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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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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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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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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서 생긴 일

DUMMY

마탑에서 생긴 일




새벽녘, 은빛 안개가 대륙의 광활한 평야를 덮고 있었다. 발레리안과 테오도르는 동부를 경유하여 북부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마차의 덜컹거림이 대지의 고요를 깨웠다.




주변에는 푸르스름한 초목이 이슬을 머금고 있었고, 그 너머로 광활한 하늘이 펼쳐졌다. 동트기 전의 바람은 차가웠다. 물론, 북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테오도르는 마차 창문을 통해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은빛 머리카락이 미세한 빛을 받아 반짝였다.




발레리안은 창 밖에 눈을 떼지 못하는 테오도르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작은 방에 갇혀 지낸 아이였기에 모든 것이 새롭겠거니 싶었다.




힐드리히 언덕을 넘으면 펼쳐지는 플라텀 평야는 광활한 초록빛깔의 바다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야에 자라난 밀과 풀들이 바람에 흔들려 춤추듯 일렁였다.




색색의 물감을 뿌려놓은 듯 한 야생화들이 풀 틈을 비집고 드문드문 피어나 있었다. 멀리 지평선까지 탁 트인 풍경은 하늘과 맞닿아 있어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온화한 햇살이 내려앉은 이곳은 고요하면서도 생명이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플라텀 평야를 지나 동부의 풍요롭고 따뜻한 도시 에버리시티에 도착한 발레리안 일행은 에버리시티의 테라놀스 후작에게 환대를 받았다. 도시 한가운데에서는 장터가 붐볐고, 풍족함으로부터 나오는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테라놀스 후작저에 머물며 농작물과 생활필수품을 구매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발레리안과 기사단은 북부로 떠날 준비를 했다.




마차에 북부인들의 식량이 가득 담기기 시작했다. 마차가 모자라자 발레리안은 자신의 마차를 내어주고 말에 올랐다. 본래 마차보다는 말 위가 편한 그였다. 하지만 테오도르가 마음에 걸렸다.




발레리안은 테오도르에게로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말을 탈 수 있겠··· 습니까?”




테오도르는 약간의 비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네다리 짐승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루나피라 아닙니까.”




발레리안은 그의 반응에 순간 멈칫하며 눈썹을 찌푸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침묵을 택했다.




테오도르는 능숙하게 말에 올라 고삐를 움켜쥐고는 발레리안을 향해 웃으며 눈짓했다. 전장을 누리는 기사처럼 늠름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힐드리히 언덕을 따라 북쪽으로 오르면, 거대한 바위산과 고원지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거친 바위들이 중첩되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고원의 드넓은 지대 한가운데에는 위압적인 마탑이 우뚝 서 있었다. 마탑의 위쪽에는 구름이 걸려있었다.




고원을 오르는 이들은 거친 지형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험준한 바위틈을 지나며 그들의 옷자락은 쉴 새 없이 휘날렸으나, 그 누구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때 강력한 에테르를 감지한 발레리안이 고개를 들어 마탑 부근을 주시했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테르가 공기를 진동시켰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던 발레리안은 테오도르 또한 자신과 같은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간 수련해 온 감각을 테오도르도 느꼈다는 뜻이었다. 발레리안은 당황한 기색을 재빨리 감췄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테오도르는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활짝 웃었다.








***








마탑주 조안나는 손 끝에서 강력한 에테르를 방출하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푸른빛의 에테르가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가며 대기를 가르자, 공기는 전율로 가득 찼다.




그 순간, 푸른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수많은 하피와 페더페어가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깃털과 조각난 몸의 파편들이 뒤섞여 회오리치며 땅으로 떨어졌다. 섬뜩하고도 아름다운, 마탑주의 압도적인 힘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말들이 날뛰자, 발레리안은 신속히 자신의 말을 달랜 후, 말의 가죽 고삐를 꽉 잡으라 지시했다.




테오도르가 자신이 탄 말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자 바닥의 흙바람이 말의 발 근처에서 동요했다.




“쉬이. 안전해.”




그에게서 처음 듣는 부드럽고 온기가 감도는 목소리였다. 말의 고삐가 금세 느슨해졌다.




발레리안과 기사단을 발견한 조안나가 자신의 학자들과 함께 걸어왔다.




조안나는 손을 부드럽게 휘감아 아직 흥분해 있는 몇몇의 말들을 진정시켰다. 마차의 바퀴 부근에서 잔잔한 흙바람이 일었다.




“북부의 왕을 뵙습니다. 마탑의 조안나입니다.”




푸른 눈의 조안나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고원의 바람이 그녀의 금발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차분하고도 우아한 외모였다.




“마탑주.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발레리안은 거침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마탑주라도 이렇게 강력한 에테르를 방출하는 것은 제국에서 금해있기 때문이었다.




조안나는 작은 숨을 내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잠시··· 주위를 물려주시겠습니까.”




발레리안은 주변을 빙 돌아보며 대답했다.




“이들은 모두 홀로드의 수호자들이고 나의 가족일세. 문제라도 있는가.”




“이 분도 말입니까?”




조안나가 테오도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붉은 눈이 조안나의 푸른 눈과 마주쳤다.




“테오···는 서임식은 치르지 않았으나 우리 기사단과 다름없네. 하나 자네들이 셋 뿐이니, 일 손이 필요할 듯하군.”




발레리안은 기사단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모두들, 여기 마법사들을 도와주도록 해라.”




돌바닥 위를 걷는 조안나와 발레리안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고상한 외모와 달리 성미가 급한 조안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대륙의 수호와 학문에 목적을 둔 것이라면 강한 에테르 방출도 허가되는 곳이 마탑입니다.”




“···”




“전하, 테오 경은 어떤 분이십니까?”




조안나의 푸른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금발의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리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꿋꿋이 발레리안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발레리안은 조안나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것을 눈치챘다. 발레리안은 점잖고 엄숙한 음성으로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것이 자네에게 중요한 겐가?”




“송구합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러니 전하께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테오 경에게 낯익은 분위기가 느껴졌기에 그랬습니다.”




조안나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며 그녀의 심경을 암시하듯 엉겨 붙었다.




“낯익다라······.”




발레리안은 조안나의 대답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예. 그리고 일전의 사건은 날개 달린 마물들이 고베라에 나타나 주민들의 피해가 막심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알테아르트 백작저의 곡물창고를 망가뜨려, 백작께서 제국의 허가를 받고 마탑에 요청하신 일입니다.”




발레리안은 조안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군, 언제부터였지? 마물들은 북부의 경계를 벗어날 수 없을 텐데······.”




“저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사실상 북부를 넘어오는 일이 여태껏 한 번도 없었지요. 북부의 왕과 수호자들이 보호해 주신 덕분입니다.”




발레리안의 마음에 새로운 고민 하나가 더 불어났다. 그는 조안나를 계속 응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황제께서도 이미 알고 계신가?”




“알테아르트 백작께서 허가를 받았으니 대략적인 것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하피와 페더페어를 유인해 사냥한 후 마석을 보내어 정확한 상황을 보고 하려 했습니다.”




발레리안이 무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 서둘러 황궁에 알리는 게 좋겠소.”




대화가 중단되고 침묵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 침묵을 깨고 조안나가 밝고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전하.”




“전쟁이 끝났으니, 우리 모두가 마주칠 일이 없어야 좋은 것 아니겠소.”




발레리안의 말에 조안나는 조용히 웃음기를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에게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 알려줄 수 있겠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북부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북부의 사람들은 그리운 눈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




“돌아갈 곳을 잃은 눈이었습니다. 테오 경을 보니 제 어린 두 눈이 떠오르더군요. 경솔했다면 사죄드립니다.”




“그렇군. 말해주어 고맙소.”




“전하는 그대로 십니다.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그리핀을 보내세요.”




발레리안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




“알다시피, 북부는 그리핀을 사용하지 않소.”




“허락하신다면 제가 아끼는 아이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발레리안은 턱을 갸우뚱하며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마탑주.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




걸음을 멈춘 발레리안이 돌바닥에 단단히 박힌 기둥처럼 꼿꼿하게 서서 물었다.




조안나는 거리낄 것이 전혀 없다는, 확신에 찬 어조로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마탑주의 죄책감을 이렇게라도 덜어주시지요.”




발레리안이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었다.




“그렇게 하지.”




발레리안이 몸을 돌려 기사단을 소집했다.








***








말과 마차를 이끌고 다시금 행진을 시작한 발레리안 일행에게, 누추한 행색의 여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녀의 옷자락은 먼지투성이였고, 그 옷 또한 여러 군데를 덧데어 기운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제발! 마탑주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아이가 죽어가요. 마탑주님만이 살릴 수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게라드가 말에서 내려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우리는 홀로드의 기사단입니다. 저분은 마탑주가 아니라, 저희의 주군이십니다.”




게라드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의 눈에는 연민이 서려 있었다.




발레리안은 손을 들어 일행의 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물 방울이 옷에 떨어져 작은 흔적을 남겼다.




모든 기사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고, 아이가 죽어간다는 말에 북부인 들은 동요 했다. 물론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게라드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거칠게 위로했다.




발레리안이 말에서 내려 게라드와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손은 검집 위에 올라가 있었다.




“자네··· 설마 마법사인가?”




“북부··· 의 왕을 뵙습니다. 저는 지아 미라빌리스입니다. 예··· 마법사가 맞습니다······.”




여인은 바닥에 양 무릎을 굽히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마탑의 연구원은 아닌 듯한데, 마법사가 어찌하여 남부가 아닌 이곳에서 사는가?”




발레리안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전하··· 제발, 레오···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그녀의 눈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에는 풀잎들과 나뭇가지가 엉겨 붙어 있었고 얼굴의 광대뼈가 드러날 만큼 아주 마른 몸을 지닌 여인이었다.




“대답을 하라.”




발레리안은 냉정하게 지시했다.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위엄이 풍겼다.




“제 아들 레오는 에덴강 동쪽 지역인 실라스타에서 태어났습니다. 레오는 에테르 스캐너에서 부적합 판단을 받아··· 일평생 에테르 링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에테르 링을 착용하기만 하면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는 바람에··· 이렇게 남부를 떠나왔습니다.”




여인이 흐느끼며 말했다.




“송구··· 하옵니다. 전하 제발 마탑주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마탑주를 만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발레리안이 게라드를 보며 눈짓을 하고 턱을 치켜들어 여인을 일으켜 세우라는 명을 내리며 말했다.




“에테르 링을 목에 걸었을 때처럼··· 아이의 에테르가 순환되지 않고 새어나가··· 고열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분명 그분이라면 방법을······.”




여인은 계속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걸었을 때처럼이라··· 자네가 직접 에테르 링을 파괴했는가?”




발레리안이 자신의 수통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지아라 했는가. 자네 거처로 가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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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버리신다면, 북부에서 살아남겠습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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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봄의 기운 NEW 11시간 전 1 0 13쪽
18 지나간 시간과 마음 24.09.17 4 0 12쪽
17 북부의 왕과 마탑주 24.09.16 8 0 13쪽
16 돌아온 레오니드 (2) 24.09.13 9 0 12쪽
15 돌아온 레오니드 24.09.12 12 0 12쪽
14 마탑주의 방문 24.09.11 12 0 12쪽
13 기억의 파편 (2) 24.09.10 12 0 12쪽
12 기억의 파편 (1) 24.09.09 12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9 0 12쪽
10 디몬의 마음 (2) 24.09.05 10 0 12쪽
9 디몬의 마음 (1) 24.09.04 10 0 12쪽
8 오늘부터 24.09.03 14 0 12쪽
»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5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5 0 13쪽
5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4 0 12쪽
4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4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6 0 12쪽
2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2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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