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 위, 폭군에게 도전하는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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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우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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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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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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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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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니어 넘버원

DUMMY

차민 아카데미 3번 코트.

원재 뒤쪽에 놓인 점수판에 5:1/0:40(러브포티) 라고 적혀있다.

한 포인트만 더 가져가면 원재의 승기가 확실한 상황.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군화임에도 볼을 향해 달려드는 그의 표정에는 절망이 없다. 오히려 환희에 가득한 얼굴로 미친놈처럼 웃으며 포핸드를 강력하게 때린다.

언제나 그렇듯, 원재는 빠른 발로 볼을 따라잡으며 네트 앞으로 달려드는 군화의 키를 살짝 넘기는 백핸드 로브샷을 구사한다.

원재가 쏘아 올린 백핸드 로브는 우아하게 날아가 베이스라인에 뚝 떨어지며 굴러간다.

군화는 고개를 돌려 굴러가는 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2층 관중석에는 원재의 영리한 플레이에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단 두 명의 표정만이 좋지 않다.

그중 하나는 경기를 보며 분석하고 있는 차민.

정수는 다가와 묻는다.


“대표님. 원재 잘하지 않습니까?”

“하, 역시 저 애는 재미가 없어. 저 무식한 놈이 올라왔어야 했는데.”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표정이 좋지 않은 미연.

영숙은 미연의 눈치를 보며 묻는다.


“축하해. 원재 엄마. 이제 8강이네.”

“실수를 한가득 해놓고 허허실실 좋다고 웃는 꼴이 마음에 안 들어.”


경기에 이긴 원재는 해맑게 웃고 있다. 그리고 군화에게 인사를 건네기 위해 네트로 걸어 나온다.

군화는 경기를 이제 시작한 것 같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네트로 온다. 커다란 손으로 먼저 원재에게 악수를 건넨다.


“잘 배웠다. 훌륭하더라.”

“너도 잘 치더라. 무슨 서브랑 포핸드가 대포알인 줄 알았어.”

“가볍게 받아 넘겨놓곤 겸손 떨지 마라. 근데 뭐 하나만 묻자.”

“응? 당연하지. 모든 물어봐.”

“내 공이 어디로 올지 어떻게 알았냐?”


웃음기가 빠지고 진지해진 군화를 보며 원재는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후우.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왜 그 표정인 거냐고.”

“표정을 보고 알았다는 거냐?”

“아니.”

“다음에 만나서 나에게 지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면 말해라. 어떻게 알았냐?”

“너무 정직하니까.”

“정직하다고?”

“응. 얼마나 수도 없이 연습했는지 보일 정도로 정직해. 강한 서브 후 3구 위닝샷. 상대적으로 모두가 약한 백핸드 공략. 다들 그렇게 배우니까.”


그 순간, 군화는 이전 게임이 머릿속에 스쳐 간다.

강하게 때리는 데만 몰두해 코스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백핸드 쪽으로만 쳐댔던 것이 패착. 그제야 군화는 호탕하게 웃는다.


“으하하. 터무니없네. 무식하게 연습한 결과가 잘못된 습관을 만들었다니. 잘 배워간다. 주니어 넘버원. 덕분에 좀 더 효율적으로 연습할 수 있겠어.”

“주니어 넘버원, 아니라니까.”

“네가 아니면 누군데?”

“무식하게 연습하지 말라고 알려준 친구.”


비찬을 생각하며 답하는 원재의 얼굴에 묘한 패배감이 드러난다.

군화는 원재에게 경기에서 끌려다니는 내내 주눅 한 번 든 적이 없다. 그의 강인한 성격에서 볼 수 있듯이 결코 좌절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원재의 표정은 군화의 마음속 깊은 곳에 태어나 처음으로 ‘겁’이라는 감정을 심어 넣는다.


**


군암중 코트.

화이트보드가 놓여 있다. 그 앞에는 비찬이 파란색 마커를 들고 발표하듯 서 있다.

관중은 만희.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비찬을 본다.

비찬은 마커의 뚜껑을 따고 삐뚤빼뚤 그려진 코트 그림 아래 왼쪽에 동그라미를 친다.


“보통의 주니어, 아니, 거의 모든 선수가 비교적 약한 백핸드를 공략하니까 포지션을 코트 중앙보다 반보에서 한 보 정도 백핸드 쪽에 치우쳐 포지셔닝 하는 겁니다.”


비찬은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만희를 쳐다본다.

만희는 만족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루함을 표출하는 꼬인 자세. 귀를 후비고 하품을 하며 아무런 대답이 없다.


“코치님?”


대답없는 만희를 비찬이 불러본다. 만희는 눈썹을 치켜든다.


“응? 왜?”

“말씀이 없으셔서.”

“아 끝이야? 다 말한 거야?”

“어···. 네.”

“뭐 틀린 건 아닌데. 반만 정답이다.”

“어째서요?”

“마지막에 내가 문제를 꼬아 포핸드로 쳤지. 그런데 너는 훌륭하게 받아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제가 잘 쳤으니까?”


만희는 또다시 꿀밤을 때리려는 행동을 취한다.

비찬은 놀라 팔을 들어서 막는다.

만희는 가까스로 참아내며 비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이 헛똑똑이야. 잘 들어. 지금부터 너의 팔 길이는 라켓까지다.”

“무협지에서 검사가 검을 내 팔처럼 여겨라. 뭐 그런 마음가짐을 갖으라는 건가요?”

“아니. 말 그대로 너의 팔 길이를 라켓 끝까지라고 생각하라고.”


비찬은 고개를 갸웃하며 라켓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쭉 핀다.

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렇지. 너의 팔길이가 굉장히 길지?”

“네.”

“그렇다면 이제 백핸드 자세를 잡아봐라.”


비찬은 두 손으로 라켓을 잡고 왼쪽으로 쭉 뻗는다. 오른손으로 잡고 뻗을 때보다 현저히 짧은 길이다.


“두 손으로 잡아야 하는 양손 백핸드는 비교적 팔이 짧아. 그에 반해 포핸드는 팔이 길지. 늘어난 길이만큼 코트 커버가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비교적 짧은 백핸드 쪽에 위치하는 게 경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방법이다. 알았냐?”


비찬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만희를 본다.

만희도 비찬을 본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거 순 멍청이였네?”

“코치님.”

“왜 이 똥멍청이야.”

“그러면 왼쪽으로 오는 공도 왼손 포핸드로 치면 되잖아요?”

만희는 한숨을 푹 쉰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어간다. 걸어가다 말고 다시 뒤를 돌아와 열을 올리며 말한다.


“야 인마. 이게 무슨 진짜 무협지인 줄 아나? 뭐 이도류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말인 거처럼 하고 있어. 코트나 깨끗하게 치우고 가. 알았어?”

“네···.”


비찬은 쭈뼛대며 대답한다.

만희는 답답해하며 테니스장 문으로 걸어간다.

그때, 코트 문이 열리고 무룡이 들어온다. 밝게 웃으며 만희와 비찬에게 인사한다.


“코치님 안녕하십니까! 오 강비찬이 열심히 하는데?”

“마이콜. 너 인마 지금 아카데미 있을 시간 아니야?”

“때려치웠습니다. 시원하게!”


무룡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턱을 높게 들어 보인다.

만희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확신한다.


“너 인마. 잘렸지?”


무룡은 두 눈을 똥그랗게 뜨며 만희를 쳐다본다.


“에엥? 저 같은 초특급 슈퍼 루키가 잘렸다고요? 코치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잘렸네.”

“무슨 소리. 저는 단지 잘 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구나. 비록 투어 선수로 뛰어 보지도 못한 코치님이지만, 그럼에도 훌륭한 가르침은 오히려 공교육에 있었구나. 그것을 느끼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에휴. 짐 덩어리가 늘었네. 내일부터 비찬이랑 같이 4시에 준비하고 있어.”

“넵! 코치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무룡은 만희에게 경례한다.

만희도 경례를 받으며 지나쳐 간다.


“쉬어.”

“쉬어!”


만희는 문밖을 나서며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다.

누가 봐도 ‘역시 난 잘 가르쳐. 훌륭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만희가 테니스장 밖을 나가자 무룡은 비찬에게 다가오며 낄낄댄다.


“참 단순하지 않냐? 우리 코치님.”


비찬은 무룡의 이야기를 못 들었는지 혼자 라켓을 들고 오른쪽 왼쪽 길이를 재보고 있다.

무룡은 그런 비찬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너 또 뭔 짓거리냐? 내 얘기 들었어?”


비찬은 고개를 돌려 무룡을 본다. 눈 앞에 나타난 무룡을 보며 눈을 비빈다.


“뭐야? 너 왜 여깄어?”

“하나도 안 들었네. 이 새끼. 자 들어봐.”

“잠깐만. 그 전에 이거 하나만 해보자. 나 5분만 도와줘.”

“갑자기?”

“응. 빨리 가서 내 백핸드 쪽으로 랠리 해줘.”

“이 형님이 오늘 테니스를 칠 기분이 아니···.”


비찬의 표정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변해있다. 얼른 산책을 나가 똥을 싸고 싶다는 표정이다.

무룡은 똥 마려운 강아지를 위해 라켓을 꺼낸다.


“하, 말 못 하는 짐승과 대화하여 무얼 하리. 기다려.”

“네!”


비찬은 라켓을 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다.

무룡은 반대쪽으로 넘어가 그런 비찬을 본다.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 공을 넘기며 랠리를 시작한다.

두어 번의 랠리.

무룡에게 공이 넘어가자 비찬은 소리친다.


“백핸드 사이드로 깊게!”

“기다리라고 이 짐승아.”


무룡은 자세를 잡고 있는 힘을 다하여 비찬의 백핸드 쪽으로 공을 보낸다.

비찬은 정중앙에서 포지셔닝을 하고 스플릿 스텝을 밟은 후 깊게 들어오는 공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원 투 스텝을 밟은 후, 라켓을 왼손으로 바꿔 든다.

반대쪽에서 그 모습을 본 무룡은 인상을 잔뜩 쓴다. 그 표정에는 당황스러움과 경이로움이 함께 담겨 있다.


“저 짐승 자식이 지금 뭔 짓을?”


탕-!


실내코트인 것을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타격음과 함께 볼은 쭉 뻗어 나간다. 볼 마크는 라인의 바깥쪽에 살짝 걸쳐있다.

비찬은 볼마크 쪽을 보며 무룡에게 묻는다.


“아웃이냐?”


무룡은 여전히 잔뜩 구긴 미간을 풀지 못한 채 볼마크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인, 인이야.”

“거봐. 된다니까. 코치님은 가끔 우기는 데가 있어.”

“야 이 짐승 새끼야. 이거는 우기는 게 맞아. 이걸 욱여넣은 네가 이상한 거라고.”


테니스장 문이 살짝 열려있다.

누군가의 눈이 그 모습을 보고 뒤돌아 걸어간다.

테니스장 밖.

만희는 깊게 눌러쓴 모자를 벗고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선배. 진짜 이런 말 싫어하는데, 피는 못 속이겠네요.”


**


과거 만희의 중학생 시절.

군암중 코트.

코트는 현재와는 조금 다르다. 이것저것 오래된 장비, 여기저기 상처가 난 테니스장이 아니다. 깨끗한 장비와 매끄러운 하드코트가 보인다. 지금보다 오히려 훨씬 훌륭해 보이는 코트. 군암중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대변하는 모습이다.

중앙에 있는 코트에서 어떤 이와 랠리를 주고받고 있는 만희가 보인다.

상대편 남자의 얼굴은 강렬한 햇빛에 뒤덮여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강한 포핸드 샷을 때린다.

그 공은 빠르게 만희 옆을 스치며 지나간다.

만희는 공을 쫓다가 그대로 넘어진다. 그리곤 벌러덩 누워버리며 소리친다.


“아, 선배님 좀 쉬었다 합시다!”


그는 말없이 네트를 지나 만희에게 다가온다.

만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천장을 본다. 만희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그는 누워 있는 만희의 앞에 선다.

만희에게 내리쬐는 햇빛을 몸으로 가린 남자. 그는 만희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다.


“벌써 지친 거냐?”

“어른하고 중학생하고 같아요?”

“젊은 놈이 더 뛸 생각은 안 하고.”

“그나저나 방금 백핸드 쪽으로 온 위닝샷은 너무 깊어서 팔이 모자라던데 이런 거 어떻게 칩니까?”

“음. 글쎄? 왼손으로?”


중학생 만희는 그의 미소를 보며 농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따라 미소 짓는다.

그가 뒤돌아 걸어가니 남자를 비추던 햇빛이 그대로 쏟아진다.

만희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눈꺼풀을 감는다.


**


눈을 뜨니 햇빛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이 보인다.

테니스장 밖.

만희는 하늘로 높게 들고 있는 고개를 땅바닥으로 숙인다. 그리곤 손에 쥐어진 모자를 다시 깊게 눌러쓴다.


“선배. 저놈 제가 잘 키워낼 수 있을까요?”

“모든 잘하는 놈이 또 약한 소리 한다.”


자신을 응원하는 선배의 말이 들리는 거 같아 만희는 미소 짓는다.

테니스장을 떠나려는 만희. 그때 어디선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만희가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출처를 찾는다.

테니스장 뒤편. 웃음소리가 들리고 한 아이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온다.


“아, 마이콜 새끼. 오늘 보니까 아직 정신 덜 차렸더라. 반쯤 죽여놓고 가자.”


만희의 입가엔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주먹을 쥐고 코트 뒤편으로 걸어간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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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니어 넘버원 24.09.17 19 2 12쪽
15 리커버리 24.09.16 17 2 12쪽
14 이기기 위한 전략 : 로브 24.09.15 24 2 13쪽
13 첫 세트 : 높은 벽 24.09.14 23 2 13쪽
12 게임의 시작 : 서브 24.09.13 23 2 13쪽
11 동상이몽 24.09.12 24 2 13쪽
10 부러진 라켓 24.09.11 22 2 13쪽
9 경계 24.09.10 24 2 12쪽
8 친구 24.09.09 23 3 12쪽
7 함정 24.09.08 29 2 11쪽
6 스탠스 24.09.07 30 3 13쪽
5 내딛는 첫발 24.09.05 35 2 12쪽
4 군암중학교 24.09.04 40 2 13쪽
3 나원재 24.09.04 50 3 13쪽
2 온비찬 24.09.04 60 3 13쪽
1 한서원 24.09.04 8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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