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24화-정보(6)
다음날 아침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다시 여왕을 찾았다.
"레니아 네가 그정도까지 정보를 얻어낼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레니아는 여유롭게 여왕의 말을 받았다.
"사실 나는 그정도'밖에' 정보를 얻어내지 못할줄은 몰랐어. 그정도로도 포화가 되어서 더 얻어내지 못할 정도가 되다니 칭찬할 입장이 아니기에 찬양이라도 해주고 싶은 기분이야."
"그래. 너희들이 에시오르의 영생을 이루게 해준 자들이었군."
"그렇다는건 정말로 에시오르의 전생이라는 것입니까?"
"그래. 나는 그녀의 전생체중에 세번째 전생체였다. 에시오르와 같이 나는 그 무한 전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과거의 다른 사람들의 기억 그리고 스스로의 예지로 나는 영생을 이루고자 했었다. 하지만 그 꿈은 평생토록 이루어지지 않았지."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벤하르트는 정말로 레니아의 비약이 기적의 한 방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할수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사람들은 신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신이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일수이다. 실제로 그 자신도 레니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신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기본 전제였다. 마음이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이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맹목적으로 신을 향해 기도를 한다고 해도 평생을 신을 만나지 못하는 자들도 부지기수였고, 한편으로 의심하면서도 자신처럼 신을 만난 사례또한 존재한다. 정말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을 만날수가 없으며, 설사 만난다고 해도 신에게서 영생을 받는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신은 그런식으로 사람을 구원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결국 어떤 의미에서는 영생이란 '노려서' 되는게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었다.
여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스스로의 운명의 예지를 만들기위해 할수 있는것은 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틈 같은 예지조차도 이룰수 없을 만큼 '영생'이란 쉬운게 아니었다. 평생을 걸어도 거는쪽이 바보같다고 말할정도로 '실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왕은 해낼수 없었다. 자신이 죽을때까지 노력해도 영생을 얻어 전생을 탈피 할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명을 안다는것은 어떤 의미로는 저주이면서 어떤 의미로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냈다.
"나는 예지로 내가 영생을 얻을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 그것을 깨달은 순간 새로운 예지를 할수 있었다. '어쩌면' 있었을지 모를 다른 운명을 읽어낸 것이지. 그게 바로 이 라스펠을 만들어 나를 죽이고 나의 모든 사념을 이곳에 정착 시키는 것이었다."
"대단해. 어쨋든 현실적으로는 죽어야 한다는 것일텐데 에시오르가 감탄할만 한 행동이야."
"글세. 나는 인형처럼 타인의 운명에 영원히 속박되기 싫었을 뿐이야. 감탄 받을 일도 아니고 대단한 일도 아니지."
여왕의 말에는 도도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있었다.
"말은 번지르르 하게 해도 결국 나는 이렇게 왕비인 샤모나의 정신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추악한 사념체에 불과해. 타인을 희생시켜가면서 나 자신을 구원하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아 그런데 어째서 왕비에게 전이하는거지?"
"그건.. 으음 뭐 상관 없나. 나는 생전에 아이를 낳았다. 그 직계의 아이는 또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 지금 있는 자고왕도 사실은 나의 자손중 한명이다. 나는 자손과 연결이 되어야만 존재할수가 있게 되는데, 내 본래의 성이 여자였기 때문에 남자에게는 들어갈수가 없지. 하지만 레니아 생각해봐라. 남자와 여자 어느쪽을 낳을지 모르게 되면, 매번 나는 전이할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 어쩔때는 천민의 자식으로 어쩔때는 귀족의 자식으로 그것 자체는 상관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 스스로의 권력은 가질수 없게 돼. 나는 권력은 필요 없지만, 라스펠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것 만큼은 용납할수 없었다. 나는 라스펠이며 라스펠은 곧 나 라스펠이 잘못되는것은 결국 내가 잘못 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이나 딸을 낳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할 수단 같은건 없잖아."
"젊었을때 나는 여러가지 영생을 위해 연구를 해왔다. 그중에는 사법(邪法)에 속하는 것들도 여럿 있었지. 내가 이 라스펠의 직계 자손에게 건 것은 다름 아닌 '저주'였다."
"저주..라고?"
"그래 자손이 낳는 아이는 모두 아들이며 외동으로 밖에 낳지 못한 다는 저주."
"잠깐만 그건 이상하잖아. 네 말은 이해할수 있어. 아들이나 딸이 무작위로 나오게 되면 곤란하다는 것과 외동으로 낳는다는 것. 이 두가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아들'이지? 딸이라면 직접적으로 네가 계속 전이할수 있는 배경을 만들수 있는게 아닌가?"
여왕은 잠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렇게는 못해. 너라면 조금만 생각을 해도 알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인간 세상의 단편을 정보를 통해 보았다면 알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 세상을 다 가져도 욕망이 생기는 게 바로 인간이다. 만약 네가 말한대로 여자만을 낳게 되면 내가 전이하는 것은 편하겠지. 하지만 나는 영생을 사는게 아냐 결국 다시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는 남성은 사실상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성'이지. 사랑을 하는것처럼 보이는것도 사랑을 하는것도 가능하겠지만, 어떤 것으로 포장을 해도 나와 남자는 남이야."
"하지만,,"
"나와 결혼해 왕이 될 남자는 나와는 결혼과 사랑으로만 엮여 있는 어떤 의미에서는 '타인'이다. 그런 남자는 권력에 맛을 들리게 되면 결정적으로 나를 배반할수 있게 돼. 그래 한번 두번 세번 심하게는 열번 대대로 '그렇지 않을수'는 있지. 내가 내조를 하는것도 좋고 그를 굴복시키는것도 나는 가능해. 하지만 결국에는 배신을 당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군."
레니아는 수긍했다.
"어이 레니아 뭘 수긍하는거야?"
"아니 벤 이건 여왕의 말이 맞아. 방금 여왕은 결혼과 사랑이라는 말로만 포장했지만, '계략'이라는걸 넣으면 어떨까? 여왕에게 자신의 본 목적을 숨기고 접근한다면? 여왕이 그와 결혼을 하게 되고 그가 배신을 한다면? '남자'는 여왕의 말대로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타인이야."
레니아의 말에 여왕이 말했다.
"그게 아니어도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여자만 낳는다는 것. 그건 결국 내가 아이를 낳고 '자식'에게 기생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그걸 부모가 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샤모나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 그녀의 행복을 빼앗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때문에 이런 공적인 일이 아니라면 나는 절대로 사적인 일에는 나서지 않아. 하지만 이 부분을 샤모나가 납득해 주었기에 결과적으로 남이기에 나는 그녀에게 기생해 살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말야 남자를 낳을 경우에도 문제는 마찬가지잖아? 배우자가 되는 여자의 신분이 다른 것은.."
"아니 레니아 조금 달라."
오랜만에 벤하르트가 그녀의 말에 반박을 하길래 레니아는 살짝 쏘아 물었다.
"뭐가 말야?"
"네가 놓치다니 대단한데, 왕이 될 사람은 전부 여왕의 자손이야."
그는 약간 신나하며 말했다.
"아.."
"그래 왕이 될 사람은 나의 친족 '저주'로 엮어진 나의 자손이지. 나는 절대적인 복종을 바라는건 아냐. 다만 상대적인 신뢰를 바라기에 자손이라는 것은 굉장한 이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왕이기에 왕비가 될 사람을 구하는것도 간편하지. 물론 '나라는 존재' 때문에 문제가 된 일도 초기에는 있었다."
"초기? 그런 문제는 원래 끊이질 않아야 되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나는 수완가거든.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수 있지. 자신의 감정을 죽이는것도 상대에게 맞추어 주는 것도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할수 있지. 그렇기에 처음만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이전의 사례가 없기 때문이지. 막상 시작하게 되면 물론 손해를 보는 일은 있지만, 나름대로 적응 할만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더군. 대를 이어 가며 나는 여왕으로써 입장상 성군일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욕망을 금지하고 오로지 이 도시 이 나라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하고, 그런건 결과로써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은 납득 하고 있다는 건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소 광오해 보이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수 있었다.
"그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지언정 다수의 사람들은 이해를 해 주고 있다. 하지만 어떤 말로 치장을 하더라도 내가 기생하는 여인을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후회는 하지 않지만, 미안하게는 생각하고 있다."
여왕은 성심이 깊다고는 할수 없었지만, 사리분별만은 확실하게 할수 있었다. 그녀가 여왕으로써 라스펠을 다스리는 것도 여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그런 그녀의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사리분별을 잘 할수 있기에 그녀는 스스로의 존재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모순조차도 뒤엎어 그녀는 여지껏 존재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에시오르는 잘 지내고 있나?"
"더할나위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겠지. 이몸에게서 영생을 살수 있는 비약을 받았으니,"
"그런가. 하긴 생각해보면 그녀석은 달랐지. 굳이 따지자면 나와도 비슷한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지를 할수 없는거야?"
"본래 그 예지의 힘은 '나' 라는 객체의 힘이 아니다. 사람의 운명의 길을 읽어내는 예지를 우리가 사용할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전생체이기 때문이지."
"전생체이기 때문?"
레니아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알아 차렸지만,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벤하르트가 물었다.
"즉 예지능력을 사용할수 있었던 존재는 '최초의 전생자'였던 것이다. 그 전생을 가지고 있는 에시오르는 예지를 사용할수 있지만, 이미 그들에게서 떨어진 나는 예지를 사용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군요."
"나는 아마도 예지라는 능력에 버금갈만한 힘을 갈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사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서 '정보'라는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전생을 떠나 '나'로써 존재하면 되었고, 그것을 위한 라스펠과 그것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 그것으로도 족했을텐데, 굳이 정보의 틀을 만든 것은 한때의 이상적인 힘이었던 예지에 가까워 지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그나저나 원하던 정보는 다 찾아냈나?"
"필요한 만큼은 충분히."
"풍령의 위치 또한 찾아냈겠지?"
"물론이긴 한데,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레니아가 묻자 여왕이 대답했다.
"글세 이대로 라스펠이 멸망하는 것을 두고 볼수도 없으니 우리도 령을 노려야 겠지."
"그건에 대해서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실 저희도 령을 원하는 이상 많은 것을 무를수는 없는 일입니다. 령에 근접하지는 않습니다만, 지령석으로 만든 검이 있습니다. 그것을 매개체로 사용을 해보시는것은 어떨런지."
"그 이야기는 들은 것 같은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령의 조각에 불과한 영석으로 만든 검으로 령만큼의 위력을 낸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울텐데,"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지. 이녀석의 실력은 상식을 초월 하니까."
"해보는 것에 손해는 없을 겁니다. 된다면 서로간에 반목할일이 없으니 좋을테고 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는 일이 되겠지요."
"그정도로 자신이 있을 정도의 검이라면 세간에서는 보물에 가까울텐데 그것을 주겠다는 건가? 한번은 배신까지 하려 했던 우리를?"
벤하르트가 말했다.
"이대로 반목하면서 라스펠의 사람들이 전부 죽게 두는것보다는 나을것 같군요. 말은 이렇게 해도 이미 그 검은 제 소유가 아니기에 실제로 된다고 하면 감사해야 할 사람은 트레이야겠지만요."
"그런가. 염치 없지만 부탁을 해도 되겠나?"
"이미 이쪽은 마음을 굳힌것 같은데, 기대나 하고 있으라고, 아까 너는 믿을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 될거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거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큼. 아 그리고 여왕 당신의 이름을 아직도 모르고 있잖아."
여왕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됐다. 나는 여왕으로 불리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름이 주어지면, 이미 나는 한 객체가 되어 버려. 그건 나에게 몸을 빌려주는 샤모나에 대한 실례다. 나는 그저 샤모나의 몸을 빌린 여왕이면 족하고 그 이상은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으며 말할 생각도 없다."
"어지간히도 고집쟁이로군."
"그랬기에 라스펠을 이루어 낼수 있었겠지."
"그럼 준비를 하겠습니다."
여왕은 고개를 엄숙하게 숙였다. 그녀는 그런것에 얽메이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스스로에게 힘든일도 더러운일도 서슴치 않을 텐데 고작해야 고개를 숙이는 행동은 마음에서 우러러 나기에 충분했다.
"고맙다."
그 작은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 작가의말
도저히 다음날 시간을 낼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기에 그냥 연달아 한화를 더 올리고 갑니다. 졸려 죽겠는데 훈련 잘 받을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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