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64화(622화)-
제온은 대행자들을 이끌고 사라지기 직전까지 작은 빈틈 하나조차도 내지 않았다. 언제라도 벤하르트가 자신을 노린다면 역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그 엄청난 실력으로 방심따위는 단 한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전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그의 진짜 실력은 벤하르트는 지금에 와서야 새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나다.'
원의 흡혈귀와도 호각 아니 그 이상으로 싸울 수 있는 인간. 그 실력은 이전부터 입증되어 왔으나, 이처럼이나 눈앞에서 몸소 그의 강함을 체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벤."
"그녀석들은 간거야?"
기절한 이니프를 부축한채로 에실러가 물었다.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야. 그나저나.."
벤하르트는 허공에 뜬 거대한 구체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궤적에 의해 연결된 구체의 안은 오묘한 기운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눈앞에 보이는게 이 세계의 핵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러게."
"후우.. 그럼."
벤하르트는 검을 꺼내들어 그대로 구형의 핵을 향해 휘둘렀다. 핵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빛이 드러나고 있었다.
"읏."
벤하르트는 한손에 에실러와 이니프를 한손에는 리스를 들고 바로 그 방을 빠져나왔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망자의 이계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붕괴.. 서둘러야겠어."
"제온.. 어째서 벤하르트를 치지 않았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아젤이 말했다.
"너라면 우리를 죽이지 않고도 벤하르트를 처리 할 수 있었을텐데,"
"아니 그건 불가능해."
"뭣?"
"아쉽지만 너희들이 죽는 것은 내가 오지 않았다면 '필연'이었다. 오늘의 일은 '시간의 성좌'가 감당하게 될테지만, 그 여파는 상당하겠지."
"서 설마."
"다른 시간의 한 축에서 너희들은 전부 죽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벤하르트이고, 벤하르트가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아니다만,"
제온은 부서져 가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간 공을 들인 것은 아깝겠지만, 이정도에서 그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게 좋아. 그때 내가 벤하르트와 싸웠다고 해도, 벤하르트를 죽인다. 라는 절대적인 장담따위는 할 수 없었으니까, 고로 너희들은 전부 죽었겠지."
"크윽.. 저런 인간 한명에게 아오이스가.."
"글세. 저런 인간으로 치부해도 될 문제인지는 의문이군."
"흥.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설마하니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 기술 '로쿠라스트'의 일종이겠지?"
제스톤은 지쳐 보이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기절한 다른 대행자들이나 아젤과는 다르게 아직 기운이 상당히 남아 있는 듯 했다.
"아마도.."
제스톤은 제온과 눈을 맞추고 미소를 띄운채 말했다.
"그런가. K녀석이 좋아하겠군."
"이 곳을 잃는 것이 필연이었다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겠지만, 그정도의 위험요소를 쉽사리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지."
"'총념'의 후보 답게 저열하기 짝이 없군."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제스톤씨."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하기사 그정도의 수작에 당해버린다면 그정도에 불과한 인간이겠지."
'당할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야.'
제스톤은 무너져 내리는 한때 '핵'이 존재했던 고층의 건물을 보며 생각했다. 아젤은 간신히 지팡이를 들고 서서 허공을 향해 들었다.
"벤! 무너져 내린다!"
리스의 말에 벤하르트는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부썰리듯 잘려나간 벽을 뚫고 그는 허공에 검을 외치며 뛰어내렸다.
"일섬 백봉!"
거대한 백색의 새 위에서 그는 바로 검을 휘둘러 리스와 에실러 이니프를 묶어 새쪽으로 끌어내렸다.
"꽉 잡아 단번에 빠져나간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을 빠져나와 벤하르트의 백봉은 그대로 일행들이 머무는 곳으로 날았다. 아래를 내려다 보고 벤하르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젤녀석.. 수작을 부렸구나.'
어디서 솟아나왔는지 망자들의 수는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벤! 저거!"
리스는 공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백봉을 자신의 뜻대로 다룰수 없다는 것을 느끼곤 벤하르트는 금이 가서 깨져나가는 공중을 보았다. 시꺼먼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을 향해 백봉은 그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읏."
에실러도 얼굴을 새파랗게 질리며 당황해했다.
"뭐 뭐.."
"뛰어내려!"
리스는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렸지만, 에실러는 위 아래를 보며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백색의 끈으로 그녀와 이니프를 묶어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꺄아!"
떨어지는 것을 백색의 기로 낚아채어 벤하르트는 옥상위에 도착했다.
"죽는줄 알았네."
"각오해야 할 것은 지금부터야. 공중은 사용할 수 없어. 그렇다는건.."
그는 건물의 아래를 보았다. 그곳은 시뻘겋고 검은 눈으로 가득했다. 그곳은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지옥과도 같은 수라장이었다.
"오 올라온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고 그는 끈으로 전원을 묶었다. 건물을 타고 올라오는 망자의 무리들을 무시한채 그는 그대로 건물 위를 넘나들며 은거지를 향해 달렸다.
"가오오오!"
지킬때 더욱 빛나는 벤하르트의 검은 간단하게 망자들을 양단했다. 하지만 망자들의 움직임을 보고 벤하르트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일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건 설마..'
세계를 이루고 있는 근간은 부서졌으나, 그 힘은 사방으로 흩어져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본래 세계를 이루고 있어야 할 핵의 힘은 망자들에게 넘어갔고, 그것뿐이 아니라 대행자 넷에 제온의 힘까지 영향을 받은 망자들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거야?"
"읏.. 결계가.. 각오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위니스트는 보기 드물게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사람을 불러주세요. 곧 결계가 부서집니다."
"뭐 뭐야!?"
건물의 입구가 부서지자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크악.. 부서졌다!"
"사 살려줘!"
"침착하게 뒤로 물러 서십시오. 자 가자!"
"예!"
저마다 무기를 들고 망자들과 대치했지만, 망자들의 실력은 각각 하나를 상대하는 것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성장해있었다. 공격을 무시하고 들어오는 망자들에 의해 그들은 후퇴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막아내기만 할 뿐이었다.
"크읏.."
"물러서!"
"!?"
"먹어라! 크라이오스 버스터!"
백색과 흑색이 섞인 빛의 궤적은 망자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유치한 이름따윈 그만 두라고 스팅."
퉁명스럽게 지적하며 레랄드는 들고 있는 무언가를 망자들에게 겨냥했다. 방아쇠를 당기자 마찬가지의 거대한 광자는 망자들을 분쇄시켜 버렸다.
"너 너희들!"
"자 어서 안전한 곳으로.."
"스팅 온다."
"좋아. 올테면 와봐라!"
약 10분쯤 정도 시간이 흐르고 모두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전방 후퇴! 상처는 절대로 입지 마라1"
"예!"
전력외적인 실력을 전부 뒤로 무르고 스팅과 레랄드의 지원으로 버티고 버텼지만, 망자들은 끝도 없이 몰려 들고 있었다.
"어이! 아까부터 발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충전 시켜 두었던 힘이 전부 소진 되어서,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5분이상은 모아야 한방씩 날릴수 있을 것 같은데,"
"뭐... 크읏."
장검을 든 남자는 니키레우스였다. 그는 각오를 다진 듯 검을 들고 문 앞에 섰다.
"너희들 한발치는 남겨둬라. 여기는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 내가 망자로 변하면 주저말고 한발 날리고 문을 걸어 잠궈라. 적은 공간이라면 위니스트가 버텨줄 수 있을 터.."
"어 어이.. 하지만,"
사내는 검을 바로 잡고 수비대원들을 뒤로 물렀다. 그는 망자들이 드글 거리는 곳으로 몸을 날려 단번에 두어명의 목을 베어내었다.
'상처를 각오한다면 아직 더 베고 벨 수 있을터!'
망자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 그는 실소를 머금고 검을 들이밀며 생각했다.
'내게 이런 의기가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거늘.. 그나저나 이걸로 끝인가.. 이런 곳에 떨어진 것은 정말 운도 없었지만,'
그의 팔에 망자들이 닿기도 전에 망자들은 백색의 섬광에 휩쓸려 나갔다.
"이건.."
입구에는 한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벤하르트!"
"모두를 데리고 나와!"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이 망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고!"
"이제 곧 이 세계가 붕괴한다는 일이겠지요."
니키레우스의 뒤에서 위니스트가 나오며 말했다.
"뭐라고?"
"벤하르트가 성공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지키고 있어도 소용 없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밖에는 망자들이.."
"내가 길을 뚫을테니 사람들을 모아줘."
"..... 알았다."
상황이 급하다는 것을 깨달은 니키레우스는 부하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 들였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겠어."
"제가 알고 있습니다."
위니스트는 벤하르트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 건물에 존재하던 핵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동남쪽을 따라 가는 외길의 끝에 도달한다면 제가 반대되는 힘으로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을 인솔해 주세요."
"벤하르트씨는.."
"길을 만들겠습니다."
벤하르트는 그대로 다시 들어오는 망자들을 닥치는대로 베어 넘기고 양쪽으로 검기를 날려 길을 열었다.
"일섬 백인."
허공에 검을 휘둘러 벤하르트의 형상을 한 백색의 인간들을 수십을 만들었다.
"벤! 너.."
리스는 기겁을 하며 벤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일이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어."
"하지만 저정도라니 어느정도의 힘을 사용한거야!"
"지켜야 할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도 지킬 수 없어. 네 지금의 상태로는 망자들을 몇 당해내지도 못하잖아?"
리스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사용하지 마' 그것을 사용하고 제정신으로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겠어?"
"상관 없어. 나는 너만 지킬수 있으면 다른 녀석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어."
"내가 상관 있어. 겨우 만들어낸 장소를 스스로 부수지 말아줘. 그것을 위한 힘이야. 나는 괜찮다고!"
벤하르트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 후위를 맡았다.
"자! 분신이 지켜줄 겁니다! 사람들을 인솔해서 결계의 끝으로 이동해주세요!"
"으읏.. 크윽.."
총 24체의 분신들은 앞길과 사람들을 지키는 것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행렬의 '후미'는 벤하르트 혼자서 감당해내고 있었다. 바늘 하나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벤하르트는 단신으로 망자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전보다 몇배는 강해진 망자들을 혼자의 힘으로 상대하는 것은 설사 벤하르트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벤.."
"리스 물러서.. 너라고 해도 이녀석들에게 당하면 '지금'은 망자가 되어 버릴 지도 몰라. 나는 내성이 있으니 괜찮다고,"
벤하르트는 잔 상처 하나도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상처가 문제시 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조금만 버텨다오.. 제발..'
끝은 멀지 않았다. 이 길을 단 한사람의 망자도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만을 생각해 벤하르트는 검을 휘둘렀다. 리스는 어줍잖게 벤하르트에게 나서는 것이 더 방해를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벤하르트가 무사하기만을 빌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이 나온다면 그녀는 언제라도 자신을 부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멈췄다.'
사람들이 멈춘 것을 느끼고 벤하르트는 그들이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아아!!"
벤하르트는 그대로 바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백벽!"
백색의 기둥은 결계를 이루어 벽을 만들었다.
"벤!"
"하하.. 겨우 해낸 모양이야."
"아 아아.. 벤하르트 저걸 봐!"
"!?"
벤하르트는 에실러의 신호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벤하르트의 결계를 서서히 뚫고 들어오는 망자의 무리가 있었다.
'이거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대로 그는 결계의 밖으로 나가 검을 휘둘렀다. 한순간에 여섯체의 망자를 베어내고 그는 일섬의 자세를 잡았다.
"벤하르트 물러서라!"
스팅의 목소리에 벤하르트는 비틀거리면서 한발 물러섰다. 거대한 광자포가 망자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이 괜찮은거야?"
창백한 얼굴로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소에는 도착한 모양이다. 그런데,"
"뭔가 문제라도 있는거야?"
"공간이 열리지 않는 모양이야."
"어째서.. 열리지 않는거지?"
"어이 위니스트. 혹시 이곳이 아닌건.."
"그럴리가 이곳이 확실해.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내 역량의 문제겠죠."
"그럼 어떻게 되는거야!"
주변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고! 벤하르트라고 했었나? 그녀석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사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 아냐!"
"그래. 괜히 건드려서 죽음을 앞당기다니!"
"그녀석 탓이라고 젠장. 듣자하니 계획을 망친것도 그녀석이었다고 들었었어!"
술렁거리는 틈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치세요."
"그래.. 음? 뭐?"
비틀거리면서 등장한 것은 이니프였다. 이니프는 난폭하게 마계인 한명을 밀치고는 허공에 손을 들었다.
"위니스트.. 공간을 여세요."
"음? 아 알겠습니다."
이니프가 가리킨 곳의 주변은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듯 응축되기 시작했다.
'대단한 마력..'
위니스트가 영창을 하며 이니프가 만들어 낸 곳에 빛의 창을 투척했다. 빛의 창은 결계를 꿰뚫어 찢어냈다.
"해 해냈다."
"....."
이니프는 결계가 뚫린 것을 보고 부들부들 떨다가 그자리에 쓰러졌다.
- 작가의말
619화가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꼭 수정하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손이 잘 안잡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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