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80화-시공(時空)(9)(638화)
"어이 벤하르트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거냐?"
"거의 다 왔습니다. 저기 보이네요. 그나저나 벤하르트라는 이름은 조심해주세요."
"본명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는 좋지만 말이다. 사실 들킨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는 별 상관 없어. 혹시나 있을 모순을 만들지만 않는다면 딱히 위험하거나 그런건 아니니까.."
"죄송하지만 지금 가려고 하는 곳은 아저씨가 말하는 모순이 생기기 딱 좋은 곳입니다."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집에 있는 아이가 성인이 된 모습을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어요. 지금은 아이지만, 사실상 과거니까 그는 엄청난 시간을 살아왔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벤하르트는 이전 제로와 만났던 일을 케이슨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런가.. 그건 조심해야 겠구만, 확실히 벤하르트 네 본명을 그 녀석이 들으면 곤란하겠어. 하지만 신기한 일이로군."
"뭐가 말입니까?"
"이렇게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나만 해도 알 수 있잖냐. 10년 여행해서 겨우 만난 게 데인의 아들인 너란 말이지. 거기에 인연이 있다는게 그 아이의 미래의 일. 그것도 수백년이 지난 일이라고 하니 신기할 수밖에.."
"확실히 그렇군요."
"생각한 것보다 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정신 바짝 차려라. 벤"
"그러니까 아저씨나 조심하시라구요."
카실러스의 집에 도착한 벤하르트는 제로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얼굴을 반쯤 가리고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카실러스가 밖으로 나왔다.
"오 에르니아 왔구만, 그쪽이 일행이신가?"
"케이슨이다."
"카실러스 입니다. 들어오시죠."
짧게 통성명을 하고 벤하르트와 케이슨은 카실러스의 집으로 들어갔다. 카실러스의 집은 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2층으로 된 아담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내는 집이었다..
"아빠?"
붉은 머리를 한 소녀가 2층 계단에서 내려왔다.
"멜 인사해라. 어제 말했던 제로와 하이츠를 구해준 분이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멜이라고 불리운 소녀의 뒤를 제로가 따라 내려왔다. 제로는 벤하르트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제로 나는 이분들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멜을 데리고 올라가 있거라."
"네."
카실러스의 말을 듣고 제로는 멜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케이슨은 제로와 멜이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카실러스에게 물었다.
"카실러스라고 했지? 에르니아와 나를 집에 초대한 이유가 뭐지?"
"꽤나 직설적이군요."
"빙빙 돌려서 이야기 하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아서 말야."
카실러스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별다른건 없고 제로와 하이츠를 구해준 에르니아에게 제가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초대를 해봤습니다."
"도움?"
"아 잠시 실례."
카실러스는 허공에 손가락으로 오망성을 그렸다. 후끈 거리는 열기가 방안을 메우자 벤하르트와 케이슨은 동시에 거리를 벌렸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짓이냐!"
"아니 잠시 방음 처리를 한 것 뿐입니다. 정체를 발각 당해서 좋은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방음?"
"멜이야 엿 들을 리도 없고 들을 수도 없겠지만, 제로는 이 거리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으니까 주의 차원에서 이정도 결계는 쳐 두는게 맞는 것 같군요. 이제부터 할 이야기의 주제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죠.""
"주제라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빙 돌리는 건 싫다고 하시니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시공을 여행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케이슨은 곧장 카실러스에게 적의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당신 정체가 뭐지?"
"정체라니 그런 거창한 이야기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적의를 드러내실 필요도 없고요. 애시당초에 왜곡, 모순만 발생하지 않으면 정체가 드러난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애초부터 시공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 적어도 그 모순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지요. 아 그리고 케이슨씨는 지금 제가 어떤 특정한 인물이기에 정체를 알았다고 생각하시고 계신 것 같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좋아. 시공에 대해 알고 있다고 치고, 그 건과는 별개로 어떻게 나와 에르니아가 시공 여행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거냐?"
"벤하르트! 라고 부르면서 내려간 분이 물을 내용인가 싶습니다만, 물었으니 대답하자면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법이거든요."
케이슨은 자신의 실책이 나오자 살짝 분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존재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 그런게 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게 있다고 말을 해주어도 믿지 않을테니 최소한의 조심을 한다면 어지간해서는 눈치채기가 힘들죠, 하지만 실제로 체험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있는 법입니다. 지금의 저처럼 말이죠."
"그렇다는건 이전에도 이런 걸 본 적이 있다는 이야깁니까?"
벤하르트의 물음에 카실러스가 대답했다.
"그래. 소싯적에 세상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무렵 지금 에르니아 자네처럼 정체를 숨기고자 했던 시공 여행자를 본 적이 있었지. 그런 전례도 있겠다. 갑작스럽게 신역에 등장한 것도 있겠다. 정체를 숨기는 것이나 제로에 대해서는 더더욱 정체를 숨기는 모습 같은 걸 생각해보면 답을 어느 정도 예상하는 건 가능하다는 게지."
케이슨이 불쑥 끼어들어 물었다
"잠깐 거슬리는 게 있는데 어째서 에르니아와 나를 대하는 것에 차이를 보이는 거냐?"
"그렇군요. 그럼 케이슨씨에게도 말을 놓는 게 좋겠습니까? 나름 손님 대우를 한답시고 이렇게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그러니까 내가 묻고 싶은 건 왜 에르니아에게는 손님 대우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나는 나에 대한 태도는 어찌되든 좋다고."
"그 차이라 한다면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정도의 차이 정도로 생각해 두는게 좋겠군. 하지만 그래.. 꽤 의미 있는 질문이구만."
카실러스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으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래서? 시공 여행자인 우리를 도대체 무엇으로 돕겠다는 거냐?"
"어젯 밤. 마을을 갔더니 도둑질을 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지. 에르니아가 데리고 갔다고 들었으니 아마 케이슨 자네였겠지?"
"큭.. 왜 지금 그런 이야기를."
"아니 내가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그쪽이 아닐까 해서 말야. 그래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떻든가?"
벤하르트는 슈바프나 마을 사람들의 강함을 읽기 어려웠던 것을 떠올렸다.
"힘을 잘 숨기는 편이더군요.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케이슨 자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런 좀도둑 행위를 한 것일테고,"
"그래."
"어제 나는 에르니아가 자신의 힘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을 봤지. 필시 에르니아의 전투 방식을 제로가 보게 될 경우 문제가 생기기에 그리 행동한 것이었겠지?"
"그렇죠."
벤하르트는 순순히 시인했다.
"하지만 아마 앞으로 시공 여행을 하다 보면 비슷한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테지. 만약 어제와 같은 일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일이 닥친다면 어쩔텐가? 그때도 시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족쇄를 단 채로 싸울건가?"
"이번 일은 특이 케이스라고, 이런 일이 시공을 여행할 때 자주 나오는 일인줄 알아?"
케이슨이 나서서 벤하르트를 변호했지만 카실러스는 고개를 저었다.
"자주 나오지 않는 일이라고 해서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게 한없이 0에 가까운 확률이라고 해도 나올 때는 나온다. 나는 반드시 에르니아가 그런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흥. 시공 여행의 시 짜도 모르는 사람이 할 법한 이야기로군."
케이슨은 콧방귀를 꼈지만 벤하르트는 카실러스의 말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도움을 주실 생각이십니까?"
"자네의 전투기술을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가능하다면 교정을 해줄까 생각하고 있네. 마을 사람들을 가르친 건 내가 한 일이거든."
카실러스의 말을 듣고 벤하르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대단하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건 무리일 겁니다. 제 검술은 기존의 검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그건 척 보면 알 수 있어."
카실러스의 말에 벤하르트는 놀라며 물었다.
"척 보면 알 수 있는 겁니까?"
"나는 세간에서 '사부'라고 불리우는 인간이야.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는 전문가중의 전문가로 취급되고 있지. 한가지 묻겠는데 에르니아 자네는 가르치는 데 가장 필요한게 무엇인지 알고 있나?"
"잘 전달한다거나 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가르치는 주제를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고, 다방면으로 가르치는 사람일 경우에는 다른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지."
"뭡니까 그게."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일세. 내가 자네들의 정체를 알았듯이 에르니아 자네의 본질을 알았듯이."
"어?"
벤하르트는 카실러스가 들고 있는 물건을 보고 당황하며 검에 손을 가져갔다. 어느샌가 카실러스는 벤하르트의 염령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염령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카실러스가 말했다.
"네 기술의 원천이 이 검이라고 말하면 정답일까?"
"....."
카실러스는 염령검을 벤하르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그런고로 교정을 조금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도와줘도 되겠나?"
- 작가의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엔쿠라스를 마지막에 작성한 게 벌써 2년 전 일이네요..
얼마 전에 서글픈 인형님께서 일하시느라 바쁘신 건가.. 하는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일하느라 바빴다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되려 소설을 쓰고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실 공시에 떨어지고 휴학해둔 학교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며 시간을 버리고 남은 반년간 공시 준비를 한번 더 해서 얼마전에 서울시까지 치르고 왔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서 이번에는 꼭 합격 했으면 하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시험을 치고 보니 26일부터 시작하는 문피아 공모전에 눈이 돌아갔습니다. 어차피 시험 도전도 끝났겠다. 공모전까지 싹 다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어제였는데,
서글픈 인형님 댓글을 보고 2년을 잠수탄 연중이나 다름없는 소설을 잊지 않으신 분들도 있다는 생각에 감동을 하여 엔쿠라스를 먼저 쓰는 게 보시는 독자님들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여 이렇게 부랴부랴 한 화를 적어 봤습니다.
엔쿠라스를 접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거고, 2년이나 감감무소식으로 잠수를 타서 사실상 접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닌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서글픈인형님과 아마 어딘가 계실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네요.
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어 엔쿠라스에 많은 힘을 쏟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 된다면 힘이 닿는 대로 족족 써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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