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모범상가
그림/삽화
모범상가
작품등록일 :
2024.08.21 19:35
최근연재일 :
2024.09.14 21:34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2,004
추천수 :
39
글자수 :
154,043

작성
24.08.21 19:45
조회
150
추천
3
글자
12쪽

2화.

DUMMY

2화. 인연이 얽히다(1)



“걷는 것도 귀찮아서 원.”


미하엘은 몽환에 시달리는 것처럼 비틀거렸다.


“늙어서 그런가?”

“주인님 괜찮으셔요? 두통은?”


그가 앞뜰로 들어섬과 동시에, 어떤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황급히 다가왔다.

코발트색 머리카락과 눈. 바다, 그중에서도 심해를 오롯하게 담아낸 색감을 지닌 그녀는 청초했다.

분위기만 빼어날까.

눈같이 흰 살결과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은 또 어떻고.

미인은 본인이 과시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길을 잡아끈다. 동물이라면 가지는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인데 정작 미하엘은 무감했다.


“없어. 삭신이 쑤시는 거 빼곤 괜찮아, 슈메링.”

“어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셔요? 눈가리개도 없이 가셔서. 수장께서 허하셨으니 연회에 눈가리개를 하고 가셔도 됐잖아요.”


타박하는 말투와 달리 슈메링이라 불린 여자의 손길은 다감했다.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보드라운 비단 끈으로 미하엘의 눈을 가린 뒤 정갈하게 묶었다.

그녀도, 살핌을 받는 미하엘도 익숙해 보였다.

낯설지 않은 것들에 긴장이 풀린 것처럼 미하엘의 눈꺼풀이 슴벅거렸다. 이곳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듯이.


“졸립군. 나이 들면 체력부터 빈약해진다더니.”

“허구한 날 그놈의 늙은이 타령. 늙지도 않으시는 분이 기만은.”

“이만큼 살았으면 늙은 거지. 그것도 쉰내 날 정도로 묵었는데.”


미하엘은 흙바닥이라는 것을 개의치 않고 드러누우려 했다.

어디든 잠만 잘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하나, 그를 지켜보고 있던 무언가는 그 꼴을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행여나 옷자락이라도 땅에 닿을세라 유난인 무언가, 코발트 로즈들이 연한 줄기와 꽃잎으로 침대를 엮었다.

수만 번은 해봄 직한 민첩함으로 널브러지려는 주인의 몸을 지탱했다. 향긋하고 푹신한 꽃잎 침대가 그를 조심히 감쌌다.

어찌 보면 극성이었다.

흙바닥에 눕는다고 죽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한데도 그만으로는 모자랐던 모양이다. 장미의 줄기들이 미하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며 옷자락을 정리해댔다.


장미들뿐일까.

미하엘이 ‘춥다.’라고 중얼거리자 내내 투덜거리던 슈메링 역시 털 달린 하얀 외투를 냉큼 꺼냈다. 눈가리개도 그렇고 준비성이 철저했다.


막힘없는 일련의 과정들의 끝자락,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는 듯이 갈색 그림자들이 꽃잎 침대로 올라섰다.

두더지 닮은 무언가.

대지 정령이었다.

그들은 장미 꽃송이에 가려질 정도로 자그마했다.

몸집만 놓고 보자면 보살핌이 필요한 건 그들이었다. 겉보기엔 그러했으나······.


도도도.

두더지들은 양팔을 힘껏 들어 올려 스스로 돌벽이 되었다.

바람을 막으려는 거였다.


“후후. 세레스, 쓸데없이 재능 낭비를······.”


하나같이 정령들은 미하엘을 신생아 혹은 막 돌 지난 아기처럼 대한다. 천 살을 진즉 넘다 못해 묵을 대로 묵은 현재에도 말이다.


토돗. 톳톳.

그들만의 언어를 옹알거리며 대지 정령들은 주인의 얼굴을 가릴 가림막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봄볕이 해를 끼칠 리도 없거니와, 설령 칼바람이 불어도 미하엘에게는 티끌만큼의 영향도 끼칠 수 없다.

자연체의 정점에 서 있는 숲지기였으니까.

하여 만물의 친애가 당연할 진데 무엇을 염려하고 근심하랴.

쓸데없는 낭비에 불과했으나 대지 정령들의 손길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상황이 이러자 슬금슬금 슈메링만은 평소처럼 행동했다.


“하는 꼴을 보니······ 또 빈둥대시려고요?”

“빈둥이 아니라 사색.”

“아, 사색? 생각이 지나쳐 번번이, 며칠씩 혹은 몇 달씩 주무시는 그거?”

“······.”


신랄한 토로에 뼈를 맞았다는 듯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가 게으름뱅이가 무어냐 물으면 미하엘을 가리키면 된다. 허구한 날 잔다.

봄날에는 볕이 따사로워서. 여름날에는 더워서. 가을날에는 하늘이 청명해서. 겨울날에는 추워서.

계절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니 말도 안 되는 핑계다.


‘······후.’


날숨을 뱉은 슈메링은 핏줄이 비치는 창백한 미하엘의 얼굴을 응시했다.

줄곧 구박하긴 했어도 실상 게으름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안다.

만물.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원인이었다.

실질적으로 만물은 제 주인에게 해악을 끼치진 않는다. 명백한 진실이다. 하지만 만물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제 주인에게 해악이기도 했다.


무슨 의미이고 하니······.

자연의 일부인 나뭇잎을 예시로 들어보자.

통상적으로 인간은 잎을 볼 때 표면인 잎자루와 잎맥만 본다. 반면 숲지기들은 표면뿐 아니라 그 이면, 잎의 내부까지 선연히 볼 수 있다.

곧, 잎 하나를 놓고도 유유한 자연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한데 주인님은······.’


애초에 바위 크기로 맺혔으니 오죽할까.

여타의 숲지기들이 헤아리는 본질, 그 너머의 심층까지도 헤아릴 수 있다.

보고 싶지 않을 때조차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 자연스레 그려진다. 심지어 그것들이 현현하기까지 한다. 공허한 비명을 달고서.

해서 만날 두통과 이명에 시달린다.

그 탓에 생에 대부분을 잠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고.

게으름의 원인을 잘 알기에 슈메링은 제 주인이 무척 안타까웠다. 마음이야 아렸지만······.


“눈가리개를 하시면 덜 보이고 덜 들리잖아요. 그러니 영역 좀 돌보셔요. 예? 이러다 영역에 문제 생기겠어요.”

“한숨 자고.”


슈메링이 미하엘의 소맷자락을 살포시 쥐고 흔들자 미하엘이 건성으로 답했다.

그래도 입을 연 게 어딘가.

만약 다른 이가 보챘으면 덮어놓고 무시했을 텐데, 터지기라고 저만은 예외였다. 차별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는 그녀는 질기게 말을 붙였다.

주인의 잠을 방해하려는 수작이었다.


“항시 그리 대꾸하시잖아요. 며칠 전에도, 몇십 년 전에도, 수백 년 전에도.”

“다 그런 거야. 계획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니.”

“뭐가 다 그래요? 주인님만 그러셔요. 게을러터진 주인님만.”

“나 같은 놈도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지.”

“어휴. 이리저리 둘러치시긴.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슈메링은 단잠에 빠지려는 미하엘을 한껏 흘겼다.

솔직히 제 주인의 성정만 특이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숲지기 자체가 게으르다 싶을 정도로 느긋하다.

제3의 눈인 심안을 가져서인지 아니면 더럽게 오래 살기 때문인지.

천성의 이유가 무엇이든, 여유만만인 숲지기들은 감정의 낙차마저 극히 적다. 희로애락의 폭이 작을뿐더러 성애는 없다시피 한다.

무욕한 대신이랄까.

일족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특히 후대, 그중에서 제자가 될 이를 무척 아낀다. 애정이 지나쳐 집착하는 수준.


‘그마저도 주인님은 없다시피, 아니 그 일이 벌어지고 아예······.’


미하엘은 일족의 사사로운 일이나 후대 같은 것들에 무심하다.

아니, 남 일인 양 아예 관여를 안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관망한다고나 할까.


‘그래도 나름 속정은 깊으신 분인데.’


제 주인의 표현 방식이 좀 남다르긴 할지라도 다감한 것은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에 닿았던 미하엘과 그녀의 첫 만남만 봐도······.


“흐음. 사멸 직전의 장미 정령이라.”

“살려달라 하였지? 그래, 살고 싶은 이는 살아야지. 대신, 내 남쪽 영역의 터지기가 되어야겠다. 이어 붙여준 목숨값은 치러야지.”

“내 터지기에게 이름이 없다라. 흠. 용납할 수 없지. 너에게 슈메테르링을 부여하겠다.”


그날로 한낱 꽃의 정령은 대드루이드의 비호를 받는 터지기가 되었다.

터지기, 숲지기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권속.

대개 숲에서 제일 강한 마물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그것은 신수(神獸)가 된다. 여태껏 그러하다가, 제일 약한 꽃의 정령이 거머쥐었으니 한동안 시끄러웠더랬다.

주변이 어떻든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더 없을 은총을 입은 슈메테르링, 슈메링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그녀는 이 은색 숲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주인님, 주인님.”

“······.”


슈메테르링의 목소리는 절박해졌다.

그녀는 자신을 살린 주인이 마냥 침잠하기만 하는 것이 애처로웠다.

생에 대부분이 무미건조하다면 지고한 자리에 있은들 무슨 소용이랴. 진창을 기어도 울고 웃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 생이다.


“이대로 주무시지 마시고 제발, 일 좀 하셔요! 예? 새로이 피어난 생물은 없나, 마물종의 변형은 없나 그런 것들을 좀.”

“나중에.”

“무슨 나중에요! 노닥거리기 바빠서 하는 것도 없으신 분이.”

“내가 왜 하는 일이 없어?”

“대체 뭘 하시는데요?”

“숨쉬기.”

“······.”

“그 어려운 것을 꾸준히 해내고 있지, 이 몸이.”


기가 찬다.

터무니없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현답이라 반박도 어려웠다.

슈메테르링이 입술을 뻐끔거리기만 하던 그 순간, 그만 귀찮게 하라고 손짓하던 미하엘의 눈이 뜨였다.

심지어 상체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주인님? 드디어 일하실 생각이······.”

“쯧. 어제부터 숲 여기저기서 웬 녀석 하나가 계속 관심을 달라 보채니.”


어딘가를 향한 미하엘의 옅은 은색 동공이 공막에 녹아들어 갔다.



***



기눙가프의 남쪽 상공에 뜬 거대한 눈 하나.

수만 송이의 푸른 장미로 이루어진 동공은 ‘숲과의 동화’라는 마법이었다.

숲과 일체화된 미하엘은 숲의 시선으로 세계를 관찰했다.

그를 부르듯 소란스러운 곳은 한 곳뿐이었다. 멀리 떨어진 최동단의 회색 협곡이 바로 진원지였다.

거기서 읽히는 기척은 둘.

하나는 마물이라 익숙하고 하나는 낯설었다.


“······인간.”


그것도 어린 남자아이였다.

설령 성인이어도 인간은 기눙가프를 자유로이 거닐 수 없다.

괜히 인간들 사이에서 죽음의 숲이라 불릴까. 그들은 연유를 알지 못해 두려워하지만, 진실은 간단했다.

숲의 농후한 자연력, 인간들이 마력이라 명명한 그것을 인간 자체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호흡을 통해 혈액으로 스민 마력이 기폭제가 되어 인간의 몸을 터트려버린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화약고인 셈이라 마물들조차 그것을 건드리지 않는다.

실상은 그렇다.

마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게 아닌데도 진실을 아는 인간은 없다.

여하튼.


“말짱하네?”


미하엘은 이변을 감지하고 약간의 주의를 더 기울였다.

남자아이 하나가 무언가에 뒷덜미를 물린 채 협곡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지치고 피로한 것 빼곤 성했다.

그의 기준에서 말짱한 거지 따지고 들면 아이는 괜찮지 못했다.

여기저기 찢긴 데다 맨발바닥에서 흩뿌려지는 것이 핏물인 것만 봐도 알만했다. 누구라도 동정심을 가질 몰골이었다.


“희한하군. 숲이 위해를 가하지 않다니.”


기눙가프는 인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탐욕이 순리대로 고고하게 흐르는 숲을 해할 것이 자명해서다. 어머니 나무의 의지에 순응하는 숲은 인간에게 적대적이다.

한데 왜 이번만은?

저 인간 아이의 무엇이 어머니 나무의 인정을 끌어냈을까?


“흠. 길 안내를 받는 것 같은데······.”


미하엘은 짠한 아이의 몰골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아이의 옷자락을 물고 있어도 사냥감으로 대하지 않는 어떤 것. 그것은 제 아기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고양이 마냥 굴고 있었다.

익숙한 기척.


“저것은 또 어찌하여.”


마물인 독 꼬리 키벨론이었다.

사자의 생김에 남색 번개가 튀는 갈기, 꼬리가 뱀의 형태인 키벨론. 그것은 기눙가프의 대지를 누비는 것들의 제왕이었다.

포악하고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어 적수가 없음이라.

심심해진 키벨론이 사냥감을 가지고 논다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었다.


“인간을 어딘가로 안내한다, 라.”


어디지?

미하엘의 동공이 움직이자 상공에 뜬 눈 역시 이동했다. 둔중하나, 키벨론과 아이의 동선을 한시도 놓치지 않았다.

이대로 회색 협곡의 끝에 다다라 두어 개의 얼음 호수와 툰드라 지대를 지나면······.


“으음.”


무척 익숙한 장소가 펼쳐진다.

돌발 사태에도 미하엘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명확한 파악을 위해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인간 아이가 당도할 곳은 빤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주기를 저녁 9시 10분쯤으로 고정합니다. 24.09.02 13 0 -
27 26화. 24.09.14 16 0 13쪽
26 25화. 24.09.13 17 1 13쪽
25 24화. 24.09.12 25 0 12쪽
24 23화. 24.09.11 30 1 13쪽
23 22화. 24.09.10 33 1 12쪽
22 21화. 24.09.09 33 1 13쪽
21 20화. 24.09.08 42 1 13쪽
20 19화. 24.09.07 42 1 11쪽
19 18화. 24.09.06 46 1 13쪽
18 17화. 24.09.05 51 1 13쪽
17 16화. 24.09.04 50 1 13쪽
16 15화. 24.09.03 52 1 13쪽
15 14화. 24.09.02 49 1 13쪽
14 13화. 24.09.01 57 2 14쪽
13 12화. 24.08.31 56 1 13쪽
12 11화. 24.08.30 55 2 12쪽
11 10화. 24.08.29 64 1 13쪽
10 9화. 24.08.28 67 1 13쪽
9 8화. 24.08.27 69 1 14쪽
8 7화. 24.08.26 86 2 13쪽
7 6화. 24.08.25 90 3 13쪽
6 5화. 24.08.24 107 1 13쪽
5 4화. 24.08.23 115 2 13쪽
4 3화. 24.08.22 142 1 12쪽
» 2화. 24.08.21 151 3 12쪽
2 1화. 24.08.21 198 3 13쪽
1 프롤로그 24.08.21 261 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