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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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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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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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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몬의 마음 (1)

DUMMY

디몬의 마음 (1)




발레리안과 테오를 비롯한 북부의 수호자들이 마침내 홀로드성으로 돌아왔다. 견고한 성벽과 웅장한 탑들이 그들의 귀환을 맞이하듯 우뚝 서 있었다.




돌 성벽 위를 덮은 덩굴과 이끼가 오랜 세월 동안 북부를 수호해 온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성벽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용 구멍이 규칙적으로 나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은 탑의 꼭대기에는 감시병들이 매서운 바람과 맞서며 주변을 주시하고 있었다.




성문은 강철로 보강된 두꺼운 나무 문이었다. 발레리안 일행은 성문 앞에 멈춰 섰다. 성문의 양쪽에는 거대한 경첩이 달려 있었고, 그 위에는 홀로드를 상징하는 은빛의 사자가 새겨져 있었다.




발레리안의 손짓에 따라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신호를 보내자, 감시탑에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문을 열어라! 주군께서 돌아오셨다!”




위병의 외침이 성벽 위에서 울려 퍼졌다.




두꺼운 강철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성문이 움직일 때마다 강철이 맞부딪히는 무거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문이 완전히 열리자, 성 안쪽에서 병사들이 나와 행렬을 맞이했다. 병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성문을 통과한 발레리안 일행은 넓은 성 안을 둘러보았다. 성 안에는 발레리안의 가족과 기사단뿐만 아니라, 영지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성 입구의 오른쪽엔 마구간이 있었으며 안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상점과 영지민들의 작은 가옥들이 있었고 내성 주변에는 대장간과 곡물창고 그리고 또 다른 마구간이 있었다.




찬바람에 볼이 빨개진 아이들이 길가에서 뛰놀고 있었고, 상인들은 저마다의 물건을 팔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매서운 바람과 달리 성문 너머의 생활공간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발레리안과 그의 일행이 내성 가까이 들어서자, 영지민들이 천진하고 밝은 목소리로 와-아! 함성을 지르며 그들을 환영하고 축하했다.




그들의 환호소리와 함께 한참을 더 들어가자 내성의 입구가 보였다. 문은 이미 열려있었다.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정원이지만 사시사철 푸른 나무들이 가득 한 그곳에서 발레리안이 멈춰 섰다.




발레리안은 말에서 내려 자신의 아내인 아르디스와 아들 디몬, 홀로드의 가장 큰 일꾼인 집사 알프레드를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요. 발레리안.”




“아르디스.”




“아버지!”




“잘 지내고 있었느냐, 디몬.”




“예, 아버지. 다음 원정 때는 저도 꼭 함께 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의 얼굴에는 오랜 여정의 피로와 동시에 귀환의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 발레리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자신의 딸, 로라메리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때, 눈치 빠른 노집사 알프레드가 발레리안의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대공녀께서는 연무장에 계십니다, 전하.”




발레리안은 알프레드의 말을 듣고 한 순간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의 웃음을 보자 마음이 놓인 아르디스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뒤돌아 내성으로 향했다.




발레리안은 알프레드의 어깨를 친근하게 두드리며 고개를 뒤로 돌려 테오에게 말했다.




“내 딸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직접 보도록 하지. 곧 연회가 있을 터이니 모두들 잠시 쉬도록 해라. 테오, 연무장에 함께 가보겠느냐? ”




테오는 발레리안을 따라 성의 내부를 둘러보며, 다시 한번 성 안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성의 바닥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 러시 매트가 덮여 있었다. 두꺼운 석조 벽에는 바람을 막아줄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었다.




연무장을 향하는 발레리안의 표정에는 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








연무장 안쪽에서는 로라메리가 티보와 대련 중이었다. 로라메리는 하늘색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있었다. 그 머리카락이 검과 함께 휘날리며 눈에 띄었다. 그녀의 동작은 꽤나 날렵하고 정확했다. 힘과 우아함을 동시에 지닌 모습이었다.




발레리안은 연무장 한쪽에서 딸의 대련을 지켜보며 자랑스러운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잘한다! 로라메리!”




발레리안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옆의 테오 또한 로라메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서 있었다. 그는 발레리안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매우 느리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말이다.




로라메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검으로 티보를 밀어내며 돌아섰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미소가 가득했다.




하나로 묶여 부드러운 곡선으로 떨어지는 하늘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유연하게 흩날렸다.




다가오는 하늘색 눈동자는 마치 하늘을 닮은 듯 시원하게 빛났다. 오똑한 콧날과 상반되게 곡선미가 돋보이는 입술이 신기로울 만큼 조화로웠다. 그녀의 피부는 북부의 눈처럼 시리도록 하얗고, 매끄러워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말했다. 테오는 그녀를 지켜보느라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로라메리의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그의 가슴속에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어릴 적, 그러니까 아주 어릴 적.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을 시절. 아버지가 책을 펼쳐 보여주던 바다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말이다.




‘바다’




그녀의 머리 색은 그날의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갑작스레 밀려오는 과거의 감정과 생각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심장이 보통 때와 달리 조금 빠르게 뛰는 것 같아 숨쉬기 불편했다.




“테오, 내 딸아이에게 인사도 안 하고 뭐 하고 있나.”




발레리안이 테오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로라메리 대공녀님.”




테오는 호흡을 가다듬는 로라메리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곧 연회가 있을 것이니 준비하거라. 그리고 테오는 내일 오전쯤 서재로 찾아오너라.”




말을 남긴 발레리안이 연무장을 떠나 성 안으로 들어갔다. 테오는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








***








연회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밤.




디몬은 자신의 방 창가에서 황금 늑대상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은빛의 밝은 달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의 손을 비추었다.




그는 검지의 끝으로 세밀하게 조각된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얼마 전 아르카디아 그림 경연에서 자신이 우승한 것을 생각했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내일 당장 아버지께 보여드려야겠어!’




디몬은 한시라도 빨리 황금 늑대를 아버지께 보이고픈 마음에 설레었다.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디몬은 재빠르게 몸단장을 마치고 조심스레 두 손으로 황금 늑대상을 들고 방을 나섰다.




성의 복도를 따라 걷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어두운 성 안의 복도에는 촛불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며 어둠을 밝혀주고 있었다.




디몬은 아버지 발레리안의 서재로 향했다. 그때,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디몬은 발걸음을 멈췄지만 쿵쿵 달려오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복도의 모퉁이에서 하녀 리디아가 서류 뭉치를 들고 급하게 달려오다가 디몬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




“야! 조심하지 못해!”




디몬은 갑작스러운 충돌에 놀라 소리쳤다. 황금 늑대상을 들고 있던 그는 행여나 이 소중한 것을 떨어뜨릴 뻔 한 사실에 분노했다.




얼굴이 새빨개진 리디아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대공자님 정말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디몬은 리디아의 말을 들으며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화가 남아 있었다.




“다음부터는 앞을 잘 보고 다녀라! 너, 이것이 떨어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냐?”




리디아는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공자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하녀장 아델라가 찾아왔다. 그녀는 연회가 끝나고 아침이 될 때까지 술을 퍼마신 기사단들의 뒷정리를 이제야 막 마친 참이었다.




“무슨 일이냐! 아··· 대공자님? 일찍 일어나셨습니까? 미리 알았다면 식사를 올려 보냈을 텐데요. 지금 준비를 할까요?”




소란의 정체가 디몬임을 확인한 아델라가 가까이 다가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래. 아델라 잘 왔어, 얘가 모퉁이에서 조심성도 없이, 아주 부주의하게 달려와서 나와 부딪힐 뻔했어. 교육이 엉망이야.”




아델라는 리디아를 쏘아보며 말했다.




“리디아. 디몬 대공자님께 사죄는 드렸느냐?”




리디아는 또다시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과했다. 양손을 어찌나 꽉 맞잡고 있었는지 손 끝에 피가 돌지 않아 하얗게 변했다.




“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델라는 리디아를 따라 디몬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소개로 새로 온 하녀인데···”




“됐어. 내가 알필요 없잖아.”




디몬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걸음을 옮겼다. 디몬은 성벽의 태피스트리를 보며 자신이 경연에서 그렸던 그림을 떠올렸다.




‘곧 내 그림이 황실에 걸리겠지.’




금세 기분이 전환되었다. 발레리안의 서재에 가까워지자 디몬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렁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디몬은 아버지가 서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문에 귀를 대보았다. 안에서 작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테오···?’




디몬은 문 앞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문을 두드릴지 말지 잠시 망설였다가 문에 귀를 대고 대화를 엿듣기 위해 숨을 죽였다. 아버지와 테오 사이에 중요한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것 같았다.




- “··· 나는 자네를 입양하려 하네.”




디몬의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 그의 손에 들린 황금 늑대상이 움찔하며 흔들거렸으나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디몬은 충격과 혼란으로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알프레드가 다가왔다. 알프레드는 디몬의 굳어진 표정을 보고, 오랜 경험으로 보아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대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알프레드가 부드럽고 조심스레 물었다. 디몬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대로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문 밖의 기척을 느낀 발레리안이 명령했다.




“들어오너라.”




디몬과 알프레드는 순간적으로 긴장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디몬은 어린아이처럼 알프레드의 손을 꽉 한 번 붙잡고, 숨을 고른 후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서재에는 발레리안과 테오가 다정하고 사이좋게 앉아있었다. 디몬의 눈이 테오에게 고정되었다.




디몬은 고개를 돌려 발레리안을 바라보며 손에 쥔 황금 늑대상을 자신의 가슴 앞으로 내밀었다.




“아버지, 제가······.”




발레리안이 손짓으로 디몬의 말을 막았다.




“디몬, 잠시. 테오는 나가보거라.”




테오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발레리안에게 경의를 표한 후, 디몬이 서 있는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얼굴 가까이 마주쳤다. 그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교차되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디몬의 눈에는 분노가 차올랐고, 테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디몬의 마음속에는 일순간 복합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프레데릭 대공의 장남이자 자신과 비교되리만치 잘난 그의 형, 루카스 때문에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야만 했던 자신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루카스가 죽었을 당시 디몬은 형제를 잃어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제야 ‘아들’이라는 호칭을 홀로 차지하게 된 것에 대한 은밀한 기쁨도 있었다.




그런데, 테오가 나타났다.




디몬은 방을 나서는 테오의 뒷모습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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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나간 시간과 마음 24.09.17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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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돌아온 레오니드 24.09.12 12 0 12쪽
14 마탑주의 방문 24.09.11 12 0 12쪽
13 기억의 파편 (2) 24.09.10 12 0 12쪽
12 기억의 파편 (1) 24.09.09 12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9 0 12쪽
10 디몬의 마음 (2) 24.09.05 9 0 12쪽
» 디몬의 마음 (1) 24.09.04 10 0 12쪽
8 오늘부터 24.09.03 14 0 12쪽
7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4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5 0 13쪽
5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3 0 12쪽
4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4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5 0 12쪽
2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2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1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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