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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코
작품등록일 :
2024.08.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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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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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몬의 마음 (2)

DUMMY

디몬의 마음 (2)




테오가 서재를 나가자 방 안에는 발레리안과 디몬 그리고 집사 알프레드만이 남았다. 서재가 어색한 침묵 속에 잠겼다. 발레리안은 디몬을 바라보며 다정한 눈빛을 보냈지만, 아들의 그늘진 마음까지 품지는 못했다.




디몬은 황금 늑대상을 가슴팍에 꼭 붙들고 있었다.




발레리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디몬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에는 아들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묻어났다. 디몬의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디몬.”




발레리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무슨 일이냐? 왜 이리 얼굴이 좋지 않아.”




디몬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발레리안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멀리 다른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는 몇 번이고 입술을 떼려 했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프레드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며, 필요하다면 언제나 디몬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살포시 디몬의 팔꿈치를 쥐며 응원했다.




“아버지······.”




디몬은 마침내 목멘 소리로 말을 꺼냈다.




“저··· 황금 늑대상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떠나시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르카디아 그림 경연에서 우승했거든요.”




발레리안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는 디몬의 손에서 황금 늑대상을 건네들고 위로 들어 올려 찬찬히 살펴보았다.




“축하한다, 디몬. 네 어머니를 닮아 그리 실력이 좋은 게냐? 허허!”




발레리안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상을 받아오다니, 자랑스럽다.”




그제야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지워진 디몬은 신난 아기새처럼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사실은요, 아버지. 에디아르는 2등이에요. 이번 경연 주제는 대전쟁이었어요. 20주기인 내후년에, 제 그림이 황실에 걸릴 거예요. 물론 에디아르의 그림도요. 에디아르는 2등이지만요. ”




“대전쟁에 대한 그림을 그렸구나··· 고생 많았다.”




발레리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디몬이 또다시 말을 시작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대전쟁을 직접 겪으셨잖아요. 제가 어떤 장면을 그렸는지 궁금하시죠? 저는 아트람 왕의 목을 베는 황제 폐하의 모습을 그렸어요.”




그의 어리광 섞인 목소리에는 상당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발레리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대전쟁의 끔찍한 기억들이 떠오르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천진한 아들의 마음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애써 웃었다.




“그래, 그 장면은 우리 모두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발레리안은 낮은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하나, 전쟁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이기도 하단다.”




디몬은 아버지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에는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 엿보였다.




“네가 그린 그림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승리를 기념하는 중요한 작품이 될 거야. 하지만, 전쟁의 상처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단다.”




발레리안은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디몬은 아버지의 말에 맞춰 고개를 앞뒤로 천천히 끄덕거렸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저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렸어요.”




발레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아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그래 잘했다, 디몬. 자네는 무슨 일로 왔는가?”




디몬의 손을 내려놓은 발레리안이 집사 알프레드를 보며 물었다.




“홀로드 안의 모든 주민들에게 밀과 보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기 장부를 한 번 봐주십사 하고··· 대공비 전하께서 작성하신 것입니다.”




알프레드와 발레리안의 대화가 깊어지자 디몬은 멋쩍게 자리에 서 있다가, 홀로 조용히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








로라메리는 자신의 검을 가져간 테오를 쫓아가려다 아버지가 그를 부른 기억을 떠올리고는 식사를 먼저 하기로 결심했다. 이른 아침부터 기운을 짜냈더니 미치도록 배고픈 참이었다.




자신의 방에서 식사를 끝낸 그녀는 테오를 찾기 위해 성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테오 경은··· 기사단 소속이지!’




로라메리는 서둘러 기사단 숙소로 향했다. 기사단 숙소는 성의 서쪽, 연무장과 함께 위치해 있었다. 로라메리는 빠른 걸음으로 돌바닥을 밟으며 성의 복도를 지나쳤다.




기사단 숙소에 도착한 로라메리는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숙소 내부는 실내 훈련 공간과 공동 침실로 구분되어 있었고, 단출하지만 개인 사물함과 가구도 있었다.




테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공주님!”




로라메리는 저 기막힌 외침의 대상이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챘다.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게라드 경. 내 분명 그리 부르지 말라고 경고했네.”




“게라드 경이라니요. 서운합니다. 우리 아기 공주님께서 어느새 자라서···으악!”




로라메리는 자리에서 높게 뛰어 게라드의 등을 강하게 내리쳤다. 게라드는 북부 기사단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인물로, 그의 육체적 크기와 강인함은 모든 기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그의 키는 2m가 넘고, 넓은 어깨와 두꺼운 팔, 다리는 마치 쇠기둥 같은 느낌을 주었다. 거칠고 강인한 얼굴과 달리 순박하고 천진한 성정은 어린 대공녀의 기사로 적합했기에, 그는 로라메리가 어렸을 때 가장 가까이서 그녀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곤 했었다.




게라드가 앓는 소리를 내며 커다란 상체를 굽혔다.




“공주님! 이보시오들 북부의 공주님이 기사보다도 강하다네!”




맞으면서까지 로라메리에게 장난을 치는 게라드였다. 로라메리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래, 맘대로 해 게라드. 근데 혹시 테오 경 못 봤어?”




“테오 경! 테오 경은 봤지요, 공주님.”




“정말? 어디서?”




“그나저나, 오전에 테오 경과 대련을 하셨다면서요? 어찌 저와는 한 번도 해주시지 않으면서······.”




“게라드. 어디서 봤냐고.”




“··· 새벽에 대장간에서요.”




“대장간?”




“원정 때 부상당한 우리 귀여운 버클러를 치료해 주러 갔는데 거기에 테오 경이 있었지요! 티보보다 작은 체격이 사용할 아주 가벼운 레이피어를 구하는 것 같던데요?”




“그래? 새벽에? 알겠어, 고마워! 난 갈게!”




“벌써 가시게요? 오늘 에디아르님과··· 공주님! 공주님!”




로라메리는 감사인사를 건네며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은 성의 북서쪽 끝에 위치해 있었으며, 연무장과는 매우 가까웠다. 북부의 기사들 덕에 대장간에서는 항상 뜨거운 불길과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대장간에 도착한 그녀는 곳곳을 살폈으나 테오는 보이지 않았다. 로라메리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결국 발레리안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 안에는 아무도 없는지 방문을 지키는 이 하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로라메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지만, 테오의 모습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로라메리는 결국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레오니드가 준 검인데······.’








***








디몬의 방에는 에디아르가 함께 있었다. 그는 오전에 로라메리와 대련을 위해 홀로드에 방문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로라메리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디몬의 방을 찾아온 것이다.




에디아르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디몬 또한 마찬가지였다. 에디아르는 성사되지 않은 만남에 대한 실망을 여과 없이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면··· 혹시 로라메리가 아픈 것은 아닐까?”




그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듯, 꼭 그래야만 한다는 어조로 에디아르가 말했다.




디몬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응시했고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에디아르는 디몬의 상태를 눈치채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디몬, 너도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에디아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디몬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로라메리가 방에서 홀로 끙끙 앓고 있는 거라면 어떡하지? 네가 로라메리에게 한 번 가보는 건 어때?”




에디아르가 디몬의 눈치를 살피며 그를 종용했다. 그러자 갑작스레 눈에 초점이 돌아온 디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그래! 에디! 우리 롤리의 방에 같이 가보자!”




“저··· 정말? 나도? 하긴 너와 같이 가니까··· 그래! 좋아!”




에디아르의 목과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








그들이 방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밖에서 걸어오던 로라메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숨을 고르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로라메리! 괜찮아? 우리야. 디몬과 나!”




에디아르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로라메리에게 다가가 안심시키려는 듯 손을 뻗었다.




“안녕, 에디. 아···! 미안, 정말 미안해. 내가 깜빡했어······.”




로라메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하늘색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그녀에게서 미안함과 약간의 창피함이 물씬 느껴졌다.




에디아르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이렇게 보았으니 되었어. 우리는 네가 어디 아프기라도 한 줄 알고 정말 걱정했어.”




두 사람이 머쓱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주고받는 사이 디몬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결심한 듯 로라메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롤리! 너 테오. 그 자식 얘기 들었어?”




로라메리는 당황스러워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디몬을 바라보았다.




“나도 테오 경을 찾고 있었어! 테오 경을 보았어, 디몬?”




그녀가 디몬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디몬은 대답 없이 로라메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의심과 불만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는 자신의 윗입술을 치아로 잘근거렸다.




“역시 너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디몬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의 눈은 로라메리의 반응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시했다. 로라메리는 더욱 당황한 표정으로 디몬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물었다.




“무··· 무엇을 말이야?”




“테오, 그 자식과 우리가 가족이 되는 거 말이야.”




디몬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로라메리는 디몬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혀 입을 벌렸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며 움찔거렸다.




“가족? 우리가···?”




그녀의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고, 순식간에 뽀얀 두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열일곱의 나이로 제국법상 내년이면 혼인을 할 수 있는 나이였으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디몬은 로라메리의 반응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뜨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몰랐던 척하지 마, 롤리. 위대하신 홀로드의 대공녀라면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지금도 테오를 찾는 거 아니야?”




디몬은 로라메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분노와 서러움이 묻어났다.




말문이 막힌 로라메리는 그저 눈만 깜빡였다. 디몬은 그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니라고도 하지 마. 아버지께서 그 자식한테 말씀하시는 걸 내가 직접 듣고 오는 길이니까.”




힘주어 말하던 디몬의 얼굴이 목에서부터 붉게 물들어갔다. 로라메리는 디몬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던 디몬은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롤리. 아버지가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 루카스 형에게 말이야!”




디몬이 붙잡은 로라메리의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중심을 잡으려는 듯 로라메리의 발이 앞뒤로 빠르게 움직였다.




디몬의 눈은 붉게 물들어있었고, 그의 눈동자를 감싼 물기가 홀로드 성벽을 밝히는 촛불에 비쳐 반짝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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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버리신다면, 북부에서 살아남겠습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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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봄의 기운 NEW 11시간 전 1 0 13쪽
18 지나간 시간과 마음 24.09.17 4 0 12쪽
17 북부의 왕과 마탑주 24.09.16 8 0 13쪽
16 돌아온 레오니드 (2) 24.09.13 9 0 12쪽
15 돌아온 레오니드 24.09.12 12 0 12쪽
14 마탑주의 방문 24.09.11 12 0 12쪽
13 기억의 파편 (2) 24.09.10 12 0 12쪽
12 기억의 파편 (1) 24.09.09 12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9 0 12쪽
» 디몬의 마음 (2) 24.09.05 10 0 12쪽
9 디몬의 마음 (1) 24.09.04 10 0 12쪽
8 오늘부터 24.09.03 14 0 12쪽
7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4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5 0 13쪽
5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3 0 12쪽
4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4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6 0 12쪽
2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2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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