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14화-거래(2)
연회에서 벤하르트의 일행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들의 공적은 과장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것이었으나, 여왕이 한술 더 떠서 그 근엄한 목소리로 그들을 찬양하고 나니 벤하르트의 일행은 영웅들처럼 떠받들여졌다.
그중에서도 레니아와 트레이야 제네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트레이야와 레니아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엄청난 외모의 여인들이었고, 제네스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미남이었다. 한쪽 팔이 없기는 했지만, 되려 그런 점이 한층 더 그를 신비스럽게 만들어서 많은 여심을 빼앗았다.
'으음.'
벤하르트는 미묘한 얼굴로 서 있을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주목을 받는 것을 원하는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정도로 극심한 차이가 나게 되면 처량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저..."
"아 예?"
벤하르트에게 말을 건 것은 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레니아나 트레이야에 비하면 예쁘다고 할수는 없었지만, 곱상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여자였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춤을 추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춤을 잘 추지 못합니다만,"
그나마도 자신에게 찾아온 한명의 사람때문에 헤실거리면서 그는 그녀의 부탁을 받아 들이려고 했으나, 그 대답을 하기 전에 그는 발목이 시큰 거려 대답을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이녀석은 춤을 정말 못추거든요. 원하신다면 저기 있는 제네스에게 말해 드릴수 있는데,"
"네? 정말이요?"
그녀는 반색하며 말했다. 사실 그녀는 워낙에 인기가 좋은 제네스와 춤을 추지 못해 벤하르트라도 잡아 춤을 추어 볼까 했던 것이었기에 그녀에게 레니아의 의견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어이 레니아!"
"왜?"
그녀는 퉁명스레 말했다.
"하아."
"어차피 춤이라고는 잘 추지도 못하잖아? 그럼 도대체 아까 내가 추자고 했을때는 왜 그렇게 거절 했던 건데?"
"그것과 이건 다르잖아. 저 사람은 나를.."
"저길 보시지."
레니아가 가리킨 곳에는 제네스와 춤을 추면서 너무나도 즐거워 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있었다.
"너는 그저 꿩대신 닭이었을 뿐이라고,"
"꿩대신 닭."
벤하르트는 축 늘어져서 레니아를 노려보았다.
"뭐 뭐야?"
"생각해봐라. 너는 이리 저리 끌려서 춤을 추고 다녔잖아. 지금와서 구태어 나를 방해하는 이유는 뭐냐고,"
"그 그거야.."
레니아는 눈을 내리깔아 살짝 당황해하며 말했다.
"너는 이리 저리 인기 있어서 모르겠지만, 인기 없는 사람에게는 없는 사람의 작은 소망이라는게 있는거라고,"
"인기가 없다니 어디가 말야?"
"척 보면 모르냐. 아니 아까 제네스의 이야기를 꺼낸걸 보면 내가 지금 인기 없다는걸 알고 있는 거잖아."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팔을 잡아 팔짱을 끼었다.
"뭐 뭐하는거야?"
"인기라는건 말야. 다 부질 없는거야. 네가 그런것을 좋아한다면 모를까, 너는 그런건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 정히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내가 붙어 줄게. 아마 저런 여자들 백명이 붙는것보다 더 부럽게 생각될걸?"
"하아..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그런게 아니지만,,"
그는 자신을 잡고 있는 레니아의 가는 팔을 보고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말했다.
"뭐 그럼 어울려 달라고, 인기가 없는것도 사실이니까 억지로 인기 있고 싶어할 필요는 없겠지."
"분위기가 좋네요."
온화한 목소리에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말을 건것은 왕비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얼굴은 같았지만, 분위기만으로도 단번에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그녀가 여왕이 아닌 왕비라는것을 알아 차릴수 있었다.
벤하르트는 살짝 부끄러워 했지만, 레니아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해했다. 항상 약간은 거만하면서 도도한 레니아가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이고 허둥지둥 당황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구경 거리중 하나였다.
"아 아니야. 이건 그냥. 그래 동정 동정이야."
"도 동정이었던 거냐."
방금까지만 해도 레니아에게 연신 놀림을 당하고 있었던 벤하르트는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한껏 처량하다 못해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어찌나 표정에 진지함이 묻어 있던지 레니아도 껌벅 속아 넘어갈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고, 의미가 그랬다는 것으로. 아니."
눈알이 뱅글뱅글 돌고 있다고 해도 믿을정도로 그녀는 안팎으로 당황해 했다.
"재미 있으시네요."
"으아으."
평소라면 정상적으로 돌아오고도 남아 한껏 도도한 말을 날려주었을 그녀였지만, 스스로가 한 일을 되뇌일때마다 얼굴이 후끈거려 그녀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그런 레니아의 모습을 보고 벤하르트는 굉장히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다.
'흐으음.'
벤하르트는 약간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왕비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아.. 별일은 아닙니다. 왕비로 참가했는데, 문득 아직도 제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드렸다는 것을 깨달아서요. 여왕님과 저는 한몸이지만 다른 정신이니 따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공손하게 벤하르트에게 인사를 했다.
"나라를 구해주신 영웅에게 제가 춤을 한번 청해도 될런지요?"
"뭐 뭐라는거야!"
발끈하고 나선것은 벤하르트가 아닌 레니아였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레니아."
"레니아님. 저도 남편이 있는 몸. 사적인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니까.."
"저기.."
벤하르트도 바보는 아닌지라, 방금의 대화가 무엇인지를 슬슬 생각해 보려 할때 레니아의 수도가 그의 머리를 내려 쳤다.
넋을 놓고 있었던 터에 상대가 레니아라 안심하고 있었던 벤하르트는 방어를 할수 없었다. 레니아는 반쯤 진심을 담은 공격이었기에, 벤하르트는 순간 정신줄을 놓았는데 그 사이 레니아는 단기적으로 기억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후우."
"재미있으시네요."
"저기 말야. 쓸데 없는 이야기는 안 해줬으면 좋겠는데,"
"걱정 마세요. 저도 눈치는 있으니까요."
레니아는 바보가 아니다. 감정에는 서투르고 실제로 타인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벤하르트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그 이상으로 그녀는 벤하르트에게 빠져 있었지만, 그녀가 그런것을 은근히 알리고 싶은 것은 벤하르트에게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런 관계를 지속하고 싶었다.
벤하르트를 자신이 사랑하는것은 사실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연인'이라는것을 상상할수 없었다. 상상할수 없다는것은 막연한 두려움을 뜻했다. 한번 그렇게 되면 다시는 '지금'으로 돌아올수는 없는게 아닌가? 하는 그 마음의 거리가 바로 지금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벤하르트와 함께 여행을 해왔기 때문에 벤하르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벤은 아마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항상 그런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벤하르트가 스스로가 레니아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의 입장에서 레니아가 자신을 생각하는 모습은 이러했다.
그는 레니아는 자신을 동료로써 '좋아하고.' 일련의 일들은 그녀 특유의 독점욕과 자신을 놀려 먹으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그의 속내는 오래간 같이 있었던 레니아에게 있어서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 알아 차리는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알아 차렸기에 어느정도 마음을 풀고 자신의 마음을 벤하르트에게 드러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서로간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미묘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레니아는 그것이 좋았다. 자신의 감정 표현에 떳떳하지 못한건 벤하르트뿐만은 아니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벤하르트 이상으로 감정표현에 서툰 그녀였기에 현 상태에 안주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부탁할게. 그럼 이녀석은 그냥 빌려 줄테니까,"
"내가 물건이냐.. 아이고 머리야. 도대체 뭔 짓을 한거야."
정신은 차렸지만 벤하르트는 술을 잔뜩 마셔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어지러움증을 느꼈다.
"머리에 기계가 묻어 있었어."
"뭐 정말? 이라고 할 것 같냐! 기계는 무슨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지?"
"아 방금전에 왕비님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잖아."
"그랬었나."
그는 몽롱한 머리로 왕비의 손에 질질 이끌려 연회장으로 끌려 갔다. 벤하르트의 뒷모습을 보면서 레니아는 살짝 식은땀을 닦아내고 지쳐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연회가 끝이나고 그들은 쉬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트레이야와 제네스가 한방을 그리고 레니아와 벤하르트가 한 방을 사용했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각자 방에서 편한 차림으로 쉬고 있었다.
"그나저나 중간에 머리가 아픈 전후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술이라도 마신 것 아냐?"
레니아는 넌지시 말을 돌렸다. 벤하르트가 수도 한방에 기절했기에 마법을 걸수 있었지. 사실상 벤하르트가 작정한다면 마법을 정면에서 건다고 해도 그의 기억을 뺏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삼 속으로 그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술을 잘 마시지 않는건 알잖아. 아니 마셨나? 으음."
애매한 표정으로 그는 기억을 떠올리고자 했지만, 사실 '떠올리고자 할때' 기억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듯 더 기억나지 않는 법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발 뻗고 쉴수 있게 되었군."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레니아는 싱긋 웃으며 말했지만, 벤하르트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는 말했다.
"모르긴 또 뭘 모른다는거야?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고,"
"아니 불길한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발 뻗고 자기에는 아직은 조금 일러."
"장난은 아닌 모양인데, 설사 있다고 해도 듣고 싶지는 않지만, 무슨 일인데?"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그가 말했다.
"아니 아직은 없는데, 하지만 있을지도 모르긴 해도, 듣고 싶지 않다면 그냥 듣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되는데,"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방금까지만 해도 몰라도 상관 없다고 말한 벤하르트였지만, 레니아가 어설프게 감추려 하자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야 너같이 한개를 알려줘서 열개를 아는 재주는 없거든. 말을 할거면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있다고 해도 듣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남자라면 자신의 의견은 끝까지 밀고 나가도록 하라구."
각자 쉬는 시간이 끝나고 야심한 밤이 되었다. 오랜만에 벤하르트의 말마따나 그들은 발을 뻗고 단잠을 자고 있었다.
"으으음. 음.."
"벤 일어나."
"음.. 으으"
"일어나라니까, 하여간. 잠은 많아서."
그녀는 어쩔수 없이 검을 뽑아 살기를 드러내었다. 그저라 용수철처럼 몸을 튕겨 벤하르트는 자세를 잡았다.
"뭐 뭐야.. 레니아잖아."
그녀는 손을 까딱이면서 말했다.
"따라와."
- 작가의말
58~59분 연참대전의 마의 벽중 하나죠.
제 일생에도 연참대전 도중 11시 59분 59초라는 대 기록의 한편이 있습니다. 정말 그때의 놀라움은 컷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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