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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코
작품등록일 :
2024.08.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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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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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DUMMY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홀로드 성의 조명이 하나둘씩 꺼져갔다. 하지만 몇몇의 기사단원들은 여전히 축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환호와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에디아르는 새로운 홀로드의 은발 기사를 향해 ‘저리 꺼져라’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그는 자신이 로라메리의 그림자라도 되는 듯 떨어지지 않았다.




때마침 블랑시엔 백작가의 시종이 에디아르에게 다가와 귀띔했다.




“에디아르님,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백작님께서 부르십니다.”




에디아르는 마지막으로 로라메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로라메리 전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로라메리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리 꽃다발을 주셔도 봐드리진 않을 거예요.”




그는 아쉬운 마음을 숨기고 신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마차에 올라탔다. 에디아르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에디아르가 떠나고 로라메리와 테오 사이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두 사람의 침묵은 고요하고 격렬했다.




로라메리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 보이며 먼저 뒤돌아섰다.




“대공녀 전하.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테오는 에디아르를 흉내 내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로라메리는 돌아서서 날카롭게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테오 경?”




“아까 그 내기, 잊지 않으셨겠지요?”




“내기요? 꽃다발에 대한 내기 말인가요?”




테오는 제압이라도 하듯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 내기요. 제가 이겼으니 제 소원을 하나 들어주셔야 합니다.”




“내기할 필요는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로라메리는 그의 요구가 터무니없다는 듯 반응했다.




사냥꾼이 덫에 잡힌 토끼를 보듯, 테오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맞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그 꽃다발을 받으셨으니, 제 소원을 하나 들어주셔야 합니다.”




로라메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소원이라니, 무슨 소원을 말하는 건가요? 난 경의 소원을 들어줄 의무가 없어요.”




“저와 함께 검을 겨뤄 주십시오.”




테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로라메리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제안을 단호히 내쳤다.




“검을 겨루자고요? 싫어요.”




테오 또한 그녀의 거절은 예상 못한 듯, 본인이 하던 생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공녀님의 검은 너무 무겁습니다. 북부의 기사들이라면 제 손처럼 휘두를 수 있겠으나, 대공녀님은 불가합니다.”




심기가 불편해진 로라메리가 권위적이고 오만하게 말했다.




“테오 경. 하고 싶은 말씀을 하세요. 기사들의 검을 흉내 내는 대공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말이세요?”




로라메리가 감정을 드러내며 말하자, 그녀에게서 바다내음이 짙어졌다.




“검이 무겁다고요. 검이 무거우니 바꾸라는 말을 한 겁니다.”




로라메리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대꾸했다.




“경이 솔직한 줄 알았습니다만, 제 오해였나 봅니다.”




테오는 혼절할 것 같은 바다 냄새에 숨을 틀어막고 그녀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편하게 대하라면 기꺼이. 그 검은 대공녀에게 맞지 않아. 이리 작은 체구에 누가 그런 대검을 쥐어준 건지 궁금하군.”




로라메리는 눈을 흘기며 답했다.




“감당할 만 하기에 준 것이겠지. 경은 무례와 솔직함을 구별하지 못하는 재능을 가졌군.”




그는 울 것처럼 화를 내는 로라메리로부터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봐 주시니 가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일 아침 연무장에서 뵙겠습니다. 이리도 면밀하신 대공녀님이시니 약속을 꼭 지키실 것이라 믿습니다.”




로라메리는 표정을 굳힌 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일은 에디아르님과 대련이 있어!”




“저와의 약속도 있지요. 일찍 일어나셔야겠습니다.”




로라메리는 자신이 화를 내도 감히 웃기만 하는 저 낯짝이 기가 막히고 얄미웠다. 분이 올라와 온몸이 바들거릴 지경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시녀보다 일찍 일어난 로라메리는 홀로 푸른 머리를 질끈 동여 메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테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검을 손에 들고, 그녀를 맞이하며 꼭 어제처럼 미소 지었다.




황족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황제라도 되는 듯한, 여유로운 포식자의 미소였다.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대공녀님”




“원치 않던 약속이었습니다, 테오 경”




“원치 않아도, 이리 와주셨지요.”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자세를 잡았다. 테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검은 매끄럽고 빠르게 움직였고, 로라메리는 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방어에 집중했다.




테오의 검과 로라메리의 검이 교차될 때, 그녀는 그의 검을 막아내며 강한 충격을 느꼈다. 테오의 힘과 기술이 그녀의 예상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기술이 뛰어나다기보다 생전 처음 보는 검술이었다.




로라메리는 그의 예기치 못한 실력에 당황하며 물었다.




“그림샤텐 숲으로는 왜 간 거죠?”




그녀는 압도적인 테오의 힘에 놀라면서도, 왜 그가 강한지 의문스러웠다. 그래봤자 이제 막 기사단에 입단한 자가 아니던가. 아무리 이름 없는 황족이라도 용병생활을 했을 리는 없고.




테오가 웃었다.




“제게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그는 마치 그녀의 질문이 재미있다는 듯 굴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반격을 시도했다. 그녀의 검은 빠르고 날카롭게 움직이며 그의 허점을 노렸으나, 테오의 검에 비하면 느렸다.




로라메리는 그가 어떻게 이토록 빨리 움직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을 타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시간에 온 거지?”




테오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얄밉게 답했다.




“달리기가 아주 빠릅니다.”




두 사람의 검이 부딪히며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테오는 그녀의 공격을 피하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가 빠르게 앞으로 돌진했다. 그의 공격은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고 깔끔했으며 강력했다.




로라메리는 그에 맞서는 것이 점점 힘겹게 느껴졌다. 그녀의 호흡은 거칠어졌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려 했다.




두 검이 다시 한번 강하게 부딪혔다. 로라메리는 온 힘을 다해 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테오는 가볍게 그녀의 검을 튕겨내고 하늘을 향해 높이 뜬 검의 손잡이를 낚아챘다.




“잘하셨습니다. 대공녀님. 경의를 표합니다.”




양손에 검을 든 테오가 검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로라메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말을 의심스럽게 받아들였다.




“경의 공격을 막아대기만 했는데 무엇이 잘했다는 거지?”




로라메리는 여전히 헐떡이며 물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양 볼에 물결무늬처럼 들러붙어있었다.




테오는 처음의 모습 그대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뽀송한 모습이었다. 그는 헐떡이는 로라메리를 집어삼킬 듯이 눈에 담았다.




“그렇게 방어만 하십시오. 앞으로도 언제나.”




“방어만으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배웠다.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지 않는가.”




로라메리는 눈을 번뜩이며 대꾸했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음을 숨기려 애썼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대공녀를 감히 누가 공격하겠습니까. 솔직한 걸 좋아하시니 한 말씀 올리자면, 너무 느립니다. 전하께서 검을 한 번 치켜드는 사이에 전하의 몸이 두 동강 나는 게 먼저일 겁니다.”




테오는 자신이 가져온 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로라메리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을 평가하며 하나하나 쪼개어 보는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가벼운 검을 들면 내가 경을 찌를 수도 있을까?”




“찌르······. 하. 아마도요. 저는 주군이 부르셔서 가봐야겠습니다.”




왜 본인이 어이없어하는 것인지. 로라메리 입장에서는 기막힐 노릇이었다. 내기를 제안한 것도, 소원을 들어달라며 연무장에 부른 것도 테오였다. 애초에 처음 본 순간부터 ‘검을 쥔 대공녀’ 라며 시비 걸지 않았던가?




그녀는 바닥에 있는 검을 주워 검집에 넣으려고 허리를 숙였지만 검이 없었다.




‘내 검을 가져갔어!’








***








테오의 눈에 북부의 검술은, 검술이라기보다는 살기에 가까웠다. 칼을 쑤시고 찔러 넣는 것.




푸른 머리의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상스러운 것.




그녀에게는 제 머리색과 같은 녹음이 우거진 거리를 산책하거나 꽃을 꺾는 것 정도가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부에 녹음이 피어나고 잔디와 풀이 자라는 시기는 찰나겠지.




테오는 머릿속으로 그녀를 자신이 살던 곳에 내려놓아보았다. 꽤나 잘 어울렸다.




따뜻한 날씨에 얇은 옷차림과 푸른색의 굽실거리는 머리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다.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대공의 서재 앞이었다. 문 앞의 시종을 바라보자 시종이 문을 두드리고 전언했다.




“들어오라”




테오가 발레리안에게 예를 표하고 자리에 앉았다. 발레리안의 서재는 고풍스럽고 웅장한 분위기를 풍겼다. 벽에는 여러 전쟁의 유물과 대회의 트로피가 걸려 있었고, 커다란 책장은 방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발레리안은 묵직한 목재 책상 뒤에 앉아 있었고, 창 밖으로는 북부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시종이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한 발레리안이 테오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주름이 패인 자국이 보였으며, 로라메리와 달리 짙은 남색머리에 강인한 인상은 그가 겪어온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적응력이 좋으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제 딸아이와 대련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발레리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격식 있고 서늘한 말투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테오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공전하, 북부의 성에는 눈과 귀라도 달려있는 겁니까? 부디 이전처럼 말씀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그의 말투에는 어딘가 도발적인 기운이 섞여 있었다.




발레리안은 무자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테오. 황궁에서 자네가 피가 닿은 곳마다 꽃과 풀이 시들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버지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발레리안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테오를 주시했다.




“나는 자네의 답이 중요하네.”




테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냉혹하게 변했다.




“그랬다고 합니다. 아주 어릴 적에요.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발레리안은 수차례의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응시했다.




“황제가 내게 자네를 맡기고, 하루가 지나자마자 생사를 묻는 밀서가 도착했네. 이걸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테오는 은빛 머리카락이 휘날리게 고개를 저었다. 마치 무거운 과거를 털어내듯 보였다.




“일평생 황궁의 작은 방 안에서만 살아온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대공전하.”




발레리안의 눈이 가늘어지며 테오의 살껍질을 한 겹 씩 뜯어볼 것처럼 노려보았다.




“북부는 나의 전부일세. 지켜야 할 가족이자 유일한 안식처라네. 자네에게 북부는 어떤 곳인가?”




테오도르는 어깨를 으쓱하다가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느릿하게 답했다.




“북부는, 푸르고··· 예쁩니다.”




발레리안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의 눈빛은 한층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황제가 자네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있을 터. 하나 나는 복잡한 것을 싫어해. 내가 직접 본 것만을 믿지. 북부는 가족을 버리지 않는다네. 그래서 나는 자네를 입양하려 하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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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봄의 기운 NEW 11시간 전 1 0 13쪽
18 지나간 시간과 마음 24.09.17 4 0 12쪽
17 북부의 왕과 마탑주 24.09.16 8 0 13쪽
16 돌아온 레오니드 (2) 24.09.13 9 0 12쪽
15 돌아온 레오니드 24.09.12 11 0 12쪽
14 마탑주의 방문 24.09.11 12 0 12쪽
13 기억의 파편 (2) 24.09.10 11 0 12쪽
12 기억의 파편 (1) 24.09.09 12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8 0 12쪽
10 디몬의 마음 (2) 24.09.05 9 0 12쪽
9 디몬의 마음 (1) 24.09.04 9 0 12쪽
8 오늘부터 24.09.03 13 0 12쪽
7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4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5 0 13쪽
5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3 0 12쪽
»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4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5 0 12쪽
2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2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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