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드루이드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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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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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상가
작품등록일 :
2024.08.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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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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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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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5화. 앞으로 1년(2)



거취가 뚝딱 결정되고 난 잠시 후.

아이는 집이라 지칭된 유백색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옆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데다, 어떤 가공도 거치지 않은 뽀얀 가지와 이파리를 달고 있었다.

어디로 보나 완벽하게 자연 발생한 나무였다.


‘······여기가 1년간 내가 살 곳.’


솔직히 남자가 내보인 그간의 태도로 미루어 알아서 살 자리를 마련하라고 할 줄 알았다. 집이 될 땅굴을 어떤 식으로 파야 하나 고민까지 했었는데······.



“주인님, 인간 아이는 어디서 살아요?”

“쓸데없는 질문은. 멀쩡한 집 놔두고 노숙은 안 시킨다.”



아이의 고민을 꿰뚫는 대화가 오간 후 현재에 이르렀다.

집으로, 정확히는 지상에 드러난 굵은 나무뿌리 안으로 들어간 남자를 따라 아이도 걸음을 뗐다.

저녁이라 그런지 등불 하나 켜지지 않은 집은 어두컴컴했다.


‘어? 이 구조······.’


층계 없는 통짜, 빈 나무속이라서 다행이었다. 아득한 천장이 시원하게 뚫려서 그나마 어스름한 달빛이 곳곳을 비춰주니 말이다.

사물의 윤곽이 희미한데도 남자는 잘도 돌아다녔다.

역시나 맹인(盲人)이 아니었다.


‘잘 보이면서 왜 눈가리개를 하는 걸까?’


짐작이긴 하나 멋을 위한 장식은 아닌 것 같다.

아이는 고아하게 나풀거리는 긴 천을 더듬어 조심히 눈가리개를 살폈다. 피부를 상하게 하지 않을 최고급 비단에 기하학적 꽃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저것만 봐도 어떤 용도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상은 유추하기 어려웠다.


“고양이 목숨 아홉을 전부 거두는 것이 호기심이란 놈이다.”


생뚱맞은 남자의 말.

······경고였다!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라는 우아한 비유에 아이는 몸을 움칠했다.

제가 눈치를 보든 말든 남자는 시종 무표정할 뿐이었다.


“괜한 데 시간을 쏟을 처지가 아닐 터인데.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혹은 가져갈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라.”

“······.”

“하면, 인간계에서 낙낙하게 홀로 살 수 있을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숲을 헤매는 사이 별 희귀한 약초와 귀한 광석들이 지천으로 깔린 것을 목격했다. 그것들 몇 개만 챙겨도 부호가 될 수 있다.

제 소유가 아니라서 손대지 않았지만, 눈길이 가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그것을 남자는 알고 있었다.


‘······단순 대마법사라고 하기에는.’


숲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했다.

더군다나 포악한 마물마저 설설 기는 터라 궁금증만 부피를 키웠다.

죽음의 숲에도 황제나 지배자가 있을까? 경고받았음에도 사고가 쏠리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날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


본인 할 말은 다 끝낸 모양이다.

일방적인 대화를 마무리 지은 남자가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게 끝이었다. 아이는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



“······한 개도 묻지를 않네.”


왜 숲에 오게 된 건지, 무슨 사연인 건지 보통은 캐묻지 않나?

곤혹스러울 과정은 건너뛰었다.

왠지 앞으로도 남자가 질문할 것 같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이는 철저히 손님이었다. 머물다 떠나야 하는.

그게 어쩐지 서러워지는 밤이었다.

주인이 무심해도 비빌 언덕이 생겨서 그런 성싶다. 목숨을 위협받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이 박히자 마음이 흐무러졌다.


“흐읍.”


아이는 급작스레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꾹꾹 억누르는데도 글썽글썽한 눈가가 금방 흐려지고 말았다. 울지 않으려 힘을 준 순간, 연한 주홍색 가루가 부유했다.

······뭐지?

먼지는 아니었다.

가루가 너울댈 때마다 청아한 냄새가 은은하게 코끝을 스쳤다. 금세 호기심이 일어 아이의 눈물샘이 틀어막혔다.

주홍색 가루의 색이 짙어질수록 어쩐지 집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했는데······.


“꽃이.”


잔뿌리에 휘감긴 벽 곳곳에 자리한 꽃봉오리가 만발해선 빛을 발했다.

샹들리에보다 훨씬 멋스럽고 아름다웠다. 아이가 넋 놓고 있는 사이, 뒤늦게 집 안으로 들어온 슈메테르링이 우쭐댔다.


“예쁘지? 별빛바라기라는 거야.”

“별빛바라기요?”

“응. 별빛을 잔뜩 받을 때만 피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어. 별빛을 짝사랑하는 수줍은 꽃이라서.”

“와. 정말 신기해요.”


아이는 별빛처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이에 맞는, 혹은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표정을 꾸며냈다. 돌이켜보니 너무 아이같이 굴지 않았다.

조숙한 태도로 인해 ‘소름 끼친다.’라는 악담을 수시로 들었었다.

심지어······.



“괴물! 넌 괴물일 뿐이야! 더러운 피를 이은!”



악다구니 쓰던 어떤 여자가 아이의 뇌리로 파고들었다.

자칫하다간 이곳에서도 미움을 받을지 모르겠다. 깨달음은 섬광 같았고, 아이는 가식을 잊은 채 시무룩해졌다.


“지금이 훨씬 자연스러워.”

“······?”


의문을 표하는 아이의 등을 슈메테르링이 쓸어내렸다. 미지근한 체온이 잔뜩 경직된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아깐 왜 가짜로 웃었어? 그게 인간들 간의 예의인 거야?”

“예의는 아닌데······. 그냥······.”

“우물쭈물하는 거 보니 알만해. 별 뜻 없는 거지? 그럼 억지로 꾸밀 필요 없어.”

“······.”

“여기선 그래도 돼.”


무엇이 우스운지 슈메테르링 혼자 키득거렸다.


“그거 알아? 저 별빛바라기조차 몇백 살이야. 등불을 대신하던 처음 세대가 죽고 쟤가 2세대거든. 그에 비해 넌.”


백 년을 살더라도 핏덩이란다.

겨우 걸음마를 뗀 주제에 영양가 없는 번민을 달고 있다며 타박받았다. 슈메테르링이 아이의 등을 꾹꾹 눌렀다.

호쾌한 손놀림이 빳빳한 척추뼈를 물렁물렁하게 만들었다.


“그만 자도록 해. 청승 떨지 말고.”

“저······ 어디서?”

“아. 아무 데나 맘에 드는 벽 앞에 서 봐. 그러고선 ‘여기로 정할게.’라고 말해 봐. 그러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야.”


장난기를 덕지덕지 단 슈메테르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으로 재촉을 한 그녀는 ‘내일 보자.’라는 인사를 끝낸 뒤 어딘가로 가버렸다. 다들 제멋대로였다.


“······재밌는 일?”


아이는 별빛바라기가 많지 않은 벽 앞에 섰다.

다른 곳은 문이 있어서 그런지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슈메테르링의 장난대로 따르긴 했지만 기대는 없었다.

어울려 주고선 그녀가 물으면 ‘제대로 속았어요!’라고 할 심산이다.

오직 그것뿐이었는데······.

“?!”



***



“어땠어?”


다음날 슈메테르링의 질문을 받았다.

꽤나 놀랐을 거라는 확신이 담긴 얼굴이었다. 얄미웠지만 사실이라 아이는 어젯밤을 되감았다.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만 어쩐지 부끄러웠다.

“여, 여기로 정할게.”

별말 아닌데도 낯이 뜨거워져서 아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얼렁뚱땅 휩쓸려서 괜한 짓을 하고 말았다.

한숨을 쉬며 돌아서려던 찰나,

“!!”

뿌리가 갈라지며 아치형의 나무 문이 되더니 스르르 열리기까지 했다.

마법 같은 현상에 굳어있는 틈, 휑한 방안에 침대며 협탁이 생겨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무의 결이 온전한 벽에 별빛바라기가 자라나기 시작했을 땐 정말이지······.



“······엄청 놀랐어요.”


아이는 묘한 반발심을 누르며 순순히 대꾸했다.

뚱한 태도에도 슈메테르링은 즐겁다는 듯 옆에 찰싹 붙어 언어를 쏟아냈다.


“그치? 놀랐지? 재밌었지? 어머니 나무가 준 씨앗에서 자란 나무라 그래. 으음. 심장이 뛰고 그런 건 아닌데, 주인님을 위해선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어.”


쉼 없는 지절거림에 귀청이 얼얼할 지경이다.

귀가 잘 붙어있나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아이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무엇으로든요?”

“응. 나무란 본질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저······.”

“왜?”

“주인님이란 분의 정체가 뭐예요? 대마법사인가요?”

“인간들 시점에선 그렇지만······ 정확히는 기눙가프의 지배자인 숲지기, 엘브로아 일족의 대드루이드, 그리고 남쪽의 영역주야.”


짤막한 요약을 한 슈메테르링이 쪼그린 몸을 일으켰다.

덩달아 보라색 드레스가 굽이쳤다. 어떤 행동을 하든 꽃 같다. 화사하고 화사한 장미꽃. 그러나 가시가 매서운 도도한 꽃.


“질문은 여기까지.”

“······.”

“주인님께서 호기심을 가지지 말라 하셨으니 이것만 명심해. 주인님이 너를 궁금해하지 않듯 너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것을.”


슈메테르링의 얼굴에서 표정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무기질적으로 변하자 정교하게 세공한 인형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방금까지 보여준 것들은 가짜고, 이게 본모습 같다.


“인간들은 그래. 서로 상처 주고 미워하면서도 똘똘 잘 뭉치지. 제 편일 인간들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려 할 땐 그만한 사연이 있을 거야. 그렇지?”

“······.”

“그것을 캐묻지 않는 주인님을 존중해줘.”

“예.”

“설령 주인님의 정체가 마왕쯤 되고, 여기가 마왕의 소굴이라도 너의 도피처로 안성맞춤이잖아? 그러니까 즐겁게 살다가 떠나. 네가 원하는 것들을 모조리 쥔 채. 알았지?”

“······예.”


아이는 선선히 주억거렸다.

순종적으로 굴자 슈메테르링의 표정에서 다시금 미소가 번졌다.

그때에서야 아이는 제 손바닥에 흥건한 땀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자칫하다간······ 죽을 뻔했다. 사신의 손이 제 모가지를 틀어쥐고 있었음이라.


‘등신이!’


죽음의 숲에서 자유로이 살아가는 이들 때문에 멍청하게 굴었다.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건 정체 파악하기가 아닌데 말이다.

저들이 옳다.

헬리오스 제국 어디서도 제가 발붙일 수 있는 곳은 없다. 적은 수라도 눈과 입이 있는 곳에선 소문이 날 수 있으니까.

만약 자신이 살아있음을 그 악귀들이 알아차린다면······.


‘복수해야 하는데!’


여섯 살의 몸뚱이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선은 자라야 한다. 강건한 육체와 더불어 마법사가 목표였다. 몇 없는 귀한 마법사가. 신의 뜻을 대행한다고 하여 권력을 틀어쥔 마법사가.


‘아마 여기라면······.’


태양신인 솔레의 선택을 받은 소수만이 마법사가 될 수 있다.

제국민들은 그렇게 믿는다. 태생적으로 마력을 타고 난 게 아니라면 ‘마력초’로 탁한 육체를 정화하고 그릇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력초를 복용하다 보면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이 된다.

문제는 마력초라는 것이 귀하디귀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솔레 교단이라는 점이다. 마력초를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

원래라면 그렇지만 이 숲에는 마력초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마법사가 사는 곳이니까.


‘1년, 그 안에 찾아야 해!’


천운을 타고나 마력은 지니고 있다.

다만 운은 거기서 그쳤고, 악귀의 농간으로 막혀버린 기혈을 마력초로 되살려야 한다. 자꾸 이곳으로 되돌아온 이유였다.

목표가 명확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도 모자랐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무리로 인해 헛다리만 긁어대고 있었다.

정신 차려야지!

아이는 어느 사이 마른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해야 할 일과 신경을 꺼야 할 것들을 다시금 구분한 후였다. 급류처럼 시간이 내달렸다. 집 근방도 미처 다 살피지 못했음에도 나흘이 지나갔다.


“하아. 물어볼 수도 없고.”


아이는 산딸기를 꼭꼭 씹으며 웅얼거렸다.

왠지 예감이 그렇다. 마력초에 대해 알려달라 하면 바구니 그득 내어줄 것 같다. 적어도 약초에 관한 건 인색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문제는 막연한 추측만으로 운을 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마력초가 중요해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그땐······.

이도 저도 못 하고 속앓이 중이었다.

1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라 자꾸만 조급증이 일고 말았다.

어쩌지?


“크읏!”


고심하던 아이는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마음이 쫓기는 원인은 며칠 사이 나빠져 가는 몸 상태에 있었다. 슈메테르링이 먹을 수 있는 것을 가르쳐줬는데······.

코발트 로즈의 수술을 씹으면 꿀맛이 나고, 그 옆의 산딸기는 달콤했다. 이 산딸기 덤불에서 스무 발자국만 가면 포도밭이 나온다.

검보라색 포도는 설탕물을 부은 듯해서 식욕을 불러일으켰다.

굶어 죽을 일은 없지만······ 뭔가를 먹은 후부터 심장께에 둔통이 생겼다. 이건 그나마 참을 만한 축이라면 이따금 소용돌이치는 작열감은 문제였다.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매번 한계치를 갱신하는 통에 견디기 쉽지 않았다.


“버터야······ 하는데.”


이깟 통증에 굴복하는 것도, 마력초 찾기를 포기하는 것도 싫었다.

손을 놓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차라리 죽고 말지.

아이는 독하게 정신을 추스르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문질렀다. 아무리 닦아내도 발열로 인한 증상은 나아지질 않았다.

마냥 억누르며 인내하고 있을 때였다.


사락사락.

나비가 걷는 것 같은 발걸음과 동시에 아이를 덮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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