리노에의 목에 핏대가 섰다.

정말 억울해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모습이라 니콜라이는 눈알을 굴렸다. 어떤 사정인지 모른다. 모르지만, 이 정도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건 미하엘을 믿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한껏 당겨진 바이올린 줄처럼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 미하엘을 비롯해 단둘만은 차분했다. 맘껏 짖어보라는 노른과 경멸하는 슐라.

셋을 번갈아 본 리노에가 새되게 외쳤다.


“제가 구하지 못한 아이가 수장님께서 관심을 두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대드루이드님의 제자가 될 예정이 아니었다면!”

“······.”

“저는 처벌받지 않았을 겁니다!”


리노에는 확신에 차서 단정 지었다.

진실로 그리 믿는 것이라서 미하엘은 피곤해졌다. 믿음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그른 된 믿음은 불신보다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첫째, 그대는 디베르텐테의 시기 외에 숲을 나가선 안 된다는 일족의 율법을 어겼다.”


200년 전 리노에는 멋대로 숲을 나갔다.

인간계인 슈마이켈로 가서 놀다가, 저를 희롱한 인간들을 죽였더랬다. 그것만은 잘한 짓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니까.

이처럼 미하엘은 무척이나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때나 오늘이나.


“둘째, 그대를 염려해 기꺼이 율법을 어긴 동기를 버렸다.”

“버리지 않았습니다. 맹세코! 일이 벌어지자마자 알리지 않았습니까.”

“숲으로 올 시간에 그곳으로 갔어야 했다.”

“당황해서, 그래서,”

“그대가 내린 순간순간의 결정과 선택이, 어린 숲지기의 생사불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

“한데도 잘못이 없다?”


미하엘의 어조에는 고조가 없었다.

단음의 감정 결여에 일족들은 솜털이 삐죽 선 팔을 슬쩍슬쩍 문질렀다. 그의 성정이 어떤지 오랜 세월 축적되어서 그때의 판결이 얼마나 공정했는지 안다.

미하엘은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수장인 노른이 판결을 청했고, 어머니 나무가 아홉 뿌리 중 하나를 열어 리노에의 천형을 결정했더랬다.

그러니 리노에가 억울해하는 건 모순이다.


미치고 팔딱 뛰어야 하는 것은 미하엘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테레제는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숲지기였다.

얼마나 지나든 결국은 제 그늘에 거둘 아이.

하여 그의 보호 아래 두게 될 제자의 생사를 여즉 모른다? 이는 자존심과 긍지에 충분히 상처를 입을 문제였다.

일족들이 모두 아는 진실을 리노에만은 거부했다.


“어머니 나무께서 총애하는 대드루이드님의 편의를 봐주신 것이지요.”


제발 주둥이 좀 닥쳐라!

일족들의 팔이 들썩거려도 리노에는 말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사적으로 보복하게 되면 당신도 아홉 뿌리의 천형을,”

“사적 보복?”

“아닙니까? 하여 공적이며 공평한 것처럼 꾸며 저를,”


리노에의 입이 다물어졌다.

먼 곳에 있던 미하엘이 어느 사이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그저 그뿐인데······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를 짓눌렀다.


“진정 알고 싶다면 마땅히 들어줘야지. 대드루이드로서.”

“······.”

“나의 사적 보복에 대해.”


미하엘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연후, 어느 순간부터 떼어놓은 적 없는 눈가리개를 풀었다.

공기에 온도가 가라앉았다.

숲의 만물이 한껏 숨을 죽였다.

······이 세상의 것이면서 아니기도 한 뭔가가 풀려났다.

저 홀로 물결치는 천을 손에 쥔 미하엘은 리노에를 직시했다. 눈과 눈의 마주침.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수시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움일 뿐이나.


“······컥!”


리노에가 헐떡거리며 사지를 발발 떨었다.

미하엘의 옅은 은색 동공에 맺힌 심상의 세계들이 하나둘 열렸다. 수많은 형상, 수많은 소리, 수많은 냄새, 수많은······ 생과 사.

하루를 살다 죽는 생물들처럼 무수히 반복되는 순환들.

세계를 구성하는 이치가 리노에의 머리카락을, 얼굴을, 심장을, 배를, 다리를 잡아당기고 할퀴며 예리한 이빨을 마구 박아 넣었다.

아팠다.

수만, 수십만 번을 곤죽이 되고 도로 재생되는 찰나의 지속성에 정신이 견디질 못했다.

더하여,


“딱. 따악!”


치아끼리의 부닥침이 요란할 정도로 리노에의 안색이 시퍼레졌다.

심상의 세계는 혹독하리만치 차가웠다.

빙하 안에 갇혔다고 해도 이보다는 따뜻할 것 같았다. 동상에 걸린 손발이 발갛다 못해 썩어갔다.


“커흑!”


빠르게 붕괴하는 신체만큼 정신도 너절해졌다.

리노에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살점이 떨어질 정도로 얼굴을 박박 긁고, 자기 목을 억세게 졸랐다.

죽고 싶었다. 아니, 죽어야만 끝낼 수 있다.


“!!”


피거품을 문 채 사지를 뒤틀며 자해를 시도하는 리노에.

그녀의 처참한 몰골이 모두의 두려움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였다. 하여 일족 누구도 말을 얹지 못했다.

생존본능을 무너트리고 자살 욕구를 부추기는 힘이라니.

오늘에야 숲지기들은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미하엘은 공명정대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저녁에······.

일족 모두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망연하게 땅바닥만 응시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미하엘의 근처까지 다가갔다.



***



“대, 대드루이드님.”


슐라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미하엘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실바람에도 떨어져 나가겠다 싶을 만큼 끄트머리만 간신히 잡은 용기, 이것이 그녀가 짜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


“부디 과, 관용을 베풀어 주세요.”

“······.”

“저희에게 있어 자살은, 어머니 나무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잖아요.”

“쓸데없는 짓을. 슐라, 말리지 말아라.”


슐라의 간절함에 응답한 것은 수장이란 가면을 내던진 노른이었다.

그는 다 죽어가는 리노에를 오물 덩어리 보듯 했다. 냉랭한 태도의 이면에는 ‘칼춤 한번 잘 춘다, 미하엘’이라는 팔불출적 면모도 섞여 있었다.

예전에 못 죽인 한이 큰 듯싶다.

슐라 역시 리노에가 싫지만 그래도 일족이었다. 수가 많으면 모를까 이번에 태어난 어린것들까지 합쳐야 서른이다.

그 사실이 무의식적 관용을 허용하고 만다.


하아.

“대드루이드님 제발. 이 슐라를 봐서라도 한 번만.”

“······.”


애원에 흥이 식었다.

시선을 거둔 미하엘은 핏물에 젖은 리노에를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존재 자체를 삭제해버리고는 눈가리개를 들어 올렸다.

눈을 가리려는 의도라, 아쉽다는 듯 혀를 찬 노른이 얼른 수발을 들었다. 슐라가 행동하기 전에 가로챘다.


“그냥 확 모가지를 뽑아버릴까?”

“수장님!”


껄렁한 노른을 보다 못한 슐라가 제지하듯 불렀다.


“뭐, 왜?”

“말투를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행동도. 한 일족의 수장이 왈패처럼 상스러워서야.”

“품위가 나 하나에서 나오면 망해야지. 저 아둔한 년이 싸놓은 것까지 내가 치워야 하는 거면.”

“하아.”


슐라의 한숨이 커지자 미하엘이 나섰다.


“피곤하이.”

“쯧. 일족들 앞에서 내게 말을 편히 하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군.”


노른이 손을 건성건성 내저었다.


“물러들 가라. 흥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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