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17화-거래(4)
"이야기를 하자면 원론적인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아까 마누어 본인도 이야기 했지만, 그녀석이 우리를 데려가려고 했었던 것은 애초에 령을 얻기 위해서 였지."
"그럼 너는 그것 하나만으로 마누어를 의심햇다는 거야?"
"그럴리가, 그정도를 가지고 이런 의심을 할 사람이 어딨겠어? 다만 내 의심의 시발점이 바로 그 목적에서 부터 시작했다는 것이지. 마누어를 처음 의심하기 시작한건 라스펠이 등장했을 때였어."
벤하르트는 라스펠이 등장했을때를 떠올려 보았다.
"딱히 이상한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 딱히 이상한건 없었지. 하지만 그때 하나의 정보를 얻을수 있었잖아. 마누어라는 사람은 라스펠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수도 있다는 사람이라는 것. 거기서 부터 내 의심은 시작되었던 거야."
"하지만 마누어가 라스펠을 염려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잖아."
"뭐 거기서 녀석의 성격을 알았다는 것 뿐이니까, 마누어는 라스펠을 위해서라면 자신뿐 아니라 타인도 설사 도움을 준 은인이라 할지라도 필요에 따라서는 배신할수 있는 성격이라는 건데, 이 시점에서도 사실은 의심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었어. 다만, 조심은 해야 겠다고 생각했었지."
레니아는 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지. 벤 너는 그때 기절해 있었기 때문에 듣지 못했겠지만,"
"무슨 말을 했는데?"
"마누어는 라스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먼저 올라가겠다고 했었지.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볼때 그녀석이 먼저 올라가 버리면 안되잖아? 그래서 나는 그를 설득했었지."
"별로 이상한 점은 못 느끼겠는데, 어디가 이상한거야?"
"아니 여기는 이상하지 않아. 그때 마누어는 어쩔수 없다는듯 우리들을 기다리겠다고 했었어. 나도 그 말을 들었을때는 의심을 되려 안할수 있었지. 왜냐하면 그때 마누어는 우리들은 안중에도 없었거든. 라스펠때문에 우리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망각했을거야. 하지만 내 설명을 들으면서 깨닫는게 있었겠지. 라스펠의 모습과 더불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거야."
"그건 억측 같은데,"
"그 시점에서 보면 억측이 맞아. 왜냐하면 그때 마누어는 우리들을 잊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을 데려갈 생각이 없었고, 우리들을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는 것은 곧 령을 노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었으니까,"
레니아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그 이후에 그들은 우리를 기다려 주었는데 사실 마누어가 그렇게 가겠다고 할 정도로 이성을 잃었던 것 치고는 굉장히 많은 시간을 기다려 주었어. 하루 그녀석의 성격은 라스펠에 올라와서도 봤었지? 그런 투철한 녀석이라는 가정하에 하루라는 시간 거기에 내가 별도로 요구한 두시간의 시간에도 두말 않고 승낙해 주었지. 거기서 사실 어떤 위화감 같은게 생겨났어. 마누어는 라스펠의 변모한 모습을 보고 그정도로 광분을 했었는데, 내 개인적인 요구에 응해준 것은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게 아닐까 하고 말야. 거기까지 이르게 되면 자연히 마누어의 본래 목적과 연결 짓는게 가능해 지게 되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도 마누어를 믿고자 했었어."
"말투로 보면 그때부터 이미 믿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상관 없어. 내가 보기에 그 말은 되려 칭찬이나 다름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다야?"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어. 라스펠에 올라갔을때, 마누어의 변화를 느꼈지?"
"그래 이전보다 훨씬 강한 것 같던데,"
레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여러가지로 심증을 의심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증거야. 왜냐하면 마누어는 우리들에게 그런 사실을 숨겼으니까, 이 라스펠에 올라가게 되면 자신을 비롯해 부하들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숨기고 있었어. 숨길 이유가 있었을까?"
"글세.."
"거기에 두번째로 나는 애초에 그녀석들을 설득할때 우리보다 월등하게 약하다는 가정을 한 채 설득을 했었지. 그러니까 나는 '너희들의 실력으로 올라갔을 때 혹시나 있을 이변에 너희들이 대항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거지?'라는 설득이었어."
"거 참 새파랗게 날이 실린 설득이구나."
"하지만 바로 그 시점에서 말야. 실제로 마누어는 라스펠에 올라가기만 한다면 우리와도 어느정도 겨룰수 있을만큼의 실력이 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그정도 실력이라면 나름대로 어떤 위협이 있다고 하더라도 올라가봄직 하잖아? 그렇게 이성을 잃었을 만큼 흥분했어도 마누어에게는 우리들을 '데리고 가야 할' 이유가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오. 그렇군."
"마누어의 성격과 구태어 우리들을 데려가려고 했던 점. 그리고 여러가지 악조건을 달면서까지 우리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숨긴 것은 최악의 경우 마누어가 라스펠에서 우리들을 노리고 있었다고 의심할만 했던거야. 물론 확실하게 장담을 할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어."
"아니 대단한데, 나는 생각도 못했어."
"별로 그런건 아냐. 벤 너라고 해도 충분히 생각할수 있었을 걸. 아마도 처음 나와 여행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면 이정도까지 체계적이지는 않아도 의심은 할수 있었을 거야."
"그런가?"
벤하르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때의 너는 무엇이든지 의심하고 봤으니까, 어떤 일에 대해서 최악의 경우를 모색하며 행동했었거든. 그러니 아마 그때의 너였다면, 나처럼 증거를 잡지는 못해도 의심은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많이 바뀐 것 같아. 그나저나 레니아 넌 정말 대단한데, 그 작은 단서 하나 하나를 가지고 마누어를 의심했다는게,"
"의심은 별로 어려운게 아니야. 남이 모르게 의심을 하게 되면 그것은 의심이 아니고 주의가 되게 되거든. 의심은 상대가 자신을 '의심'하는것을 깨달았을때야 비로소 성립하게 되는 것이거든. 상대가 그런 사실을 모르는 한 이런 건 단순한 개인적인 주의에 지나지 않게 되는 거야."
"그런데 방금 전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정확하게 맞출수 있었지?"
"이거야 이거. 아까전 부터 붙어 있었는데 너도 눈치채지 못했지?"
레니아는 손가락에 가는 마력의 실을 보이며 말했다. 그녀가 보이고 나서야 벤하르트는 기를 사용해 눈치챌 수 있었다.
"대단한데,"
"이걸로 마누어에게 연결을 해둔거야. 마누어가 하려는 이야기의 특성상 많은 장소에서 할수는 없었으니까, 혼자 따로 이동하는 순간을 포착할까 했었던 건데, 이렇게 까지 제대로 풀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그나저나 그런건 나한테 미리 말해줘도 되잖아."
"아냐 아냐 벤. 이 라스펠은 여왕의 도시이자 나라잖아? 라스펠의 특기는 세계의 정보를 모으는 것. 그리고 여왕은 기본적으로 라스펠에 있는 정보는 전부 알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마 제노스가 사라진 지금에는 우리가 하는 이 이야기도 전부 들을수 있을만큼일걸? 지금에야 여왕이 우리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어느정도 알았지만, 그 이전에는 여왕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었으니까, 내가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여왕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알수가 없었거든. 그렇기 때문에 말 없이 마누어와 여왕이 만나는 순간을 포착한거야."
"여러가지를 잘도 생각하는구나."
"이래뵈도 '천재'라고 여러모로 들어왔으니까, 그나저나 벤 이제 어떻게 할거야?"
벤하르트는 고개를 살짝 갸웃 거리며 물었다.
"뭘 말이야?"
"마누어의 경우는 령 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사실 벤 너는 시도해 보려고 하고 있지?"
"눈치 한번 빠르구나. 그래 이 라스펠을 지탱하고 있었던게 풍령이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와 비슷한 힘이라면 지탱할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트레이야에게 주었었던 그 풍령검으로 한번 시도해 볼까 생각중이야."
"마누어가 그런짓을 했는데도?"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색이라도 하는듯한 눈초리를 벤하르트는 여유롭게 받아 넘겼다.
"나라고 화가 나지 않는건 아니야. 만약에 마누어만 걸려 있는 문제였다면 도와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저 수많은 사람들을 버릴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하여간 사람만 좋아서는, 하지만 그 의견에는 나도 찬성이야. 마누어는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책임을 라스펠의 사람들에게 넘길수야 없지. 그런데 벤 웃기지 않아? 우리는 그렇게나 몸을 바쳐서 이곳을 구해주었고, 영웅 대접도 받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흉계가 도사리고 있다는게 아마 내가 눈치채지 못했고, 여왕도 저 의견에 동조했으면 엄청나게 억울할뻔 했겠지?"
"그러게. 별로 웃기지는 않지만,"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그들은 방으로 돌아갔다.
- 작가의말
연참대전이 하루 남았네요. 그나저나 조금 애매하네요. 야심차게 쓰는 부분이었는데, 뭔가 약간 어눌한것이...
요즘은 너무 바쁘게 되서 속이 뒤숭숭해서 그런지 소설도 잘 안쓰여지는 모양입니다. ㅠㅠ;; 다음주가 아주 피크일것 같네요. 연참대전은 끝나고 바쁘게 되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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