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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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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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작품등록일 :
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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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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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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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10화. 선물을 주다(3)



‘흉내쟁이 도토리.’


저 마물의 특성이 원인이었다.

회색 협곡의 질감을 그때로 빼다 박은 앙상한 돌 나무의 겉껍질과 딱 하나 달린 열매. 도토리는 호수에 비친 물그림자인 양 보름달을 쏙 닮았다.

색감과 결, 밝기까지 한 치의 오차가 없어 진본과 구별이 어려웠다.


“······진짜 보름달 같아요.”


니콜라이는 신기한 듯 모가지를 빼고 도토리를 구경했다.

아까의 맹함은 두고 왔는지 멀찍하게 떨어진 채였다. 똑똑해서 조심하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거리를 두었다.

기껏 경계하고 있는데······.


“어어?”


니콜라이의 등을 미하엘이 검지 끝으로 밀었다.


“가장 완벽한 흉내쟁이지. 자신이 본 것 중 제일 성에 차는 것을 그리는.”


인간의 탐지 마법으로는 간파할 수 없다.

오죽하면 진본을 두고 흉내쟁이 도토리를 진짜라고 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까.


“보름달이 되는 것도 천 년 넘게 했으면 질릴 때가 됐을 터.”


미하엘의 말 울림 따라 보름달이 느리게 떨렸다.

흥미가 생겼다는 신호라, 미하엘은 계속 미끼를 던졌다. 영문을 모르는 니콜라이만 중간에서 멍하게 있었다.


“이 아이라면 네 심미안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이라.”

“······.”


보름달이 급격하게 쪼그라들며 하현달이 되었다.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이곳에 다시 올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려야겠지. 천 년이든 만 년이든.”


가장 완벽한 속임수를 구사하는 마물이라도 약점은 있다.

결국은 도토리라서 나무라는 형태를 벗어던질 수 없기에, 근원을 바꿀 종과 인연이 닿아야 한다. 그래야 이동할 수 있다.

번거롭고 위험한데도 니콜라이를 굳이 데려온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저 마물의 특성 때문.


“마지막으로 묻지. 같이 갈 테냐?”


꼴깍.

긴장한 니콜라이는 생침만 삼켜댔다.

자신을 데려온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니 실패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만약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마음을 비웃듯 하현달이 도토리가 되었다.


원형.

태초의 형태로 돌아간 흉내쟁이 도토리는 미동이 없었다. 미세한 흔들림조차 내보이지 않아 니콜라이의 어깨가 처졌다.

그때,

파르르-

한 차례 크게 떤 도토리가 물처럼 흘러내렸다. 액체화는 꼭지와 연결된 나뭇가지로 번졌고 그것은 돌나무 전체로 확대되었다.

흐물흐물해진 도토리는 이내 누군가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과정을 목격했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어떤 존재로.



***



까아악-

기눙가프 초입의 자작나무에 내려앉은 까마귀가 우짖었다.

불길한 울음만큼이나 깃털이 새까맸고 주변의 풍경 역시 매한가지였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동트기 직전이라더니 그 표현이 맞았다.

빛 한점 없는 사위를 할퀴듯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절그럭절그럭.

마찰음이 끊기는 것으로 미루어 조심하는 것 같은데, 영 쉽지 않은지 눈치 없는 소음이 계속 났다.


“으으.”


짐승 소리를 내는 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겁쟁이들을 놀릴 속셈인지 여태껏 조용하던 까마귀가 목청을 높였다.

까악! 까아악!

새된 음에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제야 까마귀의 새까만 동공이 거울인 양 정체가 드러났다.

양손과 발목에 쇠고랑을 찬 청년이었다.

정확히는 청년 하나와 여기저기 쥐어 터진 장년 남자 둘, 합해서 인간 셋이었다.

셋은 달달 떨며 까마귀와 금지의 숲을 번갈아 볼 뿐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필 만개한 시체꽃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서 더 그랬다.


“저, 저것!”


한낱 들꽃을 두려워하며 엉덩이를 질질 끌었다.

도망치며 내는 자국마다 축축하고 지린내가 나는 것이 누군가는 오줌까지 싼 모양이다.


“일으켜라.”


필사적인 그들의 등으로 꽂히는 목소리는 비정했다.

눈가가 움푹 들어간 장년 남자, 슈마이켈 변경백이었다. 니콜라이가 버려질 때 흑의인과 함께 있던 공범자.

슈마이켈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남은 손을 휘저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였다.

갑옷을 입은 위병 다섯이 검집 채로 쇠고랑 찬 인간들을 두들겨 팼다.


“억! 제발! 나으리 제발!”

“살려주십쇼!”

“저주받은 망할 숲에 들어가면 뒤지는데······ 어억!”


눈먼 검집에 골통이 찢어져 피가 나고 팔뼈가 으깨졌다. 인정사정없는 손속을 피하려 구르다 보니 셋은 점차 금지의 숲과 가까워져 갔다.

눈깔만 제대로 작동하면 되는 터라 슈마이켈은 기꺼워했다.


“비천한 네놈들의 목숨이 가치 있게 쓰이는 유일한 순간이 될 것이다.”

“······.”

“저곳으로 들어가 시체를 확인해라. 금발에 적안, 여섯 살의 남자아이. 그것의 죽음을 증명할 증표를 가져오는 자는 살려줄 것이다.”


개소리였다.

금지의 숲에 들어가도 죽고, 입맛에 딱 맞게 임무를 수행해도 죽는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아는 진실은 그것뿐이었다.

시체를 왜 찾는지 셋은 모른다. 폭행에 살인에 감옥에 들어간 그 날, 영주의 손에 잡혀 이곳에 끌려오게 됐다.

몇 번을 도망치려다 아흐레 거리를 더 늘렸을 뿐 목숨줄을 늘리지는 못했다.

아무리 육시랄 죄를 지은 죄인인들.

차라리 교수형에 처하고 말지 금지의 숲에서 뒈지고 싶지는 않았다. 영혼조차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시체꽃이 되어 영원토록 마물의 노예가 된다는 저곳에서만큼은.


“끄어억!”


옹송그린 셋의 눈구멍에서 절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조용히 하라고 위병들이 발로 차고 때려도 그쳐지지 않았다. 착하게 살걸, 이라는 회개가 절로 우러나왔다.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은 확정이었다.

입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은 살인멸구(殺人滅口)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눈물 콧물 쏟던 셋 중 한 남자가 갑자기 숨을 헐떡거렸다.

발작이라도 온 양 과호흡 증상을 보이다가 눈을 까뒤집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저기······.”


손가락질도 제대로 못 해, 말도 제대로 못 해.

영 쓸모없는 죄인을 못 마땅해하던 위병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마간 그러다 본분을 자각하곤 절도있게 양발을 붙이며 뒤돌아섰다.

최대한 기척을 죽인 위병은 조심스레 슈마이켈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영주의 작달막한 신장에 맞춘 연후 그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영주님.”

“······확인해야겠다.”


슈마이켈은 죄인들을 제친 뒤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딱 한 걸음.

거칠 것 없는 보폭이 기폭제라도 된 듯 먼동이 트며 시야가 밝아왔다. 덕분에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아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


그것, 아이의 시체는 상태가 과히 좋지 못했다.

숲에서 어떻게든 도망치려 한 모양인지 머리 방향이 슈마이켈을 향하고 있었다. 운은 그것이 다였다.

머리통의 반이 으깨져 뇌수가 줄줄 흘렀다.

그도 마물이 먹어 치웠는지 얼마 남지 않은 쪼가리에서 비린내가 풍겼다. 꼭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가 죽어가며 나는 냄새와 흡사했다.


“으읍!”


강인한 위병들조차 헛구역질할 정도로 고약스러웠다.

슈마이켈은 손수건을 더 꽉 틀어지며 핏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확인했다. 금발이었다. 머리털이야 얼마 남지 않았지만, 워낙 튀는 색이라 다행히 구별됐다.

그다음은 눈.

머리통과 함께 얼굴 역시 함몰됐으나 오른쪽 눈 부분이 남아 있었다. 허연 공막조차 핏물에 절었지만.


“······적안이군.”


불순물이 전혀 없는 새빨간 루비를 닮은 색은 제국에서 흔치 않다.

확정된 죽음에도 슈마이켈은 시체의 상태를 꼼꼼히 훑었다. 어깻죽지부터 뜯겨나간 상반신은 갈비뼈 사이사이에 온전치 않은 내장이 걸린 채 구더기의 서식지로 변한 지 오래였다.

뿐일까.

왼쪽 다리 한쪽은 아예 뜯겨나가 보이지 않았고 오른 다리 역시 허벅지만 남았다. 파먹힌 채로 질척한 피가 굳어 마치 창틀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보였다.


“비참하고 비참하니 이만하면.”


저것의 죽음을 확인하라고 한 자도 흡족해할 것이다.

사냥개의 소임을 다한 터라 이 불길한 금지의 숲에 더는 걸음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에 기쁨과 안도를 느낀 슈마이켈은 히죽였다.


‘쓸모를 다한 것은 치워야지.’


슈마이켈의 눈짓에 위병들의 검집에서 도검이 번득였다.

삽시간이었고, 죄인 셋의 모가지가 그대로 뎅강 잘렸다. 데구루루 구른 머리통들. 겁에 질린 그대로라서 위병의 검을 두려워한 것처럼 보였다.

위병들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것으로 뒤처리마저 완벽하게 해냈다.

뒤진 자들끼리 지옥에서 모임을 하면 모를까, 떠들 입이 없으니 진실은 영원히 묻힐 터였다.


“네놈들도······ 너의 죽음도 나의 광영이 될 것이다.”


출셋길의 발판이 될 터이니.

슈마이켈은 만족감을 품은 채로 금지의 숲을 등졌다.

떠나는 그를 배웅하려는 양 까마귀의 울음이 연거푸 이어졌다. 축복이려나. 아니면 망자의 한을 달래는 저주이려나.

질기게 따라붙던 소리는 인기척이 사라지자 뚝 끊겼다.


삐이잇-

그 즉시 까마귀의 울음이 청량하게 변했다. 신호라도 되는 양 공작처럼 화려한 깃털을 지닌 새로 탈바꿈되었다.

전서구인 공작발톱 유리독조였다.

유리독조는 제 것을 찾은 것처럼 가슴 깃을 몇 번 부풀리다, 민첩하게 시체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즉각 발톱을 세우고선 날카로운 부리로 눈동자를 파냈다.


그러자마자였다.

부패하고 썩은 시체 아래 새겨진 마법진(魔法陣)이 드러났다. 커다란 원의 열두 방향에 심은 핏빛 꽃씨와 에메랄드 가루로 이루어진 문자들.

미하엘이 발현한 ‘숲의 무곡’은 정교한 환영 마법이다.

누군가가 절실히 원하는 거짓을 무결하고 생생한 진실로 보여주는.

속임수는 이만으로도 충분할 진데 시체가 자취를 감추더니······ 유리독조가 부리에 문 눈동자가 도토리가 되었다.


흉내쟁이 도토리.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가짜가 니콜라이 흉내를 냈다.

도토리와 미하엘의 합작, 더할 나위 없는 사기극이 아닐 수 없다.


삐잇-

유리독조는 시들해진 열매를 다리에 넣은 뒤 힘차게 대지를 박찼다. 날갯짓이 올곧게 향하는 방향은 남쪽이었다.



***



폭풍처럼 작열하는 태양 빛에 날개가 흠뻑 젖을 무렵.


“수고 많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유리독조가 누군가의 소맷자락에 착지하며 날개깃을 접었다.

소매의 주인, 미하엘은 잘 익은 포도알을 유리독조에게 건넸다. 냉큼 받아서 부리로 쪼는 사이 그는 유리독조의 다리에서 흉내쟁이 도토리를 꺼냈다.


“······이만하면.”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흘렀다.

니콜라이를 1년간만 맡겠다고 작심한 그 날, 미하엘은 숲의 기억을 샅샅이 읽어 내려갔다. 제 그늘에 두었으니 아이의 내력을 알아야만 했다.

출신이나 이름 같은 것이 아니라 이 숲에 버려진 사연의 작은 단락이나마.

그래야 변수에 대처할 수 있다.

제 소유가 된 인간 아이를 보호할 수 있고.


“악연을 끊긴 하였는데.”


흉내쟁이 도토리 덕분이다. 아무리 간계가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한 자라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싹을 자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채로 불청객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무엇이 더 염려되시는 거예요?”


슈메테르링이 휴식 중인 도토리를 톡톡 두드리며 질문했다.


“이곳을 그리 두려워하면서도 다시 와서 죽음을 확인할 만큼의 악연이라 그런다. 그것만큼 질긴 것은 없지.”

“아!”


그제야 슈메테르링은 무언가가 기억났다는 듯 탄식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그간 이곳으로 굴러온 인간들을 찾으러 온 자는 없었잖아요.”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200년 전인가? 그때······ 무더기로 몇 번 인간들이 침입했을 적에도 그랬고.”

“이곳에 온 연유가 조금쯤 밝혀진 건 그 아이뿐이지.”


미하엘은 제단에 도토리를 떨어트렸다.

물에 잠긴 도토리 옆에는 푸르스름해진 아마딜로의 심장이 있었다. 처음보다 박동이 느려진 심장은 약간 딱딱해졌다.


“사지에 몰아넣은 자가 누구인지 조금쯤 윤곽이 드러난 것도.”


썰다 만 무쪽 같이 생긴 인간 남자.

슈마이켈 변경백이라는 명칭을 가진 자를 미하엘은 알고 있다. 인간계에서 하급 귀족이라는 지위에 있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사냥개에게 주인이 있다, 라······.

그 주인 된 자가 슈마이켈보다 지위가 낮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계에서 귀족의 권력은 무소불위이니 호되게 엮인 아이의 처지가 어찌 되랴.


“어쩐지 그닥 평탄하지 않을 것 같군.”

“잊히지 않을까요? 라이가 이곳에서 사는 동안. 어차피 망자가 됐잖아요.”

“글쎄.”


그쪽의 연은 강제로 끊었으나 니콜라이가 쥔 연은 끊지 못했다.

아이가 품은 독을 어찌 모를까.

니콜라이가 쥔 복수심은 끊지 못한 연이다. 본디 인연은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이다.

불씨가 타오르는 한 악연은 언제든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인연이라 하지 않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여 니콜라이의 앞날은 비가 와 흙탕물 범벅이 된 연못과 같다.


‘그러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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