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버리신다면, 북부에서 살아남겠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새글

무치코
작품등록일 :
2024.08.25 23:49
최근연재일 :
2024.09.18 00:00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262
추천수 :
2
글자수 :
102,101

작성
24.09.03 00:00
조회
13
추천
0
글자
12쪽

오늘부터

DUMMY

오늘부터




발레리안 일행은 지아를 따라 힐드리히 언덕과 발렌티아 강이 교차되는 숲 속으로 들어섰다.




숲 속의 공기는 신선하고 맑았으며, 나무들이 하늘 높이 뻗어 모습을 감추기 좋았다. 숨기 딱 좋은 장소였다. 발렌티아 강물이 부드럽게 흐르며 돌 틈을 파고드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지아의 집은 그로부터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야 했다. 길목과 멀리 떨어진 숲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은 오래된 나무판자를 주워 대충 지은 듯했으며 허름하고 낡아 보였다. 벽면은 이끼와 덩굴로 뒤덮여 있어 언뜻 본다면, 사람이 사는 곳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창문이라고는 나무판자가 어긋나며 생긴 작은 공간이 전부였다. 그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집의 뒤편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득한 잡초 뒤 한편에는 지아가 직접 가꾼 것으로 보이는 허브와 야채들이 소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지아는 문으로 추측되는 것을 열어 발레리안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나무로 대강 만들어진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발레리안은 이곳이 그녀의 피난처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








지아의 집안으로 들어서자, 어둑한 방 가운데 헝겊을 기워 만든 침구가 보였다. 여러 번 꿰맨 듯 군데군데 헝겊 조각들이 덧대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지아의 아들 레오가 누워 있었다.




레오는 어린 소년이었다. 그의 얼굴은 고통과 열기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있었고, 팔다리는 퉁퉁 부은 채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숨소리는 거칠고 불규칙했으며 아이의 작은 가슴이 끊임없이 빠르게 오르내렸다.




아이의 한쪽 팔은 침대 가장자리에서 축 늘어져 있었고, 손끝이 바닥을 스치고 있었다. 레오의 몸은 마치 버려진 인형처럼 생기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에는 희미하게 반짝이며 공중을 유영하는 에테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아는 레오의 곁으로 달려가 아이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발레리안을 바라보았다.




발레리안의 뒤에는 테오도르가 서 있었다. 아이와 멀리 떨어져 서 있던 테오도르는 오른팔을 공중에 올리고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듯 동작을 취했다.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갑작스러운 뜨거움이 테오도르의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그 순간, 테오도르는 마치 감전된 것처럼 움찔거리며 손을 주먹 쥐었다.




그는 강력한 에테르가 레오의 몸을 휘감고 있음을 느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이었다. 꿈이던가? 책이던가? 이것을 뭐라고 하더라······.




테오도르의 눈은 놀라움과 동시에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연민이 밀려왔다. 이 작은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에테르 격류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테오도르는 문득 떠오르는 절망감을 억누르며 물기 맺힌 붉은 눈으로 발레리안을 바라봤다.




“혹시 파티아드의······.”




그러나 테오도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발레리안은 이미 상황을 깨달은 듯 자신의 수통을 재빠르게 집어 들었다. 그는 한 손으로 수통의 뚜껑을 열고, 다른 손으로 레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쳐 들었다.




“알고 있다. 서두르자”




발레리안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긴박감이 감돌았다.




수통에서 맑고 투명한 물방울이 떠올랐다. 발레리안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레오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파티아드의 물방울은 레오의 혀 끝에서 톡 하고 터졌다. 액체는 서서히 퍼져나가며 그의 온몸으로 흘러들어 갔다. 마치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고열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레오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서서히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왔다.




레오의 몸을 휘감고 있던 희미한 에테르의 흔적들이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아이의 호흡은 점차 고르게 되었고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표정이 서서히 풀어졌다.




지아는 숨을 죽인 채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희망이 차올랐다. 아이의 일그러진 표정이 풀리는 모습을 보며 지아는 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이내 흐느꼈다.




“레오···소중한 내 아이야······.”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레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기적을 바라보듯 발레리안을 응시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정말 감사합니다.”




발레리안은 지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했다.




“일어나시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지아는 발레리안의 손길에 놀라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무릎을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 지아는 낡은 식탁으로 그를 안내했다. 식탁 역시 어디선가 주워온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부분적으로 부서져 있었다. 의자도 마찬가지로 낡고 높이가 맞지 않았다.




지아는 조심스럽게 의자를 당겨주며 발레리안이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 다음 마주 앉아 조용히 깊은숨을 내쉬었다.




식탁 위에는 말라비틀어진 빵 한 조각과 차갑게 식은 허브 차가 담긴 낡은 도자기 잔이 있었다. 발레리안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남부를 떠나 이곳에 오게 된 연유를 말해줄 수 있겠나? 어찌하여 쫓기고 있는지도 말일세.”




그의 말에 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라갔던 그녀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발레리안은 지아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급하게 대충 지은 집. 집안의 모든 것은 임시방편으로 유지되며, 문가의 짐가방을 보니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해놓았더군.”




발레리안은 식탁 위에 놓인 낡은 도자기 잔과 찬장의 그릇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부의 물건들이로군. 값비싸 보이지만 오래된 물건이고. 급하게 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는지 짝이 맞질 않는군.”




지아는 그제야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남편이 제게··· 처음 선물해 준 잔과 차기입니다.”




“그대에게 소중한 물건이로군.”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신성모독을 한 반란군이라며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을 당했습니다. 저는 동이 트기 전, 레오를 데리고 남부를 떠나왔습니다.”




“반란이라······.”




“절대! 카일은··· 제 남편은 반역자가 아닙니다. 저희는 주어진 것들에 순응하며 살아왔습니다. 만약 그런··· 것을 하려 했다면, 순순히 레오에게 에테르 링을 씌우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희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신전에 기도를 올리고 제국법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마법사가 신성모독이라니요. 누구보다 신의 뜻을 지키려는 자들이 마법사입니다. 신께서 저희에게 마법을 나누어 주신 이유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에테르 링은 자네가 직접 파괴한 것인가?”




“에테르 링은 남부의 마법사라면 누구나 쉽게 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발레리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남부의 모든 마법사들이 에테르 링을 파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아는 눈물을 먼지 묻은 옷소매로 닦아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에테르 링을 착용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제국법이 그러니까요.”




발레리안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습격한 자의 얼굴을 보았는가?”




지아는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대신전에서 본 적 있는 성기사였습니다.”




“성기사라? 확실한가? 내 말은, 자네의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냐는 뜻이다.”




지아는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가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답했다. 그녀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저는 신관의 케이프에 자수 놓는 일을 했습니다. 분명 성기사였습니다. 성기사가 제 남편을 죽였습니다.”




발레리안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지아, 자네는 강한가?”




“강하다는 것이···어떤······.”




“레오와 스스로를 지키기 충분하냐는 뜻이다.”




“그들이 저와 레오를 죽이려 한다면 제 모든 에테르를 쏟아 그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기사를 공격한다면··· 저희는 제국에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발레리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황제는 자신의 아들이 아트람 왕의 환생이라 믿는다. 성기사는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반란군을 색출하고 있다. 숲에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물들이 증가하고 그 마물은 북부의 경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열 번의 태양이 지고 난 후에 홀로드 성으로 찾아오너라. 밖에 게라드 있는가?”




발레리안의 말과 동시에 게라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 주군. 부르셨습니까”




발레리안은 게라드를 향해 물었다.




“이 여인의 이름과 용모를 기억하겠는가”




게라드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예? 저 여인은 지아. 짙은 갈색 머리에 녹색 눈동자! 얼굴은 예쁩니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으니 서둘러 출발하지.”




“예, 주군.”




‘부디 살아남거라.’








***








지아와의 대화를 마친 발레리안은 집을 나섰다. 그는 낡은 나무문을 열고 나가며 마지막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레오는 안정된 상태로 잠들어 있었고, 지아는 여전히 눈물을 머금은 채 발레리안을 배웅하고 있었다.




지아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전하.”




발레리안은 집 밖으로 나와 자신의 말에 올랐다. 그를 따라 테오도르가 움직였다.




오후의 바람은 서늘했고, 나뭇잎이 부드럽게 흔들리며 귓가를 간지럽혔다.




석양이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려 길을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발레리안은 말의 속도를 늦춰 테오도르의 옆으로 다가왔다.




“에테르 격류라는 말은 처음 들었네.”




“저 또한 어딘가에서 들었을 뿐입니다. 아이가 살아서 다행입니다.”




“남부를 떠나 제국법을 어긴 마법사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폐하께서 이동을 금한 것 아니겠는가?”




“그저 자식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지 않습니까. 부모에게 자식은 가장 귀한 것 아닙니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저는 남부의 마법사들이 가엾습니다.”




“부친께서도 자네를 그리 귀하게 여겨주었는가?”




테오도르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 기억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듯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부친께서는 매우 바쁜 분이셔서요.”




“그렇지. 식사는 입에 맞는가? 행군은 힘들진 않고?”




“함께··· 식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발레리안은 후작저에서 지내는 며칠간 테오도르가 항상 단원들의 곁을 맴도는 것을 보았다. 마치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던 강아지처럼 말이다. 주위가 번잡스럽고 북적한 것이 그의 기쁨인 듯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카스퍼. 그저 어린아이 일 뿐이지 않는가······.’




“오늘부터 네 이름은 테오다. 나와 함께 북부를 지켜다오.”




노을빛이 테오의 얼굴을 감싸며 그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테오의 눈은 살짝 아래를 향해 있었고, 그의 입가에는 수줍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발레리안이 목격했던 그 미소였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며 고베라의 고원지대가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붉게 물든 하늘엔 주황빛 구름이 평온하게 흘러갔다. 저 멀리, 북부와의 접경지대인 노르딘 강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흐르고 있었다.




발레리안은 앞장서서 말을 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의구심과 불안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들을 떠올리며 결심을 굳혔다.




홀로드를 수호하는 그림자가 발레리안의 행렬을 따라 길게 드리워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두가 버리신다면, 북부에서 살아남겠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봄의 기운 NEW 11시간 전 1 0 13쪽
18 지나간 시간과 마음 24.09.17 4 0 12쪽
17 북부의 왕과 마탑주 24.09.16 8 0 13쪽
16 돌아온 레오니드 (2) 24.09.13 9 0 12쪽
15 돌아온 레오니드 24.09.12 11 0 12쪽
14 마탑주의 방문 24.09.11 12 0 12쪽
13 기억의 파편 (2) 24.09.10 11 0 12쪽
12 기억의 파편 (1) 24.09.09 12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9 0 12쪽
10 디몬의 마음 (2) 24.09.05 9 0 12쪽
9 디몬의 마음 (1) 24.09.04 9 0 12쪽
» 오늘부터 24.09.03 14 0 12쪽
7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4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5 0 13쪽
5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3 0 12쪽
4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4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5 0 12쪽
2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2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1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