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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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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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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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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파편 (1)

DUMMY

11. 기억의 파편 (1)




로라메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디몬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분해보이는 그 모습이 로라메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디몬에게서 등을 돌렸다.




“게라드 경, 가자.”




그녀는 억누를 수 없는 화를 꾹꾹 눌러 담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게라드는 디몬과 로라메리를 번갈아보며 망설였지만, 이내 로라메리를 따라나섰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지하실의 차가운 공기와 어두운 분위기는 점점 멀어지고, 횃불을 밝힌 복도가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로라메리는 복도를 걸으며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로라메리는 디몬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루카스. 디몬에게 나는 소용이 없어. 디몬은 여전히 고집불통이고 제멋대로야. 디몬은 오빠의 말만 들어.’




로라메리는 복도를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의 양손은 주먹을 꽉 쥔 채로 떨리고 있었다.




게라드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로라메리는 잠시 멈춰 섰다.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다.




“게라드 경.”




로라메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따르던 게라드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네, 대공녀님.”




게라드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디몬을 잘 부탁해. 또다시 나와 디몬이 싸우게 되면··· 그땐 디몬의 편을 들어줘. 난 괜찮으니 말이야.”




로라메리는 게라드의 팔을 잡고, 눈을 맞추며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그녀의 진심이었다.




게라드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대공녀님의 편을 들려고 한 게 아니라······.”




로라메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게라드의 말을 끊었다.




“알아. 게라드. 그냥 그렇게 해줘. 게라드 경에게, 개인적인 부탁이야.”




게라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








지하실 안에는 디몬과 테오만이 남았다. 어둠 속에서 테오의 손에 든 등불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테오의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의 코에 피 비린내가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고, 마치 사냥을 앞둔 짐승처럼 경계심이 온몸으로 퍼졌다.




테오는 조금 전부터 점점 강해지는 피냄새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협적인 피냄새가 아니라, 위험에 처한자의 피냄새임을 알아챘다. 계속해서 한 사람의 피 냄새만 낫기 때문이었다.




“주군께서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테오는 지하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갑작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디몬은 황당한 표정으로 테오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잖아!”




한껏 눈썹을 추켜올린 디몬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홀로드 기사단의 비술입니다.”




테오는 비밀얘기를 하듯 디몬의 가까이로 한걸음 다가와 속삭였다. 디몬은 입을 삐죽이며 비꼬는 듯 말했다.




“아, 기사단에 입단하자마자, 아버지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게 귀를 바꿔치웠나 보지?”




테오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비슷합니다. 한 번 제 귀를 잡아당겨보시겠습니까?”




그의 태도는 여유로웠지만, 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디몬은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됐어! 가봐.”




지하실의 어둠 속에 남겨진 디몬은 왠지 모르게 서럽다는 생각을 했다.








***








성의 정문을 둘러싼 해자는 깊고 넓었으며, 교량이 내려오기 전까지 접근이 어려웠다. 성문은 거대한 철문으로, 평소에는 단단히 잠겨 있었다.




여름철 식수 저장고로도 쓰이는 해자는 현재 눈으로 덮여 있었고, 비토리오 플라메라가 그 위를 건너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의 옷자락은 찢겨나가 상처 난 피부가 드러나 있었고, 상처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비토리오는 깊은 찰과상과 화상, 그리고 온갖 잡다한 상처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얼굴이 피로 얼룩져 피부의 살색이 보이지 않았고, 눈은 퉁퉁 부어올라 거의 감긴 것처럼 보였다. 그가 눈 틈으로 홀로드성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자, 뒤틀린 입가 근육 사이로 피가 흘러내려 턱을 타고 떨어졌다.




비토리오는 비틀거리며 해자 근처에 멈춰 섰다. 그의 숨소리는 거칠고 불규칙했으며, 한 손으로는 부러진 갈비뼈를 감싸 쥐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듯, 손끝에서 에테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손 끝에서 붉은빛의 불꽃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비토리오는 고통을 억누르며 집중했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불꽃은 점점 커지며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




불꽃의 열기가 그의 손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그는 이를 악물며 힘을 모았다.




“윽···”




불꽃은 그의 의지에 따라 공중으로 날아올라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것이 공기와 뒤섞이듯 휘몰아치고 해자를 넘어 성벽의 고정된 교량을 향해 폭발하듯 부딪혔다.




거대한 불꽃은 교량의 사슬을 타고 흐르며, 차가운 금속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사슬이 녹아내리면서 묶여있던 교량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량이 완전히 내려오자, 비토리오는 무릎을 꿇고 땅에 쓰러졌다. 그의 숨은 점점 가빠졌고,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피 묻은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얼굴 근처 바닥에 십자가를 그렸다.








***








홀로드 성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테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잠그고, 숨을 고르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테오는 그의 숨이 끊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을 느꼈다.




‘살리고 싶다.’




테오는 숨을 들이마시고 온 신경을 한곳에 집중했다. 그의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며 온몸의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팽창하며 피부 아래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재배열되었다. 그의 팔과 다리는 점점 길어지고 굵어졌으며 인간의 것보다 훨씬 강력해 보였다.




등줄기를 따라 자라나는 은빛의 털은 빠르게 그의 몸을 덮었다. 그 모질은 거칠고 두꺼웠다.




붉은 눈 아래의 코와 입이 앞으로 돌출되며, 날카로운 이빨이 입 안에서 번뜩였다.




털로 뒤덮인 삼각 모양의 뾰족한 귀는 예민하게 반응하며 주변의 소리를 감지했다.




피냄새가 점점 짙어지고, 테오는 완전한 늑대의 형태로 거듭났다.




늑대는 창문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성벽 밖으로 뛰어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그의 털을 스쳤다. 그는 지면에 부드럽게 착지한 후, 성의 정문을 향해 남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살 수 있다면, 살아야지.’




그의 다리 근육이 팽팽하게 움직이며,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를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오는 교량에 도착했다.




비토리오는 교량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지면의 눈을 녹이고 주변을 붉게 물들였다. 생명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테오는 그의 곁에 다가가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테오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일련의 장면들이 휘몰아쳤다. 알 수 없는 장면들이 고통스럽게 그의 의식을 침범했다.




테오는 갑작스러운 기억의 파편들에 의해 머리를 바닥에 처박으며 몸을 떨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뜨겁고 거친 숨소리가 찬공기와 뒤섞였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기억을 공유하며, 마치 그 순간을 함께 겪는 듯한 통증에 휩싸였다.




남자의 피냄새 사이로 녹진한 바다냄새가 풍겨왔다.




테오는 이 남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혔다. 그는 어떻게든 그를 살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비토리오의 상처는 너무 깊었고, 그의 생명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위병이 나팔을 부는 소리가 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테오는 지금 자신의 힘만으로 남자를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누군가가 비토리오를 발견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테오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낮추었다. 그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늑대의 모습을 한 테오의 가슴팍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숨이 깊게 들어갔다. 그의 갈비뼈가 확장되고, 복부 근육이 단단해졌다.




그리고 테오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입을 크게 벌렸다. 사람의 손가락만 한 송곳니가 공포스럽게 드러났다.




그의 울음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테오의 목구멍을 통해 울려 퍼지며, 공기를 가르고 빠르게 이동했다.




성벽 위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병사는 귀를 찌르는 강력한 늑대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병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멀리 있는 교량 쪽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병사는 교량 위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눈을 더욱 부릅뜨며 자세히 보니, 커다란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경비장님! 교량 위에 엄청나게 큰 늑대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것 같습니다!”




병사는 손으로 교량 쪽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경비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교량 위의 상황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빨리, 성 안에 소집 경보를 울리고 주군께 전달하라! 자네는 부단장님께 이를 알리게. 외부인의 옷차림이었네!”




경비장은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서둘러 움직이며 경비장의 명령을 따랐다. 곧이어 성 안에 경보가 울려 퍼졌다. 경보 소리는 날카롭고 긴박하게 성 전체에 울려 퍼지며,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경보 소리에 반응한 기사들과 병사들은 무기를 집어 들고 재빠르게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갑옷을 입고 헬멧을 쓰는 소리와 무기를 손에 쥐는 소리가 성 안을 가득 메웠다.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돌바닥에 울려 퍼지며 긴박감을 더했다. 성문 앞에는 이미 수많은 병사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명령을 기다리며 성문 너머를 주시하고 있었다.




멀리서 거대한 체격을 가진 게라드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상세히 보고하라!”




경비장이 신속하게 대답했다.




“교량의 사슬이 풀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상자가 교량 위에 있습니다! 늑대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게라드는 즉시 명령을 내리며 상황을 지휘했다.




“전원 교량으로 향한다! 부상자를 안전하게 성 안으로 데려와라! 성문을 열어라!”




테오의 세모난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테오는 게라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몸을 낮추었다.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그림샤텐 숲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발자국을 최대한 남기지 않기 위해 무성하게 자란 풀길을 따라 달렸다. 그의 강력한 발톱이 땅을 파고들며 힘차게 나아갔다.




금속이 마찰되는 소리가 울리고, 성문이 완전히 열리자 병사들은 게라드의 명령에 따라 교량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게라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상자를 이송하라!”




게라드는 병사들을 지휘하며 교량으로 접근했다. 병사들은 부상자의 상태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병사 하나는 비토리오의 옆에 무릎을 꿇고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늑대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병사 하나가 교량 주위를 둘러보며 보고했다.




“부상자를 성 안으로 옮겨라!”




게라드가 부상자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병사들에게 명령하자 병사들은 신속하게 비토리오를 들것에 옮겼다. 병사들은 부상자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지탱하며, 가능한 빠르게 성 안으로 이동했다.




병사들이 부상자를 옮기자, 게라드는 그가 있던 자리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가까이 다가갔다.




비토리오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는 피로 선명하게 그려진 십자가 모양이 남아있었다. 옆에는 엄청난 크기의 늑대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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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파편 (1) 24.09.09 13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9 0 12쪽
10 디몬의 마음 (2) 24.09.05 10 0 12쪽
9 디몬의 마음 (1) 24.09.04 10 0 12쪽
8 오늘부터 24.09.03 14 0 12쪽
7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5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6 0 13쪽
5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4 0 12쪽
4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4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6 0 12쪽
2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2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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