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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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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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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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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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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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DUMMY

18화. 니콜라이의 오렌지 나무(1)



“리베르타. (자유로운, آزادی)”


미하엘은 연구실 제단의 탁자에 놓인 씨앗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균일한 푸른빛에 역행하기 전과 같이 나뭇가지가 되었다. 번거로운 짓을 한 게 아니다. 일종의 제련이었고, 형태를 자유로이 선택하기 위함이다.

제 가슴팍 정도까지 오는 높이.

아이가 성장했을 때를 고려해 길이만 늘이고, 그다지 변형을 많이 가하진 않았다. 가지가 마냥 곧지 않고 구불구불한 면이 있었는데 그것조차 원형을 유지했다.


“흠. 지팡이라.”


인간 마법사들은 지팡이라는 보조 수단을 통해 마력을 방출한다.

대마법사, 그러니까 숲지기를 따라 한 것이다. 실상 숲지기는 씨앗과 보석을 보조 수단으로 삼긴 하나 도구가 없어도 무관하다.

마력을 운영하는데 전혀 문제없지만, 인간은 반드시 지팡이가 있어야 한다.

참으로 하등한 방식이다.

방출되는 마력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육체, 그것의 연약함을 가장 적절히 보여주는 예시였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데도 기어이 방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집념의 예시이기도 했고.


“아이 역시 매한가지지.”


니콜라이를 대변하는 단어였다. 집념과 끈기.

저와 상반되는 것을 주운 터라 퍽 성가셨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왕 거둔 거 조력자가 되기로 작심했다.

훗날 독립시켰을 때 아이가 일찍 죽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이는 제 체면이 달린 문제였다.

평판같이 아무런 쓸데없는 것 때문이 아니라 긍지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평생 ‘한때 대드루이드가 거두었던’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테니까.


“난약한 것보다야.”


차라리 희대의 악한이 되기를 바란다.

뉘가 뭐라 하든 맞고 다니진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이니 말이다. 그것이면 된다.

참으로 소박한 바람이지 않은가.

이를 위해 미하엘은 나뭇가지를 장식할 원석을 몇 개 골랐다.

첫 번째는 지혜와 진리의 상징인 사파이어. 그중 지성의 컬러리스 사파이어와 집중력의 옐로 사파이어, 그리고 지식의 방향의 블루스타를 골라 하나로 결합했다.


“······.”


두 번째는 밤의 빛 아래에서 더욱 빛나는 페리도트를 집어 들었다.

이브닝 에메랄드라 하여 호신부로 쓰이는 보석이지 않은가. 유난히 어두운 올리브색이 야밤의 한가운데서 춤을 추듯 영롱하게 빛났다.


“다음은.”


세 번째는 마노, 그중에서도 평온과 여유의 블루레이스 아케이트를 택했다.

마지막으로는 가넷, 성스러운 실행력의 스타 가넷까지 더해 보석만 네 종류였다.

원석들을 하나하나 십이면체로 깎아 세공한 뒤.


“이제 하모니 꽃씨만 넣으면 되겠어.”


여러 가지를 섞을 땐 하모니 꽃씨가 필수였다.

조화와 균형을 이뤄줘서 마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각각의 보석에 꽃씨를 집어넣은 후였다.


“······있어야 할 곳에. (نصب)”


지팡이의 윗부분을 사면으로 나눠 각각의 보석을 배치했다.

한자리에 고정된 채 뱅글뱅글 도는 모양새에 미하엘은 흡족함을 드러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제가 가공했으니 응당한 결과였다.


“흐음.”


미하엘은 유백색 지팡이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주인이 정해진 물건이긴 하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이 지팡이는 아이가 이곳을 떠날 때 줄 참이다.

겨우살이나무의 가장 여린 가지라 자아가 있는 기물(奇物)이라서다.

이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주인이 되려면 우선······.



***



“씨앗?”


니콜라이가 제 손바닥에 놓인 씨앗에 코를 박았다.

왕성한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여러모로 종잡을 수 없는 아이였다. 손길을 무서워하면서도 무의식으로는 갈구했다.

하룻강아지라 그런지 무서워하는 것이 많으면서도 탐구심이 들끓었다. 열의가 넘치면서도 어찌나 눈치를 보는지.


“······무슨 씨앗이에요?”


수십 번을 잰 후에야 아이가 우물쭈물 질문했다.

미하엘은 답답해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무덤덤하게 굴었다.


“오렌지 나무.”

“어? 음······. 그러니까······.”


할 말을 찾지 못한 니콜라이였지만 감격한 마음 또한 감추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슐라의 영역으로 향하는 도중 두서없이 떠들었을 뿐인데 때늦은 답가가 왔다.



“전 새콤한 맛이 더 좋아요.”

“······오렌지가 제일 좋아요.”



오렌지가 아니라 씨앗을 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니콜라이의 입가가 환하게 벌어지던 그때, 미하엘은 잡초조차 없는 맨땅으로 시선을 내려트렸다.


“알아서 잘 키워보려무나.”

“예?”

“오렌지를 얻는 건 너 하기 나름이다.”

“······?!”


니콜라이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먹고 싶으면 농사를 지으라는 위대한 뜻에 골이 띵해져 왔다. 기가 막힌다거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평소라면 이때쯤 미하엘이 뒤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미하엘은 멍멍한 니콜라이를 두고 볼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거였다.

나름의 기준선 내에서 기다려 주길, 수 십분.

제가 허용한 시간이 끝나자 미하엘은 가차 없이 몸을 틀었다.


“······미하엘 님.”


그 순간 니콜라이가 걸음을 붙들었다.

다급함에 일단 저지르고 본 게 아니라 나름대로 정리하고 행동했다. 왜 씨앗을 주었을까? 왜 나무를 기르라고 했을까?

아이가 본 미하엘은 쓸데없이 무언가를 괴롭히지 않는다.

여력을 쏟을 만큼의 관심이 없어서다. 시간 낭비할 바에야 잠이나 자자는 주의니 더 설명해 뭣하랴.


“제가 오렌지 나무를 키워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세상 모든 만물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지.”


오렌지 나무 씨앗도 다르지 않다.


“아!”


툭 던져진 한 마디에 미하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니콜라이는 손바닥을 꼼실거렸다.

이건 가르침이었다. 불시에 이루어지는 수업이라도 마냥 기뻤다.

조금 전 미하엘을 붙들지 않았더라면 물 건너갔을 테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것을, 마력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마력 탐지’라는 마법을 사용하잖아요.”

“······.”

“그걸 익히라는 건가요?”

“마력 탐지라······. 그게 있었네.”


정작 가르침을 줘야 할 미하엘이 딴소리해댔다.

니콜라이가 당황하건 말건 미하엘은 잊고 있던 것에 대해 따져 보았다.

인간들이 주로 추적에 활용하는 마력 탐지. 그것은 재능이 출중하거나, 오랜 시간 마력을 갈고닦은 상위 마법사 몇몇 아니면 익히지 못하는 기술이라 하였다.


“뭘 알려주는 거 어렵군.”


미하엘의 중얼거림에 니콜라이는 조급해졌다.

이러다 ‘에구구 귀찮아.’라며 휙 가버릴 것 같아서였다. 니콜라이가 연신 입술을 오물거리자 미하엘의 모가지가 삐딱해졌다.


“병든 닭처럼 뭐하누?”

“그게······.”

“되었다. 일단 심안의 세계를 보여주면 그 차이를 알게 될 터.”


만사태평한 미하엘은 엄지의 살덩이를 갈랐다.

속살이 드러나며 핏방울이 맺히자 그대로 니콜라이의 미간에 문양을 그려 넣었다. 피의 양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냄새가 진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지만, 니콜라이는 꾹 참아냈다.

그러는 동안 미하엘의 붉은 입술 새를 가른 언어들이 이지러졌다.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교활한 사기꾼을 닮은 언어들은 말라비틀어질 것처럼 건조했다.


“······이 정도면 얼추.”


미하엘은 이맛살을 슬쩍 접었다가 도로 폈다.

워낙 표정 변화가 없어서인지 잠깐의 변화가 크게 와닿았다. 무엇을 하려는 건지 감을 잡지 못한 니콜라이가 입을 열려던 그때,


“어?”


아이의 망막에 무언가가 맺혔다.

정체를 파악해 보기도 전 미하엘이 떨군 오렌지 나무 씨앗이 발아했다. 거기에 그만 시선을 뺏겨버렸다.


“미하엘 님, 씨앗이······.”


익히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새싹의 형태이긴 한데 옅은 오렌지색 실타래가 뭉친 것처럼 보였다. 어안이 벙벙한 니콜라이를 두고 미하엘은 싹을 성장시켰다.


“단선의 성장. (روییدن خرونوس)”

“!!”


새싹이 묘목에서 교목으로 그리고 고목이 되는 사이, 실뭉치가 풀어지며 역동적인 생명력을 증식하다 점차 시들어 갔다.

생에서 죽음까지. 놀라우리만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기이는 니콜라이의 심장을 벅차게 틀어쥐었다.


“이게, 오렌지색 실뭉치가 마력이에요?”

“본질이지.”

“똑같은 듯, 하나도 똑같지 않아요. 어린나무였을 때랑 다 컸을 때랑 또 나이가 들었을 때랑. 정말로 하나도······.”


점차 진해지다 흐릿해지던 색도, 생명력의 주기마다 재잘대던 소리도 제각각이었다.

미하엘이 보는 세상은 이토록 다채로웠다.

지금껏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색과 소리를 담고 사는 줄 알았는데······ 오만이었다. ‘사람과 숲지기는 이토록 다르구나.’라는 결론의 끝에 다다라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미하엘이 왜 인간의 마법을 소 닭 보듯 하는지.

본질, 심안의 세계라 했던가. 이러한 세계를 탐지 마법 없이도 원할 때마다 맘껏 볼 수 있다면.


“······정말이지.”


니콜라이는 경탄에 경탄을 거듭하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오렌지 나무 씨앗뿐이 아니었다. 흙의 색채, 나무의 색채, 구름의 색채, 하늘의 색채. 전부 고유의 색과 소리가 존재했다.

심지어 허공에 떠다니는 것들조차 저마다의 심상을 지니고 있었다.


지렁이? 악필 같은 글자? 혹은 물고기?

형태가 뚜렷하지 않아 정의 내릴 수 없는 그것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홀린 듯 들여다보고 있자니······ 점차 몸이 달달 떨려왔다.


“으윽!”


감당할 수 없는 한기만 문제일까.

재잘거림에 지나지 않던 소리의 수가 불어나자 숫제 울부짖음이 되었다.

더는 노랫말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고막을 긁고 할퀴고 인두로 지지듯 찔러대는 관념적 심상들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심지어 실체화되어 저에게로 창백한 손들을 뻗어댔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허억, 허억!”


숨통까지 막혀와서 니콜라이는 자꾸만 숨을 할딱거렸다. 살고자 버둥거리는 의도적 몸부림이었다.

제 심장이 뛰고 있는 건가?

······제가 살아는 있는 건가?

모르겠다.

니콜라이는 혼란이 일어 양 귀를 막은 채 옹송그렸다.

그때,


“트리네. (단절, بریدن)”


망망한 심상을 도려내는 미하엘의 단조로운 음색이 파고들었다.

소리의 파도가 잠잠해졌다.

까마득하고 고약하던 연결이 끊기고서야 니콜라이는 저 자신을 인식했다. 거친 숨소리, 불규칙적으로 뛰는 박동, 식은땀에 흠뻑 젖은 몸, 그런 것들이.


“······.”


니콜라이는 맥없이 늘어진 고개를 들어 허공을 흘끗댔다.

······아무것도 없다.

진한 안도감이 들어 그만 다리가 풀려버렸다. 흙바닥에 나뒹군 채 권태로운 미하엘을 빤히 직시했다.



***



니콜라이의 눈가에 원망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괴로울 거라는 것을 알아서 미하엘은 별말 하지 않았다. 눈이든 귀든 어디 하나 고장 나도 고쳐줄 수 있어서 시도한 것인데······.



“라이와 있을 땐 인간처럼 구셔요. 좀 모자라도 인간처럼. 명심하셔요!”



슈메테르링의 주입식 신신당부가 머릿속에서 튀어 올랐다.

인간처럼이라니.

제가 무슨 ‘시방 나는 위험한 짐승이다.’ 뭐 그런 거라도 된단 말인가.

미하엘은 콧방귀를 뀌며 본래의 주제에 집중했다.


“네가 본 그것을 통찰안(洞察眼)이 열리면 항시 볼 수 있을 것이다.”

“통찰안?”

“동공이나 공막처럼 그저 눈에 달린 것. 하여 잡스러운 탐지 마법에 비할 수 없음이라.”

“항상······ 볼 수 있다고요? 그런 것들을?”


니콜라이는 더듬더듬 되물었다.


“그럼 미하엘 님은 여태껏······.”


정말이지 끔찍하고 끔찍한 무채색의 세계였다.

절대로, 다시는 보거나 듣고 싶지 않은데······.

아이의 눈가에 물기가 어리자 미하엘은 머뭇거림으로 받아들였다. 고통스러우면 그럴 수 있지.

지참해본 적 없던 이해심을 하필 ‘지금’ 발휘했다. 덤덤히 사실을 보충했는데, 되려 아이의 눈망울만 촉촉해졌다.

인간 아이의 감수성은 도통 모르겠다.


여하튼 주제로 돌아가서.

그가 보충한 것은, 숲지기들에게는 통찰안이 있다는 거였다. 다만, 아이가 진절머리 치던 ‘그것’까지는 헤아리지 못한다.

그것, 심안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가장 원초적인 심층이자 본질.

신의 세계와 맞닿은 그것을 엿볼 수 있는 자는 숲지기 중에서도 단 둘뿐이다. 수장인 노른과 대드루이드인 미하엘.

이 차이가 작금의 저, 미하엘을 형성했다.

게으름을 낳았고, 권태를 낳았으며 일족에게조차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조형했더랬다.


“당장은 힘들 것이나.”


미하엘은 시간을 들인 만큼 퍽 친절하게 굴었다.

물론 주관적인 평가일 뿐, 니콜라이로서는 누가 나자빠지건 죽어 나가건 제 할 말만 하는 평소와 똑같아 보였다.


“내가 보여주었으니 오렌지 나무 씨앗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쉬울 터.”

“······.”

“통찰안이 트인다면 뉘도 쥐지 못한 무기를 얻게 될 것이다.”


확언할 수 있다.

통찰이란 사물을 헤아리는 것.

하여 어떤 대상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본연의, 발가벗겨진 근원을 볼 수 있다.

무척 유용하나······.



작가의말

오늘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공지 시간에 맞춰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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