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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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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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작품등록일 :
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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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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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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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3화. 인연이 얽히다(2)



타다닷-

무척 조급한 발소리에 다들 정면을 직시했다. 터지기인 슈메테르링도, 코발트 로즈 군락도, 대지 정령들도.

시선을 주되 강한 경계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본디 작은 개가 크게 짖는 법이다.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서 말이다.

몸집을 부풀리는 것과 비슷한데, 이쪽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신들은 이 기눙가프에서 포식자였으니까.


“······.”


그렇지만 긴장은 충분히 조였다.

인간, 콕 집어서 어머니 나무가 사정을 봐주는 인간은 처음이라서 그랬다.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의 시야각에 인간 아이와 독 꼬리 키벨론이 들어찼다.


휘익!

키벨론이 인간을 던지자, 바람을 가르는 꼬질꼬질한 것이 포물선을 그렸다.

낙하를 감당하지 못한 인간은 결국 미하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완전히 파묻히기 전에 그가 막아냈지만 어쨌든 신체가 잠깐 닿았다.


“!!”


그 사실에 다들 경악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들의 주인이 신체 접촉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을 알아서였다. 하여 대드루이드의 그늘에 사는 자들은 거리를 유지한다. 지극히 가까우면서도 닿지 않을 거리를.


“흐음.”


권속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미하엘은 일단 숲과의 동화를 풀었다.

이 마법의 단점은 신체가 굳는 거라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인과가 어떻든 주변의 분위기를 읽은 모양이다. 색색 숨을 몰아쉬던 꼬질이가 바싹 얼었다.

겨울바람에 말린 생선 같다.


“······.”


미하엘은 인간의 반응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더 파고들자면 멋모르는 하룻강아지를 나무랄 순 없잖은가.

반면, 기눙가프에 터를 잡고 사는 독 꼬리 키벨론은 경우가 다르다.

솔직히 마물이나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나 미하엘에게는 그저 미물일 뿐이다. 검지만 까닥거려도 죽일 수 있다.

허세가 아닌 명백함이었고, 이를 잘 알고 있을 키벨론이 그의 집에 발을 디뎠다. 자의가 아니었다 친다손.


“이곳의 절대 율법을 알고 있을 터.”


기눙가프에는 인간계와 달리 법칙이나 제약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먹고 먹히는 혼돈의 장이었으며 투쟁하여 살아남는 자가 강한 세계였다. 그렇기에 지성을 가진 생명체라면 지켜야 할 절대 율법이 있었다.

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 것.

영역 침입은 ‘한판 뜨자!’라는 도발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상등신 같은 처사였기에 이를 행할 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크엉 크어헝!

졸지에 상등신이 된 키벨론이 쇳소리를 냈다.

간절하게 울부짖고는 앞뜰 끄트머리에서 더 전진하지 않았다. 오도 가도 못했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넙죽 엎드려 다시금 목청 긁는 소리를 토해냈다.

억울함이 그득그득 담겼다.

해석하자면 ‘저도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를까. 그런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변명이 줄줄 늘어졌다.

비굴한 모습 어디에서도 오만한 포식자의 위용은 보이지 않았다.

키벨론을 저리 만들 수 있는, 혹은 엉덩이를 떼게 할 수 있는 이가 뉘랴.

답은 명료했다.


“마지막이 될 예외를 두지.”


미하엘은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그만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눈가리개로 인해 표정이 잘 안 보여도 그 뜻만은 명확히 읽혔다. 모가지를 보존하자마자 키벨론은 냅다 줄행랑을 쳤다.

결코, 뒤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달음박질이 어찌나 기민하고 날래던지.

삽시간에 사라진 마물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영역주로서 책임을 다할 뿐. 미하엘은 또 다른 불청객을 향해 고개를 내려트렸다.



***



“······.”


조막만 한 인간 남자아이.

흥미를 끄는 건 태양을 한 움큼 떼어 꼰 것 같은 머리카락 색이었다. 더 자세히 서술하자면 핏물과 먼지와 뭔가가 엉켜 떡이 져 있었다.

300년 정도 숙성된 치즈 같다.

볼품없어야 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한낮의 햇빛을 잔뜩 머금은 머리칼이 반짝거렸다.

수집 욕구를 발화시키는 금발 외에는 볼만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꼬질꼬질한 데다 삐쩍 곯아서 살집이라고는 없었다. 왼쪽 눈은 화상에 의해 곪아 뭉개졌고, 몸뚱이는 움푹움푹 튀어나온 뒤틀린 뼈들로 인해 기괴함을 풍겼다.


“호오? 참말 고귀한 자로군.”


눈살이 찌푸려질 외양과 반대되는 평을 미하엘이 했다.

그가 보는 건 껍데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본질, 생의 나이테가 축적되는 영혼이었으니. 인간들이 나누는 계급처럼 황제나 귀족을 지칭하는 고귀함과는 사뭇 의미가 달랐다.

영혼의 고귀함은 서자, 평민, 노예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본디 가지고 있던 것을 발휘 못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라는 표현이 괜히 있을까.

이번도 그러한 경우인가?

그리하여 버려지고 만 것인가?

하기야.

죽을 자리 찾는 것이라 할지라도 제 발로 기눙가프를 찾는 머저리는 없을 터.


“······울지 않네?”


미하엘은 분석해보다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눈치가 제법인지 아이는 필사적으로 땅바닥만 쳐다보았다. 절대 그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제가 피식자임을 알고 있음이라.

약자는 결코 제 목숨줄을 결정할 수 없다. 강자의 자비에 기댈 뿐.

여태 미하엘이 봐온 약자들은 그러했다. 살려달라 구걸하든 눈물을 뽑으며 하소연하든 대개가 비슷비슷한 행동을 했더랬다.


“참으로 멍청한 놈일세.”


본디 비굴함은 경멸받으나 미하엘은 아니었다.

살고자 하는 마음을 어찌 손가락질할까. 도리어 고고한 척 굴며 목숨줄을 가벼이 여기는 것들이 더 싫다.


“이것을 어쩐다?”


살릴까?

그냥 죽여버릴까?

미하엘은 엄지와 검지 끝으로 아이의 뒷덜미를 들었다.


달랑달랑.

아이가 맥없이 흔들렸다. 최대한 닿는 면적을 줄여 위태함에도 버티는 힘이 전혀 없었다.


“······.”


미하엘은 다시 한번 아이를 탈탈 뒤흔들었다.

어지럼증을 호소할 세기였다. 한데도 굳게 다문 아이의 입에선 미약한 신음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고집은 있어 보이는데······.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탐색하다, 미하엘은 티끌 같은 흥미를 거두었다.

고민하는 것 자체가 무용했다.

제 영역에 멋대로 들어왔으니 목숨을 거두는 것이 옳다. 제멋대로라 할지라도 ‘옳음’을 정하는 건 영역주인 미하엘 그였다.


“에잉. 귀찮아.”


예전에도 그러했으나 현재는 더욱 성가셨다.

죽이는 것도 시체를 치우는 것까지도 전부 포함해서. 늙어 힘이 없는 데다, 유예기간이 끝나면 바르숨에 들 예정이다. 이러할 때 뭘 하는 것 자체가 낭비였다.

괜한 기력을 쓸 바에야 잠이나 자자.

결정을 내린 미하엘은 성의 없이 아이를 휙 던졌다. 땅바닥에 처박힌 아이는 일어서지 않았다.


“갖다 버려라.”


죽든 살든 알 바 아니다.

주인이 내린 결정에 터지기인 슈메테르링은 부복하며 순응했다. 그녀 역시 인간의 생사에 관심 없었다.


“봉행하겠나이다.”


슈메테르링은 새털 같은 손짓으로 넝쿨을 꺾어 인형을 만들어냈다.

꽃의 정령이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을 능숙히 해냈다. 그런 연후 인형으로 널브러진 아이의 뒷덜미를 집어 들었다.

아무 데나 버려도 되긴 하는데 숲의 초입에 데려다 놓기로 했다.

거기면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알아서 찾아가겠지.

슈메테르링이 주인의 명에 맹종함과 동시에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였다.



***



별스럽던 어수선함이 가신 하루 뒤.


“쯧. 어제 해치웠으면 오늘 귀찮지 않았을 것을.”


미하엘은 드물게 후회를 곱씹었다.

결정을 내린 것에 더 나은 결과는 없었나 되새김질하는 짓 따위 하지 않는다. 선택한 후 벌어지는 결과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설령 실패하거나 성에 차지 않아도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다.

게다가 어떤 일은 더러 개개인의 선택이 모여 하나의 결과물로 도출되는 것이라, 입 대봐야 골치만 아프다.

어제의 결정은 예외지만.


“······저것의 무엇이 호의를 샀을꼬?”


미하엘은 의구심을 품은 채 조용한 아이를 뜯어 보았다.

여러모로 평범했다. 불세출의 기재라 할지라도 타고난 천재인 숲지기를 기준으로 하면 범재가 되고 만다.

하면 외양 때문인가?

어머니 나무의 취향을 알아낼 방도는 없다. 단언할 수 있는 한 가진, 숲지기들이 미남미녀라는 것이다.

누구를 기준으로 해도 특출난다.

여러모로 비교하다 보니 수렁 같은 혼란에 빠졌다. 난제였다.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고.


“어쩌면······.”


수하인 나무 정령이 들고 있는 남자아이.

인간 꼬질이는 잔 생채기가 더해진 상태로 다시 미하엘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새벽녘에 벌어진 일이었다.

꼬질이가 기눙가프에서 지낸 지 이틀 차.

진즉 숨이 꼴딱 넘어가도 넘어갔을 시간인데 아이는 무탈했다.

저것의 무사함이 어머니 나무의 확고한 의지라면······.


“이제 와 모른 척 죽일 수도 없으니 내가 직접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미하엘이 귀찮음을 무릅쓴 경위였다.

어머니 나무의 뜻을 읽어낸 자식이 그를 무시할 순 없잖은가. 불효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한 뒤였다. 숲의 남쪽에서 초입까지 말없이 걸었다.


걷고 또 걷고······.

어느 방위보다 땅이 습하고 서늘한 남쪽이지만 햇발은 깊숙하게 내리쬐었다. 자연의 손길이 넓게 퍼져 음침하지 않았다.

태양의 기운과 추위가 융합된 이곳에는 활엽수가 빽빽하게 잘 자란다. 그런고로 너른 나뭇잎들이 밟혔다.

미하엘의 발걸음이 지나가도 이파리들은 짓이겨지지 않았다.

상하지 않을 정도의 무게만이 실려서다. 나뭇잎 한 장이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숲지기이다.


“흐음. 초입에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오래 묵은 숲지기의 강렬한 예감이 경종을 울렸다.

어제처럼 숲의 초입에 꼬질이를 내버리면 두고두고 귀찮아질 거라고 말이다.

어머니 나무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 그렇지, 초입에서 한나절만 가면 절벽산이 나온다. 거기까지 이동하면 될 터였다.


“절벽산까지 가려면.”


미하엘은 걸음을 잠시 멈췄다.

초입에 당도하기 전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왔다.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다. 두 갈래 모두 초입으로 이어진다.

다만 숲을 벗어나 구릉지의 중앙에 우뚝 솟은 절벽산에 다다르면 선택해야 한다. 한쪽은 슈마이켈 영지로, 한쪽은 에르네스토 영지로 이어지는 까닭에.

길을 잘못 들었다손 치더라도 옆으로 샐 방도는 전혀 없다.

가파른 절벽산을 넘어야 하고, 그 산에 서식하는 마물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애초 인간들은 절벽산 부근까지 접근하지도 않는다. 거기서 더 나아가봐야 기눙가프와 맞닥뜨릴 뿐이라서다.


“어느 쪽이 나을꼬?”


숲지기들도 애초부터 두 갈림길에서 어느 영지로 갈지 정한다. 경사가 강파른 둔덕들이 절벽산까지 점점이 이어진 탓이다.

대개는 번화한 슈마이켈을 택하는데······.


“에르네스토가 조용하긴 하나.”


미하엘의 선호도와 아이의 거취는 별개였다.

교류가 빈번한 도시로 가야 혹여 아이를 주워갈 인간이 생길지도 모른다. 일종의 확률 문제였다.


“슈마이켈로 가야겠어.”


그곳에는······.

미하엘은 다시 걸음을 떼었다.

그의 결정에 여태껏 숨죽이고 있던 아이가 버둥거렸다. 처음으로 드러낸 거부의 몸짓.

싫다는 의사 표현에도 미하엘은 무심함을 유지했다.

아이를 살리려 원치 않게 몸을 움직인 것, 그만으로 충분한 호의를 베푼 셈이다. 더는 휘둘리기 싫었다.

절벽산까지 데려다주면 꼬질이가 알아서 하겠지.

아이의 생사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무정한 미하엘의 발길 따라 군락 채 흐드러진 보라색 들꽃이 하늘거렸다. 네만티아였다. 인간들이 흔히 시체꽃이라 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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