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모범상가
그림/삽화
모범상가
작품등록일 :
2024.08.21 19:35
최근연재일 :
2024.09.14 21:34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006
추천수 :
39
글자수 :
154,043

작성
24.08.30 12:20
조회
55
추천
2
글자
12쪽

11화.

DUMMY


11화. 선물을 주다(4)



우선 해야 할 건 예측불허인 먼 미래가 아니었다.

현재의 방호 결계지.

결계식의 완성을 위해 미하엘은 가까운 호수로 향했다. 혼자가 아니라 굴비 두름 엮듯 권속들과 니콜라이를 꽁지에 단 채였다.


“어디 가는 거예요?”


아이는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권속들은 미하엘이 왼쪽으로 가라 하면 군말 없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라 하면 오른쪽으로 가는데 아이는 달랐다.

늘 목적지를 궁금해하며 반드시 질문을 던졌다.


“이번엔 뭐 하러 가요?”


무엇을 할 예정인지에 관해서도.

매사 호기심이 왕성하다. 거기에 더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기 주도적으로 해내려는 성향 탓도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호수에 물 뜨러 간다.”

“······예?”


미하엘이 대꾸하자 니콜라이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답변을 들을 거란 기대 자체를 안 한 눈치였다. 질문이 향한 곳은 미하엘 그인데 슈메테르링만 쳐다보는 꼴이 알만했다.

애초 설명을 그녀에게서 들을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맹랑한 것이.”

“어어? 도착했어요. 여기가 목적지지요?”


저한테 좋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는 촉이 월등했다. 화제를 돌리는 니콜라이의 낯짝이 결사적이었다.

통통한 생선을 올망졸망 바라보는 고양이 같은 몰골.

이번 한 번만 봐준다.

소맷자락을 내려친 미하엘은 비취를 흩뿌려 놓은 것 같은 그휜트 호수를 내려보았다. 보름달의 빛무리가 일렁일 때마다 신록의 호수가 묵묵히 밤을 다독였다.

우묵한 호수에 손을 담근 미하엘은 물을 퍼 올렸다. 불순물 없는 깨끗함이 호수에 비하면 작은 손바닥 안에서 찰박거렸다.

좁은 세계였지만 달도 별도 은하수 드리운 밤하늘도 전부 담겼다.

빠짐없이 모조리.


“양손을 맞대 보아라.”

“양손을요?”


다소 엉뚱한 요구에도 니콜라이는 순순히 양 손바닥을 맞댔다.

두근두근.

평소엔 잘 느끼지 못했던 맥동이 북의 울림처럼 온몸을 둥둥 울렸다. 듣고 있자니······ 특별한 것 없는데도 묘한 감흥이 일었다.


“네가 살아있음을 증빙하는 소리, 그것이 모든 마법의 기초이지.”

“······.”

“술식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이고.”

“기초이자 재료······.”


니콜라이는 글자 하나하나를 갈가리 찢듯 곱씹었다.

그냥 예감이 그랬다.

다소 뜬금없이 시작되었음에도 이것은 수업이라고.

다시 오지 않을 천금 같은 귀한 가르침이라고.

눈치가 없으면 받아먹지 못할 게 빤했지만, 미하엘은 친절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의 할당량을 해치우는 노동자처럼 진도를 나갔다.


“예로 들자면, 인신 공양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군.”

“저도 알아요.”


니콜라이의 음색이 열기를 띄었다.


“대마법사가 주인공인 동화책에서 나와요.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마족을 소환하려는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해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마법사가 연관되면 눈깔이 뒤집힌다.

오랜 열망은 집착이 되었고 어느샌가 멍울이 되었다. 심처에 깊숙이 박힌 그것은 자각도 없이 튀어나온다. 낄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를 뒤늦게 인지한 니콜라이의 볼이 뻘게졌다.


“······죄송해요. 인신 공양은 끔찍한 건데.”

“되었다. 영웅을 동경하는 것이 무에 나쁜 것이라고 타박할까.”

“······.”

“인신 공양처럼 맥동을 가진 모든 것들은 훌륭한 매개체이지. 현재 네가 손으로 뜨는 호숫물 역시도.”

“이게요?”

“맥동이 뛰는 한 너의 손은 생 그 자체라 특별하다.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난 마법이자 술식이 되지.”


호숫물도 그렇다.

목마른 것들이 찾아와 갈증을 해소하는 물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맥동하는 뭔가를 덧대면 생명력이 ‘넘치는’ 물이 된다.

혹자는 시시하다 할지도 모른다.

‘고작’이라고 가치를 깎아내릴 수도 있는데······.

특별한 거 없으나, 특별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미하엘이 다음 말을 잇지 않자 침묵이 소복소복 깔렸다. 이로써 날림으로 시작해 의미를 남긴 수업이 끝났다.


“······.”


적안이 진해진 니콜라이는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슈메테르링과 대지 정령들이 정성스레 물을 떠서 유리 항아리에 담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구도 건성으로 하지 않았다.

한참 그 광경을 유심히 보다가 니콜라이는 양손으로 호숫물을 담뿍 떴다.



***



조르륵-

미하엘은 양손을 벌려 반짝대는 물을 제단에 부었다.

비취색 호숫물은 어느샌가 새까매진 아마딜로의 심장에 스며들었다. 색감뿐 아니라 질감마저 바뀌었다.

푸딩마냥 탱글탱글하다.

아홉 번의 낮과 밤. 그동안 거르지 않고 생명력이 넘치는 물을 공급한 결과 매개체가 완성되었다.


“이만하면.”


매개체를 결계식으로 삼을 수 있다.

미하엘은 타원형인 아마딜로의 심장을 집어 들어 제단 아래에 두었다. 나무 탁자에는 각종 씨앗과 보석, 그리고 조각 도구들이 즐비했다.

방호와 관련한 술식을 새기려는 것이라서 슈메테르링이 조각칼을 건넸다.

화이트와 핀파이어 오팔을 섞어 다채로운 빛깔을 뽐내는 곡선의 칼 손잡이. 단아한 색상 유희에 슈메테르링의 눈길이 여지없이 붙들렸다.

미하엘의 마력이 농축된 색이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어떤 형태로 만드실 거예요?”

“목걸이.”

“그게 제일 무난하지요. 덜 거치적거릴 테고요.”

“······.”

“이걸 받으면 라이가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후후. 필경 얼빠질 맹한 얼굴을 빨리 보고 싶어요.”


슈메테르링이 재잘대는 동안 미하엘은 아마딜로의 심장을 십자 형태로 깎았다.

모양이 갖춰질수록 떨어져 나가는 조각들이 생겨났다. 그리 많지 않았지만 버리지 않고 모은 슈메테르링이 글라브라 가루가 든 통에 넣고 굴렸다.

금세 끈적해진 조각들, 그것들을 미하엘에게 건네면 미하엘이 십자가에 붙여 녹였다.

단순 반복 작업을 얼마간 했을까.

아미딜로의 심장이 고풍스러운 십자가로 재탄생되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조각가라도 능히 해낼 수 있는 작업이지만······.


“품이 많이 드는 것들만 남았어.”


미하엘은 흠 없는 진주에 정화초 씨앗을 집어넣으며 ‘결합(تصادف)’이라고 읊조렸다.

총 네 번.

같은 작업을 반복한 뒤, 진주를 십자가 각각의 끝에 두고 아까 외웠던 주문을 반복했다. 십자가와 융합된 진주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하엘은 십자가 중앙의 큼지막한 홈에 루비를 채워 넣었다.


“라이가 특히 맘에 들어 할 것 같아요.”

“루비를?”

“피존 블러드라 라이의 눈동자를 쏙 닮았잖아요.”


피와 같은 짙은 새붉은 색.

확실히 비슷한 터라 미하엘은 사족을 달지 않았다.

그런가 보다 하면서 중앙과 끝을 잇는 십자가의 사면에 ‘조율(هماهنگی)’이라는 글자를 마력으로 새겼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과정들.

누구나 쉬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나 마력을 세밀히 조절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하나하나에 담기는 마력이 똑같지 않으면 폭발해버리니까.


“······.”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아는 슈메테르링은 말을 붙이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보되 크게 염려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만한 작업에 실패하기에는 제 주인의 경지가 무척 높다.

한쪽 발로 끼적거려도 될 정도다.

물론 그리 무성의하면 결계식의 의미가 퇴색되고 효력이 줄어든다. 결계식을 다른 말로 하면 간절한 염원이었기에.


‘주인님은 무엇을 바라시는 걸까.’


단순히 니콜라이의 처지가 안쓰러워 제작한다기에는······.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제 주인의 성정이 대자대비하지는 않다. 그랬다면 첫참에 니콜라이를 거뒀겠지.

하다못해 터져나간 발바닥만이라도 고쳐줬다던가.

슈메테르링의 상념이 길어지는 사이, 미하엘은 루비에 흉내쟁이 도토리를 집어넣었다.


‘언젠가 이것이······.’



***



“저 주시는 거예요?”


니콜라이가 독약이라도 받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새까만 목걸이와 미하엘을 번갈아 보느라 모가지가 휙휙 돌아갔다. 저러다 부러질라.

아이를 달래줄 법도 하건만 미하엘은 무미건조했다.


“너의 생명줄이다.”

“혹, 이것이······ 저를 자꾸 재우신 이유인가요?”


니콜라이가 이곳에 사는 짧은 기간 가장 빠르게 습득한 것은 ‘미하엘어’였다.

저 꼴리는대로 사는 미하엘은 바뀌지 않는다. 얹혀사는 주제에 항의할 수도 없으니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머리와 꼬랑지 빼고 몸통만 들이미는 화법을 조립하려면 말이다.


“하루를 견디든 열흘을 견디든 어차피 다 똑같은 하루살이라. 인간은 이곳의 마력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사면 중 한 면당 석 달. 그리 열두 번째 달을 견디면 이곳의 성질과 비슷해질 터.”


미하엘은 아이의 금발과 적안을 차례로 스치며 말을 덧댔다.


“너라면 그리될 수 있겠지.”

“그땐 목걸이가 없어도 되나요?”


미하엘의 고개가 성의 없이 미약하게 움직거렸다.

슬슬 귀찮다는 몸짓이었다.

서운할 법도 하건만 니콜라이는 저 스스로 놀랄 만큼 관용적으로 해석했다. 피곤할 만하다고.

기본 일주일씩 자던 사람이 근 10일간은 꽤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떤 날에는 첫새벽에 일어나기도 했더랬다.

그 모든 성실의 이유가······.


‘이 목걸이를 만들려고 그랬던 거구나.’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무심하면서도 예민하다 싶을 정도로 상냥한 면도 있었다. 정말 억울하게도 그럴 때마다 감동은 곱절로 커졌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정말로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니콜라이는 티 없이 환하게 웃었다.

제 딴에는 그리 생각할지 몰라도 보는 사람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미하엘은 아이의 미소에 울음이 묻었다고 여겼다.

참말 요상하다.

인간에 대해 잘 모르나 니콜라이는 아이답지 않다. 비바람을 막아줄 커다란 나무가 없어 웃자라기만 한 아기 나무 같다.

낡아 버린 영혼을 두르고 있는 것은 짙은 비통과 서글픔이라.


‘굽이굽이 얽힌 사연 한번 고약하겠어.’


니콜라이를 죽이려고 한 자가 있다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치유 마법을 사용하기 전, 아이는 오래 굶주린 데다 뼈들은 튀어나오고 뒤틀려 있었다. 그것은 폭력과 독에 오래 노출됐다는 증거였다.

부러지고 으깨진 채 어린 육체의 회복력만으로 다시 뼈가 붙었다. 그대로 자랐다면 곱사등이나 절름발이가 됐을 터.


“끄읍.”


니콜라이가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입술을 잘근 씹었다.

웃음은 유지한 채로 울음만 감추려 하니 되려 표정만 괴상해졌다. 말라비틀어진 울음에 핏빛 동공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피눈물이라 스산하기만 했다.

울고 싶으면 울 것이지 어이하여 버틸꼬?

거참.

요번 참에 주운 것은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간다.

공감은 하지 못해도 돌봄에 있어서 관용적인 미하엘이었다. 그는 검지 끝으로 니콜라이의 어깨를 스치듯 몇 번 두드렸다.

어설픈 위로는 그만,


“끄엉!”


니콜라이의 울음보를 제대로 건드려버렸다.

대성통곡해버린 아이는 목걸이를 억세게 움켜쥐고선 횡설수설했다.


“처음, 선물은 받은 적이 없어, 내 것은 처음이라······.”

“······.”

“어헝헝!”


눈물 콧물 쏟는 니콜라이로 인해 미하엘은 그만 당황해버렸다.

아무리 돌봄에 최적화되었다손 그가 거둔 것들은 알아서 잘 사는 유형이었다. 슈메테르링도 그렇고 독립을 한 몇몇도 그렇고.


“······.”


아까의 다독임은 그저 ‘이제 괜찮을 것이다.’라는 윗전의 겉치레였다.

울라고 한 행동이 아닌데······.

미하엘은 당황을 추스르지 못하고 슈메테르링에게 구조 신호를 보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간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러해야 하건만······.

뽈뽈뽈 게걸음 친 슈메테르링이 도망가버렸다. 허구한 날 땅 파며 흙먼지를 창조하던 대지 정령들이라고 다를쏘냐.

다들 잽싸게 땅속으로 숨어버렸다.


허어.

기막혀하는 미하엘을 두고 니콜라이는 질기도록 울었다. 몸속의 수분은 다 뺄 기세로 아주 장했다.


“끄어어엉.”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이 난약한 것의 울음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오래 묵은 할아버지 미하엘은 때늦은 독립이 하고 싶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주기를 저녁 9시 10분쯤으로 고정합니다. 24.09.02 13 0 -
27 26화. 24.09.14 16 0 13쪽
26 25화. 24.09.13 17 1 13쪽
25 24화. 24.09.12 25 0 12쪽
24 23화. 24.09.11 30 1 13쪽
23 22화. 24.09.10 33 1 12쪽
22 21화. 24.09.09 33 1 13쪽
21 20화. 24.09.08 42 1 13쪽
20 19화. 24.09.07 42 1 11쪽
19 18화. 24.09.06 46 1 13쪽
18 17화. 24.09.05 51 1 13쪽
17 16화. 24.09.04 50 1 13쪽
16 15화. 24.09.03 52 1 13쪽
15 14화. 24.09.02 49 1 13쪽
14 13화. 24.09.01 57 2 14쪽
13 12화. 24.08.31 56 1 13쪽
» 11화. 24.08.30 56 2 12쪽
11 10화. 24.08.29 64 1 13쪽
10 9화. 24.08.28 67 1 13쪽
9 8화. 24.08.27 69 1 14쪽
8 7화. 24.08.26 86 2 13쪽
7 6화. 24.08.25 90 3 13쪽
6 5화. 24.08.24 108 1 13쪽
5 4화. 24.08.23 115 2 13쪽
4 3화. 24.08.22 142 1 12쪽
3 2화. 24.08.21 151 3 12쪽
2 1화. 24.08.21 198 3 13쪽
1 프롤로그 24.08.21 261 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