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12화(566화)-마신(魔神)(6)
"그러면 이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부활을 하게 되는 겁니까?"
"저 지옥의 불길은 이미 내 수족이나 다름 없는 존재가 되어 있지. 경외의 신앙심을 먹고 모태는 뼈와 살을 제공하고 불길을 먹어 그로 인해 나는 다시 부활 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 불길에 모든 것을 넣는 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로군요."
크로세트는 부서지고 복구되기를 반복하는 몸으로 광기에 찌든 웃음을 보이며 티온에게 다가갔다.
"그래 절망 하는거다. 너는 결코 벗어나지 못한채 부모도 지키지 못한채 자신을 이 내게 바치는 것이다."
"아.."
크로세트의 신호에 세계가 회전하는가 싶더니 이내 그들은 티온의 감금실로 이동해 있었다. 마치 잠시동안 꾸었던 꿈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군요. '그런 방식'으로 제물을 쓰는 것이었다면 저도 제 검을 그에 맞추어 만들겠습니다."
"기대하도록 하지."
크로세트가 자리가 비운 것을 확인한 벤하르트는 정신을 잃은 티온에게 다가갔다.
"어이 괜찮아?"
티온은 멍한 얼굴로 있다가 벤하르트를 올려다 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티온을 처음 보았을 때의 얼굴을 보는것만 같았다. 아마 벤하르트가 알지 못했던 시간동안 수십번 수백번 크로세트로부터 감정을 유린 당했을 것을 생각하니 그는 살짝 마음이 미어졌다.
"늘상 있는 일이에요."
그녀는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숙여 벤하르트의 시선을 피했다.
"마왕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한가지 정도는 들을만 한 것 같아요. 아무 생각도 없이 감정을 죽이면 적어도 괴롭지는 않아요."
"그런건 도피라고 하는거란다. 네가 순순히 크로세트의 제물이 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는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 없는거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한번 찌를수 있는 기회는 잡아 주마. 크로세트의 빈틈을 꿰뚫을 수 있도록 기회는 만들어 주겠어."
"그게,. 무슨."
"솔직하게 말하지. 네 어머니는 이미 가망이 없을지도 몰라. 그건 신앙이라기 보다 이미 세뇌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아마도 경외를 뽑아 내기 위해서 순수하게 경외만을 얻어내기 위해 자신만을 추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었겠지. 지금의 너처럼 말야. 이 도시는 이미 마왕의 주술로 덮혀 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제정신을 유지 할 수가 없지. 그 중심지에서 저런 상태였다. 아마 크로세트를 없애도 도시를 구해도 돌아오지 못할지 몰라.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지만 너를 판 행위조차도 본심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높아."
"그런..."
티온은 좌절과 절망이 뒤섞인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나도 희망을 버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 그건 나를 부정하는 일이니까, 어느 정도로 어렵든, 그게 설사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찾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지라도 포기만은 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어머니를 믿어라. 나를 믿어라. 그 믿음으로 절대로 꺽이지 마. 감정을 죽이는 것도 기대를 갖지 않는 것도 좋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언제고 꺽여서는 안 될 무엇이 있는거다. 여기서 포기한 채 모녀간에 동반자살을 하던가, 만에하나 아니 그 이상가는 확률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살리기 위해 도전해보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세상의 누구도 아닌 바로 너 자신이다."
"정말.. 가능 할까요?"
"몰라. 말했지? 장담따윈 하지 않는다고, 세상 일은 자신이 원한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저는 벤하르트를 믿을게요. 절대로 믿어 보일게요."
그것은 생전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의 의지를 담아 말한 것이었다.
"그럼 한가지만 더 약속해줄래?"
"뭐를요?"
"내가 너에게 '어떤 짓'을 하든 나를 믿어주기로."
"무슨 짓을 할 생각인데요?"
티온은 살짝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그게 그녀 나름대로의 장난이라는 것을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수차례나 자신을 골려 먹는 여자들은 많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은 아주 익숙했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티온에게 놀아나지는 않았다.
"흐음. 솔직히 이야기해서 말로 할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야. 단지 '행동'만을 놓고 본다면 네게 있어서는 배신이라고 생각할수 있을지도 모르는 행위겠지."
"약속할게요. 끝까지 벤하르트를 믿을게요."
"그래."
벤하르트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친 손이었지만 그 손이 어찌나 포근하게 느껴졌는지 티온은 벙찐 얼굴이 되었다.
"그럼 나중에 오도록 하지."
티온은 벤하르트가 나가고 난 뒤에도 그가 나간 문을 멍하니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성가시게 되어 버렸군.'
벤하르트는 만들어진 검을 보고 슬쩍 휘둘렀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칼바람 소리는 거칠고 둔탁하기 짝이 없었다. 도저히 벤하르트의 검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지만, 벤하르트는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중얼거렸다.
"네가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검은 벤하르트를 따르지 않았다. 벤하르트의 검에는 의지가 실린다.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검은 주인을 위해 빛나고 갈고 닦여져 성장해나가 눈부시게 빛이 난다. 하지만 이 검은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검. 벤하르트에게 증오를 품고 있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미안하다."
벤하르트는 중얼 거리고는 검집에 검을 담아 공방에 걸어 두었다. 첫날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인지 주변에 자신을 감시하는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크로세트를 믿거나 하지 않는다.
몇번이고 전장을 돌아 다녔을까. 그간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고, 그 와중에 '죽이지 않은 것' 또한 기적에 가까운 여행을 하는 동안 그는 감각을 예리하게 갈고 닦았다. 안일하게 하나의 경우를 생각하거나 해서 낙관하지 않았다.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여 혹시나 일어날수 있을지 모르는 일을 생각했다.
크로세트가 감시를 풀었다고 해서 자신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했을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리 없다는 가능성부터 생각한다. 레니아와 여행하면서 잊었던 '의심' 하지만 그 의심은 정말로 필요 없는 것이었을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되려 필요한 것을 벤하르트가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는 것이 옳은 것일 것이다.
벤하르트는 젊었을 시절 누구도 믿지 않았고, 레니아와 여행을 하면서 누구라도 믿었다. 너무나도 극과 극이었던 삶이었지만, 사실은 '두 인생' 모두 옳았다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의심으로만 점철된 삶은 레니아와의 여행을 통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의심이 없는 삶은 어떨까? 결과적으로나 과정으로나 그 또한 옳은건 아닌 것이다.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알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그것은 타인에게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의 환상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에서 벗어나면 멋대로 '배신'이나 당했다고 착각이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믿거나 하지는 않았다. 믿을 것을 믿을지라도 끊임없이 의심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백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면서 알아 버린 자신을 보면 쓴 웃음이 나왔다.
벤하르트는 구아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구아나는 여전히 게슴츠레한 눈으로 귀찮아 하고 있었고, 리스는 자신의 머리칼을 정리하며 벤하르트가 오는 것을 반겼다.
"벤 왔어?"
"어딜 갔었던 거야?"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왔지. 들으면 놀랄텐데? 그 네가 말했던 아이의 어머니 말야. 그 신전 최하층에 있는 제단에 있다는 것을 알아 냈지. 그 밑은 이계로 되어 있어서 내가 들어와서 마음대로 꺼내거나 할 수는 없었지만,"
"아 그거 이미 아까전에 듣고 왔어."
"뭐!?"
리스는 간만에 벤하르트에게 한 방 먹일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벤하르트가 알았다는 사실에 약간 실망했다.
"그 정보는 둘째 치고 리스 구아나는 어떻게 구한 거야?"
"그거야 뭐 들어와서 기억을 조작하고 혼을 빼내서 요렇게 가져와서 입에 흘려줬지."
"아주 간단하게 대답하는구나. 그런데 용케 신전에 들어왔는데도 크로세트에게 들키지 않았네?"
"이건 내 예상이지만, 크로세트는 아마 제대로 된 신체를 가지지 못한게 아닐까 싶어. 사실 그 녀석 정도의 영향력이면 나를 느끼지 못할리가 없거든. 이 도시 어디에서든 내가 그녀석을 느끼는 것처럼 사실은 크로세트도 나를 느낄수 있어야 하는데 벤 혹시 그런 낌새를 느꼈어?"
"아니. 낌새는 못느꼈지만, 네 추리는 아마 정답이 아닐까 싶다."
벤하르트는 붕괴와 재생이 계속되는 크로세트의 몸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리스 한가지 도와 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어? 뭔데?"
"그게 말야.."
살짝 귀를 쫑긋이며 구아나가 접근하는것을 보고 벤하르트는 귓속말로 리스에게 무어라 말했다.
"그래 검이 완성 되었다고?"
"네. 이제야 완성 되었습니다. 보여주기 전에 말입니다만, 일단 마지막 피를 채취하러 모태에게 가볼까 합니다만, 같이 동행해주시겠습니까?"
"후후. 굉장히 자신 있는 모양이로군."
"제 기술에 대한 자신이야 원래부터 차고 넘쳤습죠. 지금 웃는 것은 이후에 얻을 제 권력과 부를 생각하며 웃는 것입니다. 마신님이 세계를 멸망의 수렁으로 몰고가든 그렇지 않든 다시한번 제 권력은 보장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 하도록 하지."
크로세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벤하르트와 함께 티온의 감금실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여전히 묵묵히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치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티온이 다소곳하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티온의 모습에 크로세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마신님 한가지 물어볼게 있습니다. 부활 의식은 언제 치르게 되는 겁니까?"
"때가 이르게 되면 하게 될 것이다."
"제 검은 제물용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게 됩니다. 부활을 하시는데 지장이 없으시다면 최대한 빠르게 부활의 날짜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만,"
물론 부패를 한다는 것은 벤하르트가 제멋대로 둘러댄 거짓말이었지만, 크로세트에게는 그 진의를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가.. 그나저나 네녀석.. 잔인하기 그지 없구나. 제물이 될 아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다니,"
끌끌 거리며 말하는 크로세트에게 벤하르트가 물었다.
"그래서, 혹시 가능 하신지요?"
"경외도 모일만큼 모였고, 그 검의 힘과 모태마저 있으니 서두른다 해도 지장은 없겠구나."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다면,,"
벤하르트는 그대로 티온을 어깨부터 시작해 반신(半神)을 양단해 버렸다. 순간 크로세트는 붉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자신의 제물이 될 티온을 베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 이전에 지금 이 상황에 대한 파악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크로세트는 음산한 목소리에 분노를 섞어 말했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벤하르트는 웃음으로 그의 분노 섞인 말을 유연하게 받아 넘겼다.
- 작가의말
아.. 시험기간 때문에 아주아주 바쁩니다. 이래서 연참대전을 12월달에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쉽네요.
후기를 빨리 적어 두고 일단 이전에 수정 해야 할 세 화를 수정 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국어쌤님 저번에 띄워쓰기가 거슬리다고 했던 화로 기회가 나면 텍본을 하나만 보내도록 할게요.
모두들 좋은 일요일 되시기를~
아 그리고 날씨가 정말 추우니 감기 조심하세요. 오늘 살짝 밖에 나갔더니 머리가 어질 하고 귀가 아파올 정도로 춥더군요.(밤에 나가서..)
다들 조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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