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58화(616화)-왜억(孬憶)(3)
"여기는.."
"우리가 들어온 소굴의 어느 방이야."
"나는 어떻게 되었던 거지?"
벤하르트는 간략하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그렇구나.. 뼈아픈 기억이라, 납득이 되는걸 그래.."
"대르나드에 있었더랬지.?"
"아 그래. 나는 말야 그 무법마을이 굉장히 싫었어. 그래서 죽기 살기로 돈을 모아서 빠져 나오려고 했었지. 아주 어린 나이에 대르나드에 와서 철이 들기도 전에 일을 했어. 어린아이는 의외로 단순한 것에 집중을 할 수 있거든. 내가 혹 했던 것은 '일을 해서 돈을 벌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어. 언제 부터 였을까 일을 하는게 당연했고,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곤 했었지. 그렇게 모은 돈의 결과는 그런 것 이었어."
그녀의 말에 벤하르트는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쨋든 구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니프는?"
"아마도 너와 같은 꼴을 당하고 있을거야."
벤하르트와 에실러는 복도를 따라 다음 방으로 향했다.
"여기다."
"어떻게 알 수 있는거야?"
"기척이 느껴져. 이니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이 안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어."
벤하르트는 검을 들어 허공에 휘둘렀다. 곧 백색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형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에실러는 자신이 가게 되면 방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벤하르트를 따라가는건 자신에게 있어도 '벤하르트에게 있어도' 안좋은 결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
벤하르트는 자신의 분신에게 뒤를 맡긴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째서..?'
들려오는 것은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활짝 웃는 이니프의 모습이 지나갔다. 해맑게 웃는 아직은 '어린'그녀는 친구들과 정겹게 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캐뱃이나 호쉬르로 추측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화목한 가정이 반겼던 그 기억들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붉게 물들어 버린 세계속에 기억이 스쳐 흐르고 있었다.
"엄마.. 어디가?"
"음? 이니프 웬일이니?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일어나고 말이야."
입가에 서린 웃음 하지만 벤하르트는 그 웃음이 묘하게 안좋은 기운이 서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말로 정확하게 표현 할수는 없지만, 꿍꿍이가 있는 듯한 웃음. 이니프가 언제나 품고 있던 그 미소였다.
"소리에 잠에서 깼어. 손에 들고 있는건 뭐야?"
"이것 말이니? 이건 말야 굉장한 보물이란다."
"보물? 그게?"
"그래. 값을 메길수도 없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지. 아마 이게 '우리'의 인생을 바꿔줄거야."
"어이 니시아 얼른 가자고,"
"아 이니프가 깨서 말이에요."
"아 그런가.. 후후.."
남자도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이니프를 바라보았다. 이니프의 '행복했던' 기억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미소. 거짓만이 담겨있는 그 미소를 그녀의 부모가 띄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니프야 엄마와 아빠는 오늘 일찍 일을 하러 나가야만 하니까, 어서 들어가서 더 자렴."
"네."
졸린 눈을 비비며 이니프는 그대로 방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날 이니프의 '가정'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사라졌다.
"배신자야."
"배신자의 딸이래!"
"더러운 년."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을까, 고작해야 다섯도 채 되지 않은 소녀의 삶은 천국에서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흐음.."
"저 배신자의 딸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지만 저 애는 잘못이 없네."
캐뱃의 아버지는 엄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벤하르트는 요정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정신세계여서인지 '느낌'으로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배신자의 피를 가진 자는 언제나 배신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헛소리 하지 마라. 어떤 의미에서 가장 피해자는 이니프 자신일 것이다. 필시 니시아와 포크술라는 저 아이를 '버림'으로써 시간을 벌었던 것이겠지."
"무슨.."
"자신의 딸아이를 두면서까지 어디로 멀리 사라질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우리에게 심기 위해서 저 아이를 남겼다. 그런 것이다."
"아.."
"그녀석들이 사라지고 나서 우리가 처음 떠올린 것이 뭐였지? 이니프를 두었으니 잠시 밖을 구경 갔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사건이 발생하고 우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제 딸마저 이용한 녀석들이야! 고약하기 짝이 없지."
"아니야!!!"
"이니프!!?"
캐뱃의 아버지는 놀란 얼굴로 이니프를 보았다.
"엄마와 아빠를 욕하지마! 나를 나를.. 버렸을리가 없어!"
이니프는 자신의 집으로 도망치듯 달렸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정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그녀는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부모는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그녀는 변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캐뱃의 아버지에 의해서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녀는 삽시간에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놀아 주었던 친구들은 자신을 배신자 취급하며 꺼려하기 시작했다.
마을 내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분위기는 어린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 하루밤 새에 둘도 없을거라고 '생각 했었던' 친구들은 자신의 원수가 되어 버렸다. 가족이라고 여겼던 보금자리는 쓸쓸하기 짝이 없는 과거의 잔재로 그녀의 마음을 옭아맸다.
"엄마.. 아빠.. 돌아오지.. 않는거야?"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났다. 마을 요정들과 어울리지 않는데 '당연시' 된 시점에서 그녀의 눈빛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갔다.
"어째서... 가 아니야."
그녀는 어느샌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처음부터 혼자였던 거야."
그 미소는 그녀의 엄마가 아빠가 짓고 있었던 그 미소였다.
"후후..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전부 거짓이었던 거야.. '만들어진 환상'이었던 거야..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어. 그래. 그런 '비슷한 것'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어.."
이니프는 자라기 시작하면서 '거짓'을 배웠다. 선천적으로 '요정' 중에서도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는 캐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이니프는 수년간 살아오면서 과거 부모가 했던 일을 정말로 '과거의 일'로 만들어 버렸다.
순종적인 착한 아이. 어디를 가도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었지만, 그것이 순수한 의도 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것은 '모든 것'이 연기였다. 웃음 행동 모든 것은 가식과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거짓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어..'
그 삐뚤어진 생각은 점점 그녀를 좀먹고 들어갔다. 숲 안에서도 손을 꼽는 미녀인 그녀는 여자친구를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 추파를 흘리며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간 자신을 '배신자'라고 여겼던 자들에게의 복수의 시작이었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남자를 빼앗겼고,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이용만 당한채 버려졌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표면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니프."
"어머? 캐뱃아냐?"
"이상한 행동은 그만둬."
"이상한 행동? 뭘 말하는건지 모르겠네."
"친구들에게 한 행동을 네가 모를리가 없잖아."
캐뱃의 흔들림 없는 시선은 이니프를 쏘아보고 있었다. 마을 내에서 유일하게 이니프를 허물없이 지금까지 대해준 소녀 어엿하게 여인으로 성숙한 캐뱃을 보고 이니프는 미소지었다.
"흐음 정확하게 어떤 이야긴지 모르겠는데, 설명을 조금 해주지 않겠어?"
"네가 남자들을 유혹하고 차버린 일을 말하는거야. 알고 있겠지? 그들이 서로 사귀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하하.. 하하하하하하."
이니프는 광소하며 캐뱃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유혹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단 한번도 그녀석들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쪽이 유혹을 했다는 착각을 받아야 하는거지?"
"아니.."
"그래.. 유혹을 했다고 치자고, 그러면 자신의 여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라면 한눈을 팔면 안되는 쪽은 남자쪽 아니야? 나는 항상 그녀석들에게서 고백을 받았단 말야. '당연히' 그쪽의 여자친구와는 정리가 된 줄 알았는데?"
"....."
"가짜라고 모든것은. 좋아한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모든 것은 스스로를 타인을 속이는 행동에 불과한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쉽게 타인을 배신할 수 있을리 없잖아? 안그래?"
이니프는 요사스럽게 웃으며 캐뱃에게 말했다.
"이니프.. 너.."
"네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그 싸구려 동정 조차도 말이지. 캐뱃. 나에 대한 해명은 이걸로 좋을까?"
시간이 흐르고, 언제부터인가 이니프는 별명을 하나 얻게 되었다. '호루탈 숲의 요녀'라는..
그녀의 지금까지 있었던 기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일대기를 보는듯 그녀의 기억의 모든 것이 비추어 지고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은 가짜 전부 다 가짜야.. 자신을 위한다는 마음가짐 조차도 '거짓'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거짓' 진실보다 더 진실같은 '거짓'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인거야..'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자진리.. 한점 흔들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확고한 믿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어째서,'
가슴이 떨린다.
'어째서 그녀석은..'
기억이 흔들린다. 벤하르트의 모습에 속이 시큰 거렸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하는 모습. 도저히 거짓이라고 볼 수 없는 하지만 그녀에게는 '거짓일 수 밖에 없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남자.
'이해 할 수 없어.. 어재서.. 어째서.. 거기까지 위선을 할 수 있는거야? 어떻게? 어째서!!?'
위선... 이 아니라면?
스쳐지나가는 생각 하지만 그런 가정을 그녀는 도저히 할 수 없다. 그것은 그녀의 삶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자신을 감싸면서 '상처를 입은' 그 남자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야.. 가짜.. 거짓말.. 그건 위선.. 하지만,,'
"어째서 인가요?"
새하얀 백색의 공간 그녀는 벤하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말이지?"
"어째서 그때 몸을 날려 저를 구한거죠? 상처를 입으면 그런 망자가 되어 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벤하르트씨를 괴롭혔는데, 벤하르트씨도 저를 싫어했잖아요!"
"글쎄. 이유를 말하자면,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고 해야 되나?"
"그딴건 이유가 아니잖아요."
"그래 굳이 이유라고 한다면 이미 너를 가만히 둘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네?"
이니프는 화들짝 놀라며 벤하르트를 보았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나는 '이러니까' 타인을 멀리한다고, 내게 있어서 너는 밉상이기는 해도 싫은건 아니야. 성가시다는 것은 분명 맞겠지만, 그러니까 나는 너와 가까워지기전에 멀리하고 싶었어. 이건 네 기준으로 따지면 분명히 위선적인 행동이겠지?"
"....."
"하지만 위선은 나쁜게 아니잖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 친하게 지내는 것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 설사 그 마음에 거짓이 섞여 있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인건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서 재미도 없는 것에 재밌다고 응해주거나 싫어하는데도 관계를 부수기 싫어서 어울려주는 것 그런 '거짓'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
"그래요 거짓이라는 것은 제 전부니까.. 그리고 그것은 진리인 거에요.."
"그리고 네게 있어서 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
이니프는 기가찬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고 계시는 거에요? 전부 보셨다면 아실텐데요? 저는 거짓말쟁이에 요녀라구요? 그리고 그런 것에 한점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다구요. 오히려 자랑스러운 거에요! 그런 저를 보고 '거짓'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요?"
"그래.. 그것 마저도 거짓말이겠지."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거죠?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나는 너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게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곳 공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이니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곳은 말야. 가장 충격적이로 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말하는 것이니까, 네 경우는 '그 날'과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것' 일까? 사실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벤하르트의 말에 그녀는 평소의 여유를 잃고 눈의 촛점을 맞추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했ㄷ.
"아니야.. 나를 위하는 사람 따위는 없어..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을 지켜야해.. 나는.. 나 따위는.."
"세상 사람의 전부가 너를 싫어한다고 해도, 나만은 너를 싫어하지 않아. 네가 '거짓'으로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말야."
"아..."
백색의 세계에 균열이 일었다. 검은 균열은 그 세계를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안이었다.
"....."
"다행이잖냐. 이니프."
벤하르트는 멋쩍은 듯이 그녀를 맞았다.
"잘도 그런 닭살 돋는 대사를 날리는 군요?"
벤하르트를 흘겨보면서 이니프는 그를 놀리듯 말했다. 벤하르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아 뭐, 하지만 말야 그 말은 위선일지는 몰라도 내 진심이라고,"
"그럼 책임이라도 지어 주실래요?"
"그건 무리지. 여러가지 의미로 말야."
벤하르트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호오.."
눈치 빠른 이니프는 흥미롭다는 듯 벤하르트를 보다가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그것은 평소의 요사스러운 미소가 아닌 입가에 걸린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벤하르트씨 고마워요."
"뭐?"
"에헤이. 못들었을리가 없잖아요? 왜 '못들은 척'을 하시는거에요?"
"으.. 너는 정말 여러 의미로 성가시다니까,,"
얼굴을 붉히고 그는 이니프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 작가의말
연참대전을 하루 남기고 괜히 소설에 확 꽃혀서 써봅니다.
저야 일기 일회(법정스님의 일기일회 아니고요) 글을 쓰면 반응을 보고 싶어서 못참고 올리는 성격인지라,,
쓰면 바로바로 올리는데,
비축분을 쌓으시는 분들을보면 아주아주 신기합니다. 소설을 어떻게 안올리고 ‘모을 수 있는 것인가?’ 제게는 의문이네요..
뭐 어쨋든 그래도 제 소설을 보아주시는 분들에게는 반가운 시간인 연참대전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완주가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화 까지는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조금 기대하셔도 좋을지 모릅니다. 저답지 않게 조금 패기를 부려 봤는데 너무 기대하셨다가 ‘뭘 기대하란거야?’라는 느낌이 나올까 두렵네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이번 챕터?를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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