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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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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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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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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에서의 첫만남

DUMMY

북부에서의 첫 만남




홀로 마중 나오지 않은, 발레리안의 딸 로라메리는 홀로드 성의 서쪽에 위치한 연무장에서 갓 서임을 받은 기사들과 함께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발레리안은 자신이 데려온 아이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카스퍼 황제가 비밀리에 맡긴 소년, 테오. 발레리안은 황제가 모든 비밀을 털어놓으며 북부에 그를 맡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비밀이 전부 사실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소년의 외형이었다. 북부의 흰 눈을 닮은 은발의 머리카락과 대륙에서 극히 드문 붉은 눈동자. 그리고 또래에 비해 유달리 큰 체격.




귀한 분의 자제임이 틀림없다는 듯, 소년에게서 불현듯 나타나는 우아한 기품은 이 아이가 특별한 존재임을 드러냈다.




발레리안은 내성을 빠져나와 연무장을 향해 걸어가며 테오에게 한 번 더 당부했다.




“테오”




그의 이름을 서슴없이 부르는 발레리안의 목소리에 그가 눈썹을 움찔거렸다.




“예··· 대공전하”




아주 중요한 사실을 전달해야 했는지 발레리안은 자리에 멈추었다.




“테오, 명심하거라.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야 한다.”




턱을 당겨 눈을 치켜뜨고, 의뭉스러운 눈으로 장난 섞인 미소를 짓는 모습만이 그가 열여섯임을 짐작하게 했다.




“대공전하의 가족에게도 말입니까?”




차가운 공기를 크게 한 번 들이마신 발레리안이 다시 걸음을 떼며 말했다.




“물론. 그리고 이곳은 북부다. 북부에서는 가족을 함부로 내걸지 않는다.”




“아, 배울 것이 많습니다. 대공전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이죽거리는 테오였다.








***








발레리안과 아르디스의 딸, 로라메리는 대륙의 귀부인은 물론, 강인하기로 소문난 북부의 여성보다도 비범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홀로드 성을 물려받아 스스로 북부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 누구보다 북부를 애정하고 홀로드 성을 아꼈으며 북부인을 각별히 살폈다.




로라메리가 이른 새벽부터 연무장에 나온 것도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자신의 쌍둥이 오빠인 디몬 때문이었다.




대륙에서는 쌍둥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겼지만, 첫째 루카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곧바로 얻은 쌍둥이였기 때문에 북부인 들은 이들을 신의 선물이라 여겼다.




쌍둥이가 여섯 살 일 무렵, 어김없이 디몬은 로라메리의 성질을 긁어대더니 ‘북부의 대공이 검을 다루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냐’는 말로 결국 대공녀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하나뿐인 소중한 딸의 부탁을 발레리안은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공의 판단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 덕에 로라메리는 기사단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기사단은 로라메리에게 기사 그 이상이었다. 가족이자 친구였으며 스승이었다. 그녀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했으며,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주고, 용기와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물론 기사들의 방식으로 말이다.




디몬은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과 달리 기질적으로 게으르고 교활한 면이 있었으며 루카스가 죽은 후에는 잠시 변하는 듯했으나, 몇 해가 지나자 다시 원래의 나태하고 간교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빵을 먹고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들이 북부의 차기 대공은 디몬의 몫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로라메리가 북부를 통치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




디아만티아 대륙에서 여성이 홀로 가문을 이끄는 일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로라메리가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리고 있을 때, 발레리안이 테오와 함께 연무장에 도착했다. 화들짝 놀란 로라메리는 검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은 탓에 로라메리의 가는 목선이 훤히 드러났다. 땀에 젖은 하늘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목덜미에 이리저리 엉겨 붙어있었다.




“아버지, 어서 오세요. 티보를 이기고 있어서···. 마중 나가지 못했어요.”




그녀는 맞은편에 서있는, 처음 보는 소년의 끈덕진 시선을 피해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하하하! 어릴 적에도 롤리 너는 이렇게 달려오곤 했었지. 네 어머니에겐 비밀로 하자. 그나저나 티보를 이기고 있었다고? 하! 대견하구나.”




로라메리는 그제야 자신이 달려왔음을 인지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질끈 묶었던 머리를 재빨리 풀어 붉게 물든 뺨을 감추려 했다. 그 순간 테오의 붉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반짝였다.




“연회 때도 소개하겠지만, 이 아이는 테오라고 한다. 네 또래이니 잘 대해주거라.”




“테오···”




로라메리는 혀 끝을 간지럽히는 그 이름을 자그맣게 되뇌며, 그를 슬쩍 훑어보았다. 정갈한 외모와 단단한 체격이 신기했다.




‘디몬보다 훨씬 크구나.’




“잘 부탁드립니다. 로라메리 대공녀님.”




테오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그녀는 테오의 무례한 시선에 손 끝이 저려오는 불쾌감을 느꼈다.




그의 눈빛은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로라메리는 악착스럽게 자신을 좇는 그의 눈길을 피해 시선을 내렸다.




“반갑구나 테오, 혹시 지내는 동안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하거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말과 행동을 신경 쓰고 있었다.




테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로라메리 대공녀님”




해가 푸른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고, 달궈진 바람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곧 보자는 말을 남긴 발레리안은 연무장을 떠나 내성으로 들어갔다.




테오와 로라메리만이 남아있었다.




로라메리는 테오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내려놓은 검을 향해 걸어갔다.




“대공녀님”




테오가 로라메리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할 말이라도?”




“아닙니다. 그저 좋은 향기를 머금은 대공녀께서 우악스럽게 커다란 검을 쥔 것이 신기하여.”




그 순간 티보는 테오를 유심히 관찰하며 그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했다.




로라메리는 테오의 말을 듣고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행동하려 애썼으나 쉽지 않았다. 난생처음 듣는 말에 근육이 쭈뼛서고 귀 끝이 달아올랐다.




로라메리가 움직이지 않자, 티보가 산발의 갈색머리를 풀어헤치며 걸어왔다.




티보는 로라메리보다 한 뼘 더 큰 키로, 기사단원중 가장 작고 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길게 자라 투박하게 묶은 곱슬머리가 그의 상징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대공녀님”




로라메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티보를 바라보며 물었다.




“티보 경···. 혹시 내게서 좋은 향기가 나는가?”




티보는 로라메리의 질문에 멈칫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다 하다 이젠 공녀님 땀 냄새도 좋다고 해야 하는 겁니까? 저도 이제 서임받은 어엿한 기사입니다!”




로라메리는 갑작스러운 티보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티보의 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말했다.




“누가 기사가 아니 라디? 기사가 되면 나에게만 충성한다더니, 그깟 답을 못해주니! 설마···. 티보 너 좋아하는 여인이 생겼구나!”




“좋아하는 여인이야 많지요!”




“뭐? 많아? 많다고? 누군데? 누군데!”




로라메리가 또다시 티보를 치며 다그치자, 티보가 호들갑을 떨며 어깨를 접어 몸을 살짝 틀었다.




그들은 자연스레 테오를 등지고 표적이 놓여있는 연무장의 중앙으로 사이좋게 걸어갔다. 테오는 기사단의 숙소가 아닌 내성을 향해 걸어갔다.




‘바다 냄새’




테오는 로라메리에게서 바다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테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로라메리는 웃음을 멈추고 상념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








로라메리는 곧장 아버지의 서재로 향했다. 목욕을 마친 발레리안은 젖어서 더욱 짙어 보이는 남색 머리카락의 물기를 가볍게 털며 아르디스와 대화 중이었다. 그녀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선 후, 가볍게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아버지, 어머니.”




발레리안이 호탕한 웃음으로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르디스는 땀에 젖은 훈련복을 입은 자신의 딸이 썩 내키지 않는 듯 눈을 감고 깊은숨을 삼켰다.




아우렐리아 후작가에서 나고 자라 품격을 제 목숨처럼 익혔던 아르디스는 거친 딸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로라메리의 기질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그녀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연한 금발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르디스를 그대로 빼닮은 로라메리는 내로라하는 미인 중에서도 단연코 눈길을 끌만한 얼굴이었다. 특히 하늘색의 굽실하고 풍성한 머리카락과 청량한 하늘색 눈동자를 한 번 마주한다면, 어느 누구도 쉽게 잊기 어려웠다.




발레리안은 아르디스에게 약했고,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로라메리에게도 역시나 물렀다.




“롤리. 솜씨가 많이 늘었더구나. 이번엔 몇 명이나 다녀갔느냐? 하하하!”




“세어보진 않았어요. 꽤 되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수많은 사내들이 북부를 찾아오고는 했다. 대공녀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서였다. 로라메리는 자신과의 대련에서 승리해야만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러자 감히 대공녀에게 혼담을 넣을 수 없는 가문에서 조차 하나둘씩 북부를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로라메리의 조건은 비단 치기 어린 자신감이 아니었다. 10년간 기사단의 일과를 흉내 내듯 수행했으니. 그녀는 꽤나 훌륭한 검사와 다를 바 없었다. 어찌 되었건, 찾아온 이들 중 아직까지 그녀를 이긴 사내는 없었다.




“다 이긴 거지? 대장감이로구나! 암, 우리 롤리의 짝이 되려면 드래곤 정도는 맨손으로 때려잡아야지! 하하하”




“발레리안. 숙녀에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르디스가 제 남편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말했다.




“미안하오. 아르디스.”




꼬리 내린 강아지마냥, 제 풍채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발레리안이 말했다.




“함께 온 그 소년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아버지.”




갑작스러운 발언에도 발레리안과 아르디스는 놀라는 기색 한 번 보이지 않았다.




로라메리는 언제나 거침없었다. 그녀의 품행이 보통의 귀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뒤에서조차 비웃는 이 없었다.




그 누구도 북부의 왕, 프레데릭의 여식을 헐뜯을 수 없었으며, 애초에 로라메리는 본인의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2 황자의 생일 연회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은, 대공가의 비밀스러운 두 여인은 각종 소문에 휘말리곤 했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들이 너무 아름다워 발레리안이 북부에 감금했다는 것이었다.




“로라메리 프레데릭. 낯선 소년에 대해 무엇이 얼마나 궁금하길래. 그런 꼴로 온 거지?”




아르디스가 다소 나무라는 말투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 올리자면, 소년의 행색이 일반적인 기사의 종자는 아닌 듯하여 찾아왔습니다.”




“로라메리.”




아르디스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예쁜 얼굴을 찌푸려 잔뜩 겁을 주었으나 로라메리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발레리안이 입을 열었다.




“황가의 먼 일족이라 하더구나”




아르디스는 제 딸에게만 물러지는 자신의 남편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로라메리는 순간 멈칫하며 아버지의 말을 곱씹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테오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져갔다.




“황가의 친척이 북부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입니까?”




발레리안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게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구나. 방금 도착하지 않았니.”




로라메리는 아버지의 어두운 표정을 보아, 물러서야 할 때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적절하게 대처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결과에 승복하는 것.




로라메리가 검과 함께 배운 수많은 미덕 중 하나였다.




그녀는 밖으로 나와 정원에서 잠시 멈추었다. 눈 덮인 대지와 나무 사이로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시야에 테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단숨에 거대한 성벽을 뛰어넘고 그림샤텐 숲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날렵하고 빠르게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말발굽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연회에 참석하는 귀빈들을 태운 마차가 하나둘씩 도착했다. 잘 다듬어진 갈기를 휘날리는 말들이 우아한 걸음으로 안뜰에 들어서자, 홀로드성의 하인들이 공손히 인사를 올리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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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버리신다면, 북부에서 살아남겠습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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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봄의 기운 NEW 11시간 전 1 0 13쪽
18 지나간 시간과 마음 24.09.17 4 0 12쪽
17 북부의 왕과 마탑주 24.09.16 8 0 13쪽
16 돌아온 레오니드 (2) 24.09.13 9 0 12쪽
15 돌아온 레오니드 24.09.12 11 0 12쪽
14 마탑주의 방문 24.09.11 12 0 12쪽
13 기억의 파편 (2) 24.09.10 11 0 12쪽
12 기억의 파편 (1) 24.09.09 12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8 0 12쪽
10 디몬의 마음 (2) 24.09.05 9 0 12쪽
9 디몬의 마음 (1) 24.09.04 9 0 12쪽
8 오늘부터 24.09.03 13 0 12쪽
7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4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5 0 13쪽
5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3 0 12쪽
4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3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5 0 12쪽
»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2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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