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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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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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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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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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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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DUMMY

23화. 발트메어(4)



소란이 정리된 후.


“묘안이야. 진정 묘안일세.”


노른은 술병째 포도주를 들이켰다.

마냥 독하거나 쓰디쓴 술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포도 본연의 향과 단맛을 지킨 적절한 도수가 입맛에 맞았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 후회를 되새김질하기 위해, 혹은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라서다.

잘 먹지 않는 그를 위해 미하엘이 직접 담가 선물한 게 포도주라서지.


“리노에 그것을, 아홉 뿌리를 지키는 파수꾼에 앉힌 것은.”

“······.”

“여태껏 그런 직책은 없었지만, 미하엘 네 말마따나 내가 수장인데 무엇인들.”

“쥐 죽은 듯 살 거야. 그곳을 벗어나면 즉결처분이라 못 박았으니.”


미하엘은 노른이 따라준 포도주로 목만 축였다.

‘섭취’라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 건 그도 똑같았다. ‘이슬만 먹고 산다.’라는 비유는 비유가 아니었다.

실제 숲지기들은 새벽이슬만 먹고 살아도 큰 탈은 안 난다.

음식을 비롯한 그 무엇에도 욕구가 없는 것이 숲지기 일진데······.


“미하엘, 난 차라리 그것이 거한 사고를 쳤으면 좋겠네.”

“모가지를 뽑아버리게?”

“화근을 살려두는 것보다 낫지 않겠나.”

“······.”

“미하엘 너도 알 걸세. 리노에 같은 ‘돌연변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돌연변이.

감정의 색채가 진하고 인간 같은 사고를 하는 자를 일컫는다. 리노에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는 미하엘을 경애한 만큼 동기인 테레제를 질시했다.

다른 숲지기들과 반응이 사뭇 달랐다. 그들은 미하엘을 껄끄러워했어도 테레제를 미워하거나 고까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스승과 제자의 연은 제 의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니까.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할 까닭이 없었다. 무엇에서든 그저 제게 주어지는 만큼 순응할 뿐이다.

이러한 사고 체계를 가진 자들이니, ‘왜 무조건 율법을 따라야 하는데?’라고 반박하는 자가 어찌 보이겠는가.

튀어나온 송곳이다.

무언가를 가지려 욕심을 부리고 더러 비겁한 술수까지 써대서 피곤한 존재이고.


“이곳과 맞질 않으니 인간계로 훌쩍 가버리지 않나.”

“여태껏 그러했지.”

“······리젤로테.”


노른이 돌연 어떤 이름을 거론했다.

그자는 두고두고 후대들에게 욕을 먹는 선대 숲지기이다.


“그자가 어떤 인간 남자에게 푹 빠져 자행한 짓거리만 해도.”


인간계로 간 돌연변이들은 십중팔구 사랑에 빠진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외로움 때문이리라. 그를 다독여주는 이를 만나면 호구가 돼서 다 퍼준다. 리젤로테 그녀도 다르지 않았다.

미하엘은 마냥 고고한 하얀 나무를 물끄러미 보았다.


“인간들은 영웅이라 한다지? 헬리오스 제국을 세운 황제의 조력자였으니까.”

“조력자는 무슨. 수많은 목숨이 덧없이 져 피가 바다를 이르고, 비탄이 하늘을 덮는 바람에 어찌 되었던가.”


틸테인, 정확히는 마족이 급증했다.

거기에다 인간계에 숨어든 마족들마저 미쳐 날뛰는 바람에 혼란이 더해졌다. 시체가 1만으로 끝날 전쟁도 10만, 혹은 그 이상으로 끝났더랬다.

살육과 광기의 시대였다.

숲지기들이 도운 탓에 제국이 빠른 속도로 안정기에 접어들며 막을 내렸으나······.


“리젤로테 그자의 끝은 또 어떻고?”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야 뭐.”

“흔히 인간들이 하는 비유로군. 그것처럼 황제의 관을 쓴 자에게 버림받고 자살해버렸네.”

“······.”

“선대에 있었던 사건이라 미하엘 너와 난 겪지 않았지만.”


노른이 염려하는 것은 자살이 아니다.

순환의 맞물림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야 제 운명을 제가 꼰 업보이다.

다만, 놈이든 년이든 홀려서는 간이든 쓸개든 빼주는 동안 벌어질 사달은 숲지기 전체의 업보가 된다.

남의 염병 천병에 휘말려 밑구멍 빠지게 고생하면 억울할 터였다.

자칫 숲지기가 불신자가 되면······.


“또 모르지 않나, 미하엘. 이미 불씨가 타고 있는 것을.”

“염려 마.”

“······?”

“내가 아홉 번째 뿌리의 천형을 받더라도 노른 너의 평온은 지켜줄 터이니.”



***



“그것이 나의 사명이니까 말이야.”



미하엘의 맹세는 무거웠다.

혼자가 된 노른은 하얀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이파리를 주웠다.


사명······.

숲지기의 존재의의.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일족이 평온해야 하고, 수장이 평온해야 한다. 그렇기에 미하엘이 저를 지키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노상 해오던 대로 착한 아이처럼 순응하면 엘브로아 일족은 강성할 터였다. 일족 모두가 그리 신실하게 믿는다.

그런 자들의 우두머리라면 가장 독실할 터였다. 하지만 노른은 얼마쯤 삐딱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만약, 불응하는 자들의 수가 많아진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실 겁니까?”


노른은 이파리를 천천히 돌리며 하얀 잔상을 좇았다.

어머니 나무의 의지에 반하는 짓을 해도 제 일족을 굽어살펴 줄까? 물음의 해답은 회의적이다.

일족의 수가 괜히 적은 게 아니다.

저와 미하엘만 해도 선대의 나이가 1,800일 적에 맺힌 열매였다. 그 탓에 선대들이 바르숨에 들고 꽤 오랫동안 둘이서만 살았다.

그러다 제 나이가 600을 넘겼을 때 첫 번째 후대가 생겼다.

현재의 세 번째 후대까지 합쳐 도합 서른. 작은 마을 정도 되는 수 이상을 넘겨본 적이 없다.

강고한 수장의 권력 아래 결단코 분열되지 않을 크기 이상을.

이것이 의미하는 바야 확연했다. 정해놓은 운명에 닥치고 순응하라는 거였다. 착한 아이가 되라는 거였다.


“그것도 모르면서 머저리들이.”


선대들이 헛소리를 지껄인 적이 있더랬다.



“인간들의 전쟁에 참여해본바, 그들도, 몇 없는 마법사의 실력도 하찮고 하찮더군.”

“우리로 인해 그나마 나아지고 있지 않소이까.”

“흠. 차라리 그들을 지배해 마족에 관한 사건을 맡기는 건 어떤가? 어느 정도만 말일세.”

“우리가 가진 힘이라면 충분히.”



너무나 인간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인간계에 오래 머물며 물들어 버린 것이다. 그를 자각하지 못한 채 뚫린 주둥이라고 개소리 늘어놓는 그들에게 미하엘이 조곤조곤 일침을 가했더랬다.



“노망들 나셨습니까?”

“저 죽을 자리 파는 거야 말릴 생각 없습니다. 하나, 그 구덩이로 노른을, 후대를 끌고 갈 요량이면 참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의 개짓거리가 실현됐다간, 어머니 나무가 내어준 힘이 거둬질 터이니.”



백번 옳은 소리라서 선대들은 불쾌해했다.

기어이, 고시랑대던 늙은이들이······. 그것들 때문에 미하엘은 이른 독립을 해버렸다. 상종도 하기 싫다면서. 저만 두고!

노른은 나뭇잎을 버리듯 내던지며 하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의 비정함을 나와 너만 알지, 미하엘 너만.”


순응하는 동안만 허락된 번영이 무슨 은총이며 자비이랴.

어머니 나무는 무자비하고 또 무자비하다. 진실을 모르면서 일족 모두 오만하다 할 만큼 확신이 넘쳤다.


“······지긋지긋한데 또 안타까워서.”



“그래서 어머니 나무가 노른 네게 수장직을 맡긴 거지.”

“난 그들이 가엾지 않거든.”

“하루바삐 나이 들면 좋겠어. 훌훌 떠나버리게.”



지금보다 어린 미하엘이 흐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토로했다.

누구보다 성실히 어머니 나무의 의지를 받들면서도, 그것을 속박이라 치부해버리는 녀석이다.

하여 어느 것에도 마음 두지 않는다. 금방 잊어버린다. 흘려버린다. 애정도 미움도.

날 때부터 짊어진 그 하나가 이미 무거워 다른 것을 얹기 싫댔다. 리노에가 발악해도 미움 한 자락 얻을 수 없었던 연유이다.


“쯧. 쓸데없는 짓에 생목숨 하나만 버린 줄도 모르고.”


200년 전의 사건.

리노에를 희롱한 무리는 귀족의 사병이었다.

어린 여자에게 망신당하자 제 주인에게 고자질해 우르르 몰려왔다고, 그녀는 진술했다. 그 과정에서 테레제와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글쎄.

어쩔 수 없이 찢어진 걸까. 아니면······.

진술자는 리노에뿐이고, 겁에 질린 목격자들은 남겨진 은발의 여자애 역시 도망갔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 테레제는 어디로 갔던 것일까.

미하엘을 경애하고, 녀석의 정식 제자가 되는 날을 애타게 기다렸으니 돌아왔어야 할 진데.


“······.”


노른은 아홉 뿌리의 영역에 들어서는 리노에를 떠올렸다.

미하엘에게 미움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 그것.

넋이 나간 채 흐느끼기만 하는 그것에게 물어보았다. 혹여 지금이라면 그날의 진실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테레제를 버리지 않았어요.”



리노에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도리머리 쳤다.

독한 것!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킨 믿음은 견고해서 부서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망할 놈의 율법!”


일족 간에 서로 해를 입혀선 안 된다. 어떤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반드시 지켜야 하나, 온갖 상념의 끄트머리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단순했다. 리노에를 죽여버리고 싶다.

돌고 돌아 원점이다.

일족을 버린 죄 때문이 아니라 또 사고 칠까 봐 그런다. 소란이 인간들의 관심을 끌까 봐 수장으로서 지레 근심할 수밖에 없다.

인간들에게 이 숲은 죽음의 숲으로 남아야 한다. 숲지기라는 존재도 몰라야 한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등장하는 영웅, 대마법사 정도면 된다.


“······그래야 노르드 대륙을 지킬 수 있을 터.”


노른 역시 제게 얹어진 의무가 무거웠다.

가슴께의 살점 같은 거라 떼어버리면 손해 보는 것은 저였다. 버릴 수 없다면 제 세대만은 평화로워야 한다.


“어차피 다음 발트메어는 내가 영면에 든 후에야 열릴 터이니.”


그러니 갓 태어난 어린 것들만 단속하면 될 것이다.

억지 희망을 기운 노른은 잠시 어머니 나무를 차게 응시했다. 수 초간 그러다 미하엘의 영역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당분간 연회는 열리는 않을 터라 찾아갈 핑계가 필요했다.

뭐가 좋을까 궁리하다 멈칫하고 말았다. 리노에만 신경 썼는데 더 큰 불씨가 있었다. 미하엘 때문에 두고 보고 있는 인간 아이.


‘고게 남았네?’



***



끄응.

니콜라이는 평평한 흙바닥을 노려보았다.

오렌지 나무 씨앗은 겨울잠이라도 자는 것인지 도통 소식이 없었다. 제가 깨달아야 새싹이 나지만 영 진척이 없어 파 보고 싶어졌다.


“그럼 안 되겠지?”


잘못 팠다간 영영 망치게 될 것이다.

뭐든 때가 있는 법이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성역에 가서 잔뜩 얻은 궁금증을 삭이는 것처럼.


‘묻고 싶은데.’


제 스승인 미하엘의 상태야 서술할 필요도 없다.

집에 온 이후로 줄곧 잠만 잔다. 자꾸 춥다고 해서 도톰한 목화솜 이불을 덮어주었다. 추위에 시달리는 이유를 공감하기에 자꾸만 짠해졌다.

저와 리노에란 숲지기가 강제로 엿보았던 심안의 세계.

시리고 아뜩한 세상을 품고 있어서 그런 거였다. 아마 저였다면 미쳐버렸을 테다. 보통 정신으론 감당할 수 없는 세계였다.


“······에효. 스승님 일이라 궁금증을 더 참기 힘든 걸지도.”

“뭐가아?”

“······깜짝이야!”


불쑥 다가와 쪼그린 슈메테르링 때문에 니콜라이의 가슴만 철렁했다.

열 살도 안 돼 심장마비로 돌연사라니, 웃지 못할 병명이다.


“놀랐잖아요.”

“애 떨어질 뻔했어?”

“저한테 떨어질 애가 어딨어요?”

“그 ‘애’가 아닌데. 엄청나게 부은 라이의 간을 말한 건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응. 알았어.”


슈메테르링이 턱을 괸 채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 특유의 살랑이는 표정이 자꾸 저를 꼬드겼다. 혼자만의 비밀로 하지 말고 입을 털어보라고.

안 되는데······.

넘어가면 안 되는데, 니콜라이는 참지 못하고 안에 든 것을 쏟아내 버렸다.


“연회에 참석했거든요.”

“응응.”

“스, 미하엘 님이 딱히 환영받지는 않더라고요. 뭐 이건 누나도 아는 걸 테니 넘어갈게요.”

“······.”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리노에라는 분이 시비를 걸었어요.”

“그 미친년이?”

“미친······.”

“아, 첫 번째 뿌리에서 나왔겠네. 고작 200년 살고 나올 줄 알았으면 아가리라도 찢어버리는 건데!”


슈메테르링이 쌍심지를 켜곤 이를 갈았다.

원한이 덕지덕지 묻은 꼴이라 니콜라이의 의문이 깊어졌다. 아끼는 사람을 잃어서만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다들 왜 그렇게 리노에란 분을 몰아붙여요?”

“······.”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귀족의 사병은 상대하기 쉽지 않아요. 그러다 귀족 시해 누명이라도 쓰게 되면.”


니콜라이도 어떤 사연 때문에 인간 세상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깜깜절벽이지만 귀족을 상대한다는 것의 위험성만은 안다. 여차하면 제 잘못이 아닌데도 제 잘못이 되고 만다.


“도망은 현명한 처사였어요.”

“그걸 모를까.”

“그럼······?”

“숲으로 올 시간에 ‘그곳’으로 갔어야 했어. 리노에는 그래야 했어.”

“그곳이요?”


두 번째 듣는 단어였다.

슈메테르링의 낯빛이 어둑하고 날카로웠다. 안타까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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