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09화-이물(異物)(3)
로이한에게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생각한 벤하르트는 서둘러서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묵직하게 가슴을 죄여 오는 감각에 몸을 맡긴 채 그는 심층부로 향했다.
"슬슬 마중을 나오는 모양이군."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기계병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직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기계병의 등장은 그들에게 경각심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언가가 더 있다.'
벤하르트는 타인의 기를 읽어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자였다. 기계는 생명이 없었기에 느낄수 없었지만, 그 사이 사이에 들어있는 생명 반응이 있는것을 알수 있었다."
"이 이녀석! 라스펠의 인간들을!"
각기의 병장기를 들고 흰눈자위만 보인채 대립한 사람들은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로이한 만큼은 아닐지라도 수가 많았고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쉽게 싸울 마음이 들지 않았다.
"후우..."
싸늘한 눈으로 제네스는 주변을 둘렀다. 그는 악에 대해서 그렇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선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것도 아니었지만, 딱히 선행을 좋아하고 악행을 멀리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선악을 구분 짓지 않았지만, 눈앞의 사태는 눈살이 찌푸려 질수밖에 없었다.
전광석화처럼 내달려 놀랄 틈도 없이 그는 한 손으로 사람의 심장을 꿰뚫었다.
"뭐하는 짓인가!!"
자고왕은 제네스의 행동을 말리기 위해서 일격을 날릴 준비를 했지만, 제네스는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피해내며 말했다.
"너!!"
금방이라도 공격할것만 같은 폭탄같은 얼굴로 자고왕은 제네스를 쳐다보았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한거냐! 너라면 고칠수 있었을텐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지?"
제네스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로이한을 고쳐 주었잖느냐.."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나는 뒤치닥거리를 해줬을 뿐이다. 그렇게 환상속에 빠져 사는 네놈 같은 녀석들때문에 손을 더럽혀 줬더니 하는 말이라고는 고작해야 그것이냐?"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하지만 이야기를 계속할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기계병은 공격할 준비를 끝마쳤기 때문이었다. 겨냥한 방향에서 벗어나 제네스가 행한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제네스가 공격하기 전 멈칫 거리는것을 끝으로 그들의 생명은 하나 둘씩 끊어져 갔다.
"이놈이!!"
"제네스!"
"벤. 말리지마."
트레이야는 고개를 저었고 레니아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것인지 알수 있었다.
기계병과 세뇌된 사람들과의 전투는 꽤 길어졌다. 적재 적소에서 공격을 끊어내는 방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용납할수 없는 일이었다. 기계병들을 막아서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 방패'였다. 기계병들의 실력도 이전과는 다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곳을 제압해낼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인간 하나 제네스는 묵묵히 수도로 그의 목을 겨냥했다. 공격을 하려던 찰나 제네스의 손에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너!!"
"그래 그렇다면 네가 죽일테냐?"
일국의 왕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지만, 그런 말투는 자고왕의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무슨 말이지! 고치면 되잖나!"
"그래 고치라고? 어떻게 고쳐야 되지? 이녀석의 뇌는 이미 산산 조각 났다."
"그것을.."
"이봐. 나는 신이 아니야. 당신은 이 라스펠의 왕이니 강하겠지. 그렇다면 그 강함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게 가능한건가? 한번 지나간 일을 되돌리는게 가능할정도의 강함인가? 내 능력에도 한계는 있다. 고칠수 있다면야 고쳐 줄수 있겠지. 하지만 이미 완전히 망가진 녀석들을 어떻게 고칠수 있지? 말해보라고! 조금 뒤틀어 진 부분이야 고칠수 있겠지. 하지만 이녀석들의 뇌는 이미 가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거냐!"
제네스는 이 상황 하나하나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물이라는 것이 한 비인도적인 행위부터 그것에 말려드는것을 스스로의 손으로 수습하려고 했던 자신의 행동까지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것은 전혀 없었다. 벤하르트는 물론이고 레니아에 이어 자고왕까지 제네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사람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다. 사람을 죽인것은 제네스 혼자였다.
"상황을 파악해가면서 징징거리란 말이다. 머저리들아. 지금에 와서 이녀석들을 다시 한번 되돌릴 기회? 그딴걸 생각할 틈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이겨낼 생각이나 하는게 좋을거다. 여기서 패하게 되면 라스펠의 전원은 이 꼬라지가 될테니까,"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자신의 팔을 보면서 제네스는 불쾌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냉혈한 녀석."
자고왕이 말했다. 마누어나 그리츠도 제네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바보같은 녀석들. 그래 실컷 미워해라.'
그는 고개를 돌리다가 벤하르트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녀석도 같겠지.'하고 생각했지만, 벤하르트는 경멸어린 눈초리로 그를 바라 보지 않았다. 도리어 말로는 표현할수 없지만,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긍정적인 느낌이 드는 눈초리였다.
"뭐냐."
"아니.. 고맙다."
"뭐가 고맙다는 거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돌아온것은 트레이야의 토닥거리는 손이었다.
"저런 녀석이라구. 눈썰미는 좋으니까 말야. 저녀석은 네가 사람들을 전부 '일격'에 죽인것을 봤으니까,"
제네스가 죽인 사람들은 전부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목이 잘려 죽은 사람 심장을 꿰뚫려 죽은 사람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등. 잔혹해 보였지만, 아마도 사람은 죽는 순간이 어땠는지 아픔도 공포도 느낄 새 없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제네스에게 있어 개인적으로 마음을 두지 않기 위한 일이었든 혹은 사람들을 위한 행동이었든 벤하르트는 그것을 고맙다라고 칭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제네스를 믿고 있었다. 제네스가 저렇게 손을 쓸 정도라면 저들은 이미 진짜로 가망이 없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너와 난 적이었잖아. 나는 악역일텐데,,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믿을수 있는거지?'
오묘 했다. 그 감정이 싫다고 입밖으로 몇번이고 말하고 싶은데도 자신을 이해했다는 그 사실을 반기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는게 너무도 싫었다.
그들은 심층부로 내려가기 위한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 기다리고 있는것은 수없이 많은 기계병들이었다. 수를 헤아릴수조차 없는 기계병들은 일제히 공격할 준비를 끝마치고 일제히 발사하기 시작했다.
레니아는 준비하고 있었다는듯 곧장 마법으로 그것의 공격을 막았다.
"많다."
"어쩌지?"
"일단은 싸우는수밖에. 길은 만들어 둘게. 이대로는 접근하기 쉽지 않을테니까,"
벤하르트는 검끝에 기를 집중시켰다. 은은하게 떨리는 백색의 기운과 자세에서 파생되는 불규칙적인 백색의 번개는 그대로 기계병들에게 쇄도했다. 한 귀퉁이가 쓸리고 나자 그들은 너나 할것 없이 기계병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벌써 몇합정도는 겨룰수 있을정도로 기계병들은 성장해 있었다. 약점을 노리고 들어오는 정직한 공격은 이제 한번으로 제거하는것은 힘들었고, 그 움직임조차도 점차 정교해져 가고 있었다.
"하아아!"
벤하르트는 기합소리와 함께 백색의 빛으로 병기를 공격했다. 일전에는 한합에 전부를 격파 했었던 백뢰 조차 이제는 전방의 기계들이 방패가 되어서 막아 많은 수의 기계병을 처리하지는 못했다.
"후우.."
얼마나 싸웠을까 고철 음과 폭발음을 몇번이나 들었는지 기억하기도 어려울 시기가 될 무렵즈음에 그들은 기계병을 전부 물리칠수 있었다.
"이번에는 사람들을 넣지 않았네?"
"다행이야."
레니아의 말을 받다가 벤하르트의 안색이 변했다.
"왜그래?"
"더 있어."
예민한 청각으로 그는 윗쪽을 바라 보았다. 2층으로 된 바로 윗편과 방금 달려왔던 길에서 기계병들은 한기 한기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 벤하르트 일행은 전부가 모일때까지 기다리는것보다 바로바로 제거 하는것이 더 유리했지만, 잠시 그들은 얼이 빠져서 그 광경을 지켜 보았다.
아까와 비슷한 정도의 기계병 아니 방금전보다 확실하게 강해보이는 기계병들은 증기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범위를 좁혀 나갔다.
"어이."
자고왕은 퉁명스레 제네스에게 물었다.
"뭐지?"
제네스도 냉랭하게 그 말을 받아 쳤다.
"만약에 고칠수 있는 사람이라면 죽이지 않아 줄수 있겠나?"
제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라고 말하고 있군요."
트레이야가 끼어 들어서 그를 대변하듯 말했다.
"누가!"
"가라."
자고왕은 검을 치켜 들어 기계병들에게 가리켰다. 벤하르트가 말했다.
"설마 막겠다는 겁니까? 여기서는 같이.."
"그럴 시간이 있나? 이 기계병은 점점 강해지고 있네. 전례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 우리는 그때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당해 버렸다. 그것을 알면서도 반복할수는 없네."
"저것을 무한히 만들수 있는것은 아닐겁니다. 힘을 합치는게,,"
"그래 확실히 저 기계병들이 무한하게 만들어지는게 아니라고 한다면,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만약에 계속해서 만들어 낼수 있다면 어떻게 할건가. 저게 끝이 아니고 3진 4진 5진이 있다면? 그냥 여기서 싸우다가 죽을텐가? 그럴수는 없지. 사실은 이건 자네들에게 맡기고 내가 가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네.. 하지만,,"
"알겠습니다. 가도록 하지요."
벤하르트는 차분하지만 절도있게 대답했다. 자고왕은 이미 자신이 벤하르트의 일행들보다는 약하다는것을 통감하고 있었다. 거기에 혹시라도 있을 세뇌를 당했음에도 고칠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까지 생각하면 이후의 일은 여러가지로 자신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것 또한 숙지하고 있었다.
"어이. 내키지는 않지만, 최선은 다해보마."
제네스는 정말로 내키지 않는다는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고 그에 자고왕은 슬쩍 웃으며 농스레 말했다.
"왕에게의 말투가 거친 외부인이구먼, 자 가라! 이곳은 한기의 기계병도 통과하기 못하도록 할테니, 라스펠을 구해주게!"
"부탁하겠네."
"부탁한다!"
자고왕을 따라 그리츠와 마누어는 그렇게 말하고 동시에 내달려 기계병들과의 싸움을 시작했고 그런 그들을 뒤로 한채 벤하르트일행은 서둘러 심층부로 향했다.
- 작가의말
졸지에 그리츠와 마누어는 엑스트라로 전락되어 버렸군요.
오랜만에 시간이 남아 밤에 쓰는데, 밤에 쓰는것도 그다지 좋은건 아닌것 같습니다. 역시나 아슬아슬하네요.
요즘 정말 쓰고 싶은게 많은데, 할것도 많고, 엔쿠라스 쓰는것만으로도 사실상 벅차고,, 애매하네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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