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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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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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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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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에서 생긴 일

DUMMY

원정에서 생긴 일




여름이 끝나면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정이었다. 대륙의 최상단, 그림샤텐 숲에서 마석을 모아 남부에 팔고, 그 돈으로 북부인들에게 나눠줄 밀과 보리를 동부에서 구매했다.




초겨울 안에 북부로 돌아와야만 했다.




발레리안 대공과 그의 기사단은 블리츠 산맥을 넘어 그림샤텐 숲 중앙으로 깊숙이 진입했다. 숲은 음산하고 어두웠으며, 나무들 사이로 희미한 안개가 자욱했다. 그들은 마물들을 사냥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발레리안의 손에는 대전쟁시절부터 그와 함께한 강철대검이 들려 있었고, 눈에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북부의 수호자여, 언제나 그렇듯 살아남아라!”




발레리안이 명했다.




“예! 주군!”




기사단장 레오니드를 필두로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레오니드는 거칠고 우락부락한 게라드와 달리 곱상한 외모를 가진 미남이었다. 그의 얼굴은 조각같이 정교했고, 날카로운 콧날과 각진 턱선은 그를 고위 귀족으로 의심하게 했다.




그의 금발은 부드럽게 빛났고,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카락은 투구 아래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우아하고 고결한 인상을 주는 그였지만, 눈빛만큼은 언제나 서늘했다.




갑자기 숲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의 냄새를 맡은 마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발레리안은 검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전원, 공격하라!”




기사단원들은 일제히 앞으로 돌진했다. 그들의 검과 방패는 어둠 속에서도 번뜩였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마물은 그림킨이었다. 검은색의 피부로 마치 그림자처럼 어두워, 숲과 하나처럼 보였다. 그것은 뾰족한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림킨의 붉은 눈동자가 길게 잔상을 남기며 실처럼 늘어졌다.




레오니드는 그림킨의 공격을 피하며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그림킨의 살을 가르며 검붉은 피가 사방에 튀었다. 그림킨의 피가 땅에 떨어지자, 피가 닿은 풀과 꽃이 시들기 시작했다. 레오니드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며 즉시 자신의 주군을 향해 달려갔다.




레오니드는 주변을 둘러보며 기사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발레리안에게 말했다.




“주군! 예측대로, 그들의 작품입니다. 피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식물들이 시들고 있습니다.”




발레리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계속해서 레오니드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검술은 완벽했다. 쓰러진 그림킨의 심장을 갈라 마석을 꺼내는 레오니드의 모습은 마치 전쟁의 신 같았다.




“계속 밀어붙여라!”




발레리안이 외쳤다.




“그림킨을 모두 처치하고 마석을 회수하라!”




게라드는 거대한 체구를 이용해 그림킨들을 상대했다. 그의 한 손에 든 방패는 그림킨의 뾰족한 발톱을 막아냈고, 다른 손에 든 검은 단숨에 그림킨의 심장을 노렸다. 그는 그림킨 한 마리의 몸통을 꿰뚫고 단번에 마석을 꺼내며 소리쳤다.




“이 몸은 벌써 3개째다! 나보다 뒤처지는 놈들은 각오하라고!”




레오니드는 그림킨들의 집중 공격을 피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검은 매끄럽게 그림킨의 심장만을 노렸으며, 그의 동작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우아했다. 그는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그들을 상대했으며, 마석을 꺼내며 말했다.




“게라드에게 지는 자는 나와 대련이다!”








***








그림샤텐 숲에서 마물을 처치한 후, 발레리안과 기사단은 쉬지 않고 곧장 남부로 향했다. 북부와 서부의 경계인 살렌티아의 사막을 지나고 루벨라의 붉은 숲을 지나 대륙의 남쪽으로 이동했다.




라디안시티. 대륙의 모든 마법서적을 소유한 대도서관과 대신전이 위치한 남부의 도시에 도착했다. 한때 지상낙원이라 불리었던 아름다운 이곳의 교외에는 대전쟁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도시의 외곽에는 붕괴된 건물과 불탄 잔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고, 쓰임을 다한 마도구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발레리안과 홀로드의 기사들은 말없이 한 참을 이동했다.




아트람의 몰락과 제국의 탄생 그리고 아트람과 같은 마법사라는 이유만으로 남부의 주민들은 원죄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제국의 보호라는 명분하에 자신의 에테르를 수시로 감시당해야 했으며, 높은 수치의 에테르를 지닌 자들은 위험분자로 취급 당해 몰래 제거되기도 했다. 마법사들은 남부 외의 지역으로 이주 불가였다. 이 또한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발레리안은 생각에 잠기며 도시의 중심부로 향했다.




“레오니드와 게라드는 나를 따르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마석을 판매하고 돌아오도록 하라. 솔라리아와 실라스타의 상단들을 전부 방문해도 좋다.”




발레리안의 명령에 기사단원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그들은 각각 라디안시티의 주요 상단들을 찾아가 마석을 팔기 시작했다.




단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발레리안은 라디안시티의 한 여관에 머물렀다. 여관은 좁은 골목길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으레 남부의 건물들이 그렇듯, 하얗게 칠해진 벽과 붉은 지붕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발코니에는 각종 꽃화분이 놓여있었다.




여관의 건물 외벽에는 정교한 타일과 신전에서 사용하는 엘림 문양이 장식되어 있어,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채, 조금씩 훼손되어 있었다.




밤이 되자, 기사단원들이 하나둘씩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서로가 더 비싸게 마석을 팔았음을 목청껏 자랑하며 여관의 야외 정원에 모여 앉았다. 정원에는 큰 나무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여관 주인이 준비한 다양한 음식과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남부의 밤은 조용하고도 아름다웠다.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들 사이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고, 하얗게 칠해진 건물들은 달빛 아래서 더욱 빛났다. 남부의 암묵적인 규칙인 듯 발코니에 만발한 꽃들은 풍부한 향기를 풍기며 거리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게라드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남부의 독특한 풍경을 감상했다. 그는 일전에 광장에서 본 화려한 분수의 물줄기를 떠올렸다.




“대장, 남부는 아름다운 곳이야. 이렇게나 생기가 넘치다니!”




레오니드는 남부의 전통 디저트인 마르지판을 바구니 가득 담아 자신의 앞에 두고 오물거리면서 여유롭게 말했다.




“감상적인 게라드. 남루한 외곽지역은 그새 잊었나?”




게라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얼굴만큼 커다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우리가 뭐, 남부의 수호자요? 이 정도면 예전이랑 똑같구먼!”




레오니드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주군 앞에서는 입조심해라.”




게라드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말했다.




“뭐, 이 대륙에서는 전부 다, 우리 주군 탓이요? 아니, 대전쟁이 우리 주군 때문에 일어났냐고! 아트람 그 쥐새끼들이···!”




그때 발레리안이 여관의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주군!”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레리안을 바라봤다. 그 순간 골목 끝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길고 흰 로브가 발목까지 내려와 바닥을 스치고 있었으며, 로브에는 성스러운 엘림 문양들이 금색 실로 정교하게 수 놓여있었다. 그의 목에는 은으로 된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저분은··· 대신관이 아니신가?”




게라드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큰 체구가 주변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대신관은 천천히 발레리안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로브에 수놓아진 문양들이 달빛 아래서 청초하게 반짝였다.




“오랜만입니다. 프레데릭 대공 전하. 북부의 왕과 북부의 수호자를 뵙습니다.”




발레리안은 경계의 눈빛을 띄며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대신관. 이렇게 먼 곳까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북부에서부터 마석을 갖고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를 드리고자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대신전과 중앙광장은 아주 가깝습니다. 혹여 시간이 되신다면 신전에 들러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




대신관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빛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속삭이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대신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발레리안은 대신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응시했다.




“대륙의 존경을 받는 전하께서 방문해 주신다면, 신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대신관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발레리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는 건, 북부의 도리가 아니지요.”




대신관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적 가운데 그의 로브가 바닥에 쓸려 서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따뜻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공전하”




그가 물러나자, 게라드는 레오니드에게 몸을 기울이며 수군거렸다.




“대장, 신의 기쁨을 위해서 우리가 대신전까지 가야 한단 말이요?”




레오니드는 한 손으로 자신에게 기울어진 게라드를 밀어내며 말했다.




“신전에 힘을 실어달라는 뜻이겠지. 돌머리 게라드경.”




게라드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껌뻑거렸다.




“우리 주군은 참 마음도 넓으십니다. 대신관이 명상인지 뭔지만 안 했어도 우리 루카스 님이······.”




레오니드는 게리드의 입을 막기 위해 손 끝으로 게라드의 입을 톡 하고 쳤다.




“돌머리 게라드경. 자네의 입도 머리처럼 무겁다면 얼마나 좋겠나”




게라드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억울하다는 듯 레오니드를 바라보았다.




“대장!”




레오니드는 게라드의 큰 손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리며 싱그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








대신관이 떠나고 발레리안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여관의 낡은 나무 계단은 그의 발걸음마다 약간의 삐걱거림을 내뱉었다. 야간 보초를 서는 기사 두 명이 발레리안의 방문 앞을 지켰다. 그들은 경례를 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방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가구라고는 커다란 침대와 그 옆에 단단한 나무로 만든 검 거치대가 전부였다. 벽에는 오래된 촛대가 붙어 있었고, 그 위에 타고 있는 양초가 어슴푸레한 빛을 방안에 비춰주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발레리안은 대신관의 말을 떠올렸다.




‘신의 아들이 세상일에도 훤하군.’




그때 창문 밖에서 부드러운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발레리안은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살짝 열린 창문의 틈 사이로 그리핀이 자신의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그리핀은 사자의 몸과 독수리의 날개를 지니고 있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리핀의 발톱에는 무언가 단단히 묶여 있었다.




발레리안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리핀의 발톱에 묶여 있는 물건을 풀어냈다. 그것은 잘 밀봉된 편지였다. 발레리안은 그곳에서 금빛 늑대의 문양을 발견했다. 황제의 인장이었다.




조심스레 발레리안이 편지를 펼치자 그리핀은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는 듯, 날개를 펼쳐 다시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방 안을 서성이며 편지를 읽기 시작한 발레리안의 얼굴이 점차 굳어갔다.




“밖에 누구 있나”




발레리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단호했다. 방 밖에서 대기하던 보초들이 그의 말에 즉시 반응했다.




“예! 주군”




보초를 서던 기사들이 발레리안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대공의 긴장감을 감지하고 더욱 엄숙한 자세를 취했다.




발레리안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오니드를 불러와라. 내일 아르카디아 황궁으로 간다. 빠른 시일 내로 입궁하라는 황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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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봄의 기운 NEW 11시간 전 1 0 13쪽
18 지나간 시간과 마음 24.09.17 4 0 12쪽
17 북부의 왕과 마탑주 24.09.16 8 0 13쪽
16 돌아온 레오니드 (2) 24.09.13 9 0 12쪽
15 돌아온 레오니드 24.09.12 12 0 12쪽
14 마탑주의 방문 24.09.11 12 0 12쪽
13 기억의 파편 (2) 24.09.10 12 0 12쪽
12 기억의 파편 (1) 24.09.09 12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9 0 12쪽
10 디몬의 마음 (2) 24.09.05 10 0 12쪽
9 디몬의 마음 (1) 24.09.04 10 0 12쪽
8 오늘부터 24.09.03 14 0 12쪽
7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4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5 0 13쪽
»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4 0 12쪽
4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4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6 0 12쪽
2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2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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