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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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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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작품등록일 :
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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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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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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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프롤로그

DUMMY

달의 여신이 눈을 감는 삭(朔).

이날은 만물이 온통 칠흑에 잠겨 살아있는 것들은 죄 숨을 죽인다. 뉘가 나서서 정한 것은 아니나 생의 본능이 그러했다.

저의 숨줄을 앗아갈 수 있는 어둠을 경계하는 본능이.

하여 사위가 적막한 이때, 오히려 보는 눈이 없는 틈을 타 이동하는 그림자 몇이 있었다. 소리 없는 걸음이 어찌나 발이 없는 새를 닮았든지.

한없이 고요한 한편 날렵하기도 한 그림자의 움직임은 목적한 곳에 다다르고서야 느려졌다.


“이곳이······ 금지의 숲인 기눙가프.”


그림자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자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탁했으나 나이를 짐작기 어려웠다. 정체를 감추려는 선연한 의도만큼 차림마저 온통 흑색이었다.

거기다 성별조차 가늠할 수 없게 품이 넓은 로브를 두르고 후드를 깊이 눌러 쓴 채였다.

이만으로는 모자랐을까.

턱에서 눈두덩이 아래까지 덮은 가면으로 인상착의마저 유추해볼 수 없었다.

어지간히도 정체 노출을 꺼리는 흑의인의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미약한 발소리마저 감춘 채였다.


“이 숲 말입니다. 소문과 달리 서늘한 만월 같지 않습니까. ‘금지’라고 하여 마냥 음침할 줄 알았는데.”

“······.”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입을 놀리고 말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본 탓에.”

“편견만큼 무서운 것은 없지.”


말을 주고받는 둘의 차림은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두 사람뿐이랴. 그들 뒤로 침묵을 유지한 채 일렬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다섯도 마찬가지였다.

도굴꾼인 양 죄 흑색이었다. 어둠에 스며들어 최대한 기척을 감추려는 거였다.


“하나, 때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


처음의 흑의인, 그러니까 여섯의 상관으로 추측되는 이가 금지의 숲을 응시했다.

수하의 묘사대로 흡사 만월 같다.

푸르스름함이 얼룩진 달을 그러모은 양, 온통 은빛인 숲은 발광하고 있었다. 홀릴 것 같은 찬연함에 도리어 흑의인은 슬쩍 보이는 눈썹을 꿈틀했다.


······거북하다.

모든 것을 압도하며 만물의 정점에서 오시하는 기눙가프로 인해. 저곳은 아름답고 신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기묘묘했다.

예상을 벗어난 풍광을 앞에 두고 초연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초파리보다 못한 존재였으니.

꽁꽁 싸맨 심처를 헤집을 것 같은 은색 빛에 그만······ 원초적인 두려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이 불쾌해 흑의인은 허리춤의 사슬을 움켜쥐었다.


“······저곳에 발을 들인 인간 중 살아 돌아온 자는 없다, 라.”


인간의 이지를 벗어난 은색 숲, 기눙가프는 사신의 낫이 번들거리는 곳이다. 숲에 들어간 자는 죽는다. 지금껏 예외는 없었다.

오죽하면 기눙가프의 또 다른 이명(異名)이 ‘죽음의 숲’일까.

황실이 전면에 나서 금지라는 수식을 붙인 데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다.


“그런고로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장소군.”


흑의인은 목구멍을 조이며 뜻 모를 말을 흘렸다.

그러고는 지척에 있는 수하, 그의 옆구리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웬 남자아이가 축 늘어져 있었다. 예닐곱 살? 창백하고 홀쭉한 젖살을 지나 파리하게 감긴 눈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론 땀에 푹 절은 금발에 흑의인의 시선이 머물렀다.

고아한 금실을 세심하고 정교하게 세공한 것 같은 색감.

화사한 색은 달의 여신이 퍼트릴 법한 은빛에도 물들지 않았다. 오연하게 유지되는 금빛이 성에 차지 않아 흑의인은 혀를 찼다.


‘곧 저물 솔레 따위가.’


제깟 게 뭐라고 이리 오만방자하단 말인가.

알아서 죽으라고 숲에 던져둘 게 아니라, 저 머리통을 부수고 모가지를 자르고 심장을 파내고 싶었다.

마음이야 주군을 위해 골백번 그러고 싶으나······.


‘쯧. 저놈을 직접 죽이면 내 목숨이 사위어도 벗어던질 수 없는 흔적이 남을 터.’


절대, 증거 따위 남겨선 안 된다.

주군의 명이었다.

어겨선 안 되는지라 흑의인은 마뜩잖음을 숨긴 채 고갯짓했다.


“버려라. 저놈의 분수에 알맞은 비참한 죽음이, 저놈을 찾아가도록.”

“예.”


수하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남자아이를 던졌다.

비정하고 건조한 손놀림. 버러지를 털어내는 것 같은 손길에도 기절한 아이는 깨어나는 법이 없었다.

보라색 들꽃이 흐드러진 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뿐이다. 공벌레마냥 그러다 흑의인이 의도한 대로 숲의 안쪽에 다다랐다.


“······.”


흙과 꽃잎에 범벅된 아이의 꼬질꼬질한 몰골을 얼마간 보고 있었을까.


크릉! 크르르릉!

신선한 고기 냄새를 맡은 마물(魔物)들의 울부짖음이 숲을 뒤흔들었다.

어찌나 기세가 광포하던지. 아직은 멀리 있음에도 마치 코앞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옳거니!

내내 굳어있던 흑의인의 눈썹이 휘었다. 만족스럽다는 의미였음은 덧대 뭐하랴.

곧 들이닥칠 마물들의 이빨과 발톱이 어린 몸뚱이를 유린하며 찢어발길 것이다. 직접 보고 싶으나······.


‘이대로 적아(敵我)의 구별이 없는 마물의 광기에 휘말린 순 없지.’


자칫 위험해질 수 있다.

숲의 마물 하나하나가 기사단 수십이 덤벼도 승산이 없을 정도라 모험은 금물이다.

아쉬움을 삼킨 흑의인이 돌아선 그 순간,


“흐흐. 명을 받고자 미천한 종이 대기하고 있나이다.”


유달리 눈가가 움푹 들어간 장년 남자가 어둠 속에서 기어 나왔다.

굽신거리는 모양새에 흑의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비열한 아첨꾼은 혐오하지만, 쓸모가 많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특히 이번 일의 결과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필요한 치였다.

금지의 숲에서 마차로 아흐레 거리, 그곳 성채도시의 영주였으니까.


“저것이 어찌 죽었는지 나중에 보고해라, 슈마이켈 변경백.”

“여부가 있겠나이까. 상세히, 아주 상세히 유일한 솔레인 그분의 성에 차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첨하려거든 눈치가 있어야 한다.

감히 혀끝에 올려선 안 되는 단어가 나오자 흑의인이 차게 뇌까렸다.


“쯧. 혀가 길거나 입이 빠르면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다.”

“어이쿠. 너무 기뻐 그만 제 세 치 혀가 방정을 떨었나이다. 그분의 숙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아닙니까.”

“천한 사냥개 따위가 기뻐할 일이 아니다.”


흑의인은 기어코 한 마디를 덧댔다.


“분수를 잊지 마라.”

“충고, 겸허히 받아 새기겠나이다.”


빙하와도 같은 흑의인의 태도에도 장년, 아니, 슈마이켈 변경백은 기죽지 않았다.

헬리오스 제국의 국경 지대. 금지의 숲과 인접한 첫 번째 도시.

척박한 곳의 영주라 출세라고는 개미 똥구멍보다 적은 확률에도 중앙 귀족 몇몇들과 친분이 깊다.

그중 황금 동아줄을 꼽으라면 단연코 흑의인이었다. 그런 자를 슈마이켈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인격을 모독하든 혐오하든 상처받을 거리가 될까.

저는 누구보다 훌륭한 사냥개였고 내쳐지지 않을 자신 또한 있었다.


“당부하신 대로 꼬리가 남지 않게, 그리고 증거가 남지 않게 잘 처신하겠나이다. 사냥개의 분수란 것은 사냥을 잘하는 것으로 증명하는 것일 테니까요.”

“······.”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흑의인은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듯 뒤돌아섰다.

제 할 일이 끝나자 그냥 가버리는 작태에도 슈마이켈은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배웅했다. 충직하며 순종적인 태도.

접이식 같던 허리는 흑의인의 그림자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나자 이만하면 됐다는 듯 펴졌다.

꼿꼿한 허리도, 남겨진 눈빛도 사냥개의 그것이 아니었다. 때를 기다리는 승냥이의 눈빛이지.


“클클.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기회이지 않겠소?”


슈마이켈은 상체를 뒤틀어 금지의 숲을 직시했다.

정확히는 거기에 내버려진 남자아이를.


쿠어어엇!

여린 고기 냄새에 이끌린 마물들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다.

더는 여기 있어선 안 됐다.

슈마이켈은 서둘러 안전한 곳, 멀리 세워둔 마차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삐 가느라 그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광포하게 날뛰던 마물들이 누가 잠재운 것처럼 얌전해진 것도.

숲 초입의 자작나무들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이를 감싸 안는 것도.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모범상가입니다.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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